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남편 출근하는데 도톰한 재킷을 챙겨주고 나는 집에서 쉬고 있다. 병가 기간이 끝나 일주일간 다시 학교에 나갔지만 곧바로 산전휴직을 다시 받았다. 아이들이 기침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 그냥 다 접고 쉬어야겠단 결심을 했다. 예방접종도 믿을 수 없고 타미플루도 미심쩍은 고위험군, 의심 많은 임산부인지라 두문불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뉴스를 보니 오늘부터 신종플루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었단다. 각급 학교장에게 떠밀던 휴교 조치도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있는가 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반 학생 하나도 확진 판정을 받아서 내가 있는 동안 얼굴을 못 봤다. 다른 반은 확진 및 의심 환자가 더욱 많을뿐더러 선생님 한 분도 확진 판정을 받아 병가를 내셨다. 얼마 전, 출산한 선생님도 내게 전화를 주셨다. 본인도 아이 때문에 무척 조심하고 있다면서 산전휴직을 당겨썼다고 하니 정말 잘했다고 하신다. 날씨는 점점 추워질 텐데 이 공포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걱정이다.

  나의 건강과 안위에 이렇게 신경써가며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주변에 송구하고,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또 당연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돌아왔을 때, 두 분의 선생님이 유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많이 기다리셨던 분들이라 그만큼 안타까움이 컸다. 입덧 때문에 뱃속의 아이를 미워하고 무거워지는 몸 때문에 종종 신경질을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의 인연은 하늘의 뜻이지만 아이를 지키는 것도 엄마의 의무라는 결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육아 책이나 인터넷을 보니 태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특별히 시작한 건 없다. 십자수나 뜨개질을 권하기도 하던데 그냥 걸레질 열심히 하는 게 더 쉽고, 클래식을 들으면 정서안정에 좋다는데 내가 그다지 당기지를 않으니 잘 안 듣게 된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도 어쩐지 낯간지러워서 평소처럼 소설책 등등을 읽고 있다.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먹거리. 잃었던 입맛이 차츰 돌아오면서 한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 입덧이 심할 때는 밥 익는 냄새만 나도 메스꺼웠는데 요즘은 밥이 가장 맛있다. 특히 동치미나 냉이나물처럼 상큼하거나 향긋한 반찬들이 구미를 당긴다. 나중에 세상에 나와서도 우리 음식을 고루 즐길 줄 아는 아이였음 좋겠다.

  하긴 지금 같아선 아무런 욕심도 안 생긴다. 학교에 돌아가 아이들을 보니 모두가 소중하다. 눈이 두 개, 코가 하나, 손가락, 발가락이 멀쩡한 것도 신기하고 다행스럽다. 아이의 행동은 미워해도 아이는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이해가 된다. 아이들을 저만큼 아무 탈 없이 키워낸 부모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입으로는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며 잔소리를 하지만 감기 안 걸리고 건강하게 학교에 나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 외 나머지는 다 욕심이란 생각도 든다. 딱 이만큼의 마음으로 살면 참 행복하련만 부모 욕심이 어디 그런가. 나 역시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은, 딱 그만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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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0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 최고의 건강 유지 비결이랍니다.
제가 에너지 여사로 사는 것도 삼남매의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 덕이라 생각해요.
잘 먹고 욕심내지 않는 평상심이 최고의 태교겠지요.^^

깐따삐야 2009-11-04 10:2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순오기님처럼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어떤 태교를 하든 결국 저와 제 남편을 닮았으려니 합니다.^^

레와 2009-11-0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이 건강 조심해요! ^^

깐따삐야 2009-11-04 10:21   좋아요 0 | URL
넵! 레와님도 감기 조심.^^

무스탕 2009-11-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임산부들은 특히나 몸 사려야해요. 이렇게 뒤숭숭한 시국에 말이에요..
건강 잘 살피세요~

깐따삐야 2009-11-04 10:2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무스탕님도 건강 유의하세요~

비로그인 2009-11-0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 달을 품어 밖으로 끄집어내서, 희노애락을 지켜보는 존재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사랑과 믿음은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것 같아요.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에 놀라는 순간이 많아요.

깐따삐야 2009-11-04 10:30   좋아요 0 | URL
지금은 그저 건강하고 평범한 아기였으면, 하고 바랄 뿐이에요. 모든 아이들이 엄마의 이런 바람 속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겸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