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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스 등록을 했다. 원래 학원이고 헬스고 한번 등록하면 백퍼센트 출석률을 자랑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어찌나 푹푹 찌는지 문 밖에 나서는 게 두려웠다. 다들 내 마음 같았는지 헬스장도 썰렁했다. 작년 겨울에 뵈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계셨고 트레이너와 수다를 떨고 계시는 아주머니, 잠이 덜 깬 건지 알듯 말듯 애매한 표정의 아가씨, 내내 고개를 숙인 채로 러닝머신 위를 걷고 있는 청년...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미처 보지 못한 사이 다녀간 사람들도 있으려나. 아무튼 쩌렁쩌렁 울려대는 최신 가요가 무색할 정도로 한적했다. 한우 꽃등심을 점심으로 먹으며 끊임없이 ‘신뢰’를 강조, 또 강조하는 장관과 북한 원자로 소식을 케이블 뉴스로 들으며 살짝 짜증날 뻔 할 때가지 열심히 걸었다.  
 그 동안 학교 다닌다는 핑계로 운동도 멀리했고, 시간을 단축한다는 핑계로 걸어가도 되는 길을 차를 타고 다니는 등 움직이는 일에 게을렀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보다 육체가 정신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음 사이즈 바꾸는 일이 신체 사이즈 바꾸는 일보다 이젠 더 쉽더라(?)는 것이다. 고로, 운동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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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가 그랬던가. 여자는 사랑을 하면 천재가 되고 남자는 바보가 된다고.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라고 갸웃거리는 그 앞에서 대놓고 쿡쿡거리며 저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여자는 잘난 척 하는 것뿐이고 남자는 그저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대충 편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남자를 남자 자신보다 더 잘 통찰하는 여자와 아무리 고심해도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남자. 알아야 하고, 알아주길 바라는 여자에 비해 몰라도 괜찮고, 몰라줘도 계속 여자를 사랑할 의향으로 충만한 남자. 그래서 바보가 천재보다 더 행복하다고 태고 이래 숱한 고전들이 주장해오고 있는가 보다. 티끌 섞이지 않은 미소를 계속 보고 싶거든 남자를 너무 들볶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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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예전부터 나와 심하게 다투었을 때도 아침이면 항상 내가 먹을 국과 반찬을 정성껏 준비해놓고 외출하셨었다. 매끈하게 다림질 된 블라우스는 물론이고.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계란말이와 빳빳한 셔츠 깃을 보면서 이것을 먹고, 이 옷을 입으면 내가 지는 건가? 지금보다 어릴 땐 그런 몹쓸 생각도 했지만 요즘은 어째 코끝부터 찡해진다. 엄마는 제 할 일을 완벽히 해야 어디 가서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신조로 살아오신 분이고 안팎에서 그 신조를 성실히 실천하고 계신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처럼, 한 마디로 나는 엄마의 상대가 안 되는 것 같다. 반에 반만 해도 좋은 아내, 엄마가 되겠지. 다른 한편으론 그렇게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오기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에 안쓰럽기도 하다. 그만큼 자식들의 인생에 빛과 소금이 되어주신 분인데 나는 영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인 것 같아 요즘은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인생의 굽이굽이, 힘들 때마다 엄마의 씩씩한 자존심을 기억해야겠다. 벤치마킹도 보답의 한 방식이었으면. -_- 

그나저나 덥다, 더워. 소나기라도 잠깐 뿌렸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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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6-2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장마라던데요.
예전에 예상은 했더랬지만, 실제 연애를 하시면서 이렇게 살짝 남기는 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정말 예상대로 곱고 이해심 많고 현명하신 거 같아서 , 좋아요. :)

깐따삐야 2008-06-28 22:27   좋아요 0 | URL
비가 시원하고 촉촉하게 내리네요.
생각은 그런데 생각이 드러나는 방식이 엽기적이라는 게 문제에요. -_-;

순오기 2008-06-2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어머니의 잔소리는 소나기가 아닌가요?
나는 소나기로 쏟아부어요~ '어릴때 습관, 젊을 때 정신이 평생 간다.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거든!'
그러는 나는 반듯한 습관이나 바른 정신으로 내 할일 다하며 사는 것도 아니면서...ㅜ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라고 말하는 그남자가 곁에 있군요.^^

깐따삐야 2008-06-28 22:32   좋아요 0 | URL
우리 엄마도 아마 잔소리를 시원하게 퍼붓고 난 후 청량감을 느끼실까나요? ㅋㅋ '쿨하게 한걸음' 그 소설에 나오기를, 늙어가시는 부모님은 아이 대하듯 대해야 한대요. 되게 공감했어요.
행복하게 속아주는 남자가 곁에 있어 다행이죠.^^

라로 2008-06-2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그렇게 더웠나요????님과 제가 가까운데 사는데 전 괜찮던데????ㅎㅎㅎ
암튼 넘 오랫만이죠????
브리핑에 올라온 님의 글 보고 반간마음에 슝~.^^
그동안 저도 뜸했걸랑요~.^^
암튼 넘 반가요~.^^
깐따님의 어머님을 벤치마킹하고 싶어요, 이 대전 조그만 제 집에,,,

깐따삐야 2008-06-28 22:34   좋아요 0 | URL
오늘 나비님 계신 대전에도 비가 왔겠군요. 오랜만이에요, 정말.^^ 부지런히 안부도 챙기고 그래야 했는데 마음만 먹다가 그새 방학이네요.
저희 엄마처럼 사시면 쓰러지실지도 몰라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거든요. 그나저나 나비님은 지금도 다정하고 열성적인 어머니 아니셨던가요? ^^

레와 2008-06-3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방학해서 좋아요..^^
(쌩뚱~)

깐따삐야 2008-07-04 14:36   좋아요 0 | URL
방학 끝나면 논문이 샤사삭 완성되어 있다면 좋겠어요! 욕심쟁이 우후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