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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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인터넷 연재 당시 읽고 싶었지만, 인터넷 연재를 읽는 것은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은 끈기와 노력과 애정(마라톤에 애정 없으면 그걸 완주할 수 있을까?) 등이 필요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저 어서 종이책으로 출간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손에 받아 든 <너는 모른다>는 예쁜 표지부터 가슴을 달달하게 해주었다.

그렇다,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 내용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달달한' 느낌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너는 모른다>

내가 만나본 정이현 작가의 책들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한 권 빼고 다 만나본 건데, 세 권의 느낌이 모두 다 무척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제목처럼 달콤한 느낌으로 남아 있고,

오늘의 거짓말,은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에 정이현이라는 작가를 내 마음속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고,

너는 모른다,는 앞 선 두 권과는 또 다른 작가 정이현을 내 앞에 데려다 주었다. 잘 모르겠다, 이 묘한 느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열 시 한강 표류사체의 발견으로 시작된 이 소설의 첫 부분은 강렬했다. 이 소설 어떤가 훑어볼까?라며 거리감을 두고 탐색 중인 독자를 책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감성적이고 예쁜 글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추리소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뒤표지를 보니 '새로운 미스터리'라고 씌어 있었다.

정이현 작가의 문체로 써내려가는 미스터리라니, 확실히 새롭겠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이 책은 내 예상을 다시 한번 뒤엎었는데, 적어도 내 눈에는 이 소설을 연 첫 부분 말고는 미스터리의 느낌을 그다지 받을 수 없었다.

책의 첫 부분과 책을 읽어나갈수록 다가오는 느낌이 무척이나 다른 책이었다.

한 아이의 실종을 둘러싸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이제 곧 아이의 종적을 찾기 위한 추리가 펼쳐지겠구나 싶었는데, 아이의 아빠, 엄마, 이복 언니와 오빠 이 네 사람이 아이의 실종 앞에서 보이는 태도와 행동은 조금 의외였다.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건 오빠였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는 등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듯한 노력을 했으니까.

그럼 그 외의 가족들은?

아이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는 아빠. 다른 가족들에게는 실종 신고를 했다고 하면서 기껏 사립 탐정이나 고용하고 자신의 원한 관계를 생각해보며 마음이 타들어가기만 한다. 아빠는 무엇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도 못 하는 처지인 걸까?

평소에는 아이와 전혀 살갑게 지내지도 않던 언니. 이복 여동생이 실종됐다는 말을 듣고 단번에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채 역시 속이 타들어가 미칠 지경이다. 그러던 와중에 사립 탐정을 집으로 불러들여 유혹 하는 모습에서는 그만 경악.

타이완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한국으로 날아온 엄마. 옛 애인을 만나러 가 있는 동안 아이는 사라졌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아이가 살아 있기만을, 누가 아이를 데려갔는지 아이를 무사히 데려다 주기만을 바랄 뿐.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내가 가장 의아했던 건, 왜 이들 모두가 아이의 실종을 '납치', '유괴'로 단정 짓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날 아이에게 벌어진 일들을 읽기 전에도 내 눈에는 유괴사건이 아니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째서 그 가족들은 자기 주변의 원한 관계만 떠올리며 너무도 쉽게 범인을 추측할 수 있었는지? 어찌되었든, 그 가족들이 누구를 범인으로 생각하건 간에 이 아이는 유괴 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아이의 실종이 주는 긴장감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아이의 실종으로 인해 풀려나가는 가족들의 실타래가 더 중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미스터리적인 요소야 어찌 되었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가족들에게조차 숨겨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아빠의 진짜 직업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궁금했고,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아이의 아이답지 않은 외로움과 쓸쓸함은 가슴 아팠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옛 사랑을 잊지 못한 엄마 옥영과 밍의 사랑 이야기는 애잔했다.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과 전혀 상관없이 동떨어져 있던 첫 부분의 표류 사체에 다시 생각이 미치던 순간의 가슴 시림이란... 그 부분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 문장들은 책 표지에서 받았던 달달한 느낌을 되살려주기도 했다.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과의 만남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삶이란 조금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기차에서 시속 오십 킬로미터의 속도를 견디는 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나이이기도 하다.(55)

 

나는 이제 아직 읽지 못한 정이현 작가의 남은 책 한 권을 마저 읽어봐야겠다. 과연 그 책 역시도 이 세 권과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인지. 어쩐지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며, 그 책도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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