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위의 축구공 - 강석진 스포츠 에세이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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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보다 월드컵을 더 신봉한다는 수학자이자 축구인인 강석진은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고 퇴장 당한 알제리계 프랑스 축구스타 '지단'을 보고 뭐라고 할까?

독일 월드컵이 끝났지만 월드컵이 남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지단'과 '마테라치'의 박치기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이다. 외신과 스포츠 신문은 물론이고 일간 신문의 스포츠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사로 취급되고 있다.

누구라도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읽고 나면, 스포츠 신문이나 일간 신문의 스포츠면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마련이고, '그럼, 강석진은 뭐라고 말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6월에 <축구공 위의 수학자>를 펴냈던 수학자 강석진이, 만 4년 만에 다시 월드컵이 열리는 2006년 6월 <수학자 위의 축구공>를 펴냈다. 섹스, 스포츠, 스크린으로 이른바 3S 정책이 대중을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지배 구조를 공고히 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는 심각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는 참 재미없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 강석진이라는 사람의 본업이, 혹은 주업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우리 사회가 대체로 먹고 사는 생계와 관련된 일을 주(본)업이라고 하는 경향이 많으니 그의 본업은 수학자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이 입학 할 것으로 믿는 모 국립대학교의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그 대학에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니 틀림없이 수학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평생 수학과 스포츠를 복수 전공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으며, 노벨상보다 월드컵을 더 숭배한다고 했다니 본업을 수학자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굳이 이름 짓기를 해야 한다면 그의 본업은 두 개인데, 수학과 스포츠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 책 제목은 <축구공 위의 수학자>이고 두 번째 책 제목은 <수학자위의 축구공>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를 만난 적도 없고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아마 그를 전문적인 스포츠평론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수학자과 스포츠를 겸업하는 지은이 강석진은 수학이 아니라 축구(사실은 야구, 농구, 양궁, 사격, 육상, 수영 등 온갖 스포츠)공에 관한 책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쓴 목적을 "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해야 스포츠가 주는 뜨거운 감동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일을 통해 뭔가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강석진은 농사를 짓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혹은 여행을 하거나 어느 일에나 다 그렇듯이 스포츠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감동을 발견하곤 한다.

본업은 수학자, 주업은 스포츠 평론가?

'스포츠를 있는 그대로 보는' 두 번째 시도인 그의 이번 책, 1부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진정한 승부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야구선수 이상훈, 권투선수 유제두, 김득구, 알리, 스핑크스, 다이빙의 임윤지, 사격의 강초현, 배드민턴의 이동수와 유용성, 배구의 김세진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책의 제목이 <수학자 위의 축구공>이었던 것처럼 가장 많은 분량은 축구이야기다. 2부에는 축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1996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부터 2002년 월드컵까지의 이야기이다. 2002년 월드컵 세계 4강만 기억할 뿐 대부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축구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속한 대학의 축구부원들에게 '지식인'이 되지 말고, '축구인'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그의 한국 축구에 대한 진단이나 발전방안에는 지식인으로서의 통찰력과 객관성 그리고 스스로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가 그토록 수준미달, 함량미달로 진작 포기하고 구독을 중단하였지만, 그래도 가끔씩 지하철에서 사서 읽는다는 스포츠신문과는 분명 수준이 다르다.

"유소년축구의 육성, 충분한 천연잔디구장 확보, 정정당당한 경기문화, 생각하는 축구, 연령별, 지역별 리그제 도입, 대한축구협회 행정쇄신, 프로축구활성화, 우수지도자 및 심판 양성, 학원축구개혁" 등 산적한 한국축구의 문제점 중에서 그는 가장 시급한 문제로 '학원축구의 개혁'과 '정정당당한 경기문화 확립'을 꼽는다. 솔직히, 이러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서도 2002년 월드컵에서 세계 4강을 이루었으니 그의 말대로 '기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문제점만 지적하고 딴죽만 걸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문제점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함께 찾아가자고 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축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표현처럼 "패스를 줌으로써 패스를 받고, 신뢰함으로써 신뢰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어시스트함으로써 진정한 승리를 얻기 때문입니다"로 끝나는 그의 '축구의 기도'와 "골대 근처에서 찬스가 오면 과감하게 슛을 때릴 줄 아는 책임감과 결단력, 팀을 위하여 자신의 헛된 욕심을 잠재울 줄 아는 헌신과 희생정신"이 담긴 축구에는 인생과 삶의 지혜가 담겨있음에 틀림없다.

1996년부터 2002년 까지 우리나라 축구의 뒷이야기까지 담아

3부의 주인공은 강석진 교수의 '영웅'인 허재다. 농구 선수의 '전설'로 남게 되는 과정을, 허재라는 '이단 신앙'에 빠진 광팬의 입장으로 기술했다. 그렇지만, 그의 허재에 관한 사랑이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가 무면허 음주운전 사고 이후 기아자동차 농구팀을 떠나기 직전 허재를 인터뷰한 글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등산이 절반이 하산이라는 그의 표현 처럼, 정상을 내려오는 농구천재 허재를 지켜보는 그의 시선에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4부는 스포츠와 관련된 각계에 대한 쓴 소리와 바람을 담았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한 승부사들과 인생을 바쳐서 한국 스포츠를 일궈온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김성근, 박종환, 차범근과 같은 거목을 거목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졌다.

