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스토리콜렉터 4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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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에 이은 일본의 호러 킹 미쓰다 신조가 쓴 집 시리즈 두번째 작품입니다.(일본에서는 화가가 첫번째, 흉가가 두번째 작품이었다고 하네요.) 집이라는 공간,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오롯이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이지요. 미쓰다 신조는 이런 이완의 공간인 '집'을 '공포'의 공간으로 세팅해 독자들에게 공포를 선사합니다. 누구에게나 '집'이란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니,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그리하여 누구나 쉽게 그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미쓰다 신조는 '집 시리즈'를 내게 된 것이겠지요.

 

아무튼, 이번 <화가(재양이 내린 집)>에 살게 된 주인공은 코타로라는 예비 중학생입니다. 원래는 치바현에서 살고 있었는데,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남겨진 코타로를 할머니가 거두어 도쿄 외각의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지요. 코타로는 그 동네에 발을 들임과 동시에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분명 생전 처음 발을 디딘 곳인데 어쩐 일인지 자꾸만 익숙함을 느끼지요. 하지만 그 익숙한 느낌은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길한 일이 읽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 내지는 공포심이었지요. 그리고 그런 불길한 예감은 적중합니다. 코타로는 새로운 집에서 '그것'들을 만나게(?) 되고, 점점 집에 머무는 일이 공포스럽기만 합니다. 새로운 집 뿐만이 아닙니다. (흉가에서도 그랬지만) 동네 분위기 자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동네 뒤편의 불길한 산도 그렇고, 이 동네엔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공포의 집'이 무려 네 곳이나 됩니다. 하지만 코타로는 자신의 이런 불안함이나 공포를 할머니께 섣불리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를 걱정 끼칠까봐도 그렇고, 분명 부모님을 잃은 트라우마로 치부되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혼자 '조사'에 나서게 되지요. 그 과정에서 다행히도 이웃의 동갑내기 소녀 레나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코타로가 살게된 새로운 집은 과연 어떤 재앙이 내린 걸까요? 코타로가 느끼는 불길한 기시감은 그저 트라마우 때문인 걸까요?

 

우리는 종종 낯선 장소에서 익숙함을 느끼기곤 하지요. 혹은 분명 처음 만난 사람인데 예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이번 <화가>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기시감'이란 것입니다. 저는 약간 윤회론자여서 전생에 겪었던 일이나, 만났던 사람을 후생에 다시 겪거나 만났기에 기시감을 느끼는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타로가 느낀 기시감은 윤회론도 의사들이 말하는 지각 장애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었느냐구요? 그건 역시 책을 읽고 직접 찾으시는 게... ^^;;

<흉가> 때도 밝혔지만 저는 호러 소설에 많이 취약합니다. 그래서 <흉가>에서야 비로소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지요. 어린 아이들이 서술자인 관계로 <흉가>의 공포는 순수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였지요. <화가> 또한 그렇습니다. 예비 중학생인 코타로라는 소년은 어린 나이에 불행한 일을 겪었음에도 나름 씩씩하고 용감합니다. 많이 어른스럽기도 하구요. 그래선지 <화가>는 많이 암울하지도, 많이 어둡지도 않습니다. 코타로와 레나를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풋풋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때문인지 작품을 읽어 가다 보면 자꾸 코타로를 응원을 하게 됩니다. 부디 녀석이 '그것'에 지지 않길, 꼭 이겨내 행복해지길 말이지요. 그런데 이를 방해라도 하듯 불쑥 불쑥 반전들이 터집니다. 그것도 여러번. 때문에 <화가>는 호러 보단 추리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더 재밌게 읽었지만요. 그렇다고 '공포'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가끔 가끔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 쭈뼛 서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묘사들이 상당하거든요.

 

역시 여름은 소설의 계절입니다. 특히 추리, 스릴러, 공포 소설의 계절이지요. 열대야로 연일 밤잠을 설치게 되는 요즘. 이런 호러 소설 한 편 어떠신지요? 혹은 휴가지에 동행해도 좋을 겁니다. 자꾸만 자꾸만 나타나는, 그래서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그것'들 덕에 햇님도, 폭염도 멈칫할 겁니다.

