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 내 노래의 날개를 타고 고향에 가겠네 산하어린이 147
박선욱 지음, 김태환 그림 / 산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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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윤이상, 남한 땅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금기시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1996년, 아직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쉽게 말할 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소설가 윤정모는 그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제목으로 소설 <나비의 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98년에는 윤이상 선생의 아내 이수자가 쓴 <내 남편 윤이상>이 한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근년에 들어서는 윤이상 선생의 삶과 음악을 소개하는 책들이 다투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판사들도 마침내 그의 삶을 조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사회의 변화, 남북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이미 윤이상 선생이 고인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고인이 된 윤이상 선생의 음악과 세계적인 브랜드로서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생각도 떨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의 삶과 예술에 관심을 갖고 그의 전기를 읽는 것처럼,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또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윤이상 선생의 삶을 전하는 일은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인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런 비슷한 생각으로 도서출판 산하가 박선욱의 글과 김태환의 그림으로 어린이를 위해 만든 윤이상 선생의 전기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이 출간되었지 싶습니다. 이 책은 산하 어린이 문고 중에서 147권 째로 기획 출판된 인물이야기 책입니다.

이 책을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면서 황병기 교수는 윤이상 선생을 ‘진주조개’에 빗대어 소개하였습니다.

“아픔을 피하지 않는 인내와 고통마저도 보듬어 안는 큰사랑이 눈부신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윤이상 선생은 바로 진주조개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일제의 지배와 분단, 가난과 편견이라는 모진 시련 속에서도 선생님은 고통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책 소개 중에서)

동베를린사건과 이후 이어진 해외민주화운동으로 고국의 권력자들에게 핍박받고 외면당하였을 때에도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상처를 너끈하게 끌어안았고, 오히려 이를 빼어난 음악으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독재권력도 막지 못한 음악에 대한 열정

1917년 산청에서 태어난 윤이상 선생은 보통학교 3학년 때 눈으로 악보만 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열세 살 무렵에는 이웃 청년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싶은 욕심으로 작곡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선생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의 반대로 여러 번 벽에 부딪쳤으나 끝내 아버지도 그의 열정을 꺾지는 못하였습니다. 서울의 상업학교를 그만 둔 윤이상 선생은 에케르트의 제자인 최호영 선생을 만나 음악 공부를 이어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공부를 하기 위하여 일본 유학을 떠난 윤이상 선생은 상업학교와 음악학교를 동시에 다니면서 음악공부를 하였으며, 이 시절 동베를린 사건의 단초가 된 최상한과 함께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일제 치하에서는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고, 일본 헌병의 추적을 피해 해방이 될 때까지 숨어살았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의 시기에는 결핵과 맞서 싸우는 투병생활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음악에 대한 불같은 열정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유럽 유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게 하였고, 프랑스를 거쳐서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게 됩니다.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유명한 음악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자리매김을 시작합니다.

윤이상 선생은 1958년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 1972년 뮌헨 올림픽 개막작으로 초연된 오페라 <심청>으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1988년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으로부터 수여 받고, 1992년 함부르크자유예술원의 ‘공로’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5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 사회에서 세계 음악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여정

음악에 대한 40여 년의 열정이 마침내 독일 땅에서 꽃피기 시작할 무렵인 1967년 윤이상 선생은 한국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하여 서울로 납치되어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려 1심에서 종신형, 2심에서 15년, 2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감옥생활의 고통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과 회유와 협박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감옥에서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완성하게 됩니다.

독일 정부와 해외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풀려난 윤이상 선생은 독일로 돌아가서 음악적 열정을 불태움과 동시에 중앙정보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 짓밟히는 분단된 조국과 민중들을 위한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궐기와 학살’, ‘진혼’, ‘재행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광주여 영원히>는 광주학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윤이상은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습니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납치와 감금, 고문을 당하고 죽음의 벼랑 끝에 서게 된 일도 따지고 보면 남북 분단이 빚은 비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본문 중에서)

1987년 남북음악회 개최 제의, 1990년 평양에서 열린 통일음악회 등은 모두가 통일을 앞당기는 이정표를 세우기 위한 음악가의 열정으로 이루어낸 일들입니다. 1995년 윤이상 선생은 끝내 살아생전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윤이상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고향 통영에서는 매년 윤이상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서거 10주기에 즈음하여서는 남한에서 윤이상 평화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1월 국정원의 과거사진상위원회는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이 터무니없는 조작이었음을 밝혔습니다.

