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본사상>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1980년대이후 일본 사상의 변천사를 다루고있는데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은 2000년대 일본사상은 아즈마 히로키의 독무대이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자의 평가에 의하면 아즈마히로키는 오늘날의 (일본) 사상이 더이상 비판적 이데올로기로서나 혹은 참여적 사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현실을 다만 감수하고 관찰하는 역할에만 그친다고 보고 이러한 변화한 현실에 사상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된 현실이 설정한 새로운 게임의 규칙에 사상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론이나 사상도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하기에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읽힐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아즈마 히로키는 2000년이후 일본사상을 주도할수 있었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재설정된 오늘날의 게임규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설정된 게임보드의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쨋든 승패가 확실히 결정되는 것, 둘째는 어떤 구체적인 성공과 결부되는 것입니다. 첫번째 조건을 통과하지 않으면 곧바로 '상대화'에 휩쓸리고 맙니다. 그렇다고해서 2000년대의 사상이 예컨대 1980년대의 오타쿠가 그랬던 것처럼 취미 판단의 특수성(센스)이나 축적한 지식이나 정보의 많고 적음을 경쟁하지는 않습니다. '센스가 좋다'라든가 '다른사람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라든가 '알고 있는 것'의 빠름이나 늦음 같은 것은 오히려 거기서는 모멸의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규칙'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00년대의 사상은 플레이어들에 의해 널리 '공유'된 필드(주로 오타쿠계문화/하위문화)와 어떤 사람에게도 거의 공통된 문제(사회나 인터넷이나 공공성등)를 상대하게 됩니다. ...........'현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사상'은 그에 대항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 같은 도식에 감히 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한 심심풀이 놀이가 되어 버립니다. 2000년대의 사상이라는 게임은 이제 유희일수 없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든 진지한 경기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왜 이제와서 일부러 '사상'같은 걸 하려고 하겠습니까?"  (<현대일본의 사상> 사사키 아쓰시 291~2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최근 논란이 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과 관련된 일들이 생각나더군요. 비단 사상뿐만 아니라 같은 대중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참 인기있는 아이돌위주의 댄스음악이 아니기에  아무리 노래를 잘부르고 가창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대중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해왔던 가수들이 소위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도입하여 예능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여주니 전에 없던 폭팔적 관심을 받게 된 사건말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것처럼 "재설정된 게임보드"의 규칙에 음악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승패가 확실히 갈리면서 "구체적 성공과 결부"되는 방식을 정확히 적용한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예를들어 이전까진 김범수나 김건모의 가창력이나 음악적 해석능력이라는 것들은 대중들사이에서 "공유된 필드"에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었고 도리어 이렇게 공유되지 않은 필드를 '나혼자'펼쳐보이면 '허세'라는둥 모멸이나 핀잔을 받을 뿐이었지만 이러한 사상 혹은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공유되지 못한 필드들이 서바이벌이라는 게임보드의 규칙에 오르는 순간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케이스가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들이 교차하게 되면서 다시한번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게 뭐냐면 소위 지식혹은 예술자체가 가진 탁월함과 그것의 사회적 수용은 서로 별개의 문제일수 있고 때로는  양립불가능할수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후자를 위해서 전자는 타협을 하거나 절충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할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들이 그들의 음악적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출연을 결정하였다면 바로 이런 '현상황'에 대한 절충이요 타협이라고 볼수있는것도 이 때문이지요. 하물며 대중음악내부에서조차도 사정이 이럴진데 그렇지 않아도 독서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소위 거대서사에는 관심을 상실한듯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사상이나 이론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겠지요. 원래 아즈마 히로키는 아사다 아키라나 가라타니 고진이 만든 <비평공간>이라는 평론지를 통해 등단했던 인물입니다만 후에 그가 이들과 결별했던 이유도 이러한 새로운 게임보드의 규칙의 수용문제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존재론적, 우편적 - 자크 데리다에 대하여>과 같은 본격적인 철학이나 문예이론서로 글쓰기를 출발했던 그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같은 대중들이 쉽게 공유할수 있을만한 영역으로 타켓을 변경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고요.  



그러나 저는 사상이나 철학은 '비판'이라는 성격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타협이나 절충보다는 사상그자체의 탁월함이나 진리성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요. 다만 비판이라는 작업이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수대중들과의 접점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또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아즈마히로키나 나는 가수다와 같이 새로운 게임보드의 규칙을 수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상이나 예술자체가 가진 진리를 절충시키지 않으면서 현실의 변화를 동시에 받아들일수 있는 방법이 오늘날 있을까요? 저로선 이에 대해 뚜렷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보이네요. 마치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신념인 지동설을 포기함으로써 목숨을 건진 갈릴레이가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이게 다 원래 현실이라는 것은 언제나처럼 영원히 풀리지 않는 아포리아로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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