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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사람에게는 전성기란 게 있다. 한 분야에서 어떤 이가 최고의 성적을 내는 시기가 있다면 그때가 바로 전성기이다. 어떤 예술가이건 인생의 한순간 전성기가 찾아올 것이다. 전성기를 보낸 결과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자. 그 전성기에 낸 작품이 그 예술가에게는 여하튼 최고의 작품으로 일평생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에게는 어느 시기가 전성기일까? 운동선수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기가 그러하듯, 십 대 후반에서 삼 십 대 초반까지의 젊은 시절이 전성기가 아닐까? 감성도 예민하고 체력도 좋고, 학습 능력도 뛰어난 그 시기. 우리는 인생의 전성기를 젊음이라고 부르곤 한다.
위와 같은 논리라면 보통 사람이든 예술가이든 전성기가 언젠가 한번 올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번 찾아오는 게 전성기라면 무엇이 그들을 다른 선수와 차별화 시킬까? 바로 전성기의 기간이다. 얼마나 오래 전성기를 구가할 것인지, 얼마나 오래 젊게 살 것인지가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를 생각해보자.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그는 아직도 현역이고, 무엇보다 여전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나는 그의 창의력의 원천이 재즈와 와인에서 나오는 낭만주의가 아닌가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짐작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틀린 생각이었다는 게 분명해진다. 그는 지독히 성실하게 자신을 닦아온 것이다. 작가로의 그의 경력은 X축이 글쓰기였다면 Y축은 달리기였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통해서 글쓰기에 필요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길러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체력과 젊음이 드라마 연출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체력이 좋지 않으면 현장에서 버틸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건강한 몸에서 나온 젊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시대에 맞는 호흡을 가져갈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건강과 젊음을 위해 내가 하는 일은 몇 년 전 금연에 성공한 것과 일주일에 삼일 정도 체육관을 드나드는 것이다. 하루키가 전성기를 삼십 년 넘게 누린다면 글쎄, 나의 전성기는 언제까지일까? 이미 끝나버린 지도 모른다.
성실하게 달리고 있는 하루키의 모습은 장인의 풍모이다. 근육과 심장에 조금씩 부하를 올려주고 적응시켜서 장거리 형 신체를 만든다. 큰 대회를 앞두고 자신을 통제해가며 적응 훈련을 한다. 그 일을 이십오 년 넘게 하고 있는 하루키는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재능이 많은 인간이 아니었다. 지독히 성실한 작가였다.
책을 덮고 나서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여전히 비가 내려서 다시 집구석에 또아리를 틀었다. 이래서 나는 세계적인 작가가 못 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