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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voj Žižek's notoriety in academic circles has increased rapidly, especially since he began publishing widely in English. Many hundreds of academics have addressed aspects of Žižek's work in professional papers.[2] Inevitably, in the course of such scholarly discussion, many other thinkers differ with aspects of Žižek conceptual approach or specific arguments. While there is no indication that Žižek has received more criticism than have other continental philosophers of similar repute, this article discusses certain criticisms.
그의 영어본 출간이 시작한 이래로 학자집단에서의 슬라보예 지젝의 악명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수많은 학자들은 그들의 전문적 논문들 속에 지젝의 작업이 보여준 측면들을 언급해 왔다.
불가피하게 그러한 학술적 토론의 과정에서 많은 다른 학자들은 지젝이 가진
관점들의 개념적 접근이나 특정 논쟁들로부터 의견을 달리한다. 지젝이 다른 비슷한 평판을 가진 대륙철학자들보다 더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징후는 없지만 이 글은 그에 대한 몇몇 비판들에 대해 논할 것이다.
[edit] Argumentative method
Žižek's style is a matter of some debate:
Critiques include Harpham (2003)[1] and O'Neill (2001).[2] Both agree that Žižek flouts standards of reasoned argumentation. Harpham calls Žižek's style "a stream of nonconsecutive units arranged in arbitrary sequences that solicit a sporadic and discontinuous attention." O'Neill concurs: "a dizzying array of wildly entertaining and often quite maddening rhetorical strategies are deployed in order to beguile, browbeat, dumbfound, dazzle, confuse, mislead, overwhelm, and generally subdue the reader into acceptance." Supporters such as R. Butler[3] argue that such critiques miss the point and instead support Žižek's own theories: "As Žižek says, it is our very desire to look for mistakes and inconsistencies in the Other that testifies to the fact that we still transfer on to them...."[4]
논쟁적인 방법론
지젝의 스타일은 논쟁의 대상이다.
Harpham과 O'Neill 같은 비평가들은 지젝이 심사숙고한 논쟁의 기준들을 비웃는다는데 동의한다.
Harpham은 지젝의 스타일을 " 산발적이고 불연속적인 주의를 부추기는 자의적인 씨퀀스로 배치된
비일관된 조합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O'Neill은 " 지나치게 유쾌하기도하고 때론 꽤 화나게
만드는 어지러운 배치들로 이루어진 수사적인 전략들은 (독자들을) 기만하고,위협하고,기막히게하고
눈부시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오인하게 하고, 난처하게 하고, 그리고 대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활용된다"고 한다.
R. Butler와 같은 옹호자들은 그러한 비판들은 논점을 놓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신
다음처럼 지젝의 이론을 지지한다. " 지젝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그것들로
전이transfer된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타자 the Other 내에서 실수와 불일치를 발견하려고 하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욕망인 것이다."
[edit] Social policy
John Holbo of the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has criticized Žižek[5] for his alleged refusal to lay out precisely what social formation he would replace the existing order with. Holbo argues that Žižek's "irrational" approach to thought disregards the ontic benefits brought about by late capital, specifically in its liberal-democratic form. A similar criticism, from a scholar more closely akin to Žižek, is made by Ernesto Laclau in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In his "Response to Žižek", Laclau claims that Žižek's political thought is dogmatically Marxist, and often out of keeping with his psychoanalytic theories. Noting that "all of Žižek's Marxist concepts come from either Marx himself or from the Russian Revolution", Laclau asserts that "Žižek uses class as a sort of deus ex machina to play the role of the good guy against the multicultural devils. Laclau concludes that Žižek's political thought suffers from "'combined and uneven development'" and that "while his Lacanian tools, combined with his insight have allowed him to make considerable progress in the understanding of ideological processes in contemporary societies, his strictly political thought... remains fixed in traditional categories" [6].
사회 정책
싱가폴 국립대학교의 John Holbo는 지젝을 현존하는 질서를
정확히 어떤 사회 구성체 social formation로 대체할 수 있는지 기획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비판한다. Holbo는 지젝의 사상에 대한 불합리한 접근이 후기 자본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
형태로 출현하는 실재적인 혜택을 무시한다고 논한다.
비슷한 비판으로 지젝과 더욱 가까운 스타일의 학자이고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라는 책을 저술한 Ernesto Laclau는 이 책에서 지젝과 관련해 언급하면서 지젝의 정치사상은 도그마적인 맑스주의고 그의 정신분석이론으로부터도 종종 일탈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지젝의 맑스주의적 개념들은 맑스 자신 혹은 러시아혁명으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지적하면서, Laclau는 "지젝은 계급을 다원적문화라는 악마에 대항하는 선한 자의 역할을 하는 전능한 기계 deus ex machina의 한 종류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젝의 정치사상은 "복합적이고 불균등한 발전"으로부터 손상을 받고 라캉주의적 도구를 사용하여 구성된 그의 통찰은 그로 하여금 현대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과정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두드러진 진보를 가능케 한 반면, 그의 경직된 정치사상은 전통적인 범주 내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라고 결론내린다.
[edit] Alleged Misreading of Lacan
and Hegel
Some of Žižek's critics have accused him of misreading other philosophers and theorists, particularly Jacques Lacan and G. W. F. Hegel.
