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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 영혼의 손길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평점 :

20세기 조형미술의 대가 자코메티 GIACOMETTI (1901-1966)
사심을 담아 많은 어린이들과 수업을 했고, 그가 마지막 초상화를 그렸던 18일간의 여정을 그렸던 영화
<🎬Final Portrait>를 봤고, 전시를 봤고, 자코메티 재단의 큐레이터가 전하는 자코메티의 이야기를
들으러 프랑스 문화원까지 달려갔었다.
영화속 모델이기도 했고, 가까이에서 15년간 그와 가까이에서 교류했던 저자가 그의 삶에 대해,
작업 세계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한 책을 기다리는 내내 엄청 설렜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책이
이렇게 얇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겠지. 한 사람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본인
조차도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는 한 사람의 예술가에 대해 바이오그라피만 한 장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애정 하는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자코메티의 할아버지부터 시작하는 그의 가정환경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로 가계도를 그리며 ^^
읽기 시작했다. 알베르토"라는 이름에는 고귀한 생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부터, 자코메티의
아버지 형제가 7남매였는데 유일하게 그림에 흥미가 있었던 그의 아버지의 작업실이 어릴 때부터
자코메티의 놀이터가 되었던것은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작업실로 달려가
그림을 그렸던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고 그는 회상한다.
최초로 자기 그림에 서명을 했던 뒤러(A.D)를 모사하고 자신의 이름 알베르토 자코메티(A.G)라는 서명
을 달기도 했다.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지자인 어머니를 비롯해 형제간의 우애도 남달랐던 그의 가정환경도
그의 작업에 토대가 되었다. 첫 작품으로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한 조각을 한 것은 그의 나이 13살.
평생 그의 작업에 동생 디에고의 손길이 더해진 것도 분명 그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과정이었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주변의 모든 것을 그리기를 좋아했던 자코메티는 "연필은 나의 무기였다"라고 할 만큼 글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 경험을 글로 적어서 확실하게 만드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오로지 작품을 통한
만족과 영적 교감을 추구하고 전심 전력을 다했던 그의 작업에 대한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이 작용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하게 된다.
그가 작업에 임하는 자세가 시각과의 투쟁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던 만큼 사물에 대한 관찰
태도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그의 성향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에 어떤 영속성을 주는 것이라고 했던 말에서 더욱 확고해진다.
"달까지 뛰어오르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다고 해도, 어느 화창한 날
그것이 헛된 일임을 깨닫고 포기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비참해 하는 것은 바보짓일 뿐이다."
그의 많은 어록에서 그의 삶에 대한, 혹은 작업에 대한 의지들을 느낄 수 있었다.
자코메티를 읽다 보니 당대의 유명했던 그의 친구들,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자크 프레베르, 장 콕토, 크리스티앙 베라로, 그 외 예술적 혁신에 민감했던
피카소와의 만남 등의 관계가 무척 신기하지만 그중에서 장콕토Jean cocteau 에 관한 부분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우리나라 조선의 문예인들도 선망했던 예술가로
시나리오부터 편집, 출연, 감독한 <시인의 피, 1930>가 당시 우리나라 신문 지면에 소개되기도 했고,
당대의 핫 플 다방에서 감상하기도 했던 그에 대한 평가가 정작 프랑스에서는 장 콕토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창조적인 이기주의자이고, 가장 매혹적인 좌담 가인 반면 자신의 능력에 너무나 심취해서 멋진
평판의 부추김에 재능의 많은 부분을 낭비했다는 평가가 대조적인 것이 재미있다. 그만큼 저자의
냉소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고나 할까.
또 하나는 카이에다르cahiersd'art 예술 수첩이라는 프랑스 미술잡지
1926년 창간되어 지금까지도 동시대 예술가를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영향력 있는 잡지에 실린
자코메티의 최초의 개인전(1932,5)에 대한 평가와 구본웅이 그린 <인형이 있는 정물, 1937> 작품 속
카이에다르가 보여주는 당대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서구문화에 대한 관심과 향유를 연결하는 재미
책은 자코메티의 작업의 변천 과정에 얽힌 이야기와 예술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작업에 미친 영향,
혹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당대의 유행이었던 10여 년을 이어왔던 초현실주의 작품을 모두 파괴하고
그의 창조관이 근본적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야말로 자코메티 작업의
완벽한 변천사를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워낙 잘 알려졌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예술가이지만 그의 대표작 이외의 생소한
초기작이나 변화 과정 속의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스토리나 작업의 탄생 배경이 반가웠다.

자연에 대한 훈련되고 포괄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영향을 준 샤갈의 사과에서 영향을
받은 그의 사과 드로잉은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실제를 보려고 2년간의 고심 끝에
탄생한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후 자코메티는 그의 든든한 지지자 어머니의 초상도 같은 방식
으로 그려낸다.(책 속에 수록.)
현실에 대한 한 사람의 숙고가 다른 사람의 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평생 그의 작업의
모토가 되었고, 이 외에도 책 속에는 그가 교류했고, 사랑했던 많은 이들과의 인연의 기록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겨있다. 그간 자코메티의 작업에 관심이 많았고,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 책은
촘촘하게 그의 작업과 생의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한 사람의 바이오그라피를 읽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무엇보다 관심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알고 싶은 관심사와 무엇보다 객관적인 사료들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그의 평생 작업의 변천 과정과 작업에 대한 의미들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들을 읽다 보니
기록하고 싶은 작업 사진들이 너무 많아서 추리기 힘들 정도였고, 대부분의 작품을 도록으로, 전시에서
봤음에도 이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막연하게 좋아서, 혹은 작품과 마주하며 개인적인 감상을 더하는 작업도 좋았지만, 다시 자코메티의
작업들을 마주하게 되면 좀 더 친근하게 작품이 느껴질 것 같아서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본다.
어딘지 쓸쓸했고, 단순한 작품의 형태와는 달리 복잡한 이야기가 전해져왔던 그의 작업을 다시
오마주 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으며 페이지가 넘어가는 과정마저 아쉬웠다. 꽤 두꺼운 페이지임에도
좀 더 많이 알고 싶었고, 다음에 어떤 작품이 수록되었을까 기대감이 무척 높아서 심쿵하며 읽었다.

그의 작업에 대한 고뇌와 의미들을 읽고 나니 아이들과 그저 한 사람의 유명한 예술가로서만 재미있게
조망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도 있고, 좀 더 예술에 대한, 예술가에 대한 감상자로서의 태도도
반성하게 되었다면 너무 과장인 걸까? 어쨌든, 애정 하는 예술가의 작업과 인생 이야기를 가장 객관적인
시각으로 담아 들려준 저자에게도 고맙고, 그런 진중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인연을 가졌던 자코메티가
부럽기도 했다. 전시 보고 챙겨두었던 자코메티 작품집도 꺼내보고, 한동안 자코메티의 작품들을
좀 더 누려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을유문화사 <현대예술의 거장>시리즈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렇게 다뤄지는 거장 시리즈로는
너무나도 강추하고 싶다. 특히나 개정판으로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책 속에서 만난 당대의 예술 거장들과의 인연과 더불어 뭔가 미술사의 단면을 정리한 것 같은 뿌듯함과
거한 예술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