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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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것은 生의 노래를 잠들게 한다.

머무르는 것은 生의 언어를 침묵하게 한다.

人生이란 그저 살아가는 짧은 무엇이 아닌 것.

문득-----스쳐 지나가는 눈길에도 기쁨이 넘치나니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CHEVALIER

                      -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중에서.

 

한 시인의 '추천 시집' 목록에서 보고 메모해 두었다가 구입한 시집이다.

추천해주신 서른 권의 시집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제목이었다.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그렇지, 가끔은 주목받는 생도 동경하게 되지.

 

며칠 전에 이비인후과에 가면서 가지고 가,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읽었다.

(토요일 오전의 이비인후과는 원래 그렇게 사람이 많나?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집에서 살짝, 휘리릭 넘겨 보았을 때는 왠지 꽤나 어려워보인다, 싶어서 어찌 읽을까 걱정 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펼치니, 첫 시부터, 사람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장난이 아닌 거다.

애써 한 시간 기다려 놓고는 이름 부르는 거 못 들어 진료 놓칠 뻔 했다.

시 한 편 한 편,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잠시라도 덮는 손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시집은 서평 쓰기 어렵다. 내 짧은 글 솜씨로는.

다만, 이렇게 내 마음 울린 시집이라는 것만이라도 전달되길...)

 

 

눈싸움은 깨끗한 것으로 싸우는 싸움

얻어맞으면 체온이 더 따스하고

내가 피하면 얻어맞은 벽도 깨끗해진다

눈싸움은 눈덩이가 녹는 싸움 눈이

녹고 나와 적이 녹고

함께 물이 되어 숲이나

강으로 가서는 물로 흔들린다

눈이, 하얀 눈이 온다

나는 눈이 오면 적들과 눈싸움을 한다

눈이 제일 먼저 쌓이는 낮은 곳에서

이기기보다 지기 위해서

                  '詩人 久甫氏의 一日 5

                           ----눈싸움' 중에서.

 

요즘, 저어기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마음이 참 아픈데,

이 시를 보니, 그 아픔이 다시 크게 진동한다.

언제쯤이면 전쟁 없는 세상이 올까, 이 세상에서 전쟁이 끝나는 날이 오긴 올까?

눈싸움 빼곤, 모든 싸움이란 싸움은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지금 그들도, 무시무시한 총칼 대신, 맞으면 맞을수록 깨끗해지고 따뜻해지는 눈을 뭉쳐서 싸움 한바탕 해본다면,

니 편 내 편 없이, 하얀 눈밭위에서 한바탕 눈덩이를 던지며 싸움 해본다면,

"하하하" 웃으면서 싸움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눈싸움이 하고 싶어진다.(이제는 겨울이 눈을 잊은 지 오래다.)

 

'이기기보다 지기 위해서' 사는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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