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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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다 보니 저절로 주어진 지위가 있습니다. 이제 부모가 되었고, 선배가 되었고, 상급자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칭호를 들으면서 제 이름값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오면 빠뜨리지 않고 어린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 '꿈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장래를 설계하는 어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꿈'을 추구하는지, '돈'을 추구하는지 헛갈립니다. 그렇게 '돈'을 추구하던 사람은 먼 미래에 자신이 '꿈'을 쫓지 않았기에 상실감을 느낍니다. 다시 꿈을 추구하고 싶지만, 이제는 '세월'의 제약에 걸려 후회합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그가 삶을 통해 남을 것입니다. 언뜻 길에서 놓쳐버리고 말을 걸지 못한 이상형에 대한 그리움처럼 가슴 한편에 쓸쓸함으로 남을 겁니다.


[연금술사]는 이렇게 꿈을 쫓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꿈을 쫓았기에 한 양치기 소년은 그가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에 발을 디딥니다. 꿈을 쫒았기에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제가 재미있게 여긴 것은 다음 두 가지 때문입니다.


먼저 주인공 산티아고가 만난 두 명의 여인 때문입니다. 양치기 시절 그의 이상형 여인은 모직 가게 상인의 딸이었습니다. 산티아고의 연인은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후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만난 '파티마'로 바뀝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그의 평생의 연인이 바뀌듯 꿈도 진화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는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산티아고는 도중에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빠져 여행을 멈출까하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양치기 소년 시절과는 비교하지도 못할 돈과 명예, 사랑을 얻었기에, 그는 여기서 멈출까하는 내면의 유혹을 듣습니다. 그런 유혹에 굴복했다면 산티아고는 마지막 성과, 즉 '자아의 신화'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꿈을 쫓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꿈을 포기한 사람에게는 씁쓸함을 안겨줍니다. 너무 늦지 않았다면 다시 꿈을 쫓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인 파티마가 오아시스에서 이집트로 떠나는 산티아고를 붙잡지 않았듯이, 제 꿈을 쫓는 것을 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상태에서 머문 것은 결국 저 스스로의 안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가슴에 묻어 놓은 뼈아픈 생각을 다시 꺼내놓습니다. 신화 같은 이 이야기를 곱씹어 읽어보면, 어느새 독자는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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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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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이유] 등에서 보여준 그녀의 박력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는 마치 다른 작가가 쓴 글처럼 소박하고 편안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 소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스터리와 르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대와 사회에 억눌린 개인의 범죄를 다뤄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그러한 멍에를 벗고 기분 좋게 글을 쓰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쫓기듯이 글을 마무리해 시작은 거창하지만, 끝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 가족에게 갑자기 오억 엔이란 엄청난 돈이 생깁니다. 엄마가 과거에 했던 선행의 보답이라는 데, 그 보답치고는 액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오억 엔은 그로부터 가족에게 내재하였던 비밀과 갈등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중학생 아들 마사오는 누가, 왜 그들에게 그런 유산을 남겼는지 조사에 나섭니다.

미야베 미유키(미미 여사)는 작품 마지막 부분에 신상의 변화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장치가 훌륭한 드라마를 서둘러 덮었을 리 없습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모를 리 없는 미미여사인데, 왜 이렇게 급히 마무리 했을까요? 소년 탐정 둘의 활약을 기대했는데 결론은 기계의 신이 내려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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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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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에 '신'과 필적할 권위를 가진 직업이 있다면 '의사'가 바로 그런 직업일 것입니다. 환자의 삶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고 환자의 생명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의사는, 그래서 환자들에게 대단한 존경과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러기에 의사에게는 엄격한 직업윤리가 필요합니다. 의사가 선의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 환자가 그런 의사를 만난다면 그는 어떤 곤경에 빠질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글머리를 읽는다면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은 진지하고 무거운 소설이라고 선입견을 지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소설은 아주 경쾌하고 흥미롭습니다. 기발한 캐릭터들이 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며 야구에 비유하며 풀어나가는 작가의 재치가 또한 신선합니다. 의료계의 현실과 명암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작가의 해박함 때문에, 대학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모와 계략의 술수들이 소설의 미스터리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어떤 분야를 잘 아는 것과 잘 알려주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일입니다. 작가 가이도 다케루는 잘 아는 것을 잘 알려주어서 이 소설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아무쪼록 '머리'로 쓴 글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세월에 옹골차게 들어앉아 잘 익은 오렌지를 베어먹는 상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미스터리 구조가 뜻밖에 간단하여 허무하지만, 영화 [공공의 적]에서 보여 주듯 캐릭터의 화려한 성찬이 펼쳐집니다. 재미있고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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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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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출판된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 소설인데 한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분에게는 실례입니다만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모든 살인 사건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은 비극에 관한 책인데, 후대에 전해지지 않는 '희극'에 관한 항목이 발견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장미의 이름]을 읽지 않으신 분에게는 거듭 미안합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한 주석서입니다. [시학]은 비극의 구성과 작동 원리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규명한 글입니다. 저자 마이클 티어노는 이 책에서 '비극'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합니다. '진지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진지하게 작용하기 위한 '원칙'이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았던 것입니다.