뿐만 아니 스포츠신문의 타락과 프로심판, 경기중계를 하는 방송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 애정 어린 비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권투 경기의 채점결과 발표를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할 수 있다는 그의 제안은 수학과 스포츠를 동시에 전공하는 그의 통찰력이 멋지게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5부는 프로 수학자인 강석진의 자칭 '축구인'으로서의 인생이 이야기가 담겨있다. 축구는 그에게 삶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고 축구는 그에게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는 보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학교 운동장을 없애고 교실을 짓는 학교 행정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차라리 분노에 가깝다.

<수학자위의 축구공>은 책을 좀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혹은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2006년 월드컵을 좀 더 재미있게 그리고 더 감동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한두 달 전에 혹은 올 초에는 나왔어야 하는 책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전이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나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강석진이라면 2006년 월드컵에서 토고, 프랑스, 스위스와 겨룬 한국팀의 경기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그는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수학자위의 축구공>에는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스포츠신문 기사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있는 그대로 직시 할 줄 아는' 내공으로부터 비롯된 강석진이 스포츠를 보는 독특한 격이 담겨있어 재미있다. 그런데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한 감동과 잔잔한 여운도 있다.

수학을 지독히 싫어하면서도, 그의 스포츠에세이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읽고, 그가 쓴 수학책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에 <수학의 유혹>을 구입하는 유혹(?)에 빠져 주문하기를 클릭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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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 - 고전으로 채색한 수필 삼국지
구주모 지음 / 법문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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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조선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사상가였던, 연암의 글쓰기 비법을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다.

연암과 더불어 조선후기를 이끌었던, 당대의 실용적 지식인들을 통해 글쓰기라는 딱딱한 주제를 소설속의 소설로 풀어낸 독특한 책이다.

연암이 강조하는 글쓰기의 기본은 읽기다. 좋은 글을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아주 정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한다.

아울러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연암이 전해주는 좋은 글쓰기의 첫째 원칙과 둘째 원칙에 해당된다.

요약해보면, 좋은 글을 쓸려면, 좋은 글을 읽어야 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할 뿐 아니라,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암이 강조한 이런 글쓰기 원칙에 아주 근접해 보이는 책을 만났다.

바로 구주모가 쓴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다. 그가 쓴 책은 정사 <삼국지>와 <자치통감>을 기본 줄거리로 중국 25사(史)의 원조인 <사기>를 비롯한 역사서, <논어>를 위시한 경전, <세설신어>를 중심으로 한 필기류 등을 주제에 맞게 추출하여 엮은 결코 가볍지 않은 수필집이다.

저자는 <논어> <노자> <장자>를 비롯한 子자 돌림 책들을 비롯하여 100권이 넘는 중국 역사서적을 인용하였다고 참고도서 목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는 흔히 소설 삼국지로 잘 알려진 중국 삼국시대 역사를 중심으로 모두 36개의 다양한 주제를 재구성하여 쓴 책이다.

그는,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서른여섯 편의 글 중에서 아무 글이나 한편만 읽어보아도, 저자가 보통 독자들이 많이 읽는 <삼국지연의>뿐만 아니라 정사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을 얼마나 ‘정밀하게’ 읽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연암’이 강조한 것처럼, 얼마나 ‘넓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을 거쳤는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틈만 나면 어울리던 소중한 친구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읽던 월탄 박종화의 번역본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을 뿐만 아니라 또래들을 모아 놓고 이것저것 아는 체를 하며 변사 티를 내기도 하였단다.

세월이 흘러 20여년 이상을 신문기자로 살아왔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연의>를 잊고 지낸적이 없으며, 소설적 감동에 머무르지 않고, 삼국시대를 형성한 ‘역사적 진실’을 더듬는 ‘정밀한 독서’를 해왔다는 것. <연의>에서 출발한 관심을 토대로 여러 고전을 헤집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엮는 독서를 ‘넓고’, ‘깊게’ 해왔다는 것이다.

정밀할 뿐만 아니라 넓고, 깊은 독서를 통해, 오랜 세월 동양 고전을 접하면서 뇌리에 새긴 ‘고인들의 자취와 향기’를 <삼국지>와 연계하여,‘흥미와 교훈’을 담는 새로운 고전해석을 시도하여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라는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모두 6장 36편으로 구성된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중 흥미로운 이야기 두 편을 소개해 본다. 독자들은 자세히 읽기, 넓고 깊게 읽기가 고전 읽기를 위한 새로운 결과물로 빚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36편중 한 꼭지로 ‘저주 받은 환관들’이야기가 있다.

환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거세당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지연의>가 널리 알린 ‘십상시’로 대표되는 국정을 농단하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한나라 말기 장양, 단규, 조충를 비롯한 10명의 우두머리 내시가 작당해 백성을 못살게 굴고 권력을 독점하여 ‘십상시’로 불렸다는 것이다.

국정농단의 책임을 환관들이 뒤집어 쓴 까닭?

