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어린이날 전날에 K라는 새로운 분을 만났다. 정모때 잠깐 뵈고 언제 한번 술자리를 마련하자고 했었는데, 그분이 5월 셋째주쯤에 먼 나라로 가신다고 하기에 서둘러 날을 잡았더랬다.

K라는 분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잘 웃고 재밌는 분이셨다. 그 분이 쓰신 책을 한권 주셨는데, 그 분이 책의 제일 앞쪽에 있는 누란의 공주 운운하는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이니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 와하고 웃으며 이제부턴 그 분을 누란공주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누란공주,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자신이 몹시 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어쩌면 전생에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일 수도 있다는 누란공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아일랜드나 터키, 이집트, 사막 들이 어쩌면 내 전생 어딘가에 닿아있는 곳일지로 모른다는 생각이 은근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인사동 술집에서 나와 건너편으로 옮기려고 걷기 시작했을 무렵, 앞서가던 영과 누란공주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새벽 그 거리에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노래부르는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학과 진은 다만 웃을 뿐이었지만, 난 어느새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부르다 보니 그 노래 제목이 생각났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을 들으면서 즐겨 불렀던 <사랑밖에 난 몰라>였다. 이상하게도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마치 내가 사랑밖에 모르고 사랑에 목숨을 거는 순정한 여인이 된듯 애절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가슴에 들어있는 불을 토해내듯 그 노래를 불렀다. 쑥스러움도 이내 사라졌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야기에 불이 붙을 때 영의 모습은 차가우면서도 뜨겁다. 그런 점에서 진과 비슷하게 닮았다. 그들은 나와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내가 끼여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시간은 모자랐으니까. 그녀들이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갈 때 난 구름 속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졸린다거나 단순히 나른한 기분과는 다른, 뭐랄까 내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들의 이야기가 내 속의 뭔가를 일깨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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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2005-05-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지난번에 정체를 밝히라고 독촉하여 얻어낸 몇 개의 힌트끝에 그대의 정체를 눈치챘었지. ㅋㅋㅋ 안그래도 그저께 김숙경님과 술자리를 하면서 그분이 그대를 보고 싶어하셔서 전화하려다가 새벽 1시가 넘은 관계로 억지로 참았다네. 모두들 그대를 보고 싶어해.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만. 그나저나 여행가기 전에 우리 술 한 잔 거하게 해야하지 않겠수? ^^

무탄트 2005-05-0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담주엔...울 부모님이 상경하시는 관계로...그 담주는 어떠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