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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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영하라는 구라로봇이 배설한 비공식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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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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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지루한, 철 지난 미인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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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L 선생님이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 와주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을 못했다. 그집도 갓 돌이 된 막내까지 아이가 둘이다 보니 혹시 방해될까, 머뭇머뭇하다가 그리 된 것이다. 선생님도 아기가 자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울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 미루다가 지금에야 연락한다며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근무할 땐 학교 이야기, 남편 뒷담화를 많이 했는데 둘 다 엄마이다 보니 화제는 역시 육아였다. 돌이 된 막내는 이제 말귀도 알아듣고 혼을 내면 제법 노여움도 탄단다. 영달이는 코에 바람이 들어가서 매일 드라이브 겸 마트에서 함께 시장도 본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깔깔 웃으며 아이가 빨간 불일 때 차가 안 움직이면 찡찡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단다. 우리 영달이도 그래요!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를 쳤다.  

  선생님이 사는 아파트 단지 맞은편 단지로 이사왔다고 했더니 횡단보도만 하나 건너면 되겠네, 하며 아기 업고 한번 놀러온단다. 친정에서 뭉개고 있는 바람에 영달이가 우리집을 낯설어하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L 선생님과 아기를 한번 보고싶다. 선생님은 지난번에 대학 후배가 아기를 데리고 놀러왔는데 9시쯤 와서는 5시에 가서 환장하는 줄 알았단다. 가라고도 못하고, 가지 않고 있으니 힘은 들고. 그 후배도 아마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 남편의 후배가 살고 있었다. 오다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임신한 내 모습을 보고 축하한다며 언제 한번 놀러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인사치레로 그러세요, 했는데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문자. 아무개가 놀러오고 싶다는데? 남편은 학교에 있었고 나는 부른 배를 좌우로 들썩이며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몸도 무겁고 너무 귀찮은데다 그집에 아이들이 둘이나 있다는 생각에 친정 갔다고 해요, 라고 답문을 보냈다. 그리고는 정말 친정으로 줄행랑. 나중에 후배가 뭐라 그러더냐고 했더니 친정 가까워서 좋겠다고 그러더란다. 그 후배는 친정이 어디냐고 했더니 남편도 헛갈려하더니만 아무튼 여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 후로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더 마주쳤고 서로 안부를 물었는데 친정 가까워서 좋겠다는 말을 한번 더 들었다. 몹쓸 놈의 학교가 어린 딸이 둘이나 있는 애엄마를 기숙사 사감으로 부려먹는단 말을 듣고 비록 도와줄 수도 없고 더구나 놀러오고 싶다는 걸 나몰라라 한 입장이지만, 좀 안타까웠다. 그 후배는 학교 아이들이 직접 키운 거라며 버섯을 갖다주더니 지난번 버섯이 별로 안 싱싱했다며 토마토도 갖다 주었다. 뭔가 보답을 해야한단 생각에 신경을 쓰고 있다가 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남편을 시켜 피스타치오, 엄마는외계인 등등을 섞은 아이스크림을 갖다 주었다. 후배는 벌써 이사를 가냐며 많이 아쉬워했단다.   

  L 선생님의 친정도 이 도시와 매우 가깝다. 이십분 정도 운전을 해서 교외로 나가면 금방인 곳이다. 조만간 복직하면 아이들은 친정엄마가 봐주실 예정이고 요즘은 워밍업으로 친정엄마가 왔다갔다 하시며 막내와 친해지려고 애쓰는 중이란다. 우리는 그래서 참 다행인데 만약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정말 갑갑하고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기 엄마는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고 어딘가를 가더라도 짐보따리 하며 혹시 아기가 울어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그냥 집에 눌러 있게 되고 점점 고립되어 간다. 남편이 올 때까지 육아를 도와주거나 말벗이 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기는 유일한 사람인 엄마한테만 매달리며 모든 욕구를 해소하려 한다, 점점 체력이 고갈되면 귀엽던 아이가 귀신처럼 보이고... 생지옥이 따로 없다.