후한의 영제가 ‘십상시’에 휘둘리다 말년에 가장 나이 많은 장양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을 탄식하는 대목은 <삼국지연의>에도 나오지만, <자치통감>에도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황제가 “장상시(장양)은 나의 부친이고, 조상시(조충)은 나의 모친”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후한서>에도 환관을 통렬이 비난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손으로 왕의 작위를 거머쥐고, 입으론 하늘의 법을 머금어 그들의 뜻에 따라 모든 형벌과 상이 결정되었다. 황제의 명을 왜곡해 삼족이 영예를 누렸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종실을 멸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 기강은 크게 어지러워졌다.”(본문 중에서)

한나라 순제때 ‘장강’이란 암행어사 지방관리의 부패를 감찰하는 임무를 맞으면서,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고 섰는데, 어찌 여우와 살쾡이를 따지고 있을 것인가”하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바로 승냥이와 이리 같은 환관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데, 피라미 같은 지방관리를 감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환관에 대한 부정적인 또 다른 부정적인 평가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데, 바로 원소가 보낸 조조토벌 격문에 ‘환관 양자가 남긴 더러운 자취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글귀가 있다고 한다. 조조 아비 조숭이 환관 양자로 들어간 것을 빗대 조조를 비하하는 대목인 데, 환관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얼마나 나빴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를 쓴 구주모는 환관들이 온갖 악행을 일삼고 국정을 농단한 것은 결국 어리석고 부패하고 무능한 황제들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한나라 말기 황제들은 간신들을 싸고돌았을 뿐만 아니라 매관매직을 일삼았으므로 환관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환관이 많았던 것은 궁녀가 많았기 때문

환관이 판을 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으로는 군주의 과도한 ‘여탐’ 때문이라는 견해가 <명이대방록>에 전한다고 한다. “궁실을 거대하게 지어놓으면 여궁들로 채우지 않을 수 없고, 여궁들이 많아지면 환관을 시켜 그들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청나라 학자 고염무 또한 “궁중에 비빈과 궁녀들이 너무 많아 환관이 득세하지 않을 수 없다. 환관의 발호를 막을 유일한 방도는 군주가 여색을 멀리하는 길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울러, 환관이 기승을 부린 세 번째 이유는 심한 정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유생들 사이의 격렬한 자리다툼과 파벌 확대가 결국 환관이 득세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생들이 기록한 역사에는 ‘황제들이 어둡고 욕심이 많았으며, 사대부들 간에 정쟁이 심했다는’ 근본 원인은 제쳐두고, 거세당한 환관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관에게 씌워진 불명예를 100% 그들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구주모가 쓴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삼국시대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른 고전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정사 삼국지>를 중심으로 <삼국지연의>는 물론이고, 다양한 고전에서 ‘환관’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내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책에 나오는 ‘만두의 유래와 칠종칠금’ 고사에 얽힌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삼국지연의>의 백미 중 한 대목으로 작자의 상상력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엮였다는 것이다.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49명의 사람과 여러 짐승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제갈량이 만두를 빚어 제사를 올림으로써 원혼을 달래고 무사히 돌아오는 이야기가 바로 절정에 해당된다는 것.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 긴 이야기로 엮어진 남만정벌이 실상 <한진춘추> <화양국지>에는 ‘제갈량이 일곱 번 사로잡아 일곱 번 풀어주었다’고 불과 서너줄 언급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증에 따르면 ‘칠종칠금’ 이야기는 정사 <삼국지>에는 언급조차 없고, <통감집람>에는 시간적으로 제갈량은 일곱 번 풀어줄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는 것이다.

 '중화의식'에서 비롯된 '칠종칠금' 고사

 반면에 <제갈량 평전>을 쓴 여명협은 <화양국지> <한진춘추> <양양기>와 <자치통감>등에 나와있는 자료들에 근거하여, 일곱 번은 과장되었지만, ‘맹획’을 풀어주고 잡은 일은 믿을 만하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저자 구주모가 여러 고전을 살펴 <삼국지연의>의 허구성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칠종칠금’ 고사가 사실이던, 아니던 관계없이 적어도 ‘양과 돼지고기를 섞고 밀가루 반죽으로 싸서 사람 머리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냈으며, 사람을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진 ‘활인음식’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울러, 칠종칠금 고사에는 중화의식이 배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철저하게 야만족 취급을 하였기 때문에 ‘칠종칠금’과 같은 고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칠종칠금 고사 뿐 아니라, 당나라 대문장가 한유는 ‘원인’이라는 글에서 중국인이 사람이면 오랑캐는 짐승이라고 말하였으며, 유가의 대표적 경전인 <논어>에도 “동이나 북적에 임금이 있다 해도 중국에 임금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구절이 나온다는 것이다.

민족차별 인종차별, <논어>에도 있다

결국 칠종칠금 고사가 널리 읽히고 민중들에게 찬양된 것은 이런 ‘중화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며, 오늘에 이르러서도 소수민족들에게 복속만이 살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가 자세히 읽기, 넓고 깊게 읽기라는 연암의 글쓰기 원칙을 빼닮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저자는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삼국지연의>에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서 뽑아 낸 다양한 에피소드에 넓고 깊게 여러 고전을 인용하여 이야기로 풀어낸다.

내가 아는바, 우리 시대 최고의 책벌레는 일본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이다. 그는 수 만권의 책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까봐 개인도서관을 세웠으며, 194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8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읽기와 쓰기의 달인이라 할 만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읽기와 쓰기 비율은 대략 100대 1이 적합하다고 한다. 즉, 좋은 책 100권을 읽으면 괜찮은 책 1권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기준에 따르면, 저자 구주모는 읽기와 쓰기의 황금 비율을 잘 맞춘 셈이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100여권의 고전을 읽고 되새겨, 일반 독자들이 좀 더 쉽게 고전에 다가설 수 있도록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를 엮어냈으니 말이다.