 

p.47 그런데 두세 계단도 오르기 전에 등 뒤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오싹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엉덩이가 안벌부절못하고, 넓적다리 안쪽에서 복사뼈까지 뭔가가 기어 내려가는 듯한 촉감이 느껴진다. 그러더니 발바닥에서 머리꼭대기까지 부르르 기분 나쁜 떨림이 단숨에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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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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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화두>

작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흔이 넘은 연세였고, 사람의 일생 중 지극히 당연한 마지막 단계를 거치셨으니 참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슬펐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자꾸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가, 그리고 엄마가 참 많이 늙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할머니와 이렇게 이별했듯 언젠가 부모님과도 이렇게 이별해야 하는 거겠지 생각하면 참 무서웠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거늘 그래도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때문에 파스칼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죽음과 불행과 무지를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작품집의 7편의 단편들은 이 '죽음'이라는 화두를 애써 외면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웁니다. 각각 단편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대학 선배의 죽음(오빠 알레르기), 가족의 죽음(엔진룸, 명화, 급류타기), 이웃의 죽음(맥스웰의 은빛 망치), 심지어 자기 자신의 죽음(차고 어두운 상자)까지. 여타 소설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죽음들을 겪은 뒤엔 주인공들의 성장이 있었다....하는 못미더울 위로조차도 그려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은 끊임 없이 아파하고, 상처받고, 평온하던 생활은 파괴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냉정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냉정함 덕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임을 '인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나의 그리고 내 소중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은 두렵고도 무섭지만, 아무때고 불쑥 불쑥 떠올라 사람을 조바심 나게 하는 녀석을 조금은 냉정하게 대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굴레>

작년 어느땐가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가족'이 주제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스튜디오는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보던 저 또한 눈물 바다가 되었었지요. 부모님을 형제자매등 가족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보이는 사람들은 한국인들 뿐이라더군요. 엄마 뱃속에서 10달을 보내다가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는 아이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랍니다. 유독 '우리'라는 대명사를 좋아하는 것만 봐도 한국인들의 공동체의식, 가족의식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때로 '가족'을 일종의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빚쟁이기에, 그 빚을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 굴레를 벗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이 소설집에서도 그런 가족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중년의 이혼녀인 언니의 팬질 비용을 위해 상여금을 탈탈 털린 나(엔진룸), 20년 전 사라진 오빠를 기다리는 치매 걸린 엄마를 둔 나(딸기), 아버지가 버린 전처에게서 난 언니와 동거중인 명화(명화)등. 이들 모두는 가족의 그들의 굴레였습니다. 그리고 때로 이 굴레를 벗어버리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 굴레를 벗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벗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굴레를 벗어버린다는 것은 어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일 테니까요. 서로가 서로를 '빚'이라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굴레'인들 어떻습니까?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이 있단 것만으로도 세상 사는데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데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저도 결국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봅니다.

 

<인생이라는 급류타기>

30대를 훌쩍 넘고 보니, 인생이란 참 팍팍하기 그지 없음을 느낍니다. 하루 하루 위태위태 버티듯 살아갑니다. 10대 시절 그리던 미래는 분명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생기발랄 에너지를 뿜어내던 새내기는 어느새 여자 꼰대가 되어버리고(오빠 알레르기), 어느날 갑자기 죽는다 해도 자신의 죽음을 확인해 줄 사람은 사채업자 뿐이고(차고 어두운 상자), 처자식을 둔 옛애인을 잊지 못해 스토커가 되어버리고(맥스웰의 은빛 망치),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것 외엔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엔진룸). 그들이 사는 하루 하루가 너무도 위태위태한 급류 같아서, 그런 급류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으려고 애면글면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전부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자꾸 한숨이 새어나왔습니다.

 