지난 7월 20일에는 윤이상 평화재단 주최로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었던 현대 한국예술계의 거장,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그리고 시인 천상병을 기념하는 행사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분단의 질곡과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아이들에게 독재와 분단을 뛰어넘어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가 윤이상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년 전에 세상을 떠난 통영 출신의 한 탁월한 음악가가 전 세계의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인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가감 없이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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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아이들
루이제 린저 지음, 전유정 옮김, 김혜진 그림 / 월간싱클레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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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사건을 예언해 준다고 믿고 있는 꼬리별이 나타났다. 전쟁이나 불행, 중요한 사람의 탄생 같은 것을 알려주는 별 말이다.

천문학자들의 예측보다 빨리 나타난 꼬리별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는 왕의 아들인 열두 살 멜히오르가 맨 처음 발견하였다.

선생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인 왕은 망원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꼬리별을 아이는 맨 눈으로 볼 수 있다.

꼬리별은 예언의 징표다. 서쪽에 있는 먼 나라에서 새로운 왕이 탄생하는데, 그 왕은 왕국도 군인도 재산도 갖고 있지 않지만, 세상 모든 왕들의 왕이 된다는 예언 말이다.

새로 태어나는 모든 왕들의 왕을 만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왕은 별을 쫓아 순례단을 이끌고 서쪽으로 길을 떠난다. 꼬리별은 세상을 평화로 다스릴 평화의 왕이 태어날 것임을 알리는 징표이다.

그러나, 꼬리별은 열두 살 소년에게도 어서 함께 길을 떠나자고 재촉하고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그날 밤, 열두 살 왕자는 꼬마낙타를 타고 순례단을 쫓아 길을 나선다. 다행이 사막의 바람이 순례단의 흔적을 지워버려도 꼬리별은 계속 길을 일러준다.

부모 몰래 꼬리별이 알려주는 대로 길을 나선 멜히오르. 그러나 꼬리별이 길을 알려주는 아이는 한 명이 아니다. 멜히오르는 모래 폭풍을 뚫고 도착한 오아시스에서 시리아의 왕자 발타자르를 만난다. 두 소년은 서로 상대방이 꼬리별을 따라 새로운 왕을 찾으러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꼬리별이 새로운 왕이 태어나는 곳을 향해 길을 이끌어주는 또 다른 한 명은 ‘카스피리나’. 이집트에서 온 카스피리나는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천문학자의 딸이다. 꼬리별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흑인 소녀인 ‘카스피리나’는 멜히로르와 발타자르처럼 꼬리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왕이 어느 도시에서 태어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엄마나 가정교사처럼 두 소년을 독려하고 다독이면서 꼬리별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 새로운 왕을 찾아가는 길을 이끌어간다.

<별은 쫓는 아이들>은 멜히로르 왕자, 발타자르 왕자와 카스피리나. 이렇게 세 아이가 사막을 지나 평화의 왕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평화의 왕'을 만나러 가는 아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가 흑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여자 아이라는 사실은 백인, 그리고 남성이 중심이 된 기독교 문화권 독자들에게 던지는 새로운 메시지이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몇 구절에 불과하지만, 루이제 린저의 상상력이 보태져 <별을 쫓는 아이들>은 150여 쪽이 넘는 긴 이야기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별을 쫓는 아이들이 찾아가 만난 새로 태어나는 왕은 ‘평화’의 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란다 ! 아이의 왕국은 이 땅도 그 어느 땅도 아니야. 아이는 영토도 왕관도 권력도 재산도 원하지 않을 거란다. 이 아이는 단지 평화와 정의만을 따를 거야.”(본문 중에서)

이스라엘에 새로 태어난 왕의 어머니가 별을 쫓아 온 아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그녀는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왕들이 새로 태어나는 ‘왕’을 경배하며 바치고 간 금화와 금단추 역시 받을 수 없으니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하라고 이른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그냥 버리는 거라고 일러준다.

“버리렴. 너희를 욕심 가득하게 만들고, 질투하게 하고, 인정 없이 만들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버리렴. 금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금을 원하게 될 거야. 밤이건 낮이건 어떻게 하면 더 모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거고, 도둑에게 금을 뺏길까봐 두려워 잠도 못 자게 되지. 결국 마음에 병을 얻게 된단다.”(본문 중에서)

평화의 왕을 낳은 어머니는 별을 쫓아 온 아이들에게 또 다시 좋은 왕이 되라고, 평화의 왕이 되라고 당부한다.