  요즘 친구 S가 꼭 그와 같은 사정이다. 출산과 동시에 고향과 직장이 있는 도시를 떠나 남편의 직장이 있는 도시로 갔는데 생전 가도보도 못한 도시에서 낯선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녀는 불어난 몸무게 걱정을 하는 나에게 '나는 몸무게가 잔뜩 나가도 괜찮으니 삭신만 좀 안 쑤셨음 좋겠다'고 말해 나를 넉다운시켰다. 엄마는 S가 가까이 있으면 아플 때라도 내가 가끔 도와줄텐데, 라며 안쓰러워 하셨다. 그런데도 S는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하고 있고 그녀의 시댁도 대놓고 종용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고된 육아로 바쁜 선배네 집에 와서 밥 얻어먹어가며 부득부득 눌러있는 L 선생님의 후배는 눈치 없고 배려 없긴 하지만 늘 상대방을 생각해주면서도 싫은 소리 못하는 L 선생님이 아마 무척 편했는가 보다. 아기 엄마끼리 통하는 이야기도 많지, 복작대지 않고 한가로와 좋지, 아기들끼리 같이 놀 수도 있지, 얼마나 좋았겠는가 말이다. 남편의 후배와 친하게 지냈다면 나도 비슷한 그림이었을텐데 영달이에게 함께 놀 수 있는 언니들이 생기는 것은 좋지만 이래저래 귀찮을 걸 생각하면 그닥 바라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친정은 멀고 남편은 오지 않고 아기는 코에 바람냄새 좀 맡게 해달라고 떼를 쓰면, 누구한테라도 연락해서 어디든 가고 싶을 것도 같다.   

  L 선생님은 조리원에 왔을 때도 선물로 아기 모자를 전해주고 금방 일어섰다. 나는 수유 중이었고 영달이는 먹다 말고 울고 있었고 다크서클로 판다 같은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나오지 말라며 묻어왔던 바람 냄새 그대로 갖고 갔다. 그만큼 남한테 폐 끼치지 말자, 를 신조로 삼고 사는 분인데 그런 성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워낙 사려깊고 부지런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변 상황이 여유 있는 덕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나 나나 민간에 폐 끼치기는 싫어하면서도 친정엄마한테는 끝없는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식 잘나게 키울수록 부모는 골병 든다고, 돈 좀 번답시고 애는 친정엄마 차지로 일찌감치 떠안기고 아, 난 폐 끼치기 싫다고 주장하고 있다니.  

  마땅히 갈 곳 없는 엄마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안 통하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라곤 나 자신밖에 없는 엄마들, 사정이야 우야됐든 내 새끼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하는 엄마들, 스스로 민폐 덩어리라고 자아비판 하고 있는 엄마들 심정부터 조속히 헤아려야 이 나라의 출산율이 높아지던지 말던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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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8-1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 엄마를 기숙사 사감으로 부려먹는 학교도 있군요...하긴 별별 사람들 다 있지요...

깐따삐야 2010-08-14 21:59   좋아요 0 | URL
심한 거죠? 머잖아 복직할 저는 더 심한 일만 없었으면, 소심하게 바라고 있어요.

BRINY 2010-08-16 00:11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점점 중등교직에도 여자들이 많아지다보니...이것저것 따지면 일할 사람이 없긴합니다. 남자들은 역차별이니 그러고...에고...

깐따삐야 2010-08-16 13:05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 남의 사정 봐주기엔 내코가 석자고. 잡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수업에만 집중해봤음 좋겠어요.

레와 2010-08-1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아로 힘들어 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토닥토닥..

깐따삐야 2010-08-14 21:59   좋아요 0 | URL
레와님이 토닥토닥 해주시니 어깨가 시원해용.^^
 
심야식당 1~6 세트 (묶음)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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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속의 공복을 채워주는 식당은 많지만 마음의 공복을 달래주는 밥집은 흔하지 않다. 커피향과 계피향이 상냥하게 맞아주던 헬싱키의 카모메 식당처럼 이 한적한 '심야식당'에도 외롭고 착한 사람들이 찾아든다. 마스터의 인상도 별로고 메뉴라고는 된장국과 몇 가지 술 뿐인데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들어준다. 상술이라는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무심한 듯한 그 한 그릇의 음식은 마음이 고픈 이들에게 담백한 위로가 된다.  

  내게도 잊지 못할 몇 군데의 밥집이 있다.  

  스무 살, 막막한 봄이었다. 기숙사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문득 H가 소풍에 가자고 했다. 소풍을 가는 것도 아니고 소풍에 가자고? 응. 절친 E와 그를 따라나서자 모교 후문 근처의 골목으로 이끌었다. 그는 여기야, 라고 말하며 모퉁이의 조그만 대문으로 들어섰다. 젊은 아줌마가 채소를 다듬다 말고 어서오세요, 라고 인사했다. 실내의 가장 안쪽으로 테이블이 보였다. H는 이집은 테이블이 딱 하나야, 라고 말하면서 너를 꼭 한번 데려오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무슨 라면 종류를 시켰는데 카레라면과 열무김치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카레의 노르스름한 색깔에 열무의 초록, 듬성듬성 빨간 고춧가루까지, 따듯하고 부드러운 라면과 아삭하고 시원한 열무김치는 그 봄의 막막함을 환하게 걷어주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여자 기숙사 근처에 슈퍼를 겸한 순대집이 있었다. 동아리 모임이 끝나고 십시일반으로 돈이 걷히면 총무 언니와 막내인 내가 주로 술을 사러 가곤 했다. 우리는 그집 단골이었다. 주인 아줌마가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간을 덤으로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아줌마, 정말 미인이세요, 라고 말하면 고맙다며 수줍게 미소짓곤 했다. 남재일 교수가 '공리'를 예찬하며 남성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미모는 흔해도 선의를 불러일으키는 미모는 드물다고 했는데, 말하자면 그 아줌마가 그랬다. 상상력이 용솟음쳤던 나는 아줌마를 볼 때마다 가난하고 무모한 나무꾼에게 보쌈당해 온 청순한 선녀를 오버랩하곤 했다. 가게는 오래되긴 했지만 언제 가봐도 탑쌔기 하나 없이 말끔했고 아줌마의 미모처럼 똑고르게 썰어진 순대는 깔끔하고 맛있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아줌마의 아우라는 뒷배경과 상관없는 고상함, 그야말로 레알이었다.     

