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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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있는 심리학 책이 출간되었다. 다소 생소한 단어 "샤덴프로이데"라는 심리학 용어를 제시한다.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는 독일어로 "피해를 즐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성공보다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 것, 혹은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이 부분의 설명까지 읽고 뭔가 살짝 뜨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있다면 열반의 경지쯤 ^^)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시대와 문화권에 상관없이 남들의 굴욕과 실패를 먹잇감 삼아 자신의 행복을

찾았다.  일상의 소소한 실수를 담은 동영상 쇼가 인기를 끌거나, 슬랩스틱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바로 그런 사례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샤덴프로이데가 아주 고약한 감정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남의 육체적 고통과 서툰 행동을 보고

우월감을 느낄수록 더 잔인한 구경거리를 찾고픈 유혹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충동 사이에 있는 것 같다. 개성과 재능을 찬양하고픈 충동과 그것을

비난하고 싶은 충동. 남들의 불이익으로부터 심리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소설책을 읽다가 샤덴프로이데가 연상되는 장면을 마주했다.

많은 일상의 순간들에 생각보다 우리는 종종 이런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가 빈번하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일본의 속담을 비롯해 세계 많은 나라들에도 샤덴프로이데를 지칭하는

말들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기독교 구약성경에도 "네 원수가 쓰러졌다고 기뻐하지 말고 그가 넘어졌

다고 마음속으로 즐거워하지 마라"라는 잠언서의 기록이 전해져 올 정도이다.(잠언 24장 17절)

 

책 속에서는 다양한 샤덴프로이데의 상황들과 오랜 시간 이어져 왔던 인간 심리의 부분들을 분석한다.

우리는 종종 상류사회의 일면을 통해 박탈감을 느끼고, 반대로 하향 사회의 단면들에서는 자기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과 비교함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경우가 생긴다.  심지어 가끔 남들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우리 자신의 불행을 기꺼이 털어놓기까지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목차만으로도 우리가 일상의 많은 순간들에서 느껴봤을 샤덴프로이데의 상황들이 떠오른다.

샤덴프로이데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대는 인터넷으로 타인과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범위도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진 세상이 되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감정으로 표출이 되기도

하는데 정의와 공정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자

하는 욕망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규칙을 어긴 자가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표출하는 샤덴프로이데는

선의의 힘이 되어 공적 담론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마녀사냥처럼 누군가의 희생이 SNS를 통해 연출

되기도 한다.
SNS의 왜곡된 전달력이 주는 폐해들에 대해 저자는 재미있는 규칙들을 나열한다.

"유명인과 친한 척하지 말 것, 자녀들의 성적을 자랑하지 말 것, 새로 산 비싼 코트를 보란 듯이 펄럭이지

말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티 나지 않게 은근히 자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고를 한다는 것! 
결국 샤덴프로이데는 남들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반감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샤덴프로이데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저자는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제시한다.

윤리적으로 애매모호한 감정 "샤덴프로이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샤덴프로이데를 나쁜 감정, 옹졸하고 뒤가 켕기는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유연한 감정의 비범한 기술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차라리 가끔 샤덴프로이데의 감정을 스스로 자백하

라고 조언한다. 상호작용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타인과 우리는 서로의 실수에서 기쁨과 안도감을

찾는다는 사실. 은밀한 감정 같았던 샤덴프로이데를 꺼내놓은 순간 별것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남의 실패를 고소하게 여긴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기나 할까? 샤덴프로이데는 악의적인 감정이 아니라

낙담하고 실패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님을 발견하는 삶의 구원 같은 역할을 하는 복잡 미묘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의 하나이니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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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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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마주하는 자세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졌다.
〰️
누군가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편견으로 그저 지적인 취향의 놀이라는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예술은

결국 한 시대를 사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사람의 삶의 경험과 생각들이 반영된다.

그래서 마주하는 작품의 첫인상과 달리 어느순간 그 작품이 주었던 첫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미술관에서의 맨얼굴이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에 대해 처음 느낌이 그랬다.

책은 마치 그녀의 고해성사처럼 그림과 마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화가와 그림의 이야기를

고루 들려준다.  작은것들의 힘"이라는 말로 당찬 그녀의 강단있는 목소리가 느껴지며 책을 읽는 나도

이 책과 조금은 더 가까이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모티브로 그녀는 꽤 많은 현대사회, 우리의

삶 언저리를 언급한다. 이미 나도 한참전에 그녀와 같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여러가지 공감대를 소환하게 된다.


남부러울것 없던 화가 지나이다의 모습이 변해버린 환경에서 당당한 직업화가로 나이들어간 모습에서

는 나도 작가의 말처럼 그녀가 무척 멋지게 느껴졌다. 시대가 변해도 여성의 삶이란 많은 제약과

편견들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맥락에서 해석된 쿠엔틴 마시스의 늙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초상은 바로 이런것들을 반영한다.

