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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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출판사 책 소개 글을 읽으며 도발적이다!라고 생각했던 내 첫 느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이 책의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작가는 겸손하게도 히트작 하나 없이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20년간

글을 써왔다는 말로 시작을 하지만 무수한 저서 이력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책들을 읽으며 의아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지나친 겸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페미니즘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글들을 비롯해 꽤 많은 책들

을 출간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앞으로 이 작가의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해질 만큼 이 책은 무심한 듯 묵직한 돌덩이들을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하나씩 던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연작소설로 책 속에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정아 혹은 지현, 정정은, 영진 등 모두 일반화된 여성들이다.

각각의 스토리는 소설 같지만 실제로 어딘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법한 이야기, 구체적으로 떠오

르는 사건, 그리고 생각보다 빈번하게 삶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에 대해 다룬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타이틀로 읽고 있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내 독서는 한 권을 다 읽고 다른 책들 펼쳐드는 편인데 요즘은 너무나도 많은 책들을 한꺼번에 넘나들고

장르마저도 들쑥날쑥하다. 함께 읽고 있는 책 중 <샤덴프로이데>라는 심리학적인 책 속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문장이 있어서 연결을 해봤다. 타인의 고통이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내 불행과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경험이다.

샤덴프로이데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각각의 챕터들은 별개의 스토리로 담겨있지만 이야기 중심이라기보다 삶의 진솔한 생각거리를 담는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 안타깝고, 어떤 장면들은 너무 몰입되어 등장인물의 등짝 스매싱이라도 날리고

싶을 만큼 적나라하다.  결국 저자도 이쯤에서 등장하여 안타깝긴 하지만 작가로서 전해야 하는 메시지

를 충실하게, 담담하게 전달한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른이라고 늘 이성적일 수 없고, 아이라도 기댈 언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충동적인 것이 청소년기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한때 청소년이었던 모든 어른들도 가끔 자제

력을 잃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정정은 씨의 경우>中

삶의 많은 순간들을 마주하며 때로는 이성적인 어른으로, 때로는 반항적이고 충동적인 성장기로 퇴보를

하는 순간도 있다.

몇 년 전 미술관에서 <신여성>에 관한 전시해설을 하며 분명 100여 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요즘의 현실과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점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 속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마찬가지로 그렇게 결론 없는 질문만이 쏟아진다.

뭔가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고 <에필로그>를 읽다 보니 이 책의 가장 소설적인 부분은

에필로그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소설 한 편 아닌 사람이 있겠냐 싶기도 하고, 나이의 숫자가

높아 질수록 점점 이상보다는 현실감에 좌절하기 일쑤인 것 같기도 하다.

 

종종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작가도 책의 마지막 장에 독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근간에 읽었던 책 중 "질문하는 삶"에 대한 김헌 교수의 <천년의 수업>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결국 작가는 책을 통해, 정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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