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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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책인데, 올해 이 책 추천을 유난히 많이 받았다.

5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신상' 못지 않은 사랑과 추천을 받는 책이라니 도대체 어떤 책일까 궁금해하다가 홍대 와우 북페스티벌 때 문학동네 부스에서 구입했다.

그때 마음은 이 책을 당장 읽어보리라! 였지만, 쉽지 않은 두께에 선뜻 펼쳐들지 못하다가,

<유쾌한 하녀 마리사> 때문에, 다행히 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리하여 하늘의 은총과도 같은 이 소설 속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몇 달 전에 북카페에 가서 앞에 몇 장을 읽어보고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꼭 구입해 읽어보리라 생각하고는 까먹은 책인데, 문득 다시 이 책이 떠올라 구입하려다 보니 작가가 천명관 아닌가.

오홋, 여기저기서 강추를 받은 그 책이 바로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동일 작가의 책이란 말이지!

그래서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온라인 서점으로 구매해 놓고 일단 집에 있는 <고래>부터 펼쳐들었다.

 

이 책은, 정말 두 말 필요없다. 그저 이 한 마디. "대단하다!!!"

 

몇 년이 흘러서도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과 강추를 받는 이유를, 읽어보니 알겠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않아도, 앞에 몇 장만 읽어봐도, 블랙홀처럼 끌어당기는 그 문장들에 빨려들어가 보면 금세 알게 된다.

그것은 '고래'의 법칙이었다.

 

이 책은 시간의 흐름과 등장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그 관계를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워낙 시간과 등장 인물 이름에 약한 나이지만, 그저 문장이 이끄는대로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때의 어느 사람들 이야기인지 상관하지 않고 재밌고 또 재밌게만 읽었다. 한 번은 불쑥 '벌써 그녀가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라는 둥의 문장이 나와서 흠칫 놀라기도 했다. 난 벌써 그녀가 누군지 잊었으니까. 그래서 앞장을 열심히 뒤적여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야 했으니까. 그것은 원주의 책읽기의 법칙이었다.

 

밤을 새워 읽고 싶은 소설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 455페이지도 두껍지 않다. 이런 책은 '1001쪽 야화' 같은 책으로 좀 더 두껍게 나와주면 안 되는 걸까? 아아, 얼른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읽어야겠다. <고래>를 읽어보니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더더욱 기대된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책,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작가. 그것은 천명관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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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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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인터넷 연재 당시 읽고 싶었지만, 인터넷 연재를 읽는 것은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은 끈기와 노력과 애정(마라톤에 애정 없으면 그걸 완주할 수 있을까?) 등이 필요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저 어서 종이책으로 출간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손에 받아 든 <너는 모른다>는 예쁜 표지부터 가슴을 달달하게 해주었다.

그렇다,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 내용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달달한' 느낌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너는 모른다>

내가 만나본 정이현 작가의 책들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한 권 빼고 다 만나본 건데, 세 권의 느낌이 모두 다 무척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제목처럼 달콤한 느낌으로 남아 있고,

오늘의 거짓말,은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에 정이현이라는 작가를 내 마음속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고,

너는 모른다,는 앞 선 두 권과는 또 다른 작가 정이현을 내 앞에 데려다 주었다. 잘 모르겠다, 이 묘한 느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열 시 한강 표류사체의 발견으로 시작된 이 소설의 첫 부분은 강렬했다. 이 소설 어떤가 훑어볼까?라며 거리감을 두고 탐색 중인 독자를 책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감성적이고 예쁜 글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추리소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뒤표지를 보니 '새로운 미스터리'라고 씌어 있었다.

정이현 작가의 문체로 써내려가는 미스터리라니, 확실히 새롭겠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이 책은 내 예상을 다시 한번 뒤엎었는데, 적어도 내 눈에는 이 소설을 연 첫 부분 말고는 미스터리의 느낌을 그다지 받을 수 없었다.

책의 첫 부분과 책을 읽어나갈수록 다가오는 느낌이 무척이나 다른 책이었다.

한 아이의 실종을 둘러싸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이제 곧 아이의 종적을 찾기 위한 추리가 펼쳐지겠구나 싶었는데, 아이의 아빠, 엄마, 이복 언니와 오빠 이 네 사람이 아이의 실종 앞에서 보이는 태도와 행동은 조금 의외였다.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건 오빠였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는 등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듯한 노력을 했으니까.

그럼 그 외의 가족들은?

아이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는 아빠. 다른 가족들에게는 실종 신고를 했다고 하면서 기껏 사립 탐정이나 고용하고 자신의 원한 관계를 생각해보며 마음이 타들어가기만 한다. 아빠는 무엇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도 못 하는 처지인 걸까?

평소에는 아이와 전혀 살갑게 지내지도 않던 언니. 이복 여동생이 실종됐다는 말을 듣고 단번에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채 역시 속이 타들어가 미칠 지경이다. 그러던 와중에 사립 탐정을 집으로 불러들여 유혹 하는 모습에서는 그만 경악.