<당근 대신 채찍>

'트렁커'나 '알바 패밀리'에서 작가가 보여주던 세상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웃픈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팍팍하고 서글픈 현실을 굉장히 리얼하게 그리면서도, 그 전달 방식은 개성 강하고 코믹하기까지 했지요. 알고보면 누구나 '희비극'인 우리네 인생이랑 꼭 닮은 그녀의 작품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때문에 이번 작품집도 그런 '희비극'을 기대했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작품집은 참으로 냉정합니다. 웃음기를 쫘악 빼버리고 '리얼리즘'만 잔뜩 담았습니다. 그것도 결코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은, 오히려 아이러니와 비극만이 넘치는 그 현실을 말이지요. 하여 이전 장편 소설들에선 웃다 울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반면 이 소설집에선 바로 내 앞에 놓여진 인생을 '직시'하게끔 합니다. 이전 장편들이 '당근'이었다면, 이번 소설집은 '채찍'이라고나 할까요. '당근'을 기대했던 제게 급작스럽게 훅 날아든 '채찍'은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아슬아슬 급류 위에서 정신 단디 차려야겠다고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p.170 문득, 골짜기를 지나 거센 물결 위를 뒤집힐 듯 타고 내려오는 고무보트가 보인다. 노를 저으며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하얀 거품이 솟구쳐 올라 보트 위를 덮친다. 영훈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인도 한가운데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린 것처럼 그는 뒤뚱거렸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비틀거리는 경훈을 밀치고 앞서 걸어갔다. 그의 몸이 휘청 꺾이며 바닥에 쓰러질 듯했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그는 몸을 곧추세웠지만 그래도 자꾸만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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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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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소위 말하는 순문학 소설을 즐기지 않는 편입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책 좀 읽었다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하고 명망 있는 작가의 소설이라면 더욱요. 그간 읽었던 그런 작품들이 대부분 우울하고, 어둡고, 이해 못하겠고, 어려웠던지라 지레 겁을 먹어서이기도 하고, 순문학 소설은 대부분 재미없을 거야...하는 고정관념 때문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은유와 상징이 짙은 단편 소설들이라면 더욱 기피 대상이지요. 그럼에도 집어든 은희경 작가의 이번 단편집. 아주 오래전에 (대학시절이었던가;;) 그녀의 단편집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읽은 기억과 더불어 그때도 역시 어려웠던 기억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내어(?) 도전(?)해 보았지요. 딴엔 그간 나의 정신적, 지적 수준이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내심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섯 편의 단편이 모인 이 작품집은 역시 어려운 구석이 많았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캐치하지 못하겠는 부분이 많았지요. 그리고 역시 대부분의 작품들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또한 차갑습니다.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에겐 참 안맞는 소설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한켠을 비집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무언가. 그 무언가의 정체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니,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서 저의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이더군요. 여섯 단편의 주인공들은 연령도 성별도 직업도 제각각인데, 그 제각각에서 한가지 두가지 제 모습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마치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든,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인 <대용품> 같은 인생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 점이 바로 저는 '저'를 보는 듯 해,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가슴 속에 파고드는 무언가와 함께 자그마한 위로와 희망을 작품 속에 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운을 탓하지만, 알고 보면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건 단지 2%의 행운일 뿐이라는 것 등등을 말이죠. 때문에 작품 작품들 말미엔 어떤 희망의 자그마한 빛이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이 소설집 전체 구성 및 순서가 그러했던듯 싶습니다. 작품집의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중국식 룰렛>에선 죽음이, <장미의 왕자>에선 상실감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뒤의 작품들일 수록 희망이 빛이 더 진해지죠. <불연속선> 같은 경우는 상실감 끝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해 놓아 감동을, 마지막 작품인 <정화된 밤> 에선 결말에 이르러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마치 터널을 빠져 나오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터널은 어둡지만 이내 터널을 빠져나온 후 맛보는 눈비시겠지요? 때문에 터널을 달리는 동안은 두렵겠지만, 이는 곧 더 좋아진다는 뜻이겠지요?

 

