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권(1)

몇 달 전 통신문에서 잠깐 언급한바 있는데, 막간을 이용해서(이래저래 무거운 머리도 비울 겸)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을 꼽아본다. 선정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대학의 이고르 수히흐 교수가 한 것인다. 그는 체홉 전공자로서, <체홉 시학의 제문제>(1987, 박사학위논문)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시간, 장소, 운명>(1995)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중견학자이다(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 망명했던 작가 도블라토프는 이미 클래식 작가의 리스트에 올라 있고, 4권짜리 전집과 함께 대부분의 작품이 문고본으로 나와있다. 그 자신은 작가 체홉을 가장 닮고 싶어했다고).

 

러시아의 체홉 연구에 있어서는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수히흐 교수는 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출판사 아즈부카에서 나오는 문고본 클래식의 편찬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이 문고본의 체홉 등은 그가 편집하고 해설을 붙였다). 그는 올 초에 <20세기의 책 20>(544/ 5,000부 발행)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말 그대로 20세기 러시아문학의 고전 20권을 선정하고 각 작품에 대한 자신의 품평을 곁들인 에세이이다. 물론 그의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 선정일 테지만,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유지되고 있는 듯하며, 따라서 우리가 외국문학으로서의 20세기 러시아문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유익한 참고가 될 만하다(이와 다르게 참고할 만한 것은 이곳의 문학 교과서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로선 그의 목록을 보고서야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작품이 없지 않으며, 절반 정도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다소간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자극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목록에 없는 작품들을 읽었다고 변명하는 수밖에). 20권의 목록을 차례로 나열하면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국내 소개현황도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다(<러시아문학사전>을 현재 안 갖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생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달지 못하며, 그저 떠오르는 몇 가지 인상만을 적는 식이 되겠지만).  

 

(1)안톤 체홉의 <벚꽃동산>(1903). 체홉 전공자답게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을 제일 처음으로 꼽았다. 그리고 <벚꽃동산> 20권 가운데 유일하게 드라마 작품이기도 하다. 나머지 19권의 작품들은 전부 장편소설이거나 단편소설집들이다(그러니까 이 20에 시는 빠져 있다). 사실, <벚꽃동산> 20세기를 시작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작품이다(정확하게는 그 경계를 표시하는 작품이다). 물론 <벚꽃동산>은 우리말로도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으며 자주 공연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을 간혹 <벚나무동산>으로 번역/공연하는 경우도 있는데, 원작의 제목이 벚꽃이나 벚나무 둘 다 의미하기 때문에 오역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벚꽃동산>이라고 옮겨야 한다. <벚나무동산>이라고 옮기는 건 미적 가치보다는 경제적/실용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이 작품의 주인공을 로파힌으로 볼 경우에나 유력한 번역이다(그건 독창적인 해석이지만, 상식적이지는 않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라예프스카야(=귀족계급)의 아름다운 벚꽃동산이 그걸 고작 벚나무동산으로 간주하는 로파힌(=상인계급)에게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 동산을 별장지로 개발하고자 하며, 4막의 배음(背音)으로 이 벚나무들을 찍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참고로, 작가 체홉은 객관적인 관찰자였지만 인간 체홉은 아름다움의 예찬자였다.   

 

