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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러드 온 스노우 (요 네스뵈)
해리 홀레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오슬로 1970 시리즈. 언제나 그랬듯 오슬로 뒷골목 곳곳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인물의 주관적 시야와 객관적 현실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또다른 장점이라면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기 좋은 얄팍한 두께감. 지금껏 네스뵈의 소설이 궁금했지만 늘 600 페이지는 거뜬히 넘었던 분량이 부담스러웠던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이 노르웨이 작가를 만나봐도 좋겠다. 이미 요 네스뵈 월드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다 덮고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래도 오슬로 1970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니 잠깐의 아쉬운 마음은 접어두고 겨울냄새 물씬 나는 이 이야기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2.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의 작가로 잘 알려진 요슈타인 가아더의 이 작품은 사실 1995년 '카드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절판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소설은 새 옷을 입고 다시 독자의 곁으로 돌아왔다. 열두살 소년 한스가 아버지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이집트까지 긴 여행을 떠나며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소피의 세계'가 그랬듯 일상을 보는 눈에 철학을 더한 깊은 통찰과 뛰어난 상상력을 기반으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창조한다. 늙은 제빵사가 준 빵 안에서 돋보기로만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이 발견된다는 설정부터 기발하다. 그 책에 써진 내용이, 그리고 그 책을 읽는 한스의 기묘한 여행을 담은 이 책의 내용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3. 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레베카의 부모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서로의 외모에 이끌려 결혼한다. 그런 부모이니, 자식의 외모에 대한 기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태어난 레베카는 부모의 수려한 외모를 전혀 물려받지 못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일으키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 단순한 사실은 그녀의 인생을 결정짓고, 그녀에게 부모의 냉대와 이웃의 무시, 주변 사람들의 조롱만을 안겨준다. 남은 평생을 외모라는 틀에 갇혀 살아야 할 것만 같았던 그녀가 우연히 피아노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며 작은 변화들은 시작된다. 그 변화를 통해 작가는, 주변의 눈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명 연예인 부부를 두고 저 사람들이 아기를 낳으면 얼마나 예쁠까, 부터 생각하는 우리의 가벼운 편견부터 돌아보게 된다.
4. 몽화 (권비영)
영실과 은화, 정인은 동갑내기 친구지만 각자 타고난 운명도, 성격도, 삶의 방향도 다르다. 일제강점기 말의 격변하는 시기가 가져다주는 변화 역시, 세 친구의 삶을 서로 다른 곳으로 몰고 간다. 누군가는 친일파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대신 끊임없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위안부로 끌려가 끔찍한 역사를 오롯이 살아내며, 누군가는 유일한 혈육을 구하기 위한 모진 사투를 벌인다. 어린 시절 아지트에서 모이던 세 소녀는 더 이상 함께할 수도, 서로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줄 수도 없는 위치로 흩어지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하나의 마음만은 공유한다. 아픈 시대를 살아냈다는 고단함,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티 없이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 권비영의 소설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그 모든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메트로 (카렌 메랑)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팔을 부딪히며 나란히 앉고, 때로는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긴 시간을 마주보며 달리는 신기한 공간이 지하철이다. 화장품 회사의 헤어제품 브랜드팀장을 맡고 있는 마야에게 그 공간은 끊임없는 관찰과 분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상상해내는 즐거운 놀이터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빨려들어갈 듯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야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어느 날 우연히 시작된 마야와 지하철 노숙인의 우정은 그녀를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로 뒤흔든다. 일상적인 것에서 기발한 것을 발견하는 프랑스적인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지하철을 탔을 때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이 조금쯤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