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었다 

- 나희덕  

  가을이었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 속에서 뱀이 울고 있었다. 방울소리 같기도 하고 새소리 같기도 한 울음소리. 아닐 거야. 뱀이 어떻게 울겠어. 뒤돌아서면 등 뒤에서 뱀이 울었다. 내가 덤불 속에 울고 있는 것인가. 뱀이 내 속에서 울고 있는 것인가. 가을이었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에 가려 뱀은 보이지 않았다. 덤불은 말라가며 질겨지고 있었다. 그는 어쩌자고 내게 말을 거는 것일까. 산을 내려오는데 울음소리가 내내 나를 따라왔다. 뱀은 여전히 덤불 속에 있었다. 가을이었다. 아무하고도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가을이었다. 다음 날에도 산에 올랐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 속을 들여다보면 그쳤다 뒤돌아서면 다시 들리는 울음소리. 덤불이 앙상해질 무렵 뱀은 사라졌다. 낯선 산 아래서 지낸 첫 가을이었다.   

  긴 페이퍼를 쓰다가 이 시가 생각났다. 볕이 좋은 날이었다. 빨래는 바삭하게 말랐고 친정엄마는 뱅어포에 고추장을 발라 내어널었다. 영달이와 나는 그림자놀이를 하며 놀았다. 땅에 비친 두 사람의 크고 작은 실루엣, 손가락의 재미난 움직임들에 영달이는 좋아라 했다.   

  하늘은 곱고 일상은 변함없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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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은 곱고 일상은 변함없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가을날,

을 저도 살고 있어요, 지금. 내 마음같은 글이네요.

깐따삐야 2010-09-28 10:52   좋아요 0 | URL
이곳에 오면 묘하게 겹치는 날들이 있어요.
오늘도 볕이 좋을 모양이에요. 다락방님.^^

2010-09-27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오는 밤. 영달이가 잠들고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읽기 시작했다. 하루 중 내가 조용히 책읽기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깨가 쑤신 날도, 눈이 뻑뻑한 날도, 이도저도 다 귀찮은 날도, 아주 잠깐일지언정 이 시간을 건너뛸 수 없다.  

  권여선이 낸 책은 다 읽었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특유의 소설스럽지(?) 않은 관념적 문장들 때문에 독서의 맥이 뚝, 뚝, 끊기곤 했지만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거칠게 밟히는 성찰과 진실 때문에, 이 작가를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윤기라곤 없이 시종일관 싸한 화법도 나를 닮지 않아 그런가. 괜히 매력적이란 말이지.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p.118). 이러한 아포리즘에 걸려들기 위해 그녀의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런데 엊그제 밤은 주인공들도 심란하고 나도 좀 심란했던 모양이다. 오전, 오후로 친정과 우리집에 손님이 다녀간 날이라 좀 피곤했고 낮 동안의 회상들로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Y와의 오랜 통화가 귓가에 맴맴 돌고 책 속에는 왜 이렇게 맛나게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은지. 마음은 너울너울.    

  벌써 십년 전인데 가끔 우울할 때마다 Y가 창밖을 보라, 에 맞춰 춤추던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 킥킥대곤 한다. 눈 오는 저녁, Y는 아침에 발표라도 있었는지 갈색 정장을 입고 동아리방에 출근을 했는데 장난기 심한 선배 하나가 날 좀 웃겨달라고 했고, 그건 그냥 장난 삼아 던진 말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았는데, 그 순간 Y가 그럼 제가 춤을 출테니 다 같이 노래를 불러주세요, 했다. 다들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표정들로 오냐오냐, 호응을 했고 박수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자 Y는 양손바닥으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시늉을 하며 정말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배꼽이 빠질 지경인데 Y의 그 하나하나의 동작에 몰입하는 표정이 하도 비장해서 소리도 못 내고 웃느라 눈물만 질질 흘렸던 추억이 있다.     

