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가방을 주섬주섬 싸서 송파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 아니어서 이미 열람실이 다 차버리진 않았을까 내심 불안했는데, 역시나 빈 자리는 없었고 남는 자리를 기다리는 줄이 건물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인근 고등학교들이 시험기간인데다 하필이면 이번 토요일이 놀토(쉬는 토요일)였던 것이다. 고등학생들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숨막히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겠지만...) 대학생인 나는 늦게 일어나서 공부할 자리도 찾지 못하고 한심하게 뭐하고 있나 하는 차에 도서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도 막 도서관에 도착했는데 예상치 못한 인파에 난감해 하고 있던 터였더랬다. 줄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찜찜하고, 결국 학교로 가서 공부하자고 둘이서 합의를 보았다.(마침 그 동창이 나와 같은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중이었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같은 학교를 다님에도 거의 만나지 않던(경영학과와 사회학과는 학문의 성격이 먼 것 만큼 물리적 거리도 멀다) 동창과 주말 내내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동창과의 대화를 통해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도 곱씹어보고, 다른 동창들 소식도 알게 되었다. 많은 친구들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고, 자기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CPA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선 나에게 '넌 뭐할거야?'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즉각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 그랬을까...

  동창 왈 '공부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좋은 학점과 다양한 활동(교환학생, 어학연수, 동아리 활동, 인턴 등)은 이미 물건너갔고, 고시준비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것 같고, CPA나 어서 따서 돈이나 안정적으로 벌었으면 좋겠다' '남자가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여자도 잘 만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다' '엄청나게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경제적으로 쪼달리며 살기는 정말 싫다' '지금도 공부하는게 힘들텐데 대학원 가서 공부할 수 있겠냐? 나랑 같이 CPA나 준비하자(농담 반 진담 반). 아니면 메이저 언론사에 취직해라. PD되면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고 뽀대나잖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끔 맞장구도 쳐 주었다.

  스스로는 현실과 많이 타협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창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이미 아웃이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특별한 능력도 없이 어리버리하기만 한 나는 그 기준에서 이미 여러 걸음 뒤쳐져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후회는 없지만, 이런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면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다.

  10년 후의 고등학교 동창회를 상상해 보았다. 나는 그 공간에서 어떠한 존재로 비춰지고 있을까. 10년 후의 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10년 후의 나는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10년 후의 나는 여전히 꿈을 지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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