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책을 읽을 때보다 알라딘 서재의 옛날 글들을 읽어보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 그땐 그랬지의 심정으로. 가끔은 시간이 없어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지난 글들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한다. 댓글까지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시점으로 돌아가 그날의 시선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그 중엔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버렸던 글과 글쓴이도 있고 제대로 친분도 쌓기 전에 흔적만 남기고 잠적한 글쓴이도 있다. 어떤 글쓴이는 내가 그 사람의 글에 반해 알라딘에 둥지를 튼 것을 기억하는지 잊었는지 더 이상 삶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신의 관념을 읽고 싶기 보다는 당신의 생활을 읽고 싶어요. 그러니 써주세요.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온라인의 특성이자 한계일 뿐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나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나 눈코가 다른 곳에 쏠려 있을 때는 글 한 줄 남기기도 어렵지 않더냐고 반문하면서도,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마냥 그 이름이 그 삶이 그립다.

 

나 대신 술마시는 사람. 나 대신 연애하는 사람. 나 대신 여행하는 사람. 나 대신 싸우는 사람. 나 대신 욕을 하는 사람. 나 대신 책을 사는 사람. 나 대신 공부하는 사람. 나 대신 아파하는 사람. 나 대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 뿐인데 독자인 나는 대리체험을 넘어 대리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달하고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호르몬의 작용을 절절하게 느낀다. 그리고는 만난 적이 있든 만난 적이 없든 오래오래 그들의 안녕을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공용화장실 옆 후미지게 붙어있던 춥춥한 동아리방이 어린 날의 내게는 낙원이었듯 어떤 의미에서는 이곳 역시 그러하다.

 

삶이 없는 글은 빛이 없고 글이 없는 삶은 그림자가 없다.

그간 알라딘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고로, 지금처럼 살고 읽고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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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없는 글은 빛이 없고 글이 없는 삶은 그림자가 없다.
삐야님, 명문장! 담아갑니다. 어디? 가슴에.^^
빛과 그림자를 늘 말하는 울옆지기 말이 생각나네요.
빛이자 그림자, 빛도 그림자도 필요한 것.
참 좋은 계절,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깐따삐야 2012-11-21 16:39   좋아요 0 | URL
빛도 그림자도 필요한 것. 그렇죠? 프레이야님도 내내 행복하세요.^^

다락방 2012-11-1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의 글들은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두고 싶어져요. 저 역시 나지막한 삶의 이야기들을 깐따삐야님의 글을 통해 대리만족하며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저는 결코 쓸 수 없을테니 말이죠.

깐따삐야 2012-11-21 16:41   좋아요 0 | URL
아마 저도 다락방님처럼 아름답게 솔직해지긴 어려울 거에요. 솔직한 건 쉽지만 추해지지 않기란 참 어려워서. 다락방님의 삶과 글을 경외심을 갖고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요.

Mephistopheles 2012-11-1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없는 글은 빛이 없고 글이 없는 삶은 그림자가 없다.
하지만 깐따삐야님 서재 대문 문구엔 모든 이론은 회색!

너무 심오합니다...^^

깐따삐야 2012-11-21 16:43   좋아요 0 | URL
살아 있는 나무는 푸르다, 가 핵심이랍니다.^^
저는 심오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고 메피님의 요즘 건강은 괜찮으신지 어쩐지 여쭤보고 싶네요.

레와 2012-11-1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

깐따삐야 2012-11-21 16:43   좋아요 0 | URL
레와님, 동기모임은 잘 다녀오셨죠? ^^

2012-11-19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명문장 마음에 담아갑니다../서재든 블로그든 오래 하는 게 전 무조건 좋더라구요. 제가 못 그래왔지만 (다른 블로그에서) 여튼 그게 무조건 진리라고 생각은 합니다.^^

깐따삐야 2012-11-21 16:47   좋아요 0 | URL
섬님, 반갑습니다.
전에 네이버에도 블로그가 있었고 싸이월드도 잠깐 했었는데 여기가 가장 편하더라구요. 많은 책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안정감과 든든함이 있어요. 번쩍번쩍하는 것도 덜하구요. 이상하게 변덕을 안 부리게 되요.^^

2012-11-25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6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