Ian Parker, a Lacanian psychoanalyst, complains that Žižek "delights in the most extreme formulations of what the end of psychoanaylsis might entail" (Ian Parker, Slavoj Žižek: A Critical Introduction, Pluto Press: London and Sterling, 2004; p. 78). For Parker, this is particularly problematic when Žižek attempts to carry over concepts from Lacan's teachings into the sphere of political and social theory. Parker notes that Lacan's seminars were originally addressed to an audience of psychoanalysts for use in their clinical practice rather than for philosophers such as Žižek to produce new theories of political action. This is particularly true, claims Parker, of Žižek's appropriation of Lacan's discussion of Antigone in his 1959-1960 seminar,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In this seminar, Lacan uses Antigone to defend the claim that "the only thing of which one can be guilty is of having given ground relative to one's desire" (Slavoj Žižek, The Metastases of Enjoyment, Verso: London, 1994; p. 69). However, as Parker notes, Antigone's act (burying her dead brother in the knowledge that she will be buried alive) was never intended to effect a revolutionary change in the political status quo; yet, despite this, Žižek frequently cites Antigone as a paradigm of ethico-political action. Parker concludes that carrying over concepts from Lacanian psychoanalysis "into other spheres requires something a little less hasty and less dramatic than what we find in Žižek" (Parker, p.80).
Noah Horwitz's essay "Contra the Slovenians: Returning to Lacan and away from Hegel" (Philosophy Today, Spring 2005, pp. 24-32) is a critique of Žižek's reading of Hegel. Horwitz claims that Žižek mistakenly conflates Lacan's unconscious with Hegel's unconscious. Horwitz notes that "the 'it' one is meant to identify with in [Lacanian] psychoanalysis is not some inert, substance irreducible to one, but rather the radically other scene where thinking occurs" (Horwitz, p. 30). According to Horwitz, the Lacanian unconscious and the Hegelian unconscious are two totally different mechanisms. If we take speech, Lacan's unconscious reveals itself to us in the slip-of-the-tongue or parapraxis we are therefore alienated from language through the revelation of our desire (even if that desire originated with the Other, as Lacan claims, it remains peculiar to us). In Hegel's unconscious, however, we are alienated from language whenever we attempt to articulate a particular and end up articulating a universal (so if I say 'the dog is with me', although I am trying to say something about this particular dog at this particular time, I actually produce the universal category 'dog').
라캉과 헤겔의 오독 혐의
지젝의 몇몇 비판가들은 다른 철학자들이나 이론가들, 특히 자크 라캉과 헤겔을 오독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자인 Ian Parker는 지젝이 "정신분석의 종말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것들의 가장 극단적인 공식화formulation를 즐긴다"고 불평한다. (Ian Parker, Slavoj Žižek: A Critical Introduction, Pluto Press: London and Sterling, 2004; p. 78).
Parker에게 이것은 지젝이 라캉의 가르침이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이론의 국면에 이를때 특히 문제가 된다. Parker는 라캉의 세미나들은 원래 지젝처럼 새로운 정치행위이론을 만드려고 하는 철학자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임상적인 치료행위practice를 필요로 하는 정신분석가들을 청중으로하는 강의에서 언급된 것들이라고 지적한다. Parker는 < 정신분석의 윤리>라는 라캉의 1959-1960년 세미나에서 안티고네antigone에 대한 라캉의 토론을 다루는 지젝의 도용appropriation을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에서 특히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 세미나에서 라캉은 다음 주장을 방어하기 위해 안티고네를 사용한다. 그는 말하길, " 우리는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욕망과 관련한 근거를 가지는 것에 관련하여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Slavoj Žižek, The Metastases of Enjoyment, Verso: London, 1994; p. 69).
그러나 Parker는 안티고네의 행동(그녀 자신이 생매장 될줄 알면서도 그녀의 죽은 오빠를 매장한 행위)은
정치적인 현상유지를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효과를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지젝은 안티고네를 윤리-정치적 행위의 패러다임으로서 자주 인용한다.
Parker는 라캉주의 정신분석에서 차용한 개념들을 이용하여 "다른 국면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지젝에게서 발견하는 것 보다 덜 성급하고 덜 드라마틱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짓는다.
Noah Horwitz의 논문 <슬로베니아인들에 반대하면서: 헤겔로부터 멀리하고 라캉으로 복귀하기>은 지젝의 헤겔독해에 대한 비판이다. Horwitz는 지젝이 라캉의 무의식과 헤겔의 무의식을 잘못 결합시킨다고 주장한다. Horwitz는 " 그것it은 라캉주의 정신분석에 있어서 일자one로 환원될 수없는 타율적인 실체와 동일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고thinking를 불러일으키는 다른 장면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Horwitz에 따르면 라캉주의적 무의식과 헤겔주의적 무의식은 완전히 다른 두개의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고 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라캉의 무의식은 말실수나 착오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욕망의 폭로를 통해 언어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라캉이 주장한 것처럼 타자the Other로부터 욕망이 기원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기묘한 것으로 남아 있다. ) 그러나 헤겔의 무의식에서는 우리가 개별적인 것a particular 을 발음articulate하려고 시도할 때 마다 보편적인 것a universal을 말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를 두고 언어로부터 소외된다고 한다. (만일 내가 '개가 나와 같이 있다.'라고 말하면 비록 내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개에 대해 말하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나는 보편적 범주의 '개'를 생산하고있는 것이다.)
[edit] References
- ^ Harpham "Doing the Impossible: Slavoj Zizek and the End of Knowledge"
- ^ O'Neill "The Last Analysis of Slavoj Zizek"
- ^ Butler "Slavoj Zizek: Live Theory"
- ^ [1]
- ^ Holbo "Critical Discussion ON ZIZEK AND TRILLING"
- ^ Butler, Judith, Ernesto Laclau and Slavoj Žižek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Verso. London, New York City 2000. pp. 20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