타이완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한국으로 날아온 엄마. 옛 애인을 만나러 가 있는 동안 아이는 사라졌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아이가 살아 있기만을, 누가 아이를 데려갔는지 아이를 무사히 데려다 주기만을 바랄 뿐.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내가 가장 의아했던 건, 왜 이들 모두가 아이의 실종을 '납치', '유괴'로 단정 짓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날 아이에게 벌어진 일들을 읽기 전에도 내 눈에는 유괴사건이 아니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째서 그 가족들은 자기 주변의 원한 관계만 떠올리며 너무도 쉽게 범인을 추측할 수 있었는지? 어찌되었든, 그 가족들이 누구를 범인으로 생각하건 간에 이 아이는 유괴 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아이의 실종이 주는 긴장감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아이의 실종으로 인해 풀려나가는 가족들의 실타래가 더 중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미스터리적인 요소야 어찌 되었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가족들에게조차 숨겨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아빠의 진짜 직업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궁금했고,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아이의 아이답지 않은 외로움과 쓸쓸함은 가슴 아팠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옛 사랑을 잊지 못한 엄마 옥영과 밍의 사랑 이야기는 애잔했다.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과 전혀 상관없이 동떨어져 있던 첫 부분의 표류 사체에 다시 생각이 미치던 순간의 가슴 시림이란... 그 부분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 문장들은 책 표지에서 받았던 달달한 느낌을 되살려주기도 했다.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과의 만남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삶이란 조금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기차에서 시속 오십 킬로미터의 속도를 견디는 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나이이기도 하다.(55)

 

나는 이제 아직 읽지 못한 정이현 작가의 남은 책 한 권을 마저 읽어봐야겠다. 과연 그 책 역시도 이 세 권과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인지. 어쩐지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며, 그 책도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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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창비시선 140
김경미 지음 / 창비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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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책읽기 키워드 중 하나는 '김경미'였다.

그렇다고 김경미 시인의 책을 많이 읽었다는 건 아니고(<고통을 달래는 법> 단 한 권밖에 읽지 못 했다) 내 가슴을 가장 크게 두드린 시집의 저자인 까닭에 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이 시인에 대한 갈망이 더해져 급기야는 밤새도록 중고서점을 뒤적이기까지 하였다.

김경미 시인에 대해 '갈망'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게 된 건, 내가 찾아본 바로는 그녀의 책들이 모조리 품절 아니면 절판이기 때문이다. 시집 한 권이 온통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시인의 다른 시집들도 만나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하지만 줄줄이 뜨는 품절, 절판 행렬에 슬퍼하다가 기어이는 인터넷 중고 서점을 열심히 뒤지게 된 것이다.

운 좋게도 집에서 멀지 않은 중고 서점에서 이 시집을 발견해 잽싸게 전화를 걸어두었다가 오늘 가서 가져왔다.

 

서점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시집을 펼쳐 들었다.

어떻게 만난 시집인데! 어떤 시들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길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두 다리에 힘 단단히 주어 걸으며 시를 한 편 한 편 읽었다.

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끝이 난도질 당하는 것처럼 아프도록 시려서 결국 뜨끈한 어묵 하나 먹으며 손과 속을 풀고 얼른 집으로 달려와 마저 읽었다.

아아, 그렇게 찾아 헤맨 보람이 역시 있구나.

김경미 시인과 나와의 인연은 <고통을 달래는 법> 한 권으로 끝나지 않겠구나.

요즘 유행하는 '올레~!'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통을 달래는 법>에서처럼 내 마음속 고통을 나눠 가지는 듯한 시들이 여러 편 있어서 나는 또 열심히 빨간 밑줄을 그어댔다.

그녀의 시집 두 권은 모두 내 마음의 치료제가 되어주는구나.

이런 것이 시의 힘인가 보다. 한 두 줄의 시구만으로도 이렇게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니. 이렇게 가슴이 따스해지다니. 이렇게 공감이 가다니!

이 시집에서는 어쩐지 사랑시 한 편 옮겨 적어보고 싶다.(사랑시,이긴 하나 행복 보다는, 역시 쓸쓸한 마음에 '미투하기'를 누르게 되는.)

 


엽서, 엽서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년 혹은 이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몇자 적다 이 사랑 내 마음대로 찢어

처음 본 저 강에 버릴 테니까요

불쌍한 당신, 버림받은 것도 모르고 밥을 우물대고 있겠죠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출판사에 직접 문의 해 구입한 시집이 한 권 더 나에게 오고 있는 중이다.

얼른 그 시집을 만날 날도 기다려지며, 김경미 시인의 첫 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도 꼭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새해 떠오르는 첫 해 보며 빌 소원 중 하나로 넣어야겠다.

2010년 책읽기에서도 '김경미'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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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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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국'이라고 쓰면서 '미국'에서 많이 망설였다.