독자들은 저자 구주모의 정밀한 독서, 넓고 깊은 책 읽기로 새로 엮인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를 통해 씨줄과 날줄로 얽힌 <삼국지연의>와 정사<삼국지>를 비롯한 100여권이 넘는 고서에 담긴 옛사람들의 자취와 향기를 만날 수 있다. 깊은 역사의 심연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어내는 것은 ‘독자’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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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엄마의 사교육 다이어트 - 아이도 엄마도 행복해지는
마이클럽닷컴 엮음 / 봄날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180만 여성 회원이 활동하는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마이클럽'에서 30대 엄마들의 아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해법을 담은 유아교육 책을 출간하였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으로 시작되는 조기교육과 사교육 열풍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30대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고민과 대안을 담은 책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대담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솔직담백하게 털어놓고 고민을 함께 나누고, 조기교육, 사교육과는 다른 길을 택한 엄마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보는 그런 책이다.

조기교육과 사교육을 벗어난 다른 교육에 대한 모색을 통해 돌봄과 나눔, 공동체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엄마표 교육’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찾아본다.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를 발행하고 다양한 대안교육 관련 책을 만드는, 출판사 '민들레'와  대안학교 학부모인 이지현, 유아교육 연구를 하고 있는 김명하가 기획자문을 맡았다. 사실 <30대 엄마의 사교육 다이어트>라는 제목은 끌리지 않았지만, 기획자문에 '민들레'라는 이름이 들어있어 이 책을 골랐다.

책 중에는 제목이 내용을 잘 함축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조기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사교육을 줄이자는 차원을 넘어서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제목이 내용을 다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제목보다 더 풍부하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임에 틀림이 없다.

새로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조기교육의 병패를 지적하고 사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차원을 넘어 소위 '위험사회'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고민과 전망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이 책에 쓴 글, '돌봄과 배움, 사회적 모성으로 작은 학교 만들기'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위험사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군사와 자본을 소유한 집단이 지배하는 제국의 등장과 끝없는 테러, 지구를 한꺼번에 없애버릴 수 있는 무기의 소유, 계급 양극화, 이상기온과 질병, 그리고 실업과 갖가지 집단적 갈등. 인간 삶의 근본을 이루었던 다양한 공동체들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본문 중에서)

이런 위험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효율성과 경쟁을 통한 방식으로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효율성을 강조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은 결국 아이들을 조기교육과 사교육으로 내몰게 되고, 사회의 위험은 더욱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인터넷 커뮤니티 마이클럽에서 활동하는 '선영맘'(마이클럽 회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들이 참가하는 솔직 담백 토크다. 세 명의 마이클럽 회원, 선영맘들과 기획자문위원들이 벌이는 '30대의 자아실현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다'라는 주제를 놓고 벌이는 토론이 첫 번째 토크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마이클럽 선영맘들의 솔직 토크

두 번째 솔직 담백 토크는 마이클럽에서 벌어진 온라인 토론이다. 전업맘과 워킹맘이 벌이는 토론 주제는 '슈퍼엄마 콤플렉스 대 자아실현'인데, 온라인으로 벌어진 이 토크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하루 종일 육아에만 집중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 ▲육아 문제로 퇴직한 후, 후회한 분 없나요?, ▲남편이나 시집에서 맞벌이하라고 압박하는 분 계세요?, ▲직장맘 아이 전업맘 아이, 정말 차이가 날까요?, ▲육아스트레스 우울증 탈출하기와 같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를 놓고 벌이는 온라인 토론이다.

세 번째, 솔직 담백 토크는 마이클럽 회원인 선영맘들의 경험으로 진단하는 우리 아이 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유아교육은 언제 시작해야하나?, ▲문화센터 다닐 만한가요?, ▲유치원 이런 것이 궁금해요? ▲집에서 아이 공부는 어떻게 시키나요? 와 같은 질문에 대한 온라인 토론인 것이다.

또 하나 선영맘들의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진 주제는 독서교육 시기와 전집류 구입에 대한 찬반 토론이다. 모든 주제들이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쏟아내는 궁금증과 그에 대한 경험을 담은 토론이기 때문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어지는 이 책의 후반부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엄마들과 교사, 학부모, 도서관운동가, 생협활동가, 기자, 교수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유아교육과 교육 사례모음과 대안제시이다. 개인적으로는 전반부 대담과 온라인 토론보다는 후반부 개별 사례와 실천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엄마들은 왜 불안할까?

원더걸스가 가요계를 휩쓰는 동안 엄마들 사이에는 '원더맘스'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원더맘스는 집안일과 바깥일을 모두 잘하는 슈퍼엄마+교육에 관해 탁월한 능력을 겸비한 '슈퍼 울트라 메가톤급 킹왕짱 엄마'를 지칭하는 말로 현존하는 엄마들 중 최강자를 이른단다.

