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 K, 내 친구 오빠다. 한때 이혼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가끔 딸네미랑 놀아주고 오빠랑 한두번 절에 같이 가줬을 뿐인데, 되게 고마웠나보다. 지금도 가끔 내 생각이 난단다. 헉. 유부남 말고 총각이 내 생각 해주면 좋으련. 난 이래서 안돼. 아줌마 아저씨들한테만 인기가 있다니까. ㅋㅋㅋ

아무튼 그 오빠, 오랜만에 만나서 차 한 잔 마시고 영화 하나 땡겼다. 이름하야 <킹덤 오브 헤븐>

사실 이 영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지만 순전히 시간에 맞는 영화 중에서 그나마 볼만한 게 그거 뿐이여서 봤는데,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술탄 살라딘>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흥미롭게 지켜봤다.

근데 역시나... 전쟁영화가 싫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골통이 깨지고 피가 난무하고 암튼간에 전쟁씬은 리얼하고 스펙터클하더라. 하지만, 역시 무의미한 전쟁이었다. 살라딘이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그 인물이 맞다면, 주인공 발리안이 진정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지켜내겠다는 사명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열심히 버티기 싸움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항복을 했어야 했다. 살라딘이라면,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그 말을 들어줄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는 그라면, 그 많은 생명들을, 그 고귀한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길 수 있는 길을 기꺼이 택했을 테니까. 

성지를 지키는 게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좋았을 것을. 종교를 가리지 않고 백성을 위한다는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할 필요도 없는 싸움을 위해 그 많은 생명들을 무가치하게 던져버릴 필요가 있었나 말이다. 무엇때문인가? 명예? 자존심?

어떤 이들에게는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그 둘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난 기꺼이 생명을 택하겠다. 나에겐 생명이 그 어떤 명예나 자존심보다 더 가치있고 소중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