'시학'은 그런 '이야기의 원칙'을 정리한 글이고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시학'을 현대의 독자들을 위해 재정리한 책입니다. 특히 이야기의 개연성과 공감대를 만드는 방식을 고민하는 작가라면 이 책은 찾던 해답을 들려줄 것입니다. 독자는 고대 그리스 시절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하고 정리한 원칙이 지금껏 유효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 입니다. 또한, 그토록 오래된 원칙을 아직도 모르는 '작가'가 많다는 사실은 '시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희극'이기도 합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원서가 상당히 까다롭든지, 김윤철 PD의 번역이 부족했다고 보입니다. 문어식 표현, 영어를 직역한 듯한 문장으로 인해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끊이지 않고 '단물'이 나올 만큼 원재료가 훌륭합니다. 많은 사람이 피부로 느꼈지만 정리하지 못했던 작법에 관한 이론을 정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한 세 번쯤은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 원칙에 숙달하면 엉터리 이야기를 비싼 돈 들여 만들고, 관객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평범한 작품은 만들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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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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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전성기란 게 있다. 한 분야에서 어떤 이가 최고의 성적을 내는 시기가 있다면 그때가 바로 전성기이다. 어떤 예술가이건 인생의 한순간 전성기가 찾아올 것이다. 전성기를 보낸 결과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자. 그 전성기에 낸 작품이 그 예술가에게는 여하튼 최고의 작품으로 일평생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에게는 어느 시기가 전성기일까? 운동선수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기가 그러하듯, 십 대 후반에서 삼 십 대 초반까지의 젊은 시절이 전성기가 아닐까? 감성도 예민하고 체력도 좋고, 학습 능력도 뛰어난 그 시기. 우리는 인생의 전성기를 젊음이라고 부르곤 한다.

위와 같은 논리라면 보통 사람이든 예술가이든 전성기가 언젠가 한번 올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번 찾아오는 게 전성기라면 무엇이 그들을 다른 선수와 차별화 시킬까? 바로 전성기의 기간이다. 얼마나 오래 전성기를 구가할 것인지, 얼마나 오래 젊게 살  것인지가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를 생각해보자.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그는 아직도 현역이고, 무엇보다 여전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나는 그의 창의력의 원천이 재즈와 와인에서 나오는 낭만주의가 아닌가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짐작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틀린 생각이었다는 게 분명해진다. 그는 지독히 성실하게 자신을 닦아온 것이다. 작가로의 그의 경력은 X축이 글쓰기였다면 Y축은 달리기였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통해서 글쓰기에 필요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길러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체력과 젊음이 드라마 연출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체력이 좋지 않으면 현장에서 버틸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건강한 몸에서 나온 젊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시대에 맞는 호흡을 가져갈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건강과 젊음을 위해 내가 하는 일은 몇 년 전 금연에 성공한 것과 일주일에 삼일 정도 체육관을 드나드는 것이다. 하루키가 전성기를 삼십 년 넘게 누린다면 글쎄, 나의 전성기는 언제까지일까? 이미 끝나버린 지도 모른다.

성실하게 달리고 있는 하루키의 모습은 장인의 풍모이다. 근육과 심장에 조금씩 부하를 올려주고 적응시켜서 장거리 형 신체를 만든다. 큰 대회를 앞두고 자신을 통제해가며 적응 훈련을 한다. 그 일을 이십오 년 넘게 하고 있는 하루키는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재능이 많은 인간이 아니었다. 지독히 성실한 작가였다.

책을 덮고 나서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여전히 비가 내려서 다시 집구석에 또아리를 틀었다. 이래서 나는 세계적인 작가가 못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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