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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 은밀한 개인주의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노엘 에르프 지음, 임세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담은 biography를 읽는 일은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일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유명인에 대한 정보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많은 자료들이 즐비한 세상
이지만 평전을 통해 그의 일대기를 마주하고 나만의 감상으로 온전히 또 느끼고 싶은 욕심도 있다.
전 세계 영화에 영향을 미쳤던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물결인 누벨바그,
New Wave의 주역인 에릭 로메르°
🎬
Éric Rohmer (b.1920, 3.21-2010.1.11)
시네아스트 Cineaste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지닌 특출한 감독에게 존경을 담아 보내는 호칭으로
에릭 로메르에게 시네아스트의 호칭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생활방식에 그의 어머니도 작고하기까지 20년간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수수께끼투성이였던 그는 카메라 앞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까지 철저하고 치밀한
준비를 했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훼손되지 않은 야생의 강과 자연의 바람소리를 간직한 풍경을 찾는데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을 들일 만큼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남다른 고집이 또 그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영화감독으로서의 단면이기도 하다.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정신'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이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각주와 필모그래피만 120여 쪽에 달한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유행하는 부캐. 멀티 페르소나를 떠올리게 하는 에릭 로메르의 본명은
모리스 세례 Maurice Schérer 다.
프랑스어 교사로, 비평가로, 시네필이자 저술가로, 그리고 시네 아스트로 활동했던 그의 행보 가운데는
초상화에도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던 그는 25세에 질베르 코르디에라는 이름으로 그의 첫 번째
소설 <엘리자베스, 300p>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에릭 로메르라는 이름은 결국 그 모든 그의 행보 가운데 영화감독으로서의 영역에만 해당한다는 말이다.
고전주의를 사랑한 혁명가로 로메르 영화의 기원은 앙드레 바랭의 영화론에서 기원한다.
인간의 눈을 통하지 않고 사진렌즈를 통해 얻는 이미지로 자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탁월한 예술을
지향했던 거장의 깊이 있는 시선은 조용하지만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던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의 영화제작의 원칙은 영화에서 작가가 드러나지 않고 렌즈를 통해 창조물이 동참하는 것이지 다른
창조물로 왜곡되는 것을 완강하게 꺼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에릭 로메르는 영화의 창조성이 작가의 주관
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전사'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평생 그의 영화제작의 원칙이었다.
에릭 로메르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의 관심사의 폭이 놀라울 만큼 방대했다.
공간과 건축, 고전의 현대성, 영화의 리얼리즘, 프랑스 고전문학과 영국에 대한 관심, 독일어와 독일문
화에 대한 관심, 환경보호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점, 변화에 대한 추구.
심지어 그의 초기 남성 중심적 세계의 관심사가 여성적 세계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며 거대하고 매끈한
영화를 만들기보다 아마추어리즘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감독으로 고집스러울 만큼 행보를
이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릭 로메르의 성장과정에서도 어김없이 거장들의 어린 시절처럼 책과 함께했던 가정의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 쥘 베른이나 도스토 옙스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등은 그를 매료시킨 작품
이었고, 문학 이외에도 미술과 음악 등 다방면의 관심사가 그를 자연스럽게 영화라는 장르로 이끌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인생의 한순간에 접하게 되는 어떤 사소한 경험은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
키는 계기가 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에릭 로메르가 교과서에 실린 흑백의 라파엘로와 렘브란트의 회화
를 접하고 느낀 순간이다. 역시 거장은 거장을 알아보는 것인가. ^^
다양한 장르의 고른 관심과 경험들로 귀결된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현대 예술이 본연의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순환을 포함한 복합적인 사고들은 에릭 로메르 영화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소설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기반으로 한 에릭 로메르와 그의 동생의 눈에 띄는 꾸준하고 친밀한 교류는
서로의 세상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이었고 둘의 관계는 고흐와
동생 테오의 관계를 오버랩시키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필모그래피에는 에릭 로메르가 전체를 완전하게 연출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상태에서 마주하는 영화는 분명 같은 작품이어도 또 다른 시선들을 이끌어낼
것이 분명하다.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찍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다른 예술을 할 때 분명히 찾을 수 없었던 행복을 영화를
할 때 발견했다고 하는 답을 남겼다. 분명 영화를 찍으며 마주했을 난관들을 극복했던 가장 큰 힘은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에서 비롯되었음을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을유문화사 <현대 예술의 거장>시리즈 너무 사랑한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