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 - 현대 도시인을 위한 명당 만들기
최창조 지음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점(占)을 믿지 않는다. 한 번도 점집에 간 적조차 없다. 그런데 풍수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자칭 실증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이고 논리적이고픈 사람에게 최악의 공부거리가 생겼다. 이럴 때는 정통파가 쓴 정론 서를 고르지 않는 게 요령이지 싶었다. 서점에 가서 '풍수'의 개론부터 '현대적인 맥락'까지 살펴 줄 책을 찾았다. 겉장에 한문으로 엄격하게 독자를 내려다보는 책은 피했고, 내용도 딱딱하지 않게 풀어간 책을 찾았다. 수 년전에 서울대 지리학교수가 풍수를 공부하기 위해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기억이 났다. 저자가 서울대 교수였다면 함부로 혹세무민하는 궤변을 늘어놓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이다.


풍수는 '좋은 땅'을 찾으려는 우리 조상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좋은 땅'이 아니라 '맞는 땅'을 찾는 작업이 풍수라고 한다. '맞는 땅'이 '어떤 땅'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땅'은 속된 말로 '돈 되는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자리에 부모의 무덤을 쓰면 자식에게 복이 생긴다는 '음택 풍수'는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결국은 지가(地價)가 올라 후손이 돈더미에 오를 수 있다는 기원과 같은 말이 아닐까? 좌청룡 우백호를 논한다는 것은, 일신의 안위(安危)를 도모하고 픈 이기심의 발로와 마찬가지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풍수론이라는 것이 내 선입견이었다.


저자의 글은 나의 선입견이 틀렸음을 보여주었다. '풍수'라는 것은 우리 조상이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표현한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과거의 틀 속에 갇힌 고답적 논의라는 생각은, 풍수의 현대적인 쓰임새를 찾는 작가의 노력에 금세 바꾸게 되었다. 저자는 땅을 사람으로, 더 나가서는 '어머니'로 비유한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얻었고, 어머니는 지대한 사랑의 원천이다. 그래서 항상 모든 사람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모든 자식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 이런 논의를 적용해 저자는 현 정부의 '사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지한다. 과거가 아름다웠다고, 나이 들고 아픈 어머니를 내버려 두는 것은 제대로 된 모자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하천이 무분별한 개발의 여파로 파괴되었는데,  그대로 놔두는 게 '자연보호'라며 방치하는 것이 어머니를 살리는 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되어 하천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의의 초점이 다르지만 저자는 '대운하 사업'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다. 영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교통 요지마다 근접할 수 있는 포구가 있는데 왜 공연한 짓을 하는지 되묻고 있다.


[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은 나에게 새로운 분야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선입견과는 달리 '풍수'도 현대인의 삶에 유효한 논리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과 미신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스컬리'의 불신감을 아주 누르지는 못했지만, '멀더' 요원은 '나도 믿고 싶다.'라는 아련한 기대를 '스컬리'에게 심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