단편집을 읽을 때마다,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는 참 빠른데, 완독 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그와 반비례하다는 걸 느낍니다. 심각하고 어렵고 두려운 건 늘 쉽게 은폐버리고 마는 성격 덕에 기피하지만, 읽고 나면 늘 꽤 큰 만족감을 느끼는 순문학 단편집. 앞으로 더욱 자주 읽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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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7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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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번 독특합니다. 일본 원어로는 대체 어떤 말이었길래, 번역이 정말임꽈?...로 되었을까요? 뭐 어쨌든, 이 ~~~임꽈?...하는 말투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하마다'라는 가출 청년(청소년 노노 청년)의 독특한 말투였습니다. 가출하는 주제에 부모님의 값비싼 세단을 타고, 부모님이 결제하는 카드를 고대로 사용하며 온갖 불가능한 범죄가 일어나는 가마쿠라시(일본에 실재하는 가마쿠라가 아닌 한자가 다른 가상의 도시)에 도착한 하마다 청년은 '슈퍼 호이호이'의 주차장 한켠에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나가키'를 만나 그의 조수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나가키가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거친 의사거나, 심리학자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전문가 보다도 고객의 상담을 진지하게 듣고, 진지하게 어드바이스하며, 진지하게 도움을 주지요. 심지어 상담 의뢰인의 고민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요.'인 경우에도 말입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담소에 진짜 고객들이 찾아와 상담을 하고 상담료를 내놓고 떠난다니 말도 안된다...싶지만... 우리는 누구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떠안고 살아가고 누군가 그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들어줄 사람을 원하는게 당연하니 어쩌면 이나가키의 상담소가 실재하더래도 꽤 장사(?)가 잘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하마다 청년은 이나가키가 부탁한대로 일주일 동안 상담소에서 이나가키가 하는 일을 배웁니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는 바로 그날. 짜잔! 등장하는 반전과 그제서야 이해되는 앞의 복선들. 그리고 이어진 결말... 저는 이 결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달까요. 구구절절 떠들어대면 스포가 될 테니 그럴 수 없지만, 뭐랄까 제가 원하는 방향의 결말이 아니었달까요... 어찌보면 좀 무섭기도 해달까요...;; 아아, 그러고보니 그곳은 온갖 불가능하고 말도 안되는 범죄가 저질러지는 가마쿠라시였으니... 그래서였던걸까...싶기도 하네요.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봤더라면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인 줄 모르고 읽었을 법하게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의 느낌이 나지 않으면서도,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인 걸 알고 읽으면 역시 이러이러한 점이 이사카코타로답고 느끼게 되는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사카코카로의 엄청난 팬이므로 가끔씩 아주 아주 가끔씩 이런 금쪽 같은 단편이 번역되어 소개되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이 작품은 원래 일본의 유명 작가들이 온갖 불가능한 범죄가 일어나는 도시 '가마쿠라'시를 배경으로 한 연작 소설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하마다 청년 정말임꽈...에서도 이 작품의 바로 앞 작품인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 속 소재들이 언급이 되구요. 그 작품을 읽고 하마다 청년 정말임꽈를 읽었으면 훨씬 더 재밌었을 텐데...하고 좀 아쉽습니다. 미스테리아에 이렇게 단편 하나를 소개했으니 엘릭시르에서 혹시나 그 단편집을 번역해서 정식 출간해주지나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p.251 지나치게 황당하고 수수께끼 같아 보이는 사건 앞에 서면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이나 부조리 같은 건 대단한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즉 자신의 까닭 모를 고민을 그보다 더 까닭 모를 범죄 속에 묻히게 하자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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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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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라는 소재나 '전염병'이라는 소재가 쓰였다는 소개를 보고 저는 솔직히 '설국 열차'나 정유정 작가의 '28'같은 작품들을 떠올렸었습니다. 설국 열차도 28도 몹시 좋아하기에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컸었지요.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앞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제 기준으론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에 독감이 돌고, 치사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달하는 이 독감 때문에 인류가 거의 멸종 위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문명들 또한 사라지죠. 특히 전기가 말입니다. 바로 이 점부터 저는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전염병이 돌았는데 어째서 전기가 사라지는지 말이죠. 지구에 종말이 왔음에도 유랑 극단이 존재하듯이 인간은 생존만으로는 부족해 하는 생명체입니다. 그런 존재가 아무리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을지언정 그로 인해 전기 등의 문명이 싸그리 사라졌다는 점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은 결코 생존만으로는 만족해할 생명체가 아니기에 분명 살아남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그 문명을 금세 일으키려 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빙하기가 왔다든가, 운석이 충돌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닌 독감이라는 전염병이 돌아 인간만이 그 피해를 입었으므로, 인간 외의 자연이나 생명체는 온전했습니다. 때문에 일단 식량이 확보가 된 것이죠. 물론 어마무시한 전염병이 전 지구를 휩쓴 공포덕에 한동안은 그 트라우마로 세계가 공허에 빠질 수는 있습니다만 그 기간이 20년 가까이 된다는 것 또한 말이되질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인간이 이루어 놓은 건물이나 시설이나 기록들도 온전히 보존되었을 테구요.(불이 나거나 쓰나미가 휩쓴 게 아니니까요.) 그럼 분명 살아남은 인간들이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 그들이 누렸던 문명을 복원하거나 유지하려고 노력했을 거고,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셰익스피어는 앞으로도 영원히 읽힐 너무나 위대한 작가이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그들이 누렸던 문명의 이기를 다시 세우는 일은 하지 않는데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즐겼다니... 이는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설에도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랑 극단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인간은 결코 '생존'만으로 만족해하는 존재들이 아니니까요. 때문에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스럽지만 작중 인물들의 그런 낭만을, 그리고 작품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문명이 사라진 세상은 전혀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작품의 큰 맥락이 납득이 가질 않으니, 독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없었구요. 제가 '낭만'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라서, 혹은 이런 고품격 작품을 이해하기엔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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