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에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감성 충만한 중3 여학생들과 이 영화를 함께 보았다.

삼사십대만 공감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과꽃 같은 여중생들과 무리지어 웃고, 울었다.

 

소리를 만드는 여자와 공간을 만드는 남자.

머물고 싶은 여자와 떠나야 하는 남자...

'잘' 사랑하는 법은 몰라도 우리 모두 '다르게' 사랑했고 그 사랑은 각자 특별했다.

 

그리고 이 시가 떠올랐다.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 나희덕

 

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잿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빛마저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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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1-0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꽃 같은 여중생들과 무리지어 웃고, 울었다.

깐따삐야님은 짧은 글을 써도 꽃같이 쓰네요. 이 글은 코스모스 같아요.

깐따삐야 2012-11-07 10:10   좋아요 0 | URL
그 나이 땐 얼굴에 난 여드름, 두꺼워지는 종아리를 걱정하지만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곱디고운 과꽃 한다발과 마주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흉흉한 세상이어도 아이들은 대부분 여리고 예쁘고 착합니다.^^

프레이야 2012-11-06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ᆢ이런 시가 있군요. 절묘하게 느낌이 전해옵니다. 저도 이 영화 울집 십대 여학생이랑 봤어요. 수지 때문에 중딩한테도 꽤 관심가는 영화ᆢ 근데 아주 재밌고 뭔가 느끼는 것 같은 표정으로 보더라구요.^^

깐따삐야 2012-11-07 10:14   좋아요 0 | URL
나희덕 시인은 쉬운 언어로 독자의 가슴에 날카로운 무늬를 새겨넣곤 합니다. 훌륭한 시인이어요. 영화 속에서 배수지와 이제훈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로 가장 몰입해서 보았던 멜로였어요.

Mephistopheles 2012-11-0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안봤습니다만.. 그래도 엄태웅씨가 연기했던 직업군을 비교적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하더군요. (집에 며칠 못들어가고 부시시 꽤재재한 모습.)

깐따삐야 2012-11-07 10:16   좋아요 0 | URL
한가인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엄태웅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수수털털했어요. 메피님도 한때 집에 잘 못 들어가고 잠 없기로 유명하셨는데. 그쵸?

blanca 2012-11-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여중생들과 <건축학 개론>을 보셨군요.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다니 놀랍네요. 저야 그 비슷한 언저리 학번으로 완전 공감, 몰입해서 봤답니다. 저는 왜이리 이제훈에게 이입이 되던지요. 여자인데 자꾸 수지가 아닌 이제훈의 그 치기, 어리석음, 상처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너무 이른 감정들이었나봐요. 스무 살에는요.

깐따삐야 2012-11-07 10:22   좋아요 0 | URL
누군가를 좋아하고 표현할 길은 막막하고 그 막막함 속에서 혼자 설레이거나 절망하고. 그런 과정을 사춘기 아이들도 겪고 있다보니 꼭 그 시절, 그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하더라구요. 저 역시 blanca님처럼 이제훈에게 이입을 해서 봤답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안쓰럽고 그리웠어요. 스물 초엽의 제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