“부디 좋은 왕이 되어서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죄 없는 사람들도 죽이지 말거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빵과 집을 빼앗지 말아라. 이 아이처럼 평화의 왕이 되어라. 그리고 잊지 말아라. 너희들이 이 평화의 왕을 만났다는 사실을.”(본문 중에서)

두 왕자는 평화의 왕이 되었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천년 전 새로 태어난 ‘평화의 왕’을 믿고 따른다고 신앙고백을 하는 많은 지도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빵과 집을 빼앗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수 많은 미국 대통령들은 지구상에서 일어난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예배 때마다, 이천년 전 새로 이 땅에 온 ‘평화의 왕’이 가르쳐 준 기도문을 암송하는 최고 지도자가 있는 이 나라에서는 가난한 세입자들의 집을 빼앗는 과정에서 여섯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죽음을 당해야 했다.

<별을 쫓는 아이들>은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루이제 린저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절실하다.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과 지구촌 곳곳의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세상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해마다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성탄절,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이천 년 전 이 땅에 온 ‘평화의 왕’이 전하는 메시지를 되새겨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루이제 린저가 지닌 문학의 힘은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이야기를 가슴 따뜻한 평화의 메시지로 바꾸어 우리에게 전해준다. 

독일의 대표적인 반나치 여류작가인 루이제 린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통해 이 땅에 ‘정의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이야기를 아이들을 위해서 새로 썼다.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산문 작가로 평가받는 루이제 린저는 우리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생의 한 가운데>라는 작품이 오래 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고, 그보다 후에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납치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작곡가 윤이상과의 대담록 <상처 받은 용>을 쓴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북한 기행을> 비롯한 한국관련 저서도 많이 집필했다고 한다.

이북과 이남을 모두 여행한 루이제 린저는 한반도를 가리켜 ‘천의 얼굴을 지닌 산의 나라’라고 극찬했다는 것이다. 그는 생전에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 금강산 등 명승지를 둘러보고 산과 나무의 어울림에 반했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루이제 린저가 김일성 주석과 나란히 찍은 사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작가의 이런 이력 때문에 <생의 한 가운데>를 제외한 그녀의 작품이 남한에 널리 번역되어 소개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독일 작가가 전하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이천 년 전 새로 온 ‘왕’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만나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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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가족 카르페디엠 17
샤일라 오흐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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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샤일라 오흐가 쓴 <2인조 가족>

샤일라 오흐가 쓴 <2인조 가족>은 가난에 주눅 들지 않는 자존감 강한 사춘기 소녀 야나와 늘 괴변을 늘어놓고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새로운 일을 꾸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할아버지가 유쾌, 상쾌, 통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발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익살꾼입니다. 우편배달부를 기절시키고, 집으로 찾아 온 사회복지위원회 공무원을 혼줄을 빼놓고, 청소년보호국 공무원을 기절시키고, 국장의 몸을 깨무는 기묘한 행동을 벌입니다.

그렇지만, 이 2인조 가족은 늘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살아가는 가난뱅이 일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독특합니다. 임대주택 지하실에서도 세계 역사에 나오는 건축물의 특징을 발견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집은 엄청나게 넓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우리 집은 세계사에 존재했던 모든 중요한 건축물의 특징을 조금씩은 다 갖추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집은 콜로세움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베니스 제노바 공화국 총독 관저처럼 천장이 높고, 발할라 궁전만큼이나 황량하고, 도시 변두리의 주택가처럼 황폐하고 황의 무덤처럼 서늘하고 음침했다.” (본문 중에서)

야나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듯 보이는 이 집은 사실 한 임대주택의 지하실 일 뿐입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임대 주택 지하실에는 폐지를 수집하면서 건져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책들, 낡아빠진 찬장, 오래된 식탁, 삐거덕거리는 침대가 놓여 있는 초라한 공간일 뿐입니다.

“내가 발에 신고 다니는 것은 신발이라기보다, 온갖 접착제 제품을 모아 놓은 걸어 다니는 접착제 종합세트에 가까웠다. 내 신발은 그야말로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본문 중에서)

가난하지만, 주눅 들지 않는 자존감

야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폐지와 고철을 수집하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가족이 없는 ‘조손가정’입니다. 다행히 야나는 공부를 잘 합니다. 한 시간에 10크로네를 받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를 김나지움에 입학시키는 과외교사 일을 합니다.

