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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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로 모르던 이방인이 만나 마음을 열고 동반자가 되는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평범한 이야깃거리에 특별한 조건을 주면서 이 이야기는 이제 더는 평범하지 않게 됩니다. 한 사람은 수학 박사이고 한 사람은 파출부입니다. 게다가 수학박사는 일종의 단기기억 상실증을 앓아 그의 기억은 오직 80분만큼 기억하고 그 이후는 다시 모든 것을 잊습니다. 매일 처음 시작하는 사이이지만 그 관계는 진전됩니다.


드류 배리모어가 출연한 첫 번째 키스만 백번하는 영화와 비슷한 설정입니다. 그러나 수학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해설해 소설의 독특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제약 조건을 가졌음에도 그들의 관계가 성숙해지는 것은 '배려'하는 마음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기억을 보완하려고 클립으로 메모지를 덕지덕지 겉옷에 붙여 놓는 박사의 배려,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박사를 보살피는 파출부 모자의 배려는 잔잔하고 고요한 감동을 독자에게 불러 일으킵니다.


골치 아픈 수학도 잘 활용하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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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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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성향과 망상이 심한 정신병력을 지닌 범죄자를 수용하는 섬이 있습니다.


그 섬의 이름은 셔터 섬. 연방 수사관 테드는 지난 밤 사라진 환자를 찾기 위해 허리케인 예보를 무릅쓰고 섬에 들어갑니다. 모든 것을 협조하는 척하지만 은근히 비협조적인 병원 직원들의 시선 속에서 테드는 명단 외에 사라진 67번째의 환자가 있음을 눈치챕니다. 테드를 돕는 유일한 사람은 배에서 처음 만난 파트너 처크.  과연 섬과 병원, 그리고 테드를 둘러 싼 비밀은 무엇일까요?


불행히도 저는 책을 펴든 5분 후에 이야기의 반전을 눈치챘습니다. 그 후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결과의 증거를 발견해가며 흥미가 반쯤 식은 채 이야기를 쫒아갔습니다. 작가가 과하게 친절하셔서 섬 이곳저곳에(?)실마리가 흩어 놓았습니다. 다른 독자들도 작가와의 머리 싸움을 해 보실 수 있습니다. 실마리의 양을 볼 때 충분히 공정한 게임을 벌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추측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서 손해보는 독서는 아니었습니다.


스콜세지와 디카프리오 커플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예고편이 스포일러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실 분들은 예고편을 피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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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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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좀처럼 읽지 않습니다. 읽을 것도 많은데 하필 작가가 책상에 앉아 말장난, 글 장난한 것을 읽을 여유 따위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요네하라 마리의 글이라면 이건 경우가 달라집니다. 이 돌아가신 일본 여류 작가께서는 1960년대 공산 치하의 프라하에서 학교에 다니셨답니다. 아마 아버지가 약간 좌측 성향이 있으신 분이었나 봅니다. 내친김에 러시아에서 유학하셔서 러시아어 동시통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문화적 성향이 경도된 저 같은 사람에게 새로운 햇살을 확 드리워 줍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로 먹을 것을 갖고 글 상을 차립니다. 그 상의 요리들이 오밀조밀 맛이 있습니다. 메인 디쉬가 확 당기는 것은 아니지만, 코스별로 나오는 요리 하나하나가 다 맛이 개성적이고 기가 막히게 혀에 갖다 붙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요네하라 마리의 요리들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후식을 즐겨야 하는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됩니다.


요네하라 마리의 글은 이번에 음식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밝혔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러시아의 두 정치인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처음 일식을 대하고 보인 반응을 비교해 봅니다. 조심스럽게 간을 보며 일식을 대한 고르바초프, 낫또에서 초밥까지 가리지 않고 집어삼킨 옐친을 비교해 보면 그들이 구 소련의 몰락기에 보여준 정치적 행동과도 묘한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일화가 단순한 미식의 경지를 넘어 독자의 견문을 넓혀줍니다.


고향의 맛을 잊지 않되 새로운 시도를 잊지 않는 진취성이 [미식견문록]을 읽고 제가 얻은 식후감이었습니다. 수필도 간혹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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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2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7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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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는 교통사고 한쪽 팔을 잃는다. 팔 뿐 아니라 교통사고 이전의 그의 성공적인 삶과는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곳이 듀마 키이다. 그곳에서 그는 잘려나간 팔이 있던 자리에 아직도 뭔가 근질근질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었던 것일까?


