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카레 속의 닭가슴살이 문제였나 보다. 사흘 동안 뱃속이 영 개운치 않았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꼭꼭 씹지도 않고 대충 삼켰으니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의외로 나의 위장은 너무도 예민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뭔가 신경 쓰는 일이 있을 때 단백질이 들어가면 반드시 탈이 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그냥 김치에 된장국을 먹는 것이 최고인데. 이틀 동안 약도 먹어보고 배를 문지르며 자 봐도 늦체 기운이 영 가시질 않아 아침에 죽만 조금 먹고 병원에 갔다. 엄마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소*신경외과를 명명했다.
“엄마, 거긴 신경외과지. 내과가 아니잖아.” “나는 거기서 감기도 고치고 배탈도 고치고 다 고쳤다. 가깝고 좋잖아. 의사 선생님이랑 안면도 있고.” “그래도 다들 목발 짚고 휠체어 타고 물리치료 받는데 배 아파서 왔다고 하면 좀 웃기잖아.” “아휴, 괜찮다니깐. 어차피 의대에서도 처음엔 다 똑같이 배우는 거야.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코앞인데 뭐하러 멀리 가. 얼릉 갔다 와. 얼릉!” 어차피 실랑이를 해봐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할 거면서 나도 참.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의사 선생님은 수술 중이었고 기다리는 동안 책장에서 수필집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동료 여교사를, 결혼한 후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고 평생을 교단을 상대로 짝사랑만 하고 살았기에 억울해서 미치겠다, 나도 주고받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규우, 절규하는 어느 선생님의 수필을 읽다보니 뱃속이 더욱 심하게 꾸르륵 거렸다.
“어디가 안 좋아서 왔어요?” “배가 아파서요...” 떡두꺼비 인상의 후덕하신 의사 선생님은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미소를 담은 채 “배가 아파서...”라고 내 말을 따라하셨다. 아,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신경통쯤은 당연한 것이고 감기에 걸려도, 배탈이 나도, 심지어 눈이 아파도 이 병원으로 달려오니 의사 선생님도 이제는 우리 두 모녀를 대하시는 모양이 아주 친숙하시다. 이사 오기 전, 그 동네에서도 엄마는 오**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과 안면을 튼 후 어디가 안 좋기만 하면 부리나케 드나드셨다. 어느새 간호사들하고도 친해져서는 떡도 돌리고 김밥도 싸서 갖다 주시는 등, 병원 관계자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였다. 물론 그 덕에 종종 이런저런 혜택을 입기도 했지만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정형외과로 달려가는 건 좀 민망한 일이다. 아무튼 엄마는 그 고유의 습관을 못 버리시고 이 동네로 와서도 근거리 병원 중 가장 인상 좋아 뵈는 의사 선생님을 물색하시곤 내 맘대로 주치의를 삼아 버리셨다. 이제는 아래층의 약사 아주머니도 우리 모녀를 보면 반가워하신다.
의사 선생님은 배의 아픈 곳을 이곳저곳을 눌러 보시더니 주사와 함께 약 처방을 내려주셨다. 나도 엄마 딸인지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난번에 문틈에 끼어 다쳤던 손톱을 내보이며 제대로 잘 자랄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양쪽 손톱을 비교하며 가만히 들여다보시더니 손톱이 계속 자라서 올라오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엄마가 사람을 잘 보긴 보는 것이 지난번 동네 의사 선생님도 그렇고, 이 분도 그렇고 괜히 깐깐한 척 굴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진료를 잘하시는 것 같다. 세상에서 그렇게 아픈 주사는 없을 것 같은 주사를 맞고 약 한 봉지를 먹었더니 뱃속이 조금 편해지는 느낌이다. 단순히 병원에 다녀왔다는 기분일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지청구처럼 “네가 아무리 까스박명수를 들이키고 불가사리를 마셔대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집에 와서 이게 다 엄마가 해준 카레 속의 닭가슴살 때문이라고 칭얼댔는데 엄마는 나는 잔뜩 먹고도 괜찮았다, 뭐든지 엄마 잘못이라고 핑계 대는 거에는 아주 타고났다, 이제부턴 네가 한번 해먹어 보라고 하시는 통에 도리어 말로 주고 되로 받은 격이 되어버렸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엄마는 가까운 동네 병원 하나 알아놓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고 하시지만 이제부터 건강 잘 챙겨서 병원 가는 일 없게 만들고 싶다. 다들 목 집고, 허리 잡고, 다리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 곳에서 혼자 배 문지르며 나오는 일도 참 뻘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