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할 권리 / 김연수

2008 / 창비

 

처음 읽은 날 : 2008년 05월 28일

다시 읽은 날 : 2009년 12월 10일

 

 

국경을 넘나들며 에세이를 쓸 권리.

 

온라인 책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작가를 추천해 달라는 글이 보이면 얼른 김연수를 추천하는 댓글을 단다. 읽어볼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글이 보이면 얼른 김연수 작가의 책을 추천하는 댓글을 단다. 그런데 여행서를 추천해 달라는 글을 보면 늘 조금 머뭇거린다. 김연수 작가에게도 '여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있으니 여행서에 추천해 주고 싶은데, 대부분 그들이 원하는 여행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그들이 추천을 바라는 여행서는 가볼 만한 여행지가 소개 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여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거나, 아니면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로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적은 책 등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아는 한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는 그런 여행서와는 전혀 다르다. 아니,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여행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여행서라기보다는 국경 안팎을 넘나들며 쓴 에세이이다. 그러니 '여행서'인줄 알고 산 사람은 '낚였다'는 말을 하기도. 어찌되었든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국경 바깥 이야기이므로 이국적인 분위기와 이름과 사람들을 잔뜩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는 여행서의 분위기가 좀 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경상도의 한 소도시에서 국경 너머를 꿈꿨던 소년이 자라 국경 밖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가? 이 책에서는 이국의 풍경과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 수고를 하지 않았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국경 너머의 인연들. 그들과의 대화, 그들과 함께 겪은 일을 '김연수식 유머'로 유쾌하게 들려준다. '김연수식 유머'는 뭐냐고 묻는다면 딱 꼬집어 이런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리며, 아아, 이런 게 바로 김연수 작가의 유머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김연수 작가의 유머는 꽤 먹힌다는 것. 그래서 나는 중간중간 폭소를 터뜨려가며 이 고차원적이며 세련되고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에세이를 마음껏 즐겼다.

 

이 책은 나에게 한 단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는데, 그건 '여행'도 '국경'도 아니고 바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인연'. 여행이라고 하면 으레 낯선 땅의 풍경이나 건물이나 외국어 등을 상상하고 동경하지 그곳에서 만나질 인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실은 사람이 아닐까, 그들과의 만남, 그들과의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권리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나의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을 돌아봐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국의 풍경보다, 그 풍경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김연수 작가의 국경 밖 인연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국경 밖 인연들이 떠올랐고 그들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누구든 어디든 떠나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 어디서든 만나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람'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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