세상 많은 엄마들이 이런 '원더맘스' 엄마들을 보면서 점점 더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스스로 자유로울 줄 알아야 남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데, 내가 자유롭지 못하니 아이들의 일상도 함께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여러기관에서 듣는 부모역할 훈련을 비롯한 강의가 보톡스 주사처럼 작용하지만, 잠시 예쁘질 수는 있으나 '원판 불변의 법칙'에 의해 다시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가 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엄마들 중에는 아무 죄의식도 없이 아이의 잠재의식까지 지배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잠이 들어도 15~30분 정도는 깨어있기 때문에 아이가 잔다고 해서 바로 테잎을 끄지 말고 영어를 들려주라는 이야기. 이것은 결국 아이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 지배하려는 엄마들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두 아이를 둔 엄마이자 한의사 이지은이 쓴 아이 건강을 위한 네 가지 원칙은 유익한 도움을 주는 글이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네 가지 원칙으로 ‘심리적 건강, 두뇌 건강, 바른 자세, 약을 멀리하라’를 꼽고 있다.

가공식품 속 나쁜 지방이 뇌를 딱딱하게 만든다.

심리적 건강은 부모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반드시 부모가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아울러, 두뇌 건강을 위해서는 아이에게 좋은 지방을 섭취하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은 아이들은 근육이 적고 뻣뻣하게 굳어있습니다... 뇌의 인지질은 지방인데, 몸의 지방질이 이렇게 마가린처럼 딱딱하게 되면 두뇌를 구성하는 성분 역시 쓰레기 지방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공부를 잘하기 힘들게 되겠지요. 그러니 좋은 음식을 주시길 바랍니다."(본문 중에서)

또한 바른 자세가 척추건강은 물론이고 전신 건강과 관련이 깊어서 비염과 천식, 축농증이 경추 교정으로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약물의 장기 복용이 면역력과 저항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충고한다.

조기교육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는 이남수의 글도 인상적이다. "때 아닌 때 뿌린 씨에도 싹이 틀까?"는 모든 것을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조기교육 때문에 "아이들의 자발적인 욕구가 생겨날 즈음엔 모든 것이 이미 지루하고 식상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경험 세계를 넓혀 준다는 "체험학습도 때에 맞지 않다면 아이에게 득이 되기는커녕 정작 해야 할 시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역효과만 낳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는 영어놀이학습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집중 시간이 짧은 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다보니 필요이상으로 자극적인 말투와 몸짓 화려한 교구와 교재 사용으로 아이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는 것이다.

때 아닌 때 뿌린 씨에도 싹이 틀까?

이런 자극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나중엔 웬만한 자극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통제와 억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조기교육이 아이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짓밟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글에서 이남수는 '이벤트로 변질된 비교육적인 체험학습'에 속지 말라는 강조한다.

"이미 다 준비된 흙을 대충 주물러서 그릇을 만들어 놓으면 선생님이나 담당자들이 손을 봐주고 굽고 유약 발라 다시 굽고 해서 다 만들어 놓아도 찾아가지 않는 것들이 넘쳐난다.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한 애착은커녕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데 도자기 체험은 계속되고..."(본문 중에서)

그는, 체험학습이란 따로 시간을 내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자체가 체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한다. 엄마가 태워주는 차 대신에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함께 요리하고, 빨래하고 시장보고 집안일을 해보는 것과 같은 의식주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체험' 무엇보다 더 소중한 체험학습이라는 것이다.

늦게 피는 꽃도 아름답다

이어지는 글 '이제는 적기교육이다'에서 백소영은 "모든 아이들은 늦게 꽃피는 아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늦게 피는 꽃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뇌가 충분히 발달한 뒤 적기에 가르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을, 부모의 욕심 때문에 긴 시간 많은 것을 희생해가며 학습에 찌들게 만든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활동 자체가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고 강제성과 자발성 없이 이루어지는 놀이야 말로 가장 좋은 유아교육이라는 것이다. 놀이는 통합적 발달을 이루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며, 놀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사회화과정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

아이 교육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공통으로 공감하는 것은 '독서교육'이다. <30대 엄마의 사교육 다이어트>는 많은 지면을 독서교육과 도서관 활용하기에 대한 체험을 소개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이웃들과 함께 공공도서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원봉사에도 참여하는 모임인 '도서관 친구' 모임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이미 세워진 공공도서관을 주민밀착형 기관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도서관이 없는 동네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번듯한 도서관을 세우는 과정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도서관뿐만 아니라 엄마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품앗이 교육, 학교를 중심으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례, 지역아동센터, 생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품앗이 교육 사례도 집 밖으로 나서길 망설이는 엄마들에게 힘이 될 만 한 사례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 가장 비수처럼 꽂히는 글은 '보따리학교 교사' 김재형이 쓴 글 '저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길 위의 학교를'이라는 글이다. 그는 짧은 글에서 ▲교육은 국가와 학교 안에 있지 않다, ▲가난이 꼭 필요한 교육적 기반이다, ▲교사는 국가 자격보다 운명적 과정이 더 중요하다와 같은 놀라운 주장을 쏟아낸다.

내 아이가 꼴지 하는 것이 윤리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주장은 ‘겸손한 지식’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 우리사회가 재산, 권력, 지위에 따른 계급사회를 넘어서야 하겠지만, 만약 우리 아이들 세대에도 계급사회를 남겨줘야 한다면 당연히 ‘내 아이’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게 양심적이고 윤리적이라고 말한다.

