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눈을 뜨니 8시 30분, 열나게 준비해서 나가도 지각은 확실, 그래서 9시 20분쯤 목소리를 깔고 전화했지. 울 사장, 너무도 담담하게, 그래 너 얼굴보니까 많이 안 좋은 것 같더라 하루 푹 쉬어라, 그리고 터진 일 한 건 해결하곤 푹 쉬었어. 계속 잠만 잤어.
꾀병을 부린 벌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컨디션 엉망, 머리도 지끈지끈. 정말이지 오늘같은 날은 빚독촉 전화같은 건 절대 받고 싶지 않아. 괜스레 사람들에게 짜증내게 돼.

그 동생, 올해 새로 들어온 여직원 K, 지금은 갈라진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동생,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질 않았어. 평소 여직원들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즐거워하던 나로선 예외적인 반응이었지. K가 여직원들과(결코 여직원들끼리만 어울리자는 건 아니었어) 어울리는 것보단 개인적인 용무 혹은 남직원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하나둘 K가 하는 일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어.  우선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사람 시키는 것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었지. 몰라서 묻는 것일 수도 있지 않아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건 모르면 물어서라도 배우는 수준이 아니라 숫제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다 해주는 수준이었어.  K는 자기가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게 아니라 일단 짜증을 냈어. 사장님 앞에서도 불퉁한 얼굴로 있기 쉽상이었지. 그런 그녀의 태도 뿐만 아니라 일처리하는 방식도 맘에 들지 않았어. 잘못 처리하거나 해야할 일을 안한 경우가 많았거든. 아니, 모르면 물어야 할 것 아닌가,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왜 안 묻냐고. 물으면 내가 자세하게 설명해줄텐데. 왜?

그저께 내가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랑 얘기를 하다가 K 얘기가 나왔어. 우리 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 동생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나봐. 그녀의 이야기로는 K가 우리 회사 유부남 차장 P랑 그렇고 그런 관계란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게야. 처음엔 괜한 소문이려니 했대. 자기도 전에 말도 안되는 소문에 휩싸였던 터라 그냥 남말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지어낸 얘기려니 했대. 그런데 그 소문이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또 듣게 된 데다가 결정적으로 그 유부남 P의 핸펀의 바탕사진에 지금은 흔하지 않는 K의 핸펀사진이 올려져 있는 걸 우연히 목격하게 된거야. 게다가 무심코 P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걸 듣게 되었는데, 야, 방 하나 구해봐라, 정말 같이 못살겠어, 라며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한다고 하더래. 그의 와이프랑 아이들도 다 아는 처지라 그 동생에겐 남일같지 않게 느껴졌었나봐. 평소 그 동생이 그 유부남 차장 P를 많이 따랐거든. 물론 공적인 면에서 말야. 그런데 그런 소문을 알게 되니까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만 불편해지나봐. K를 봐도 그를 봐도. 그때부턴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그 소문과 연결이 되더래. 다른 직원이 K보고 소개팅을 하라고 했더니 K가 P를 자꾸 쳐다보고 오히려 P가 적당히 변명을 하더라나. 일이 전혀 관련이 없을텐데도 P가 K의 자리에 자주 머무는 것도 그렇고, K가 출근한 뒤 꼭 1,2분 후에 P가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 그 모든 일들이 자꾸만 그렇게 엮여서 생각되어진다는 게야.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괴로워 죽겠대.

K는 앞날이 창창한 아가씨야. P가 아니더라도 주위에 남자들이 숱하게 있는데 왜 하필 유부남인 거지? P가 오래전부터 이혼을 생각해왔다고 하더라도(와이프 성격이 장난 아닌 걸 나도 알고 있지만) 한동안 노력하는 것 같더니 왜 갑자기 이혼이라는 거지? P가 이혼을 생각하는데 K와의 관계가 영향을 미친 걸까.  그런데 과연 K는 P를 사랑하는 걸까, P는 K를 사랑하는 걸까. 그렇게 피워대던 담배를 딱 끊어버릴 정도로?

오지랍 넓게 남의 사생활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을텐데, 왜 자꾸 K가 맘에 걸리는지 모르겠어. 아니 신경에 거슬리는 건가. 소문이란 게 알고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어.  K와 P와의 관계가 사람들이 억측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단순히 청춘남녀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 소문으로 인해 한 가정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차지하고서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K가 P를 대할 때 태도를 분명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둘이서만 만나는 자리는 피하는 건 물론이고. K가 정말로 P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설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일만큼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하고 단순히 철없이 굴 나이는 지났을 K가 쓸데없는 일에 휩쓸리기를 정말로 바라지 않아.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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