낡아 빠진 옷과 덕지덕지 접착제를 붙이고, 구멍을 기운 팬티스타킹에 군용모직 양말을 신고다니는 그녀는 학교에서 놀림감이 될 법도 합니다만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누구도 등 뒤에서 야나를 비웃을 수 없는 이유는 첫째 그래 봐야 그녀가 콧방귀도 뀌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녀가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도 거뜬하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복권에라도 당첨되어 좋은 옷도 사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하고 바라고, 같은 반 남자아이 ‘이르카’와 근사한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 하고 달콤한 첫 키스를 꿈꾸는 사춘기 소녀일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가난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사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사춘기가 된 소녀는 이제 그 가난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와 소녀의 대화는 이렇습니다.

“등 좀 꼿꼿하게 펴. 너 곱사등이가 되고 싶니? 왜 그렇게 구부정한 자세로 다니니?”

“눈치 없이 가슴이 자꾸만 커져서 그래. 남들 눈에 안 띄게 하려고, 구부정하게 다니는 거야.”

야나는 등을 꼿꼿하게 폈다간 단추가 모두 튕겨나갈 것 같은 낡은 셔츠를 입고 구부정하게 다닙니다. 사춘기를 맞은 야나는 점점 가난에 대하여 눈 뜨기 시작하고, 돈이 많아 좋은 옷과 신발 그리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야나’가 할아버지 말고 마음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는 바로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입니다. 그녀는 ‘나의 목소리’들과 대화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어느 날부터 바로 내면의 목소리들이 ‘야나’에게 가난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복권’을 사라고 부추깁니다.

“나로서는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살면서 한 번쯤은 희망을, 하잘 것 없고 볼 폼 없는 희망이라도 하나쯤 간직하고 싶었다. 고작해야 한 달 밖에 가지 않을 희망이라도 좋았다.”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복권을 사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있던 ‘야나’는 마침내 할아버지에게 복권을 살 수 있도록 10크로네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 건 우리에게 전혀 필요가 없어! 일단 복권을 사면 우리에겐 필요도 없는데 덜컥 당첨이 될 거야”
“하지만, 난 당첨이 됐으면 좋겠어. 내 말 알겠어?”
“왜 우리가 당첨이 되어야 하는데? 우린 그런 거 필요 없어. 바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 없는 거야”

돈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물건

복권에 당첨되면 신발, 옷, 치마, 팬티스타킹, 매니큐어, 발톱미용, 장신구, 샴페인, 치즈 바른 마른 빵을 사고 싶은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복권 당첨금이 필요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꺼려왔던 것이 바로 그 저금통장이라는 거야. 그놈의 것은 유치한 욕구와 천박한 욕망을 부추기거든. 넌 돈이 생기면 기름진 음식을 사 먹겠지. 그러면 동맥 경화 때문에 머리가 나빠질 거야. 새 신발을 사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흉하게 망가질 거고. 레이스 달린 나일론 팬티를 사 입으면, 암에 걸리겠지. 그러다 어느 날 돈이 사라지면, 넌 아직도 네게 필요한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돈 이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물건이야!” (본문 중에서)

돈에 대한 할아버지의 철학은 궤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름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돈이 사람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복권이 당첨 되더라도 맘 편히 술을 마셔 없애기 좋을 금액만 당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복권에 당첨되어 받은 돈으로 ‘야나’에게 몸에 맞지도 않는 속옷 두 벌을 사주고 자신이 죽으면 묻힐 관을 사고 나머지 돈은 모두 술을 마셔버립니다. 술은 마신 할아버지는 광장의 동상에 올라가 소란을 피웁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그는, 양로원에 보내지기 전에 사고를 저질러 감옥에 가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세상 일이 그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아 손녀 ‘야나’와 헤어지게 됩니다. 그는 양로원으로 ‘야나'는 기숙사로 보내지는데 이 기숙사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고아원과 비슷한 곳 입니다.

야나와 할버지는 서로가 양로원 생활과 기숙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마음에 없는 편지를 주고받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양로원에서 온갖 기괴한 일은 벌인 할아버지는 양로원에서 빠져나온 기숙사에서 ‘야나’를 탈출 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숨겨진 비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남

이 과정에서 손녀는 할아버지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충격적인 사실 조차 평소 할아버지에게 배운 낙관적인 사고로 이겨냅니다.