스티븐 킹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특별한 기능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린 마일]의 주인공이 치유의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듀마 키]의 주인공 에드거는 화가로서의 재능이 생긴다. 그 재능이 사실은 비극의 시작이고 그 마지막 해결책이라는 것이 오래지 않아 밝혀진다.


독자를 미친 듯이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지만, 마무리는 상쾌하지 못했다. 한 권으로 끝날 수 있는 이야기를 복잡한 수사로 두 권 분량으로 만들어 버린 감도 있다. 여하튼 책을 끝까지 보게 하는 끈끈함은 남아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며 공포와 감동을 동시에 느낀 적이 많다. 이야기의 향방을 궁금해하며 후속이 나오기를 몸 달아하며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러나 [듀마 키]는 그 정도의 수작은 아니다. 바로 전에 본 [드림 캐쳐], [리시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실망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티븐 킹에게 한 방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린 마일], [쇼생크 탈출],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자루 속의 뼈] 등 그의 걸작이 보여준 감동과 재미의 절묘한 믹스를 맛보았기에 우리는  스티븐 킹 이 드리운 낚싯밥에 또 침을 흘리며 매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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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 - 현대 도시인을 위한 명당 만들기
최창조 지음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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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占)을 믿지 않는다. 한 번도 점집에 간 적조차 없다. 그런데 풍수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자칭 실증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이고 논리적이고픈 사람에게 최악의 공부거리가 생겼다. 이럴 때는 정통파가 쓴 정론 서를 고르지 않는 게 요령이지 싶었다. 서점에 가서 '풍수'의 개론부터 '현대적인 맥락'까지 살펴 줄 책을 찾았다. 겉장에 한문으로 엄격하게 독자를 내려다보는 책은 피했고, 내용도 딱딱하지 않게 풀어간 책을 찾았다. 수 년전에 서울대 지리학교수가 풍수를 공부하기 위해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기억이 났다. 저자가 서울대 교수였다면 함부로 혹세무민하는 궤변을 늘어놓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이다.


풍수는 '좋은 땅'을 찾으려는 우리 조상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좋은 땅'이 아니라 '맞는 땅'을 찾는 작업이 풍수라고 한다. '맞는 땅'이 '어떤 땅'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땅'은 속된 말로 '돈 되는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자리에 부모의 무덤을 쓰면 자식에게 복이 생긴다는 '음택 풍수'는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결국은 지가(地價)가 올라 후손이 돈더미에 오를 수 있다는 기원과 같은 말이 아닐까? 좌청룡 우백호를 논한다는 것은, 일신의 안위(安危)를 도모하고 픈 이기심의 발로와 마찬가지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풍수론이라는 것이 내 선입견이었다.


저자의 글은 나의 선입견이 틀렸음을 보여주었다. '풍수'라는 것은 우리 조상이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표현한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과거의 틀 속에 갇힌 고답적 논의라는 생각은, 풍수의 현대적인 쓰임새를 찾는 작가의 노력에 금세 바꾸게 되었다. 저자는 땅을 사람으로, 더 나가서는 '어머니'로 비유한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얻었고, 어머니는 지대한 사랑의 원천이다. 그래서 항상 모든 사람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모든 자식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 이런 논의를 적용해 저자는 현 정부의 '사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지한다. 과거가 아름다웠다고, 나이 들고 아픈 어머니를 내버려 두는 것은 제대로 된 모자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하천이 무분별한 개발의 여파로 파괴되었는데,  그대로 놔두는 게 '자연보호'라며 방치하는 것이 어머니를 살리는 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되어 하천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의의 초점이 다르지만 저자는 '대운하 사업'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다. 영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교통 요지마다 근접할 수 있는 포구가 있는데 왜 공연한 짓을 하는지 되묻고 있다.


[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은 나에게 새로운 분야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선입견과는 달리 '풍수'도 현대인의 삶에 유효한 논리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과 미신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스컬리'의 불신감을 아주 누르지는 못했지만, '멀더' 요원은 '나도 믿고 싶다.'라는 아련한 기대를 '스컬리'에게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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