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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평점 :

예술을 마주하는 자세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졌다.
〰️
누군가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편견으로 그저 지적인 취향의 놀이라는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예술은
결국 한 시대를 사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사람의 삶의 경험과 생각들이 반영된다.
그래서 마주하는 작품의 첫인상과 달리 어느순간 그 작품이 주었던 첫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미술관에서의 맨얼굴이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에 대해 처음 느낌이 그랬다.
책은 마치 그녀의 고해성사처럼 그림과 마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화가와 그림의 이야기를
고루 들려준다. 작은것들의 힘"이라는 말로 당찬 그녀의 강단있는 목소리가 느껴지며 책을 읽는 나도
이 책과 조금은 더 가까이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모티브로 그녀는 꽤 많은 현대사회, 우리의
삶 언저리를 언급한다. 이미 나도 한참전에 그녀와 같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여러가지 공감대를 소환하게 된다.

남부러울것 없던 화가 지나이다의 모습이 변해버린 환경에서 당당한 직업화가로 나이들어간 모습에서
는 나도 작가의 말처럼 그녀가 무척 멋지게 느껴졌다. 시대가 변해도 여성의 삶이란 많은 제약과
편견들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맥락에서 해석된 쿠엔틴 마시스의 늙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초상은 바로 이런것들을 반영한다.
루치오폰타나의 초록빛 작품은 너무나도 내 취향이다. 공간적인 개념의 창시자로도 불리우는 그의
작품은 매끈한 예술작품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며 곽인식작가의 공간개념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팔은
안으로 굽는 그런 느낌으로 ^^
고흐의 작품이 주는 노란빛, 고흐는 워낙 독주인 압생트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로트렉이 그린 그림속
고흐, 그리고 고흐가 그린 압생트를 보면 독하디 독한 압생트의 현실은 저 멀리 날아가고, 그저 영롱한
액체와 투명한 유리병과 잔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근간에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앨봄이 쓴 신간<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을 함구한다고 거기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던 대목이 있다.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그것에 잠식당하지 않은채로 살아가는 것은 가능
할지도 모른다."라는 글은 그녀의 글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각자 잊고싶어하는
기억들에 대한 다독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소재를 통해 작은 것들의 힘을 종종 일깨운다.
개인들의 고백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인식이 바뀌고 제도가 만들어져 결국 세상은 바뀔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미투운동이 그랬고, 그 외에도 소소하게 삶의 변화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꿈꾸는 삶보다 중요한건, 내 꿈에 내가 갇혀 질식하지 않는 일이다. 꿈이 나 보다 더 커지고 중요해지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다.라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그림과 마주하며 담담하게 풀어놓은 그녀의 속내가 책 제목에 고스란히 담겼음을 이제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