“바넥(할아버지) 씨를 성인으로 생각할 건 없어. 인간적으로 보면, 그가 남의 아이인 너를 입양해 키워준 것은 감동적인 행위야. 그런데 청소년보호국에서 내게 보낸 편지가 여기 있어. 그 당시에 맺은 입약계약이 자칫하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구나. 바넥 씨가 청소년 여자아이를 적절하게 보살필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라는 거야.” (본문 중에서)

그러나, ‘야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지만, 자신과 할아버지 사이는 우연한 친척관계나 유전으로 물려받은 눈의 색깔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손녀는 앞으로 자신이 할아버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함께 깨닫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노인네인 할아버지 ‘바넥’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야나'를 위해 온갖 일을 꾸미는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인물입니다.

그는 “참된 우아함이 머물 곳은 우리 영혼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가난하지만, 가난을 힘겹게 여기지 않는 자존감 강한 사람입니다. 소설 속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사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 태어난 인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거나 고작해야 걱정을 사서 하지 말고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라”고 합니다만, 천하의 낙천주의자 할아버지는 “오늘 걱정을 내일로 미루라”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늘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행복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재미있고 독특한 성장소설입니다. 지은이 샤일라 오흐는 <2인조 가족>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다음 작품인 <돈 벌기는 너무 힘들어>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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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읽는 CEO -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읽는 CEO 8
김진애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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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진애가 쓴 <도시 읽는 CEO>

오늘날,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귀농 혹은 귀촌을 실행에 옮기고 있고, 아직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꿈도 농촌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도시의 각박함과 감옥같은 삶을 벗어나 더 많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하여 도시를 떠나려고 한다. 조금 더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비전문가인 시민들은 대체로 '도시는 전문가가 만들고, 도시는 전문가가 망친다'고 믿어왔다.

사람들이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 도시는 행정가와 도시전문가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분명하고 간단하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이른바 도시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런 전문가들 결정은 시민들 삶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고, 결국 사람이 살기에 좋은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 읽는 CEO>를 쓴 도시건축가 김진애는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고 정의하였다. 그녀는 도시는 전문가가 만들고 나는 그냥 그곳에 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한 도시의 시민으로서 당신이 하는 일상의 행위가 도시를 만든다. 어떤 집을 선택하느냐, 어떤 길을 걷느냐,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물건을 사느냐,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노느냐, 이 모든 것이 도시를 만드는 행위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동기들에 의해 매일매일 움직이면서 오랜 시간 동안 만든다는 점에서, 사람이 만드는 것 중에 가장 복잡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도시는 전문가들이 만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행위가 바로 도시를 만드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의, 식, 주, 소비, 놀이와 같은 모든 문화 활동이 도시를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살고 싶은 도시나 살고 싶지 않은 도시나 모두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자업자득이라는 말이다.

결국, 한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결국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지 뛰어난 전문가의 설계만으로 살기 좋은 도시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살기 좋은 도시는 누가 만드는가?

김진애는 '도시전문가'이기 이전에 '도시팬'이고 '도시인'이며, 도시에 사는 게 좋고 도시가 흥미롭다고 말한다. 도시는 수많은 문제와 수많은 갈등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 한다. 말하자면, 도시건축가로 공부하고 살아 온 김진애는 도시를 통해 삶을 읽어내는 눈을 키워 온 것이다.

"도시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키우며,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복잡다단하고 오묘한 관계를 배운다. 또한 인간세계의 경영을 배우고, 인간세계의 운명을 깨닫기도 한다."(본문 중에서)

<도시 읽는 CEO>를 쓴 김진애는 도시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도시를 읽으면 인간이 보인다"고 한다. 도시를 읽으면 사람과 사람사이가 보인다는 것이다.

도시전문가가 쓴 '도시 읽기'는 종로통, 전주, 진주, 서울, 제주올레와 인사동과 북촌 같은 국내도시와 보스턴, 바로셀로나, 밀라노, 런던, 파리, 뉴욕, 쿠리티바, 두바이 같은 외국 도시들을 두루 읽고 해석하고 성찰하는 책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두 도시를 비교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비슷한 도시를 찾아내기도 한다.