  언젠가 Y에 대해 긴 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난다. 연락도 안 되고 몹시 보고 싶을 때였다. 다짜고짜 춤을 추는 엉뚱함과 더불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 일쑤인 신기루 같은 친구였는데 다시 만났을 땐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궁금증이 폭발해 입이 터질 것 같았지만 섣부른 노파심에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Y는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그간의 변화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나는 잘했다고 했고 걱정스럽다고도 했고 부럽다고도, 그러니까 더 잘하라고 했던 것 같다. 이후로 Y는 내 잔소리가 정겹다며 일부러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잔소리를 경청하기도 했다.       

  내 출산 이후에는 좀처럼 타이밍이 안 맞아 연락을 자주 못했는데 엊그제, 무척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을 묻자 Y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는 말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주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이 없고 정작 하고 싶었던 일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란다. 몇 해 전 가을, 상경했을 때만 해도 내 눈에 비친 Y는 꿈을 향해 꾸준히 내공을 쌓고 있었다. 대신,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 관둬야 하나, 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직장에서는 자리가 잡혀 가는 반면, 꿈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책을 읽다 말고 Y의 목소리가 맴돌아 잠이 오지 않는데도 그냥 눈을 감았다. 너무 멀리 왔다는 것. 누구나 한번쯤 그런 아쉬움으로 한탄하는 일이 없겠냐만은 Y의 탄식에 나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기라도 한 듯 허망했다. 생쥐처럼 작은 아이였지만 코끼리처럼 크고 묵묵한 행보에 나는 십년 전부터 지금껏 무언의 박수를 보내왔다. 오직 내 앞의 선배를 즐겁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에 주위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열렬한 율동을 보여주었던 Y. 어떤 면에서 Y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나는 그새 많은 부분, 세속적인 잣대와 때낀 시선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바라보게 되었지만 우정에 대해서는 그리 되지 않고 그 우정 가운데에서도 Y를 향한 그것은 마냥 스무살 무렵에 머물러 있다. 가까울수록 너절해지는 관계들 속에서 Y와의 우정은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과 같았다. 거기엔 나의 허영심도 한몫해서 Y의 속사정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너만은 영원히 정글의 거대한 초식동물로 살아다오,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세월을 비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감수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않는데도 말이다.

  Y와는 술약속을 하고 통화를 맺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저 막연히, 늘 그렇듯, 올해가 가기 전. 홀짝홀짝 안색의 요동 없이 말끔히 잔을 비우는 Y의 술마시는 모습이 그립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면 마주 앉아, 혹은 아직도 방황 중인 S를 끼워, 두런두런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무 멀리 온 뒤, 각자의 헛짚은 언저리에 대한 긴긴 사연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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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ㅣ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핍진한 소설을 찾고 있었다. 왜 갑자기 <나목>이 떠올랐을까. 사춘기 무렵에 이미 읽었는데 문득 다시 읽고 싶어졌다. 박완서 할머니는 올해도 한권의 에세이집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 책에는 관심이 가지 않고 <나목>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6.25로 두 오빠를 잃은 뒤 성치 않은 어머니를 부양하며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이경. 전쟁의 상흔과 청춘의 열망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녀 앞에 나타난 환쟁이 옥희도 씨. 외롭고 상처 받은 이경에겐 사랑할 대상이 필요했고 옥희도 씨에겐 자신이 예술가로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생생한 대상이 필요했다. 그렇듯 절묘하고도 절박한 지점에 만난 두 사람. 자연히 사랑을 하지만 옥희도 씨의 말처럼 그는 그저 질식할 것 같은 회색빛 생활에서 경아라는 신기루에 정신을 판 것이고, 경아는 옥희도 씨를 통해 아버지와 오빠를 환상하고 있었던 것 뿐. 헐벗은 나목의 계절, 시정의 논리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인연이었다.   

  마흔 살, 다소 늦은 나이의 등단이었지만 일명 '복수의 글쓰기'라 명명되는 리얼리스트적 사명으로 박완서 할머니는 그간 참으로 숱한 작품을 써왔다. 흔히 번복되는 소재인 6.25를 비롯하여 중산층의 삶과 속내,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세월 속에 드러나는 개인의 문제 등, 특유의 차지고 맛깔스런 글발로 남녀노소를 아울러 여러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천의무봉의 글솜씨라는 평이 있을만큼 매번 빈틈없는 글쓰기, 작품의 똑고른 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겐 처음이나 지금이나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답다.  

