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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위의 축구공 - 강석진 스포츠 에세이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평점 :
노벨상보다 월드컵을 더 신봉한다는 수학자이자 축구인인 강석진은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고 퇴장 당한 알제리계 프랑스 축구스타 '지단'을 보고 뭐라고 할까?
독일 월드컵이 끝났지만 월드컵이 남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지단'과 '마테라치'의 박치기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이다. 외신과 스포츠 신문은 물론이고 일간 신문의 스포츠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사로 취급되고 있다.
누구라도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읽고 나면, 스포츠 신문이나 일간 신문의 스포츠면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마련이고, '그럼, 강석진은 뭐라고 말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6월에 <축구공 위의 수학자>를 펴냈던 수학자 강석진이, 만 4년 만에 다시 월드컵이 열리는 2006년 6월 <수학자 위의 축구공>를 펴냈다. 섹스, 스포츠, 스크린으로 이른바 3S 정책이 대중을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지배 구조를 공고히 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는 심각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는 참 재미없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 강석진이라는 사람의 본업이, 혹은 주업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우리 사회가 대체로 먹고 사는 생계와 관련된 일을 주(본)업이라고 하는 경향이 많으니 그의 본업은 수학자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이 입학 할 것으로 믿는 모 국립대학교의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그 대학에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니 틀림없이 수학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평생 수학과 스포츠를 복수 전공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으며, 노벨상보다 월드컵을 더 숭배한다고 했다니 본업을 수학자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굳이 이름 짓기를 해야 한다면 그의 본업은 두 개인데, 수학과 스포츠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 책 제목은 <축구공 위의 수학자>이고 두 번째 책 제목은 <수학자위의 축구공>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를 만난 적도 없고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아마 그를 전문적인 스포츠평론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수학자과 스포츠를 겸업하는 지은이 강석진은 수학이 아니라 축구(사실은 야구, 농구, 양궁, 사격, 육상, 수영 등 온갖 스포츠)공에 관한 책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쓴 목적을 "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해야 스포츠가 주는 뜨거운 감동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일을 통해 뭔가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강석진은 농사를 짓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혹은 여행을 하거나 어느 일에나 다 그렇듯이 스포츠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감동을 발견하곤 한다.
본업은 수학자, 주업은 스포츠 평론가?
'스포츠를 있는 그대로 보는' 두 번째 시도인 그의 이번 책, 1부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진정한 승부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야구선수 이상훈, 권투선수 유제두, 김득구, 알리, 스핑크스, 다이빙의 임윤지, 사격의 강초현, 배드민턴의 이동수와 유용성, 배구의 김세진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책의 제목이 <수학자 위의 축구공>이었던 것처럼 가장 많은 분량은 축구이야기다. 2부에는 축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1996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부터 2002년 월드컵까지의 이야기이다. 2002년 월드컵 세계 4강만 기억할 뿐 대부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축구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속한 대학의 축구부원들에게 '지식인'이 되지 말고, '축구인'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그의 한국 축구에 대한 진단이나 발전방안에는 지식인으로서의 통찰력과 객관성 그리고 스스로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가 그토록 수준미달, 함량미달로 진작 포기하고 구독을 중단하였지만, 그래도 가끔씩 지하철에서 사서 읽는다는 스포츠신문과는 분명 수준이 다르다.
"유소년축구의 육성, 충분한 천연잔디구장 확보, 정정당당한 경기문화, 생각하는 축구, 연령별, 지역별 리그제 도입, 대한축구협회 행정쇄신, 프로축구활성화, 우수지도자 및 심판 양성, 학원축구개혁" 등 산적한 한국축구의 문제점 중에서 그는 가장 시급한 문제로 '학원축구의 개혁'과 '정정당당한 경기문화 확립'을 꼽는다. 솔직히, 이러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서도 2002년 월드컵에서 세계 4강을 이루었으니 그의 말대로 '기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문제점만 지적하고 딴죽만 걸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문제점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함께 찾아가자고 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축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표현처럼 "패스를 줌으로써 패스를 받고, 신뢰함으로써 신뢰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어시스트함으로써 진정한 승리를 얻기 때문입니다"로 끝나는 그의 '축구의 기도'와 "골대 근처에서 찬스가 오면 과감하게 슛을 때릴 줄 아는 책임감과 결단력, 팀을 위하여 자신의 헛된 욕심을 잠재울 줄 아는 헌신과 희생정신"이 담긴 축구에는 인생과 삶의 지혜가 담겨있음에 틀림없다.
1996년부터 2002년 까지 우리나라 축구의 뒷이야기까지 담아
3부의 주인공은 강석진 교수의 '영웅'인 허재다. 농구 선수의 '전설'로 남게 되는 과정을, 허재라는 '이단 신앙'에 빠진 광팬의 입장으로 기술했다. 그렇지만, 그의 허재에 관한 사랑이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가 무면허 음주운전 사고 이후 기아자동차 농구팀을 떠나기 직전 허재를 인터뷰한 글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등산이 절반이 하산이라는 그의 표현 처럼, 정상을 내려오는 농구천재 허재를 지켜보는 그의 시선에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4부는 스포츠와 관련된 각계에 대한 쓴 소리와 바람을 담았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한 승부사들과 인생을 바쳐서 한국 스포츠를 일궈온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김성근, 박종환, 차범근과 같은 거목을 거목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졌다.
뿐만 아니 스포츠신문의 타락과 프로심판, 경기중계를 하는 방송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 애정 어린 비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권투 경기의 채점결과 발표를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할 수 있다는 그의 제안은 수학과 스포츠를 동시에 전공하는 그의 통찰력이 멋지게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5부는 프로 수학자인 강석진의 자칭 '축구인'으로서의 인생이 이야기가 담겨있다. 축구는 그에게 삶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고 축구는 그에게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는 보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학교 운동장을 없애고 교실을 짓는 학교 행정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차라리 분노에 가깝다.
<수학자위의 축구공>은 책을 좀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혹은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2006년 월드컵을 좀 더 재미있게 그리고 더 감동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한두 달 전에 혹은 올 초에는 나왔어야 하는 책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전이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나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강석진이라면 2006년 월드컵에서 토고, 프랑스, 스위스와 겨룬 한국팀의 경기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그는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수학자위의 축구공>에는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스포츠신문 기사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있는 그대로 직시 할 줄 아는' 내공으로부터 비롯된 강석진이 스포츠를 보는 독특한 격이 담겨있어 재미있다. 그런데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한 감동과 잔잔한 여운도 있다.
수학을 지독히 싫어하면서도, 그의 스포츠에세이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읽고, 그가 쓴 수학책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에 <수학의 유혹>을 구입하는 유혹(?)에 빠져 주문하기를 클릭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