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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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국'이라고 쓰면서 '미국'에서 많이 망설였다.

작가가 인도 벵갈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인도 사람이랄 수 있고, 영국에서 태어나 곧 미국으로 건너갔으니 미국 사람이랄 수도 있고, 어쨌든 미국에서 쓴 소설이므로 '미국'이라고 했는데,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인도의 향기가 강하니까, '소설/인도'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망설인 거다. 하지만 역시 '미국'이 맞는 거 같다. 미국에 사는 이민 1세, 2세들의 이야기니까. 인도 사람 이야기이긴 해도, 미국에 사는 인도 사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까.

 

<축복 받은 집>으로 단숨에 나의 '편애 작가' 목록에 오른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

전작을 읽으며 품게 된 기대감을 전혀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기대 이상의 글을 보여준 책이다.

다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번에도 가정과 사랑과 이해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깨닫고 느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 유난히 내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이민 2세대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선택권이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

부모가 인도 땅을 떠나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부모들의 통제와 압박.

비록 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너는 미국인이 아니라 인도인이다, 그러므로 인도인의 생활 습관을 지켜야 하고 인도어를 잊어선 안 된다, 결혼은 절대 같은 인도 이민자하고 해야 한다, 미국인과의 사랑이라니 안 될 말이다...

미국에서 '미국의 아이'로 자라며 동시에 '인도의 아이'이기도 해야 했던 그들의 모습을, 한 번도 이민자로서 살아보지 않은 내가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하면 어불성설일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읽으면 많이 아프고 슬프고 답답한 동시에 후련함을 느낀다.

내가 그녀의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기장 수준의 밑줄을 긋게 되는 책...

 

왠지 시집 간 동생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었던 '길들지 않은 땅', 나도 함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을 맛 보았던 '지옥-천국',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머물지 않은 방'과 '아무도 모르는 일', 제목에 쓰인 '그저'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던 '그저 좋은 사람', 여운이 너무나 짙고도 짙어 장편 소설 아닌 것이 아쉬웠던 중편 소설 '헤마와 코쉭', 이 여섯 편의 소설 한 편 한 편이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 목록에 고스란히 올라가도 좋을 정도다. '헤마와 코쉭'은 정말이지 장편 소설 아닌 것이 너무 슬플 지경이었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결말이기도 하다. 그 아득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다행이다. 아직 읽지 않은 줌파 라히리의 책이 한 권 남아 있다.

더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느껴지는지.

올해 알게 된 작가 중에서 줌파 라히리는 최고 중의 최고. 아아, 그저 좋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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