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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는 무협드라마라든지, 무협소설을 읽는 다는것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한 '무협'이라는 것에 마음속에 감성을 듬뿍 담고 있는!! 내가 좋아 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호가, 임의신 주연의 2008년 버전 사조영웅전이 중국에서 방영이 되면서 클럽박스 등의 공유 사이트에 올라왔고, 중국 드라마 사이트중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네이버 무협중국드라마 카페에서 빛의 속도로 자막이 제작되고 있다. 자막이 제작되어 올라오면 순식간에 몇천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그 인기를 명실상부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주연배우인 호가와 임의신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책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만, 드라마가 방영이 되고부터 빨리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여, 책에 표현된 수많은 허황된 무공이라든지, 상상속의 장소라든지를 내 머리속에서는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지만, 영상을 통해서 보고 난 뒤로는 그 영상안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기전에 얼른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별 감흥 없이 읽었지만, 한번 이야기에 빠지고 부터는 정신 없이 책을 읽었다. 다음은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질지,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은 어떻게 이어질지가 한 없이 궁금해서 밤잠을 설쳐가며 읽어댔다.
이 책은, 대하 역사 무협 소설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절묘하게 허구가 조합이 되어 있으며, 중국인 특유의 과장이 많이 섞여 있긴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탄탄한 구조와 재미있는 내용에 풍덩 빠지게 되서,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가 도달 할 수 없는 어느 산속에 올라가면 무림의 고수가 무공을 닦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책 속에서 만날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속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아다리가 딱!딱! 맞아 떨어지면서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가끔은 주인공 곽정오빠 너무 살아나 주신다 싶기도 하지만, 어쨋거나 주인공은 죽지 않아야 하니까!
무림의 고수들은 상대방이 다쳤을때는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여럿이서 한사람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호인好人에게 살수를 쓰는 경우도 없다. 그렇게 비겁하게 싸우는 것은 스스로의 명성을 깎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용은 그것이 진정한 대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진정으로 중국의 대륙적인 풍모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즈음의 중국은 과연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가?! 일례로, 요즘,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오늘도 대단한 금메달, 값진 은메달, 아쉬운 은메달, 그래도 잘 싸워 얻은 동메달. 눈물나도록 아까웠던 실격 등 열심히 준비한 수많은 선수들이 참 멋진 경기를 펼쳐주고 있다. 상대방을 이겨야 내가 올라가는 냉정한 심판대 위에서 선수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내는데, 어째서 관중들은 그런 선수들에게 박수쳐주지 못하고, 그야말로 대륙적 풍모를 보여주지 못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나, 양궁에서의 중국 관중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물론, 소설속의 구양극 같은 나쁜놈은 비겁한 방법으로 겨루기도 하고, 우리 속담에도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 다 더럽힌다는 말처럼 모든 중국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중국이란 나라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이, 그리고 중국인들이 무림의 고수들처럼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대륙적 면모를 보여주길 바란다.
어쨋거나, 이 세상에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절대 안되는 일은 없나보다. 내가 그토록 무시하고, 하류라고 생각했던 무협소설을 재미있다고 칭찬하고 있는걸 보니 말이다. 벌써 책을 다 읽어버린게 아쉬운데, 곽정과 황용커플의 다음 이야기인 신조협려도 읽어 볼까?!
* 무예는 끝이 없어서 산 뒤에 산이 있고 고수 위에 고수가 있으니, 네가 아무리 무예가 출중하다 할지라도 모든 적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대장부는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잠시의 울분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청산이 살아 있는 한, 태울 장작은 많은 것이다.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적의 수가 많아서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코 혈기를 부려서는 안된다. 넷째 사부의 말을 반드시 기억하거라.
* 아우,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 있다네. 이게 바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병이라는 거야. 끝날 때가 되면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는 법이지.
* 전에 아버지가 제게 사詞를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모두 수심愁心이니, 한恨이니 하는 내용이었지요. 나는 그냥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해서 내용이 모두 그런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기쁨은 잠깐 스쳐 가는 것이고, 슬픔과 번뇌야 말로 평생을 함께 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예닐곱군데 오자가 있던데, 기록해둬야지 생각만하다가 어느새 책을 다 읽어버렸다. 1판 8쇄인 책을 샀는데, 2판이 나와야 오자가 수정이 되려나?! 그래도 정식으로 번역되어 출판된 책인데, 좀 더 꼼꼼해야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