곁다리로 말하자면, 체홉의 (성공한) 첫 장막극인 <갈매기>는 전세계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다음으로 무대에 자주 올려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어제 날짜 <문학신문>의 한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알게 된 건데, <갈매기>에는 세 가지 버전이 있다. 물론 체홉 원작의 <갈매기>가 있고, 이걸 비틀어서 트레플료프가 (체홉 <갈매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살에 실패하지만, 나중에 누군가에게 타살 당한 걸로 이야기를 다시 쓴 보리스 아쿠닌의 희곡 <갈매기>(2001)가 있다. 주로 탐정소설을 쓰는 아쿠닌은 드물게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가장 인기 있는 동시대 작가이다(그의 작품들은 연극으로 공연될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오페레타 버전의 <갈매기>가 있으며, 이건 알렌산드르 주르빈의 작품이다. 그는 1990년부터 12년간 미국 뉴욕에서 살다가 왔으며(그러니까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먼저 공연된 그의 <갈매기>는 이번 시즌에 러시아에서 초연된다. 이 세 <갈매기>를 나란히 무대에 올리는 곳은 극단 <슈꼴라 사브레멘노이 삐에스이>(동시대 희곡학교란 뜻)이며, 연출자는 이오시프 라이헬가우스이다. 언제 시간을 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다(하여간에 이번 시즌 안에). 안톤 팔르이치(안톤 파블로비치 체홉을 그렇게도 줄여 부른다)가 당신의 작품을 본다면, 이란 질문에 주르빈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만족할 겁니다!

 

(2)막심 고리키의 <어머니>(1906-1907). 물론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대학신입생들의 필독서 목록에서는 빠져나간 듯하지만,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평가 또한 예전에 못 미치지만,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유효하다. 하지만,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란 의미가 아니라, 시대를 환기시키는 작품이란 뜻이어야 한다(때문에 <어머니> 1980년대 우리의 대학가에서 필독서였다. 대학가 축제 때면 <파업전야> 같은 영화를 보는 게 당시의 문화였고).

 

한 시대와 운명을 같이하는 작품이 고전이란 이름에 값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개인적으론, 어떤 작품에 들어맞는 시대/시점이 있는 것이지 시대를 넘어선 작품이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우리의 DNA에 새겨진 것이 아닌 이상. 그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베스트로 꼽는 작품들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러한 당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지금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너무 도식적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그러니까 <어머니>도식적이었던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이며, 우리의 80년대는 도식적인 시대였다).

 

한 가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정식으로 공포되는 것은 1934년이다)의 효시로도 평가되는 작품이지만, <어머니>에는 종교성도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수히흐 교수가 <어머니>에 대한 장의 제목을 마르크스와 성모 사이라고 붙인 건 그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새로운 시대의 복음서였다). 그와 관련된 것이지만, 사실 고리키의 이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휴머니즘이었다(그에게 인간은 언제나 대문자 인간이었는바, 그는 인간을 숭배했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의 최대치는 그가 쓴 드라마 작품들 중에서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밑바닥에서>(1902)에서 선언된다. 체홉의 섬세한 드라마들과 비교한다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고리키의 이 드라마에는(특히 4) (유머 대신에) 박력과 (페이소스 대신에) 에너지가 넘친다. 해서, 나는 러시아문학의 20세기가 벚꽃동산이 아닌 밑바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리키는 국내에 꽤 소개돼 있는 편이다. <어머니>만 해도 최소 2종의 번역서가 있다. <밑바닥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인가 <밤주막>이란 제목으로 번역/공연돼 온 걸로 안다(작품의 배경은 빈민굴이다). 고리키의 자전 3부작(<어린시절> <세상속으로> <나의 대학>)부터 미완의 장편 <포마 고르제예프>까지 어지간한 고리키의 작품들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물론 30여권에 이르는 그의 러시아어 전집에 비한다면 약소한 것이겠지만. 참고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리키의 본명은 페슈코프이며 고리키는 러시아어로 /쓰라린이란 뜻의 형용사이다. 막심맥시멈이란 뜻이고. 해서 막심 고리키그토록 쓰라린이란 뜻이 된다. 젊은 시절 룸펜 프롤레타리아였던 페슈코프의 삶이 바로 그토록 쓰라린 삶이었으며, 그는 권총자살까지 시도한바 있다(폐에 구멍이 뚫렸지만, 다행히 살아난다).  

