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말단 직원들끼리의 속닥한 분위기의 모임인 줄 알았더니, 웬 걸 사장이랑 이사도 참석하는 나름의 대형 모임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내 퇴사 문제도 언급되고 또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송별회 분위기 비스무리하게 되었다. 1차에서 끝내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삼순이나 봤으면 딱 좋았을텐데, 본의아니게 송별회 분위기가 되었으므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서 사실은 피곤해 죽을 것 같았는데 억지로 2차를 갔다. 역시나 가기 싫었던 내 느낌은 들어맞아서 회사의 안 좋은 상황과 그 책임을 묻는 청문회 비스무리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사장님 편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들었다. 내가 끼여들어서 뭐라고 말할 처지도 못 되거니와,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인정한다. 우리 사장이 멍청했다는 사실을. 바보같이 여러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우리 사장을 이용했을 뿐이고 우리 사장은 그 덫에 얼씨구나 하고 빠져줬던 것이라는 것을. 미래를 위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잘못은 순전히 우리 사장에게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와 업무 성격상 사장이랑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고, 남들은 알지만 또한 모르는 사실과 고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사장의 입장에 가깝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난 편치 않았다. 그들이 짚어내는 실수와 잘못된 점은 나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태도와 생각-그들로서는 당연할 수도 있는-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 역시 자기 편의에 따라 사장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나 그들이나 사장이나 다들 자기 입장이 가장 중요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사장도 진작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고, 그들 역시 맘에는 안들지만 월급은 나오므로 당장 뜻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이렇게 뒷다마나 까고 있는 것이다. 

맘에 안 들면 그만두면 된다. 그래서 난 그만둔다. 더이상 이꼴저꼴 보기 싫다. 비겁하다 욕해도 좋다. 난 이만 빠질란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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