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읽어보라고 어디선가 발췌해서 보내준 글이다. 그녀를 위해서,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이 필요할 누군가를 위해서 받은 그대로 올린다.(검은색 부분은 그냥 그 글들을 읽으면서 생각난 대로 지껄여본 것이다)

어느 방면에 있어 새내기들은 대부분 미운오리새끼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들 중 누군가는 백조가 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무엇을 잘할 수 있고,무엇을 못하는지를 냉정하게 바라본 사람만이 백조가 된다는 것, 지금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하라고 말한다.

냉정하게라... 난 지금 내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 분명 좀더 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과 성을 다해서 일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 일이 재밌을 때가 있다. 충분히 몰두하고 있을 때, 일의 앞뒤 순서가 딱딱 맞아떨어질 때, 그럴 때를 제외하곤 평상시에는 내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  난 항상 꿈꾼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내가 한 일은 공책의 누런 앞뒤표지 안쪽의 빈 공간에 잠수함이나 우주선 등의 그림으로 빽빽이 채우고 언제나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네버엔딩스토리였다) 내가 생각해도 난 현실탈출만을 꿈꾸는 허황된 인물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쥘 베른이 그 소설들을 내었을 때는 그 이야기들 또한 실현불가능한 꿈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지금 내가 상상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중엔 단순히 꿈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내 꿈(잠든 상태에서)에서 나타난 몇몇 기이한 장면들은 실현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은 SF소설 속의 어느 미래처럼 너무도 암울하고 끔찍하며 더없이 고통스러운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의 다른 작품 '쇠똥구리'에서...
왕의 마구간에서 말과 함께 사는 쇠똥구리는 늘 불만이다. 사람들이 말에게는 금으로 된 편자까지 박아주면서 잘 대해주지만 자신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마구간을 떠나 세상유람을 하고 다시 돌아온 쇠똥구리는 말의 잔등에 올라타 이렇게 외친다.
"맞아! 말에 금편자를 달아 준 것은 이 쇠똥구리님을 태우기 위해서야."
미치지 않으면 꿈도 이루어지지 않는 법.
쇠똥구리에게서 자기 긍정의 힘을 배워야 한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만 있다면 자신을 긍정하는 창조적 오만이 때로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나를 죽이고 있는지, 살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어느 날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작은 플라스틱 판에 붙어있는 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바보가 아니냐란 말을 들을만큼 무모한 일일수도 있지만, 모험을 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다. 알을 깨고 보다 넓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선 때론 바보 아니냐, 미친 게 아니냐란 소릴 들을만한 일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전나무' 우화...
현재를 충실히 사는 사람만이 성공에 다다른다는 메시지..
산에 사는 전나무는 자신의 현재를 부정한다. 따뜻한 햇볕과 신선한 바람에 고마워하지 않고 산에서 사는 걸 답답해 한다. 전나무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꿈대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다. 그러나 화려함도 잠시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고 전나무는 땔감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자기가 현재 있는 곳의 장점을 찾아내고 즐기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전나무 우화가 슬픈 건 나중에 땔감으로 죽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단 한순간도 자기 인생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를 무시하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어 있었던 전나무는 결코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없다.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은 좋지만, 현실에 파묻히는 건 글쎄... 미래에 얽매여 있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꿈꾸는 것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꿈꿀만한 미래가 없다면, 현재의 삶이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할까. 남들이 보기엔 허황된 꿈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역사가 더욱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하게 변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다만 그 미래가 어떻게-좋은 혹은 파괴적인 방향으로- 변하든지 그 결과와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혹은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만은 잊지않길 바란다.

음...다시 생각해보니, 그 전나무가 화려함도 잠시 땔감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고 슬퍼하기만 했을까. 어떤 이에겐 따뜻한 햇볕과 신선한 바람이 부는 산에서의 삶이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겐 화려하게 살다가 땔깜이 되어 불꽃을 태우며 한줌의 재로 사라지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 잠깐동안이라도 하고 싶은대로 살아서 행복했다고 한다면, 과연 그가 결코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남이 보기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이라도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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