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를 처음 접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리영희를 극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찾을수 있었다.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는 리영희.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글을 쓴 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기에 이 책은 그에게 바치는 책이 아니라고 추천사에서 말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분단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시대적인 아픔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 시대적인 요구를 바라보며 사유하고 살아가려는 지성인의 목마름이 있다. 7년 동안 통역 장교 생활을 하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난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고 한다. 지금도 역시 부와는 거리가 먼듯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여러모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그의 글들은 많은 지성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기도 하면서 정치적인 주동자라는 이름도 지을수 없었다. 그가 직접 주도 하기보다는 그의 글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명목으로 검찰에 불려가기 수차례였다고 한다. 도대체 그의 어떤 글들이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었단 말인가를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됨됨이 그의 철학을 알고 싶어지고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끌리게 된다. 리영희에게 인간의 반대는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아닌 노예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노예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자유인인가? 를 되물어보게 한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진실을 안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불을 둘러쓰고 리영희를 읽으며 그들은 전율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그들의 사고를 그렇게 뒤흔들어 놓았을까? 왜 권력은 그를 그렇게 두려워 하고 그를 가두기를 원한 것일까? "가난하기는 하지만 먹을 것은 먹고,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입을 것도 입고 있습니다. 병이 나면 치료도 받고 있는 것이 객관적 현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묘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과 인식 착오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쓴 글이 고무.찬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의 진실을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과 30년 전의 냉전의식을 토대로 해서 신앙처럼 믿고 있는 인식 착오는 자기기만 일 뿐입니다." 이때 검사는 진실 보다는 성경 구절 위반 여부에 더 촉각을 세우는 목사처럼 말한다. "무슨 말을 해요. 객관적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교의 교과서에 쓰여 있는 대로냐 아니냐가 문제인 거예요." ..................본문 18페이지에서 기독교라는 잘못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영어에 몰입하고 있는 이 나라의 말도 안되는 현실을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권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수 없는 시대적인 아픔들을 그는 통찰하고 있고 그러한 그의 통찰은 그를 알고 있는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투시안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그의 통찰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기자의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오늘 우연히 어떤 버스에 붙어있는 광고를 보았다. 어떤 신문사인데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던듯 하다. 그들이 시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무엇이지? 국민들의 입과 눈을 닫고 일렬로 죽음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것일까? 일말의 움직임도 용서치 않고 오직 그들이 이끄는대로만 걸어야 하는 그런 감옥아닌 감옥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