 

루치오폰타나의 초록빛 작품은 너무나도 내 취향이다. 공간적인 개념의 창시자로도 불리우는 그의

작품은 매끈한 예술작품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며 곽인식작가의 공간개념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팔은

안으로 굽는 그런 느낌으로 ^^

고흐의 작품이 주는 노란빛, 고흐는 워낙 독주인 압생트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로트렉이 그린 그림속

고흐, 그리고 고흐가 그린 압생트를 보면 독하디 독한 압생트의 현실은 저 멀리 날아가고, 그저 영롱한

액체와 투명한 유리병과 잔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근간에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앨봄이 쓴 신간<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을 함구한다고 거기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던 대목이 있다.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그것에 잠식당하지 않은채로 살아가는 것은 가능

할지도 모른다."라는 글은 그녀의 글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각자 잊고싶어하는

기억들에 대한 다독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소재를 통해 작은 것들의 힘을 종종 일깨운다.

개인들의 고백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인식이 바뀌고 제도가 만들어져 결국 세상은 바뀔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미투운동이 그랬고, 그 외에도 소소하게 삶의 변화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꿈꾸는 삶보다 중요한건, 내 꿈에 내가 갇혀 질식하지 않는 일이다. 꿈이 나 보다 더 커지고 중요해지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다.라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그림과 마주하며 담담하게 풀어놓은 그녀의 속내가 책 제목에 고스란히 담겼음을 이제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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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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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출간되어 많은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썼던 미치 앨봄의 신간이

나왔다. 미치 앨 봄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많은 글들을 쓰고 있는데 특히 삶에 대한 의미를

일깨우는 따뜻한 글쓰기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가 되었던 전작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연극으로도 제작이 되었었다.

오랜만에 책을 꺼내보니 마침 그때 관람했던 티켓과 연극 브로슈어가 보관되어 있어서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이번에 출간된 신작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는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더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내용이 담겼다.



"인생사는 베틀에 걸린 실처럼 얽혀서 우리도 모르는 방식으로 짜인다."라는 문장은 이 책을 이어가는

핵심문장이기도 하다. 누구나 삶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나름대로의 미래를 그리지만 실제로 마주하

는 삶은 늘 녹록지 않아서 계획과는 전혀 다른 길에 놓이기 일쑤이다.

작가는 그것을 바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고기압과 저기압의 만남, 온기와 냉기의 만남, 변화와 변화가 바람을

일으킨다. 변화가 클수록 바람도 세게 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가지 변화가 다른 변화를 일으킨다.

책에서는 한 사람의 주인공이 생에서 마주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 과정에서 상처, 친구, 포옹,

어른, 이별이라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많은

영향을 미치고, 나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우리는 종종 눈앞의 많은 일들에서 우리의 삶이, 시대가 다른 시대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

다. 지금 현재의 모든 일들은 하루아침에 누구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의 모든 것들은 앞서간 이들의 어깨 위에서 세워지고 변화해 온 결과물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애니라는 주인공 한 사람의 사례를 담았지만, 결국 애니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이기도 하다.

책 속의 큰 테마 사이사이 애니의 전 생애가 <애니 실수하다>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혹은 주어진 환경 등에 의해 자의적인, 타의에 의한 실수들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매 순간 만나지는 사람들은 그녀의 일생에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책 속 등장인물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매일  무언가를 잃는다고도 했다.

그것이 때로는 방금 내쉰 숨결처럼 작은 것일 때도 있고, 때로는 못 살 것 같은 큰 것일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살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저지른 많은 잘못 들은 바른 일을 할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제 이탈리아의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별세했다. (B.1928-2020)

생전 고인이 미리 써둔 부고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인은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부고에 ”그래서 나는 내 죽음을 항상 나와 가까이

있었던 모든 친구들에게,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큰 애정을 갖고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에게

알린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들 모두의 이름을 언급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 인생 마지막 몇 년 동안

형제처럼 지냈던 친구 페푸치오와 로베르타와 특별한 추억이 있다는 걸 밝힌다"라고 했다.

그가 이처럼 직접 부고를 써 둔 건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자신의 장례식으로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한 고인은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사랑을 전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1956년 결혼해 64년 동안 함께 한 아내 마리아였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지만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한다.

당신을 향한 작별 인사가 가장 고통스럽다"라고 썼다.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아쉽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별인사를 남긴

老거장의 마지막 인사가 마음을 울린다.

 

우리는 종종 사후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사후세계에 대한 우리의 상상은 아마도

무한하지 못한 생의 아쉬움에 대한, 그리고 언젠가 헤어지게 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담은

마음의 일환일 것이다. 그만큼 언제일지도, 분명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우려보다 지금 현재의 우리의

삶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매 순간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가꾸어 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실수들에 대해 조금은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용기와, 바른

태도 등을 제시한다.

