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게 소중한 건 책들, 가진 것 중에서 제일 값나가는 건 디카랑 시디와 카세트 플레이어, 언젠가 어머니가 해주신 소중한 18금 반지 말곤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견물생심할까 싶어 일단 값나가는 것이라 추정되는 것만 챙겨서 가방에 넣어 짊어지고, 주인상대하여 전세금 회수하고 은행에서 수표 빼서 새주인에게 넘겨주어 전세등기 말소시키고, 그리고나서 1시간 넘게 화장실 겸용 욕실 청소를 했다. 오류동 전셋방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로 깨끗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 세입자의 어설픈 그림자를 지워야 할 것 같아서 좁은 욕실에 웅크리고 앉아서 무균무때를 뿌려가며 화장실 벽과 바닥을 문질러댔다.

토요일

아침 먹고 부모님과 남동생 부부는 남동생 부부가 살 집을 보러 나가시고, 야근하고 돌아온 여동생은 거실의 따땃한 방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나는 오후 내내 씽크대 찬장의 그릇이란 그릇은 다 꺼내서 뽀도독뽀도독 소리나도록 씻고 말리고 닦고 무균무때로 깨끗해진 찬장- 내가 필요로 할때 바로 꺼낼 수 있는 장소에 차곡차곡 집어 넣었다.

일요일

아침 먹자마자 내 방 책정리를 시작했다. 거의 방 두 벽면을 차지하는 책들을 빼서 하나씩 닦고 내 나름의 분류대로 보기 좋은 자리에 다 꽂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책을 움켜진  손가락과 걸레를 휘둘러댄 팔이 아프고 허리와 어깨의 근육은 뻣뻣해지고 다리엔 쥐가 나고 사지에 힘이 하나도 없어 엉금엉금 기면서 방바닥을 훑어 내고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뒤집어 쓰고 주무시는 어머니 옆자리에 누우니 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옷방하라고 동생에게 내준 큰방의 내 옆자리가 유달리 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눈뜨자마자 어머니가 해주신 정성스런 볶음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핑 도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침 회의 때 아침 요기거리로 던킨 도너츠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아침 준비하실 필요없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어머니 마음에 딸이 엄마와 올케를 생각해서 마다하는 줄 아셨나보다. 방광염때문에 편찮으셔서 밤새 뒤척이면서도 딸이 차내는 이불을 덮어주시느라 제대로 못 주무셨을텐데, 그 새벽에 일어나셔서 야채와 고기 총총총 잘게 썰어 볶아  맛있는 볶음밥을 만드셨다. 아버지의 불뚝 성질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으신 우리 어머니, 나이 먹도록 시집도 안가고 변변찮은 직장에 쓸데없는 고집만 피우고 저만 아는,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이 이기적인 딸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밥을 짓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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