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빈현의 서재에 들러 그의 일기를 읽었다. 그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글엔 그의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의 글엔 성의 앞글자가 한글로 되어 있다. 이제까지 어디서 본 대로 아무 생각도 없이 영문 이니셜을 썼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안개비가 내린다. 빗방울들은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랗지만, 내 뺨에 닿는 느낌은 꽤 선뜻하다. 내 기분만큼 심란한 날씨다. 드디어 ㅇ이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단다. 11월 정도까지 다니게 될 것 같다고. 이미 그녀의 마음은 결정된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해줬던 그녀가 그렇듯 마음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난 축하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착잡한 기분이라니... 곧 나도 떠날 것인데... 내가 먼저 떠날 것인데... 내가 돌아왔을 때 환히 웃으며 반겨줄 그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일 리도 없을텐데... 전부터 외국에 나가서 자신의 능력만큼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어하는 그녀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여행을 가겠다고 친구들에게 선포했을 때, 친구들이 느낀 감정이 지금 내 기분 같을까. 그녀의 빈자리가 벌써부터 몹시 허전하게 느껴지고 왠지 슬픈 기분이 든다.  

누구보다 일에 열심이고 삶을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그녀.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그녀는 훌륭하게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스스로 행복을 찾아내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제 삼주도 채 남지 않았다. 시간은 하루하루 빠르게 다가오는데, 준비는 점점 더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아직도 못 본 책들이 산더미이고, 해야할 일 또한 태산이다.

난 대체 왜 떠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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