김진애는 <도시 읽는 CEO>를 통해 자신이 다녀온 세계 유수의 도시들을 나열하거나 소개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지은이는 비전문가이면서도 사실은 한 도시를 만드는 주체인 시민들에게 도시를 읽는 법, 도시를 통찰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 감수성과 호기심을 끌림을 느끼기
▲ 자신의 방식으로 지도 그려보기
▲ 지적 감동에 주목하기

그녀는 감수성과 호기심 그리고 자연스런 끌림으로 느끼는 도시로 바로셀로나, 밀라노, 진주를 소개하고 있으며, MIT에서 공부할 당시 지적 감동을 통해 통찰하게 된 도시로 런던과 파리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비법 중 하나는 자신의 방식으로 지도를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 속에 펼쳐지는 지도를 실제로 그려보면 자신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이 선명해지고, 서로 간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며, 무엇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또는 유리되어 있는지, 전체의 구도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밀라노 트리엔날레 서울 전시'를 준비하면서 거대도시 서울을 그려 본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을 직접 그려보는 작업을 통해 서울을 통찰하여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직접 해보면 개념이 더 선명해진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자신의 몸을 써서 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 '체득'이라는 말 그대로 몸을 써서 얻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즉, 그려보는 것, 직접 발로 밟아 보는 것은 모두 우리 몸을 사용하는 것이고, 이런 과정이 호기심을 키울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려보기는 결국 복잡하게 보이는 전체의 핵심을 파악하는 통찰력으로 모아진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통찰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도시들을 분석한다. 쿠리티바와 두바이, 뉴욕의 변화 ,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워싱턴DC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울과 평양,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도시의 대표적 사례인 쿠리티바, 에너지와 소비문화로 지탱하는 두바이를 비교하고, 도시의 흥망성쇠와 권력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워싱턴 DC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권력 게임이라면,도시란 어쩔 수 없이 그 권력 게임이 벌어지느 핵심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의 많은 도시들은 특정한 권력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그 권력의 크기를 과시하고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새로 지어지고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온 몸으로 도시를 통찰하는'걷기'

한편, 저자는 도시를 온 몸으로 통찰하는 방식으로 '걷기'를 제안 한다. 흠뻑 빠져보는 것, 몸으로 빠져보는 것으로는 걷기가 최고 이며, 걷는 동안 몸과 마음이 열리고 정신도 깨이고 영혼이 맑아져서 통찰의 길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두 다리를 움직이고,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옴몸을 바로 세우며 걷고 걷고 또 걸으면 평소에 잠자고 있던 당신의 감각들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아주 단순한 비결이다. 비결은 단순함에 있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차를 야만 다닐 수 있는 도시가 가장 나쁜 도시이고, 걷고 싶은 도시야 말로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한다. 그는 걷고 싶은 도시, 걷고 싶은 동네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 최소한 세 시간은 헤맬 수 있을 것
▲ 최소한 한 끼는 먹고 싶을 것
▲ 최소한 한 가지는 사고 싶어질 것

많은 도시들이 살고 싶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걷고 싶은 도시,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세 가지 기준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걷고 싶은 도시, 걷고 싶은 길의 대표적인 사례로 북촌과 인사동을 들고 있다.

북촌과 인사동이 걷고 싶은 동네가 된 것은 이야깃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만날거리, 사진찍을거리, 구경거리, 그냥 서성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잎맥처럼 이어진 골목길과 오랜시간에대한 긍지와 명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세계 어느 도시의 걷고 싶은 동네를 가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이라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최고의 도시다

도시건축가인 지은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시가 가장 좋으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이 책에도 어느 시인에게 어느 도시가 가장 좋으냐는 질문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이 질문에 지은이는 정말 의외의 대답을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최고의 도시다."

"갑자기 지팡이로 쿵 내려치는 것 "같은 이 대답을 지은이는 결코 특별한 대답이 아니라고 한다. 도시를 바라 볼 때도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꿈꾸면, 그들이 사는 도시를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역사를 통해 지구상에는 수많은 도시가 생겼고, 또 수많은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은이는 아주 단순한 교훈이 도시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람이 살면 도시가 살아나고 사람이 떠나면 도시가 사라진다." 그렇지만, "모든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다." 결국 도시는 인류 역사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는 유기체와 같다는 것이다.