  본격적인 생활인이 되기 전, 꾸밀래야 꾸밈없는 달뜬 목소리가 면면히 들려서일까. 옥희도 씨가 자신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물구나무 서기를 하며 온 화실을 돌아다니고 싶어하는 이경을, 하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이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를 완전히 발가벗기고 깨뜨리고 싶지만 끝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는 이경을, 청춘 언저리의 그 두 가지 얼굴을 나도 마주한 적이 있다. 어제의 망령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서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를 되뇌이는 이경은 비단 50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구원이자 절망의 감옥에서 나목의 계절을 견디고 있는 또 다른 옥희도 씨도 나는 알고 있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근원적 고독은 때때로 스스로를 잠식해가지만 그 끝없는 부침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대결 속에서 <나무와 여인> 같은 불멸의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결국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잔혹한 시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존재 조건, 그들 자신이고 그래서 이 오래된 소설은 세월을 거슬러 여전히 호소력을 갖는다.       

  작가들은 대개 가장 마지막 작품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기를 바라겠지만 그들의 처녀작, 또는 등단작에는 이후의 작품들 속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투명한 맨살, 말랑한 속살 같은 것이 만져지게 마련이고 그것은 이후의 풍성함이나 정교함 보다도 훨씬 더 독자인 나의 마음을 끈다. <나목>도 물론이었고 이 꾸무적대고 느리적대는 가을의 문턱에서 간만에 찡, 하게 다시 읽은 아름다운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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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매미가 막바지 울음을 울고 있고 이제 곧 가을이다. 이 여름, 호된 더위 속 전쟁 같은 육아를 치러야 했다. 어제 아침엔 영달이가 포도알을 삼키는 바람에 십년감수. 그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처음 보았다. 새파랗다 못해 새카맣게 질린. 우는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는 너무 놀라 울먹울먹. 아빠가 등을 두드리고 엄마가 영달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뭉글뭉글해진 포도알을 빼내자 그제서야 우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안절부절 제정신이 아닌 나를 보았다. 영달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안색이 돌아와 다시 생긋거렸지만 나는 이 아기가 정말 내 아기인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또 안아주고. 여우누이뎐의 구미호 어미마냥 가슴절절. 이럴 때 보면 나는 뭣도 아니고 그냥 하염없이 바보 같은 엄마인 것이다.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행복하다는 것은 소스라쳐 놀라는 일 없이 자기 자신을 알아채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썼다. 한때 부디 그랬으면, 했고 여전히 일리있는 발언이지만 이거야 원. 엄마들은 예외랄 수 밖에.       

#  오빠가 출장 왔다가 잠깐 집에 들렀다. 엄마는 피로한 기색일랑 싹 접은 채 부랴부랴 국을 데우고 조기를 굽고. 든든한 밥 한끼 먹여보내기 위해 수선을 떨었다. 오빠는 뚝배기에 밥을 말아 조기도 올리고 파김치도 올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사람을 보고 웃기는 해도 안기지는 않는 영달이가 외삼촌 품에 가서는 어째 얌전을 떨었다. 땡깡쟁이였던 내가 또 다른 땡깡쟁이 딸을 낳았다는 것이 오빠는 못내 신기한 모양이었고 그참에 옛날 옛집에 살던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오빠는 어릴적부터 온순하지만 강했고 나이 먹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그 점 고맙고 든든하지만 단단한 어깨를 보고 있자니 저것이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단하니 얼마나 또 무거울까 싶어 안쓰러웠다. 사춘기 무렵에는 오빠를 향해, 오빠의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을 향해 복잡한 양가감정도 많았는데 세월이 지났다고 고스란히 묻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빠도 어렸다는 것. 나도 부모가 되었다는 것. 그런 사실들이 갖가지 모순된 감정들을 뭉근한 이해로 승화시켜주기도 한다. 모처럼 만났는데도 오빠는 오래 있지 못하고 커피 한잔 마시곤 다시 서울로 출발했다. 전천후 돌격기의 양날개 같은 어깨에 힘을 빡 주고서. 당부의 말은 엄마가 다 했으니 나는 영달이를 안고 손을 높이 흔들어주었다.     