  심야식당의 몇몇 주인공들도 엄마나 애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었던 음식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 음식만 찾듯 내게도 역시 그런 음식이 있다. '국수'다. 다양한 채소로 색깔을 낸 면부터 해물 또는 사골로 만든 육수까지 요즘 별별 국수집이 다 생겼다지만 엄마가 그냥 집에 있는 재료를 넣고 만든 국수 맛을 못 따라온다. 호박이 있으면 호박 넣고 부추가 있으면 부추 넣고 이도저도 없으면 김치에 양념해서 솔솔 비빈다. 그 맛이 일품인지라 언젠가 엄마한테 국수집을 내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 여름엔 비빔국수, 봄가을엔 잔치국수, 겨울엔 칼국수 위주로 팔되 그렇게 딱 세 가지 메뉴만 팔아보자고. 엄마는 평생 일한 것도 모자라 이제 다 늙은 엄마 이용해서 돈까지 벌 셈이냐고 지청구를 했지만 눈빛에 끓어넘치던 자신감이란. 독감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 실연당했을 때, 인간관계로 인해 상심 직전에 이르렀을 때 등등, 엄마는 제철 재료를 넣은 맛난 국수 한 그릇으로 말없는 위로를 건넸다. 책을 읽으며 심야식당에 간다면 난 무얼 먹을까, 생각하니 엄마표 다대기를 올린 따끈한 칼국수였다. 마스터가 그대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화는 직접 봐야 한다. 대충 분위기 파악했으면 직접 보고 그 맛을 음미하시기 바란다. 별것 아닌 음식을 찾는 별것 아닌 사람들의 특별한 밥집 이야기, 그나저나 6권은 언제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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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08-1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리 할매가 끓여주시던 된장국이요.
특별한 재료말고 그져 양파랑 풋고추 잘게 썰어서 넣은 그 구수한 된장국이 생각나요.
그 어떤 우울증 치료제보다 효과가 컸죠.


..:)

깐따삐야 2010-08-11 19:13   좋아요 0 | URL
아... 칼칼하고 구수한 맛, 상상이 되요. 확실히 손맛이란 게 있긴 있죠? 더구나 음식이 지닌 치유의 효능이란 약에 비길 수가 없어요.^^

kimji 2010-08-12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이요. 신김치를 석석 잘라 들기름에 후루룩 볶는, 그 김치볶음밥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친정에 가면 꼭 먹어야 친정나들이를 잘 마친 기분이 드는 그런 음식이랄까-

이 시간에 막 배고파지고, 엄마 보고 싶어지고;

깐따삐야 2010-08-12 15:01   좋아요 0 | URL
냠~ 저도요저도요! 콩나물무침 남은 거 있으면 함께 볶아도 끝장! ^^ 새벽 네시는 배고프고 엄마 보고싶을 시간이죠.

새우튀김 2011-01-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글 잘쓰셨네요 깐따삐야님의 이 글도 깔끔하고 맛있어요 !
 

  S양은 각별한 동생이다. 외삼촌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사연과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페이퍼에 간간히 등장했고 그때마다 영악하고 깜찍한 미달이스러움을 보여주었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매사 어리버리한 언니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다. 언니,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는 나를 향한 그녀의 단골 멘트였다.  

  그런 그녀가 몰라보게 자라서 나타났다. 초등학교 졸업식에 갔던 때가 엊그제 같고 중학생이 되고난 후에도 몇 번 놀러와서 같이 손잡고 다녔는데 얼마 못보던 사이, 다 큰 숙녀가 되어 찾아왔다. S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훤칠해진 실루엣에 영달이를 재우다 말고 깜짝 놀랐다.  

"언니, 나 많이 컸지?" "응, 길에서 보면 정말 몰라보겠어. 이뻐지고 키도 크고!" "웅, 내가 좀 예뻐졌어. 근데 언니는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어. 허벅지 좀 봐. 하체비만은 정말 최악인데." 으음... 말하는 거 보니 S양이 맞긴 맞구나.   