<도시 읽는 CEO>는 많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도시부터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긋지긋해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통찰'하는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파워블로거이자 블로거 정치인으로서 '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http://www.jkspace.net)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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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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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 중국의 정신적 스승 지셴린이 쓴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는 중국인들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원로학자 지셴린이 쓴 단편 산문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이 큰 글들을 가려뽑은 에세이집이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1911년생으로 올해 98세인 지셴린은 원자바오 총리, 리자오 싱 전 외교부장 등이 스승으로 모시는 인물이며, 많은 중국인들로부터 ‘태두’, ‘국보’ 불리며 공경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지내다가 천재일우의 독일 유학기회를 만나 10년간 독일유학을 다녀온 후 1945년 베이징대학에 부임하여 동방학부를 개설하여 1978년 부총장을 지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학내정치투쟁으로 린치, 강제노동, 지식인을 가둬놓은 ‘우붕’ 수감생활를 거치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방대한 양의 인도고대 서사시 <라마야나>를 번역하는 지식인의 삶을 실천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16년이 지난 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이데올로기와 집단적 광기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우붕잡억>를 펴냈는데, 자신을 핍박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을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세대차이야 말로 진보를 위한 동력이다.

100세를 내다보는 지식인의 열린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세대차이를 지지하는 이유’라는 글의 한 대목을 소개해 본다. 그는 자신에게도 노인에게 찾아오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들이 죄다 못마땅해 보이고, 그들이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특히 요즘 새로 등장한 신조어들은 들을 때마다 불편하다. 그들의 옷차림, 태도, 언행, 사람을 대하는 예절, 좋아하는 대상과 취미까지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볼 때마다 고개가 가로 저어지고 한숨짓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본문 중에서)

그는 젊은이들이 벌건 대낮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입을 맞추는 모습이나 그 보다 더 노골적인 광경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차이 자체에 대해서는 적극지지하고 진심으로 찬사 보낸다고 한다.

세대차이야 말로 인류의 진보를 촉진하는 바탕이었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진화하면서 세대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든 원숭이가 네 발로 기어 다닐 때, 일어서서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탄생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98세의 지셴린은 나이든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쏟아내는 신조어가 국어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하지만, 젊은이들이 만드는 새로운 단어가 언어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세계의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신조어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 언어로는 새로운 개념과 사물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언어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세대차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화를 상징하고 진보를 나타내며 인류의 전진을 의미한다는 것이 지셴린의 생각이다.

성공은 70%의 근면과 30%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은 ‘천재는 99퍼센트의 근면과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성공을 위해서 갖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100년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 온 노학자인 지셴린은 조금 다른 생각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성공이란 ‘천부적인 소질 + 근면 + 기회’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말 한다. 그는 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쳐도 일 년 동안 똑같이 수업을 받아도 학생마다 분명 실력차이가 존재하며 어떤 학생은 평생을 배워도 언어를 익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천재는 70퍼센트의 근면과 20~30퍼센트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근면함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재능은 없이 근면함만으로 성공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문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

한편, 성공의 비결 가운데는 재능과 근면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기회라고 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기회가 성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가장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세계를 달군 베스트셀러 <마지막 강의>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랜디 포시 교수 역시  ‘행운은 준비와 기회가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공에 있어서 재능과 기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고 하였던 노학자는 성공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력’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성공의 세 가지 조건을 분석해보면, 천부적인 소질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관이 아니고, 기회 역시 생각지 않게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근면함 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기회를 얻지 못해 성공하지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은 사람 능력 밖에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근면’ 뿐이라는 것이다.

100세를 살아 온 인생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다 지나간다>에는 98세의 나이에도 날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학문에 대한 한결 같은 열정을 이어가는 지셴린이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학문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삶을 사는 지혜, 세상과 소통하는 법, 아름답게 나이 드는 비결”을 전해주고 있다.

철학자로서, 언어학자로서, 문학자로서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저자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전을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독자들을 더욱 사로잡는다. 프롤로그에서 ‘나는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라던 저자는 도연명의 시 <신석>의 일부를 인용하여 인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불안정한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한 순간의 기쁨과 한 순간의 고통에 집착하지 말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100세를 살아 온 인생에서 길어 올린 사색과 명상의 결과물이다. 세상을 달관하는 듯 경지에 이른 지식인의 경륜이 담겨있지만, 그의 생각과 지혜는 대지에 디딘 두 발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인생을 사는 동안 “사회 발전이라는 기나긴 강물 속에서 어떤 세대에든 그들에게 지워진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인류 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인류 전체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불안정한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와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인류 전체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100퍼센트 유물주의 철학가도 없고, 100퍼센트 유심주의 철학가도 없다”는 지셴린은 “유물론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성공 = 천부적인 소질 + 근면 +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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