"교육의 성과는 계급사회에서 높은 계급을 많이 차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런 건 교육하지 않아도 짐승들도 하는 일입니다. 교육은 양심과 인격의 높은 도야를 통해 스스로 낮은 자리로 갈 수 있는 힘을 내면화하는 데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성적을 통한 학생서열화 사회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내 아이가 꼴찌를 하는 게 윤리적이고, 제대로 공부한 아이의 결정입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의도적으로 내 아이의 성적이 학년에서 절반 이하의 범위에 들도록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심지어 그는, 자기 아이가 시험 치기 전날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부모가 그걸 다스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할 수만 있으면 고등학교 정도에서 교육 과정을 중단하는 게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똑똑함'이란 어느 정도는 '지식 우월감과 지식 폭력'입니다. 똑똑함이 교정되어 '겸손한 지식'으로 거듭났을 때 그 아이가 정말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겁니다."(본문 중에서)

그는, 이걸 받아들이는 아이들만이 성장이 끝난 미래 사회에서 보살핌의 사회를 주도할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권력에 포섭된 대부분 아이들은 기계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는 것.

자칭, 경쟁과 서열화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교육제도에 반대하고,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많은 교육운동가들이나 학부모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비수(?)와 같은 메시지이다. 물론, 그가 던지는 이 성찰적 질문에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연 당신(나는)들은 과연 '똑똑함'이 '지식 우월감'과 '지식 폭력'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시험 치기 전날 아이와 여행을 떠나거나, 내 아이가 낮은 계급에 속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이라도 해 본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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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황주석 지음 / 그물코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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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신뢰와 건강한 뿌리를 만드는 가치 변혁적 소공동체 운동의 지침서 "사람이 보인다. 마을이 보인다."(모심과 살림 연구소. 2005년 10월)

개인적인 관계만 놓고 보자면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객관성을 담아 쓸만한 사람이 못된다. 저자가 일생을 통하여 '가치변혁적 소공동체'를 일구고 가꾸어온 YMCA운동의 현장 중 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운동'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보는 이에 따라서 저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혹은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인 황주석의 조직론을 여러 차례 그를 통해 직접 듣기도 하였고 그가 쓴 많은 글을 읽었으며, 그의 실천론에 맞추어 YMCA를 통하여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의 확산을 꿈꾸고 실천하기기도 하였다. 

대중노선, 가치변혁적 소공동체 운동을 만나다.

1970년대 후반 저자인 황주석이 이념적, 운동적 한계가 분명한 YMCA를 선택한 이유는 필자가 1992년 대학 졸업과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맞이한 사회주의운동 이념적 혼란기에 조직적, 이념적, 운동적 한계가 분명한 YMCA를 선택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필자를 잘 아는 편이다. 저자인 황주석을 배우고 닮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실상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자식이 몇 인지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개인 황주석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의 아내가 YH 노조의 위원장 이었으며, 부천시의원을 지내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최순영이라는 것 밖에는... 그래서 나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책을 출판한 '모심과 살림연구소'의 서문에도 나오듯이 "저자의 생각과 실천이 단지 YMCA나 기독교운동의 특수한 사례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그 진정성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자원으로 공유되고 확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1999년부터 암에 맞서 투병하고 있는 그의 사회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시민운동의 태동기로부터 다양한 분화와 발전이 이루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제기되는 비판은 바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30년 이상을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지낸 저자는 단 한 번도 대중과 함께하는 원칙을 놓친 적이 없다.

저자가 1980년 마산에서 시작한 '사랑의 Y 형제단' 운동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들의 소공동체운동으로 확산되었으며, 80년대를 거치면서 마산과 창원의 노동현장으로 퍼져나갔다. 마산, 창원지역에서 87년 6월 항쟁과 88년 노동자 대투쟁의 가운데에는 '사랑의 Y 형제단'운동을 통해 훈련된 지도력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늘 시민이 있었다.

그가 마산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산, 창원 지역 노동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지난 7월 경남도민일보에는 '마산 노동자의 영원한 형제 황주석'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비인강암 이라고 하는 희귀병으로 투병중인 그의 삶을 소개한 특집기사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1990년대 한국의 지방자치역사에 주민참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는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 조례제정운동'은 주부중심의 등대생협운동이 만들어낸 빛나는 성과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주부중심의 등대생협운동을 가치변혁적소공동체의 모델로 삼아 매주 만나서 공동체의식을 함께 나누고 책읽기, 영상활동, 건강활동 등 일상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토대를 갖추었다.

그리고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운동인 '등대'모임을 기반으로 담배자판기조례제정운동뿐만 아니라 가족회의운동, 미디어일기쓰기, 의정지기단 활동 등을 펼쳤으며 이러한 운동의 모델은 주민참여형 자치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주민운동의 뿌리를 만드는 탁월한 조직가인 그에게 '주민 없는 운동'은 없었다.

지난 2001년 마산에서 열린 '현단계 시민운동의 점검과 전망' 세미나에서 황주석은 "이슈중심의 시민운동은 주로 반대·폭로·대안제시의 방식으로 언론을 활용함으로써 언론에 의해 성장해왔으며 이미 언론에 의해 그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폭로중심의 운동은 네 눈의 티만 강조되며 자아성찰·운동적 영성이 약해 전략적 흥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운동의 건강성도 해치게 된다"면서 "끊임없는 이슈 선점 경쟁은 상호연대에 대한 불신과 시민사회의 상처를 낳아 사회와 운동권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국장은 또 "현 시기 시민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느 순간 대중이 사라지고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게 된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노선의 부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2001년 2월 26일 경남도민일보)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서문에 소개된 저자의 운동론에 대한 평가는 더욱 주목 할만하다.

