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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 1840~1975
비에른 베르예 지음, 홍한결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얼마전에 친구와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들이 꽤 있다는 얘기를
했었턴 터라 이 책의 출간은 그런 맥락에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세계를 생활권으로 흔하게 개념짓는 요즘이지만 그 와중에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법한
일들이다. 책에서는 1840년부터 1975년 까지를 다루고 있다.
우표는 나와 조금 더 윗세대들에게는 조금 더 친근한 이미지 일것이다.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예쁜 우표를 모으는
일들을 취미라고 얘기했던 기억들이 있을텐데 나에게도 주마등처럼 스치는 경험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저자는 본업이 건축가다.
서두에서 작가는 여러가지 자신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우표에 집중하기 시작한 일들에 대해 소개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50여개의 나라를 시대별로 탐험하며 때로는 모험처럼, 때로는 잠자리 동화모음처럼 읽을 것을 제시한다.
(사실 무심한듯 이야기 하고 있지만 건축가로서의 꼼꼼하고 치밀한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자는 이 책의 서술방식을 스케치에 비유한다. 여러나라의 우표를 소개하며 저자의 해석에 대해 독자의 재해석을 유도하
기도 하고 그에 관한 추가자료와 더불어 여행컨셉에 걸맞는 음악과 영화의 추천, 검증된 레시피까지 담고있다.

지도상의 위치, 국가명, 그리고 인구와 면적등 기본적인 국가의 요소들과 지도상의 위치까지 수록했다.
우표에 사용된 도안은 그 속내를 고스란히 내비치고, 획일적 남성적 군주제 문화에 대한 위풍당당한 묘사,
각종 군사정복과 온갖 국가적 영웅들을 기념하는 이미지들이 종종 등장한다.
우표는 그 나라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구체적 물증이고, 일종의 정치적 선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느 나라든 자신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려 한다는 점은 당연하고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니 어딘지 모르게
그간 우표에 갖고 있던 내 식견이 참으로 미약하다는걸 느끼게 된다. 세상엔 정말 모르는것 투성이라는 자괴감이~~

작가가 모으는 우표들은 사용을 한 우표들이다. 이 사용의 흔적은 마치 소멸한 과거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느낌이다.
독특하게도 작가는 이 우표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방식에 맛을 보기도 하고, 섬세한 미각을 활용해 우표의 성분들과도
교감을 한다. 역시 호기심천국같은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부분이다.
우표라는 매체를 통한 예술적인 작업들이 많이 소개될 줄 알았던 나의 작은 기대는 사실 예술보다는 역사쪽으로 분량이
많이 기울어졌다. 그래서 좀 난이도가 높게 느껴졌다.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역사적 에피소드는 들어도
뭔가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역사는 특히 사건사고만큼이나 맥락을 파악하지 않으면 늘 꼬이고
복잡해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책장의 페이지가 뒤로 넘어갈 수록 저자가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방식을 소개할때 언급했던 패키지여행같은 흐름이
아니라는 말이 점차 이해가 된다. 장시간 교통편을 여러번 갈아가고 가야하는 일정처럼 정해진 한정된 페이지에 역사의
구체적인 개요를 소개하기가 쉽지않음을.
우표의 그림들을 마치 기호처럼 풀어나가다보니 어느새 각 나라의 국기에 담고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보면 좋겠
다는 욕심이 생긴다. 참 신기한것은 시대가 달라도 국가적인 움직임이나 과거를 살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모습이
순환하는것 처럼 느겨진다.
시각적으로 보이는것과 실제로 상징하는 의미가 다른것처럼 발레리나의 모습을 많이 그렸던 드가는 실제로 엄마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게 된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드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고, 이미지에서
선명하지않은 얼굴의 형태를 그렸다는 것이 우표속 이미지들의 왜곡과 닮아있다.

책에서 소개된 우표들은 기대보다 아기자기한 우표가 아니라, 서두에서 말한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적 영웅이나 사상들을
최소한의 공간에 담다보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드가의 작품이 수록된 우표는 너무나도 이뻐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역사와 삶은 복잡한 것이니, 단순함과 일관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도전할 분야가 아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말中 >
역사를 평가하고 읽는 방법은 지극히 객관적이어야 하며, 후대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왜곡된 역사의 평가가 불러오는
여러가지 문제점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잘 안다는것이 문제.
책을 읽으며 이제는 하나의 고전적인 아이콘이 되어버린 우표가 왠지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통신의 발달로 활용도는 떨어졌지만, 한장의 우표가 담고있는 의미들을 역추적하며 알아보는 방법이 참 신선하고 좋았다.
일정한 규칙을 정해 드라이한 문체로 덤덤하고, 시크하게 말하고 있지만 저자의 깊은 내공이 문장과 단락 곳곳에서 드러
난다. 작가가 가진 세가지의 취미할동중에서 모티브를 삼은 사라진 나라와 오래된 우표들이 담고있는 이야기들 공유해준
작가에게 감사하지 않을수 없다. 역시 취미활동도 다양하게 하는 사람은 반경이 더 넓어지는 것과 비례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