기억을 함구 한다고 거기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비밀을 지키면 상황을 통제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비밀이 우리를 통제하게 된다. 실수가 없는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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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이해인 지음, 이규태 그림 / 샘터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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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첫날
꽃같이 고운 책이왔다.
<친구에게 >
글과 어우러지는 그림을 보고있으니 미술관이 따로없다.

이번에 출간된 <친구에게>는 이해인수녀가 글을 쓰고, 이규태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글과 함께 그림에서 주는

느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잔잔하게 그려진 색연필화는 은은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해인수녀의 첫번째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

내가 이해인 수녀의 글을 처음 접한것은 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자 영어과목 선생님이 주신 책선물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이해인수녀의 글들을 마주할 때마다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면 책선물은 책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더 많은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벌써 수십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내 책꽂이 가장 빛나는 한켠에서 온기를 지닌채 가끔 꺼내보게 만든다.

 

<친구에게>도 그런맥락에서 오랜친구 혹은 오래전 헤어진 의미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전한다.

 

책에서 전하는 친구는 애인이나, 반려자와는 또 다른 빛깔로 다가오는 다양한 존재들을 이른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게한다. 종종 마음과는 달리 가까운

이들과 마음을 전하며 사는일이 쉽지 않다.

그러다 어느순간 연락이 끊겨버린 친구들이 떠오를때면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화단에 가꾸는 식물조차도 사람의 온기가 더해지면 더 빛을 발하는 것을 생각해 볼때 사람사이의 인연이야

말해 무엇하리.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편안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중에 친밀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굉장한 인연이다. 어느것 하나 저절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인연은 저절로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폭넓은 인간관계보다  마음을 나눌수 있는 몇몇사람과의 인연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튼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또 그리운 이들을 떠오르게 하는 이 책 한권은

글과 그림만큼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요즘 우리집에 가장 자주오는 이들은 택배를 전해주시는 분들이다.  장마가 시작되어 하루하루 변덕스러운 날씨

별것 아닌 도넛하나에 마음을 담아 전해드렸다.

각박하고 하루하루가 불투명한 요즘이지만 예민해지기보다 조금은 여유있는 마음을 다독여본다.

그리운 친구들과 반갑게 마주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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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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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출판사 책 소개 글을 읽으며 도발적이다!라고 생각했던 내 첫 느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이 책의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작가는 겸손하게도 히트작 하나 없이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20년간

글을 써왔다는 말로 시작을 하지만 무수한 저서 이력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책들을 읽으며 의아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지나친 겸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페미니즘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글들을 비롯해 꽤 많은 책들

을 출간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앞으로 이 작가의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해질 만큼 이 책은 무심한 듯 묵직한 돌덩이들을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하나씩 던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연작소설로 책 속에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정아 혹은 지현, 정정은, 영진 등 모두 일반화된 여성들이다.

각각의 스토리는 소설 같지만 실제로 어딘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법한 이야기, 구체적으로 떠오

르는 사건, 그리고 생각보다 빈번하게 삶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에 대해 다룬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타이틀로 읽고 있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내 독서는 한 권을 다 읽고 다른 책들 펼쳐드는 편인데 요즘은 너무나도 많은 책들을 한꺼번에 넘나들고

장르마저도 들쑥날쑥하다. 함께 읽고 있는 책 중 <샤덴프로이데>라는 심리학적인 책 속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문장이 있어서 연결을 해봤다. 타인의 고통이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내 불행과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경험이다.

샤덴프로이데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각각의 챕터들은 별개의 스토리로 담겨있지만 이야기 중심이라기보다 삶의 진솔한 생각거리를 담는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 안타깝고, 어떤 장면들은 너무 몰입되어 등장인물의 등짝 스매싱이라도 날리고

싶을 만큼 적나라하다.  결국 저자도 이쯤에서 등장하여 안타깝긴 하지만 작가로서 전해야 하는 메시지

를 충실하게, 담담하게 전달한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른이라고 늘 이성적일 수 없고, 아이라도 기댈 언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충동적인 것이 청소년기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한때 청소년이었던 모든 어른들도 가끔 자제

력을 잃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정정은 씨의 경우>中

삶의 많은 순간들을 마주하며 때로는 이성적인 어른으로, 때로는 반항적이고 충동적인 성장기로 퇴보를

하는 순간도 있다.

몇 년 전 미술관에서 <신여성>에 관한 전시해설을 하며 분명 100여 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요즘의 현실과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점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 속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마찬가지로 그렇게 결론 없는 질문만이 쏟아진다.

뭔가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고 <에필로그>를 읽다 보니 이 책의 가장 소설적인 부분은

에필로그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소설 한 편 아닌 사람이 있겠냐 싶기도 하고, 나이의 숫자가

높아 질수록 점점 이상보다는 현실감에 좌절하기 일쑤인 것 같기도 하다.

 

종종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작가도 책의 마지막 장에 독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근간에 읽었던 책 중 "질문하는 삶"에 대한 김헌 교수의 <천년의 수업>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결국 작가는 책을 통해, 정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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