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E는 세번 만난 남자에 대해 털어놓았고 나는 그녀의 혼사를 부추기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그저 타인의 고약한 호기심 때문에라도, 신변에 관한 질문 듣기 귀찮아서라도, 그냥 남들 사는대로 살아야 편해. 무슨 오십줄 찍어당기는 중늙은이마냥 충고했고 E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 누그러뜨리곤 이번엔 잘 한번 만나볼까, 했다.
그런 그녀가 주말에 네번째 데이트를 마치고 백화점에 가려는데 남자가 같이 가자며 따라오더란다. 보아두었던 시계를 손목에 차 보았고 막상 차니 안 예쁘네, 내려놓곤 구경을 좀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그날 밤, 남자로부터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냐는 문자가 왔고 E는 네번 만나놓고는 무슨 사랑타령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잘해보라는 주변의 종용이 있었기에 사랑은 서로간의 존경과 신뢰라 생각한다고 답문을 보냈단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E는 이런 답문을 받았다며 휴대폰 너머로 씩씩거렸다. 남자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사랑을 바란다고 말했고 E는 하필이면 백화점에 들른 날, 이런 문자를 보내는 까닭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그냥 들으면 참 좋은 말도 상황이 그러하니 칼 가는 소리로 들리지. 시계는 대략 E의 봉급의 1/4 쯤 되는 가격이었는데 E 모르게 남자의 눈이 팽그르르 돌아가고 있었나 보다.
미술 전공했다더니 사랑을 무슨 백제 고분 쯤으로 생각하나 싶어 나는 문득 발끈했다. 저보구 사달라고 그러기를 했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된장녀 취급이냐, 몇번 만나지도 않아놓구 어따 대고 문자 쓰냐, 늘어놓다가는 정신차리고 도리도리. 모처럼 잘 해보겠다던 E의 진지한 얼굴과 그녀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한 마디 하길, 그래도 교양이 있으니 넌지시 말하지. 대놓고 빈정대는 인간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을 해놓고도 썩 그럴싸하지는 않았지만 귀얇은 E는 음, 듣고 보니 그러네, 한다.
암만 그래도 태도가 미심쩍고 괘씸하여 덧붙이길 상냥하되 직접적으로 물어보라고 일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저의가 무엇인지. 그간 쇼핑을 해보니 가격에 맞추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나한테서 무엇을 보고 그런 문자질을 했는지. 한번 똑바로 물어보라 했고 돌아올 응대가 나도 참 궁금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람한테 가든, 시집을 가면 여자는 남편 때문에 부정을 타게 되지. 이렇게 말하는 내가 이미 내 아내를 얼마나 못쓰게 만들었는지 모른다네. 내가 못쓰게 만든 아내로부터 행복을 구하는 건 너무 억지가 아닌가. 행복은 결혼으로 천진함을 잃어버린 여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끝없는 변덕과 고뇌로 가족과 친구는 물론 독자마저 신경쇠약으로 몰아가는 이치로는 이렇듯 날카로운 통찰가요, 반듯한 양심가다.
실상이 이렇지만 애인 있어? 결혼은 언제쯤? 아이는 있고? 귀찮은 질문들이 귀찮아서 대개는 평범에 기대어 산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E의 혼사를 부추길 것이지만 결혼 전부터 여자를 못쓰게 만드는 남자는 아니 된다. 고작 네번 만났으면서 자기가 벌어 자기가 쓰겠다는 것도 못 쓰게 하려고 말이지. 이치로의 말처럼 이래저래 E를 못쓰게 만들 남자 같다.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