  S양은 삐까뻔적한 캐논 DSLR 카메라를 들고 와서는 자고 있는 영달이, 하품하는 영달이, 쫑긋거리는 영달이 등을 부지런히 찍었다. 백화점 행사에 남녀생활백서의 정가은이 왔었는데 마른 거인, 멍청한 여신 같았다, 하지만 실물은 정말 쩐다면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선생 언니답게 공부하기는 힘들지 않니,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하고 싶은 건 잘 모르겠지만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갈 거란다. 너는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있으니 디자인 같은 걸 배워도 좋겠다고 말하니 아, 그런 건 싫어, 라고 잘라 말한다. 기저귀를 갈 때 영달이가 짜증을 내려고 하자, 아기들도 기저귀 갈 때 수치심을 느낀대, 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우나, 근데 넌 그런 거 어디서 들었어? 내가 아기를 이뻐하다 보니 육아에 대해서도 좀 알지. 오옹...  

  그녀는 내게 휴직을 했냐고 물으며 자기가 중학생이라 잘 안다면서 요즘 아이들 다루기 힘들지 않냐고 도리어 나를 염려했다. 역시 우리의 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엄마가 늘상 네가 S만 같으면 뭐가 걱정이냐고 말씀하시듯, 그녀는 모자란 언니가 멋도 모르고 결혼을 해서는 아기까지 낳고 머잖아 직장에도 다시 나가야 하니 딱하기 이루말할 데가 없었는가 보다. 설마 남자친구는 있느냐고 했더니 없다길래 너는 그래도 눈이 높아서 다행이라고 했더니 아냐아냐, 나도 언니만큼이나 눈이 낮은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웁쓰...  

  이런 걸 보면 영락없는 S양이 맞는데 훌쩍 성숙해진 겉모습 이면에 사춘기의 웅크린 그늘이랄까, 아마도 내 시야를 넘어서는 마음 자리 어딘가에 담고 있을 고민이랄까,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느꼈더라도 그때라면 바로 질러가서 말했을 법한,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무거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 손 안에 쏙 들어오던 손은 큼직한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룰 만큼 커졌고 쑥쑥 자란 키만큼 발도 길어졌는데, 나를 향해 오감을 다 열고 안겨오던 S양은 저만치 작아진 모습으로 멀어진 것 같았다. 방학 때면 조금이라도 더 놀다 가기 위해 갖가지 핑계를 생각해내곤 하더니 이제는 가자, 라는 말에 아무 망설임이 없다.  

  그녀가 돌아간 후, 내가 남편과 아이가 생겨서 거리감을 느끼나, 라고 생각하다가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아, 그럴만한 나이가 되었구나, 한다. 언니는 나랑 안 놀아주잖아, 라면서 서운함을 토로하던 S양이 이제 혼자 있는 게 참 좋다고 말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마 혼자 있는 게 좋고 나이 먹은 언니보다는 또래 친구들이 더 좋겠지. 그 자체로 참 다행이고 성장은 감격스러웠지만 마음 한켠 괜히 짠했다.  

  그녀의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영달이를 키우면서 네 생각을 많이 한다고, 너처럼 똑똑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너는 영달이보다 더 예쁘고 착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S의 언니라기보다는 영달이 엄마인 것이 자꾸만 더 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어 공연히 미안했다. 아마도 S양은 안 그래도 되는데 역시 언니는 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S양은 올해 개명을 해서 M양이 되었지만 내게 그녀는 포에버 S양이다. 그녀 왈, 예쁜데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S는 우리의 지난 시간, 예쁘고 촌스러운 추억의 주인공이다. 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언제든 필요할 때 달려갈 수 있는 언니이고 싶다. 일시적 감상이 아니고 그렇게 할 것이다. S는 아마 됐거든, 제발 언니나 좀 잘 살아, 라고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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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8-0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양이라는 제목 보자마자, 아, 그러게, S양도 많이 컸겠구나, 했는데,
정말 이제 아가씨가 다 되었나보네요. 느낌이 새로워요.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늘 제자리인 것 같고. (늙지나 않으면 다행인가 ㅋ) 영달이도 많이 컸지요?

깐따삐야 2010-08-09 11:51   좋아요 0 | URL
요즘 아이들은 발육이 좋아서 그런지 벌써 숙녀티가 나더라구요. 얼굴은 아기때 그대로인데 몸만 훌쩍 커지니 거리감 느껴지고. 영달이도 머잖아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 묘하고. 영달이는 이젠 뒤집기도 하고 많이 컸어요.^^

BRINY 2010-08-0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읽기 시작할때는, 으음, S양은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 헉, 중학생!!

깐따삐야 2010-08-09 11:52   좋아요 0 | URL
고민을 들어주기보다 제 고민을 털어놓는 동생이었죠.ㅠ 원래부터 좀 미달이스러웠어요. 언니 알기를 개코로 알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