작가가 인도 벵갈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인도 사람이랄 수 있고, 영국에서 태어나 곧 미국으로 건너갔으니 미국 사람이랄 수도 있고, 어쨌든 미국에서 쓴 소설이므로 '미국'이라고 했는데,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인도의 향기가 강하니까, '소설/인도'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망설인 거다. 하지만 역시 '미국'이 맞는 거 같다. 미국에 사는 이민 1세, 2세들의 이야기니까. 인도 사람 이야기이긴 해도, 미국에 사는 인도 사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까.

 

<축복 받은 집>으로 단숨에 나의 '편애 작가' 목록에 오른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

전작을 읽으며 품게 된 기대감을 전혀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기대 이상의 글을 보여준 책이다.

다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번에도 가정과 사랑과 이해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깨닫고 느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 유난히 내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이민 2세대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선택권이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

부모가 인도 땅을 떠나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부모들의 통제와 압박.

비록 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너는 미국인이 아니라 인도인이다, 그러므로 인도인의 생활 습관을 지켜야 하고 인도어를 잊어선 안 된다, 결혼은 절대 같은 인도 이민자하고 해야 한다, 미국인과의 사랑이라니 안 될 말이다...

미국에서 '미국의 아이'로 자라며 동시에 '인도의 아이'이기도 해야 했던 그들의 모습을, 한 번도 이민자로서 살아보지 않은 내가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하면 어불성설일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읽으면 많이 아프고 슬프고 답답한 동시에 후련함을 느낀다.

내가 그녀의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기장 수준의 밑줄을 긋게 되는 책...

 

왠지 시집 간 동생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었던 '길들지 않은 땅', 나도 함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을 맛 보았던 '지옥-천국',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머물지 않은 방'과 '아무도 모르는 일', 제목에 쓰인 '그저'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던 '그저 좋은 사람', 여운이 너무나 짙고도 짙어 장편 소설 아닌 것이 아쉬웠던 중편 소설 '헤마와 코쉭', 이 여섯 편의 소설 한 편 한 편이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 목록에 고스란히 올라가도 좋을 정도다. '헤마와 코쉭'은 정말이지 장편 소설 아닌 것이 너무 슬플 지경이었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결말이기도 하다. 그 아득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다행이다. 아직 읽지 않은 줌파 라히리의 책이 한 권 남아 있다.

더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느껴지는지.

올해 알게 된 작가 중에서 줌파 라히리는 최고 중의 최고. 아아, 그저 좋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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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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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 김연수

2008 / 창비

 

처음 읽은 날 : 2008년 05월 28일

다시 읽은 날 : 2009년 12월 10일

 

 

국경을 넘나들며 에세이를 쓸 권리.

 

온라인 책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작가를 추천해 달라는 글이 보이면 얼른 김연수를 추천하는 댓글을 단다. 읽어볼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글이 보이면 얼른 김연수 작가의 책을 추천하는 댓글을 단다. 그런데 여행서를 추천해 달라는 글을 보면 늘 조금 머뭇거린다. 김연수 작가에게도 '여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있으니 여행서에 추천해 주고 싶은데, 대부분 그들이 원하는 여행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그들이 추천을 바라는 여행서는 가볼 만한 여행지가 소개 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여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거나, 아니면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로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적은 책 등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아는 한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는 그런 여행서와는 전혀 다르다. 아니,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여행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여행서라기보다는 국경 안팎을 넘나들며 쓴 에세이이다. 그러니 '여행서'인줄 알고 산 사람은 '낚였다'는 말을 하기도. 어찌되었든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국경 바깥 이야기이므로 이국적인 분위기와 이름과 사람들을 잔뜩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는 여행서의 분위기가 좀 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경상도의 한 소도시에서 국경 너머를 꿈꿨던 소년이 자라 국경 밖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가? 이 책에서는 이국의 풍경과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 수고를 하지 않았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국경 너머의 인연들. 그들과의 대화, 그들과 함께 겪은 일을 '김연수식 유머'로 유쾌하게 들려준다. '김연수식 유머'는 뭐냐고 묻는다면 딱 꼬집어 이런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리며, 아아, 이런 게 바로 김연수 작가의 유머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김연수 작가의 유머는 꽤 먹힌다는 것. 그래서 나는 중간중간 폭소를 터뜨려가며 이 고차원적이며 세련되고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에세이를 마음껏 즐겼다.

 

이 책은 나에게 한 단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는데, 그건 '여행'도 '국경'도 아니고 바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인연'. 여행이라고 하면 으레 낯선 땅의 풍경이나 건물이나 외국어 등을 상상하고 동경하지 그곳에서 만나질 인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실은 사람이 아닐까, 그들과의 만남, 그들과의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권리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나의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을 돌아봐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국의 풍경보다, 그 풍경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김연수 작가의 국경 밖 인연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국경 밖 인연들이 떠올랐고 그들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누구든 어디든 떠나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 어디서든 만나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람'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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