"우리가 저자 황주석의 조직론과 그 실천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희망의 근거, 즉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라는 시민사회의 건강한 뿌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전인적 성장과 공동체적 가치를 일상적 삶의 기반으로 둔 기초공동체를 통해 구현하려는 그의 이론과 실천은 철저하게 사회운동의 뿌리에 대한 것입니다."-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서문 중에서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마을 만들기 운동에 대하여 '만들기'보다 '이루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루기'라는 말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세심함은 책의 여러 곳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조직운동가로서 저자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공동체적 가치를 일상적 삶의 기반으로

공개강좌를 여는 시점부터 기초공동체모임인 등대를 조직하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개강좌의 강사교섭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조직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는 상징을 세우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자신의 모든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기초공동체를 민주적 그물형 대중조직으로 엮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공동체 모임 속에 생식세포와 같은 완전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포의 유전인자가 생명체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과 같이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유전인자도 그 조직의 틀과 활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완전성을 담은 기초공동체가 그물처럼 퍼져나가는 사회운동 대중조직의 현실가능성을 입증해보여 주고 있다.

황주석이 말하는 소공동체는 현실을 거부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들만의 꿈을 실현하는 외톨이 같은 공동체가 아니다. 가치변혁적 공동체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는 도시 속 공동체를 말한다. 주거와 생활의 공간이 다르지만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꿈과 희망을 같이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희망의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것을 제안하며 이러한 소공동체를 하나의 나라로 바라본다. "전인성, 역사성, 사회성, 공공성, 연대성, 분체성, 방어성, 자율성"을 갖춘 나라를 세우라고 설득하고 있다.

많은 시민운동의 현장활동가들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앞 다투어 대학원 진학을 하는 등 답답한 시민운동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 변혁적 소공동체운동의 현장에서 30년을 보내온 선배가 전문성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던지는 해결책은 기본기를 잘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이론이 아니라 이를 실천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사상가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상가적 삶이란 '나 이렇게 살 거야'라는 자각과 그에 맞는 사상을 말 한다. 이러한 사상을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다.

운동의 전문성 즉 프로패셔널에 대한 그의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운동 전체를 위해서 자기 한계를 정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한계가 있는 사람만이 운동의 자기영역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하는 '힘'

세상을 모두 책임지는 듯한 운동은 결국 성공하지도 못하고 세상 모든 이슈를 다 감당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희망의 인프라를 만드는 조직운동은 첨예한 대립의 전선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슈를 세울 때에 자기 한계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김남주 시인의 '전사1'라는 시가 생각났다. 여기서 '전사'는 때로는 저자인 황주석이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가 참여하였던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인 '사랑의 Y 노동형제단'이기도 하고 '등대생협'의 촛불(주부)이기도 하였다.


일상생활에서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엄수가 규율엄수의 초보임을 알고
일분 일초를 어기지 않았다
(중략) 

그리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먼저 질서와 체계를 세워
침착 기민하게 처리해 나갔으며
꿈속에서도 모두의 미래를 위해
투사적 검토로 전략과 전술을 걱정했다
진격의 나팔소리 드높아지고
그가 무장하고 일어서면
바위로 험한 산과 같았다
적을 향한 증오의 화살은독수리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
그리고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의 준비에 착수했으며
그때마다 그는 혁명가로서 자기 자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 

이윽고 공격의 때는 와

책의 발문에서 오재식(전 월드비젼 코리아 회장)은 그를 '희망의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이상익(한국도록공사 감사)은 그를 '개척자'라고 하였다. 책 속지에 나와 있는 저자 소개 글처럼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토대로 한 가치변혁의 기초공동체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변화를 이울 수 있다는 것을 바닥에서 묵묵히 실천해 온 지은이의 삶과 생각이 YMCA운동을 넘어 사회의 보편적 자원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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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길잡이 - 자연을 그리워하는 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귀농 길잡이
전국귀농운동본부 엮음 / 소나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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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자연을 그리워하고 땅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꿈꾼다. 그리고 또 그 중에 여럿은 도시를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간다. 설령 농촌을 떠나온 적이 없는 사람들도 땅과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쫓아서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면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금만 자세히 들어보면 귀농보다는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꿈인 경우가 허다하다.

