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창비시선 140
김경미 지음 / 창비 / 199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나의 책읽기 키워드 중 하나는 '김경미'였다.

그렇다고 김경미 시인의 책을 많이 읽었다는 건 아니고(<고통을 달래는 법> 단 한 권밖에 읽지 못 했다) 내 가슴을 가장 크게 두드린 시집의 저자인 까닭에 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이 시인에 대한 갈망이 더해져 급기야는 밤새도록 중고서점을 뒤적이기까지 하였다.

김경미 시인에 대해 '갈망'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게 된 건, 내가 찾아본 바로는 그녀의 책들이 모조리 품절 아니면 절판이기 때문이다. 시집 한 권이 온통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시인의 다른 시집들도 만나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하지만 줄줄이 뜨는 품절, 절판 행렬에 슬퍼하다가 기어이는 인터넷 중고 서점을 열심히 뒤지게 된 것이다.

운 좋게도 집에서 멀지 않은 중고 서점에서 이 시집을 발견해 잽싸게 전화를 걸어두었다가 오늘 가서 가져왔다.

 

서점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시집을 펼쳐 들었다.

어떻게 만난 시집인데! 어떤 시들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길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두 다리에 힘 단단히 주어 걸으며 시를 한 편 한 편 읽었다.

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끝이 난도질 당하는 것처럼 아프도록 시려서 결국 뜨끈한 어묵 하나 먹으며 손과 속을 풀고 얼른 집으로 달려와 마저 읽었다.

아아, 그렇게 찾아 헤맨 보람이 역시 있구나.

김경미 시인과 나와의 인연은 <고통을 달래는 법> 한 권으로 끝나지 않겠구나.

요즘 유행하는 '올레~!'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통을 달래는 법>에서처럼 내 마음속 고통을 나눠 가지는 듯한 시들이 여러 편 있어서 나는 또 열심히 빨간 밑줄을 그어댔다.

그녀의 시집 두 권은 모두 내 마음의 치료제가 되어주는구나.

이런 것이 시의 힘인가 보다. 한 두 줄의 시구만으로도 이렇게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니. 이렇게 가슴이 따스해지다니. 이렇게 공감이 가다니!

이 시집에서는 어쩐지 사랑시 한 편 옮겨 적어보고 싶다.(사랑시,이긴 하나 행복 보다는, 역시 쓸쓸한 마음에 '미투하기'를 누르게 되는.)

 


엽서, 엽서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년 혹은 이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몇자 적다 이 사랑 내 마음대로 찢어

처음 본 저 강에 버릴 테니까요

불쌍한 당신, 버림받은 것도 모르고 밥을 우물대고 있겠죠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출판사에 직접 문의 해 구입한 시집이 한 권 더 나에게 오고 있는 중이다.

얼른 그 시집을 만날 날도 기다려지며, 김경미 시인의 첫 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도 꼭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새해 떠오르는 첫 해 보며 빌 소원 중 하나로 넣어야겠다.

2010년 책읽기에서도 '김경미'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