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 얼굴에는 입이 하나 있다.

이 하나 밖에 없는 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게, 먹고 말하는 일이다. 보통 우리가 입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이 두 가지이다.

그 외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뽀뽀를 할 수도 있고, 미운 놈 깨물어 줄 수도 있고,

코가 막히면 숨도 대신 쉴 수 있고, 차력사라면 입으로 차를 끌 수도 있다.

담배를 필 수도 있고, 풍선을 불 수도 있고, 휘파람을 불 수도 있고, 관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고, 메롱도 할 수 있다.

아마 이 외에도 더 많은, 입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기도 많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입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또 있다.

남의 가슴에 상처 내기, 한 사람의 목숨 들었다 놓기, 사람 사이 갈라 놓기, 남의 눈에 눈물 빼기...

 

이 책의 주인공 광셴이 바로 입으로, 말로, 저런 일을 벌이고 있는, 그러고나서 죽도록 후회하는 우리의 '미스터 후회남' 되시겠다.

광셴은 어려서부터 저 입을 조심하지 못해서, 많은 것을 잃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고, 여동생을 잃고(한 마디로 온 가족을 잃고), 사랑도 잃고, 돈도 잃고, 신용도 잃고, 명예도 잃고,

아무튼 입으로 잃을 수 있는 건 다 잃는 듯하다.

 

광셴의 그 입이 처음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성'에 관한 일이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성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전반적인 소재가 '입'과 '성'이다-그 덕인지 술술 잘 읽힌다.)

흘레 붙은 개 한 쌍을 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다같이 구경하고 나서, 그 날 밤 몸이 달아버린 어른들에서 시작되어 점차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는 목격자 광셴이 있고, 그 사건을 일파만파 커지게 만드는 광셴의 입이 있다.

그래서 책 속에는 광셴이 자신의 입을 때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모든 문제의 원흉인 그 입에게 벌을 주려는 것이다. "요놈의 주둥이!!"라는 대사를 살짝 곁들여주면 더 좋을 듯.

하지만 그 입이 매 몇 대 맞는다고 쉽게 다물려질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어려서부터 함부로 나불대던 '주둥이' 역시 평생이다.

하지만 광셴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입을 놀리기만 한 건 아니다. 그 뒤엔 어김없이 후회가 따른다.

말 해 놓고 후회한다. 저질러 놓고 후회한다.

그때....했더라면, 그때....이랬더라면, 그랬다면.....일텐데, 그랬더라면.....했을텐데....

이런 후회의 말들이 정말 질리도록 나온다. 내 평생 한 후회보다 더 많은 후회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말로, 행동으로 온갖 후회스러운 일들을 저지르는 광셴의 모습에서 종종 내 모습도 발견한다.

나도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고,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한 적도 많고,

이건 진작 했어야 하는데, 이건 하지 말걸, 그런 숱한 후회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말 실수를 할 때마다 내 입을 때리는 벌을 줬더라면 지금쯤 입이 퉁퉁 부어 고름이 줄줄 흐르지 않을까?)

아마 광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광셴처럼 그렇게 많은 후회스러운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어도, 우리네들의 후회스러운 일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바로 광셴의 후회의 역사와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난 날에 후회될 짓을 했다고 너무 자학하진 말길.

우리 삶이라는 게, 그렇게 후회를 거듭하면서, 그 후회의 상처가 아물고 딱딱해 진 위에 좀 더 나은 삶을 일궈나가는 것일테니까,

그 후회가 없었다면 그만큼의 반성과 깨달음도 없었을테니까.

광셴의 후회하는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광셴은 그런 후회스러운 삶 중에 '옌스화(延時話)'라는 내공을 연마하기도 한다. 

바로,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 한 후에야 입을 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남이 어떤 질문을 해도 바로 답하지 않고, 바둑을 둬도 성급하게 알을 옮기지 않는다.

생각 생각 생각한 끝에야 비로소 말하고 행동한다.(얼마 가진 못하지만.)

이런 '옌스화'는 나도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하는 내공인 듯 싶다.(역시, 너무 지나치지는 않게...)

 

이 책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부분에 광셴이 의식 없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후회록'을 털어놓는 부분이다.

십여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만약....더라면'을 꼭 한 번 맛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