소일 삼아 고추, 상추, 깻잎, 쑥갓 따위를 가꾸는 텃밭을 일구면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명상도 하고 산책도 하며, 커다란 통유리로 된 거실과 파란 잔디가 심어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교수를 그만두고 변산 공동체를 일구는 윤구병 선생이 쓴 어느 글에서 전업 농민이 되어서 "하루에 4시간 육체노동을 하고, 하루에 4시간은 정신노동을 하는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부부와 같은 삶을 기대하는 귀농은 꿈같은 이야기"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전국 귀농운동본부가 펴낸 <귀농 길잡이>는 귀농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 귀농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 귀농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 이제 막 귀농을 꿈꾸는 사람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귀농고수'들, 이 책안에 다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귀농운동본부와 더불어 귀농을 실천하고 있거나 구체적으로 농촌살이에 대한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강호의 고수(?) 혹은 초야에 묻힌 고수(?) 23명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글쓴이들 대부분은 전국귀농운동본부를 비롯한 전국 10곳에서 열리는 귀농학교의 단골 강사이거나 귀농운동본부가 계절마다 한 번씩 만드는 <귀농통문>에 글을 실었던 분들이다. 이미 자신과 가족들의 '농촌살림'을 소개하는 책을 따로 내신 분들도 여럿 있다. 책을 읽어보면 첫 느낌은 우선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를 떠나서 농촌에서 생태적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귀농자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텃밭 한 떼기라도 가꾸며 아니 그 보다 못하면 옥상 화분에다가 고추 몇 포기라도 심어가며 '도시에서의 생태적인 삶'을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두루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귀농 백과사전'이라는 생각이 딱 꽂혔다. 귀농 철학에서부터 구체적인 논농사, 밭농사, 농촌살림, 집짓기, 집 고치기, 아이들 교육과 건강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물농사, 도시농업, 가축 기르기, 양봉, 장 담그기, 효소 담그기 등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뿌리내리려는 초보들에게 꼭 필요한 모든 것을 담으려 노력한 마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농사짓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글에서 평생농사만 짓고 살아온 경기도 양주의 김준권 농부님은 농사를 짓는 힘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즐거움"에서 나온다고 한다. "(도시의)직장에서는 나이와 능력 같은 조건을 견주어 퇴출시키지만, 농사는 쉬고 싶으면 쉬고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농업"이라고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 속에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훨씬 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귀농 관념(?)주의자들에게 고함

김준권 농부님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네 가지 개척정신으로 '4W'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 째는 길(Way)이 아니면 갈 수 없기에 반드시 길이 있는 땅이 있어야 하며, 두 번째는 반드시 물(Water)이 있어야 하며, 세 번째는 노동력(Worker)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인(Wife)이라고 한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농촌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 귀농 관념주의(?)인 나의 귀농 꿈은 농촌에서 태어난 뒤로 결혼 전까지 농촌에서 도시에 있는 일터를 다닌 아내에게 여지없이 깨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4W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Wife'라고 생각한다.

이 때 부인은 배우자라고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고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길'(Way)을 함께 갈 '배우자'(Wife)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먼저 귀농의 꿈을 꾸기 시작하든지 배우자가 이 길을 함께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많은 귀농자들의 충고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귀농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다.

귀농 관념주의자들에게 던지는 이진천 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의 충고 역시 뼈아프다. 그가 귀농운동을 통해 부닥치고 깨지며 얻은 귀농, 준비에서 정착까지 아홉까지 비결을 보면 아내 표현처럼 귀농관념주의자라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이진천님의 아홉 가지 비결 중에서 귀농 준비 단계의 비결만 살펴보면, '지금 당장 도시농업을 시작하라''귀농교육을 받고 원하는 정보를 모아라''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시대와 호흡하라''도시의 편리함은 잊어라' 등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귀농통문>과 생태적 삶을 꿈꾸는 책과 글을 찾아 읽고 말씀을 듣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구나. '결국 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시대와 호흡하는 일'만 하고 있었으니 귀농 관념주의자가 맞기는 맞다.

생태적 귀농을 위한 5가지 조건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이병철 이사장은 마중 글에서 생태적 귀농을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따져볼 것을 권한다.

첫째, '귀농'이란 '농'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농'을 '업'으로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농적 삶, 곧 모든 생명의 근원자리인 자연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둘째, 귀농은 삶의 '전환'이다. 직업이나 직장 또는 생계수단을 농업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어야 한다. 생태적 삶이 내가 원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삶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넷째,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의도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발을 땅에 딛고 스스로의 손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할 의식주, 교육, 문화의 자립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다섯째, 자연과 함께 사는 법, 조화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몸에 밴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의 도리에 따라 단순성을 회복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귀농운동보부가 펴낸 <귀농길잡이>는 스물세 명 귀농자들의 생각과 삶을 엿봄으로써, 귀농 관념주의자들을 현실의 농촌, 농사, 농부의 삶으로 끌어내리고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귀농 철학책이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삶의 전환을 위한 판단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새롭게 귀농의 꿈을 키울 만한 이야기도 너무 많이 있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가꾸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사실 시골에 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서 편안하고 행복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키 작은 나무까지 내려와 있는 하늘, 질리지 않게 눈동자에 담아둘 수 있는 푸르름, 들을 가로지르는 바람, 가문 날의 비 한 줄기, 잘 마른 빨래, 누군가 두고 간 밑반찬, 이웃과 눈을 맞추면 인사하는 내 아이들, 함께 일하다 웃는 싱거운 웃음 한 자락, 그런 것들로 인한 만족감은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추둘란 농부님의 글 중에)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자연과 조화되는 바른 삶을 살자면, 정현숙 농부님의 장과 효소 담그기, 최한실 농부님의 나물 캐기, 장영란 농부님의 나물 먹기와 같은 농가살림을 배울 수 있는 글이나 양희창 선생의 교육이야기, 김광화 농부의 홈스쿨 이야기 같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고민, 김남수님의 침뜸, 양동춘님의 발포요법과 같은 내 몸 돌보기는 위한 글들은 당장 귀농을 꿈꾸지 않는 이들에게도 참 유익하다.

23명의 필자 중에서 많은 분들이 성공하는 귀농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몇 년을 살았는지, 몇 년을 더 살 것인지 하는 것을 헤아려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사는 도시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 앞으로 또 몇 년을 더 살아야 하는지를 날마다 헤아려보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삶, 가슴 따뜻한 행복한 삶을 위한 꿈을 꾸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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