#  운전 중에 사고를 낼 뻔 했다. 더구나 뒷좌석에 영달이와 엄마까지 싣고서. 무개념 차선변경녀, 바로 나였다. 졸음운전까지는 아니지만 머릿속이 약간 멍하거나 띵했고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좌측 깜빡이 넣은 채 마구 왼쪽으로 돌진. 사각지대라 불리는 곳의 은색 승합차는 전혀 안 보였고 뒷쪽의 빨간 마티즈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빠앙-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승합차의 뿔난 아저씨 멈춰선다. 욕 먹어도 쌀 만큼 잘못이 명백하므로 손을 반짝 들고 워워, 죄송하다는 사인을 보냈는데 머릿속은 계속 멍한 상태. 어제는 영달이 목구멍에 포도알이 들어가는 줄도 모르더니 오늘은 개념박살 끼어들기로 세 모녀가 다 같이 황천길 갈 뻔 했다. 아무래도 요새 좀 피곤한가 보다. 피곤할 땐 운전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까운 데만 왔다갔다 하다보니 방심하고 정신 안 차렸던 것이 문제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무슨 짓을 저지르며 집까지 왔는지 그제서야 제대로 기억이 났고 반성을 했다. 이런 일이 없는데, 이런 일이 없는데, 만 계속 중얼중얼. 앞으로 정말 이런 일이 없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 영달아, 그나저나 엄마 너무 믿지 말아야겠다. 엄마가 요모양 요꼴이래서 미안.      

9월의 시작이 이랬다. 조심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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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9-0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심성도 조심성이지만, 피곤하실 때는 쉬셔야죠..

깐따삐야 2010-09-02 18:22   좋아요 0 | URL
그쵸? 그나저나 요새는 어째 쉬어도 피곤합니다. 애엄마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닌가 봐요.ㅠ

레와 2010-09-0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얼마나 놀랬을까..!

깐따삐야 2010-09-02 18:25   좋아요 0 | URL
그 순간엔 얼얼했고 집에 도착하니 식은땀이 송송 맺히더라구요. 혹 징크스가 생길까봐 오늘 일부러 어제 갔던 그 길로 운전했어요. 조심 좀 하다보니 이번엔 뒤에서 빵빵! 우리나라에서는 길에 목숨 내놓고 운전하는 것 같아요.

pjy 2010-09-0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하지요--; 우선은 피곤을 풀고 충전한뒤! 그담에 조심 또 조심입니다~

깐따삐야 2010-09-03 16:13   좋아요 0 | URL
처서는 말로만 처서였나요.ㅠ 충전 제대로 하려면 백만년은 쉬어야 할 것 같아욤. 흑!
 

나는 어머니 무덤이 있는 우리 집 선산의, 다복솔에 덮인 작은 산등성이가 그리워서 새벽 술을 마시면서 식구들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했습니다. 내게는 그 작은 산등성이가 세계의 중심입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유한(遺恨)과 동의어입니다. 

슬픈 그리움의 원적(原籍)입니다. 

- 이윤기, '그리움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하면' 中, <어른의 학교> -  

  시공을 초월한 광활한 사유를 하셨던 어른도 알고보면 어머니 무덤이 있는 작은 산등성이가 세계의 중심이었다. 다시 읽으니 넉넉한 촌철살인의 경구들 속에서 위의 고백이 눈에 띤다. 안타깝기에 앞서 참 아까운 죽음이지만 이제는 그리움이 시작되는 저 푸근한 산등성이로 훨훨 날아가시길 빈다.  

  어린 것들도 능히 스승 노릇을 하니 우리 사는 데가 온통 학교가 아니고 무엇이냐던 겸손한 말씀처럼 남은 사람들은 그 배움의 의지와 자세를 기억하며 주어진 삶을 차곡차곡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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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8-28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으로 호칭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죠. 갑작스런 소식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깐따삐야 2010-08-28 12: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앞으로 한 십년은 더 활기차게 쓰셨을텐데 참 아깝고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