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을 쐬고 돌아왔습니다. 가장 춥다는 날짜에 맞추어. 아리도록 볼을 할퀴고 지나가는 겨울바람을 맞고 싶었습니다. 계절 한 가운데에 서 있다보면 나는 아주 작은 존재이면서, 나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나를 품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훈훈한 방안에서 키보드 위의 열기만을 느끼다가 밖으로 나가보니, 계절은 겨울을 피워내는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열기를 따라 더 멀리 떠나지 않은 것이 아쉬웠어요.
돌아와서 영화 '행복'을 보았습니다. 겨울이 오면 자연스레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까만 생머리의 심은하, 빨간 머플러의 이영애가 흰 눈을 배경으로, 백설공주의 선명한 이미지처럼 상상 속의 시야를 사로잡습니다. 영화 행복에는 얼음장 밑을 흐르는 깨끗한 냇물처럼, 투명한 살갗 밑으로 실핏줄이 다 비쳐 보일 정도로 청초한 임수정이 보였습니다. 아담하고 갸냘픈 그녀는 언뜻, 소녀의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눈빛과 언어 만큼은 사랑을 알고, 아픔을 아는 숙녀의 그것이었습니다.
한줌 안개처럼 맑고 차분한 은희씨(임수정 분)는 철없는 건달 영수씨(황정민 분)를 기적처럼 살려내더니만 그가 잠든 사이, 신작로를 내달립니다. 40% 밖엔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연약한 폐를 가진 그녀는, 애써 살려놓고 나니 이젠 네가 지겹다는 영수씨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립니다. 숨이 차올라 죽기 위해서. 그로부터 떠나주기 위해서. 둥지에서 미끄러진 작은 새처럼 창백하게 파닥이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아주 오랜만에 조금 울었습니다. 개봉 날짜에 맞추어 영화관을 찾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스러웠어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보단 아예 커피를 엎지르는 편이 나으니까요.
이타적인 은희씨와 이기적인 영수씨는 서로 다른 타인이면서, 하나 되는 연인이고, 야누스적인 우리 삶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항시 목전에 두고도 아파 보이지도, 두려워 보이지도 않는, 상냥하고 친절한 은희씨. 간이 뒤집어지고 나서야 세속놀음의 허무함을 알아버린 철딱서니 명수씨.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반쪽짜리 폐와 함께 해온 은희씨는 고통과 죽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에 익숙합니다. 반면에 희희낙락하던 삶에 갑자기 쳐들어온 간경변이란 병 앞에서 건강했던 명수씨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은희씨는 영수씨가 좋아서 필요하고, 영수씨는 은희씨가 필요해서 좋아합니다. 먼저 상처받는 쪽은 전자고, 나중에 후회하는 쪽은 후자입니다. 상대를 위해 먼저 떠나주는 쪽은 전자고, 누추한 반성과 함께 나중에 돌아오는 쪽은 후자입니다. 은희씨와 영수씨도 이 구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식어가는 손으로 돌아온 그의 손을 잡아줍니다. 누구를 향해서도 쉽사리 어리석다, 바보 같다, 지나쳤다고 비난하지 못하는 건 우리 내면에 은희와 영수라는 두 얼굴이 공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신이 정말 좋다고 고백하는 은희씨에게 영수씨는 신기하다는 듯 말합니다. "그런 게 있긴 있구나. 정말..."
'그런 것'과 마주했을 때, 그것이 비록 개미지옥일지라도, 행복한 함정처럼 빠져드는 건 생과 사를 초월한 본능 같은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 이렇게 묻습니다. 어차피 고통이고 두려움일진대 삶과 죽음 가운데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은 무엇이 될까요. 사랑을 택하겠습니다. 그것이 인간 아닐까요. "뽀뽀를 하고 있는데도 왜 뽀뽀가 하고싶지..." 은희씨의 귀여운 대사 속에서 반짝, 하고 빛나는 행복을 봅니다. 비록 찰나의 희망일지라도, 길고 지루한 삶과, 삶 이후의 죽음 가운데서 꺼질듯 타오르는 그것은, 남아있는 40%의 목숨을 바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영수씨를 향한 은희씨의 마음처럼, 내 40%의 숨결로 상대에게 60%의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그렇듯 나:너 = 4:6이란 비율로 사랑한다면, 어느새 5:5 따위가 중요해지지 않는 상생(相生)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을까요. 하지만 사랑이 어려운 것은, 내 안에 영수씨와 은희씨가 6:4의 비율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그게 사람이겠지요. 그냥 사람. 미안함을 알고 고마움을 알면서도, 결국 편안함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 결국 그를 향한 비난 대신, 나 자신을 비롯한 인간 전반에게 동정을 보내게 됩니다. 오열하는 영수씨의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던 건 아마도 나 자신을 향한 포옹이겠지요.
'외출'했던 허진호가 '행복'하게 돌아와서 반갑습니다. 잠깐의 실망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렇듯, 더욱 반가우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