 

고리키의 문학적 삶은 레닌과 운명을 같이 한다(고리키는 문학에서의 레닌주의를 대표한다). 레닌 사망(1924) 이후 스탈린 시대의 고리키는 사회주의 작가로서라기보다는 문학적 전통의 보호자 역할에 더 충실했다. 그가 주로 했던 일은 소련문학의 얼굴 마담 역과 작가들의 후견인 역이었다. 스탈린 시대 숙청 리스트에 올랐던 작가들 가운데 여럿이 그의 구명(救命) 운동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생명은 연장할 수가 없었는데, 한편으로 그의 죽음(1936)에는 스탈린에 의한 암살설이 떠돌기도 했었다.

 

참고로, 올해 러시아에서 나온 고리키 연구서는 고리키연구소(=세계문학연구소)에서 출간한, 젊은 연구자의 <고리키: 새로운 시선>(264)과 지난 2002년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개최됐던 국제학술회의의 발표논문들을 모은 <막심 고리키와 20세기 문학의 모색>(669)이 있다. 니즈니 노브고로드는 볼가강변의 항구 도시인데(고리키 초기 단편들의 주된 배경이다), 고리키 사후에 고리키시로 개명되었던 곳이다. 한데, 사회주의 몰락 이후 레닌그라드가 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듯이, 니즈니 노브고로드도 고리키란 이름을 벗겨냈다(그래도 학술대회는 거기서 하는 모양이다). 레닌과 고리키는 그런 사후의 운명까지도 나눠 갖고 있다.  

 

(3)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1911-1913). 나보코프가 조이스의 <율리시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세계 3대 소설에 꼽기도 했던 작품이다(이어서 나보코프가 꼽는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산문작가로서 벨르이는 시인인 알렉산드르 블록과 함께 러시아 상징주의의 최대 작가이며, <페테르부르크>는 그의 대표작이다(더불어 그는 고골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서를 갖고 있다). 푸슈킨의 서사시 <청동기마상>에서 시작된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문학적/문화적 신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거쳐서 완결되는 작품이 또한 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가도록 하겠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물론 영역은 돼 있다), 조만간 번역서가 나올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시적이고 장식적인 그의 문체가 얼마만큼 우리말로 옮겨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벨르이의 소설 가운데 우리말로 번역된 건 <은빛 비둘기>(3문학사)이다.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지만, 도서관 등에서 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더불어, 러시아문학에서의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에 대해서는(이전에 나도 짤막한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블라지미르 토포로프 교수의 연구가 독보적이다(그의 소개 논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작년에 이 주제에 관한 논문들을 모은 <러시아문학의 페테르부르크 텍스트>(616)란 책이 페테르부르크 300주년에 즈음하여 출간된바 있다(물론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도 다루어진다). 더불어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필독서는 솔로몬 볼코프가 쓴 <상트 페테르부르크 문화사>이다. 원래 영어로 먼저 씌어진 이 책의 러시아어본이 지난 여름에 출간됐다. 볼코프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저술가로 시인 브로드스키와의 대담집과 함께 역시 지난 여름에 나온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그는 본래 음악 전공자였다).

 

(4)예브게니 자먀친의 <우리들>(1920). 자먀찐(혹은 자먀틴)으로도 읽히는 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흔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의 원조(元祖)가 되는 안티-유토피아 소설로 알려져 있다(이 작품을 <멋진 신세계>와 나란히 묶은 러시아어본도 있다). 내전의 와중이던 1920년에 이미 혁명의 불행한 종국을 예견하고 있는 이 작품은 29세기 단일제국이란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유토피아, 즉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세계의 극단을 예시해 보인다. 같은 러시아문학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상호텍스트적으로 읽히는 작품(수정궁 비판과 2*2=4란 테마). 자먀친은 다른 단편들과 함께 에세이들도 남기고 있지만(단편 두어 편이 우리말로 더 번역돼 있다), 역시나 기억되는 건 <우리들>의 작가로서이다. 우리말로는 두 차례(중앙일보사, 열린책들) 출간된바 있지만, 지금은 모두 품절된 걸로 보인다. 몇 년 전에 개최되었던, 자먀친에 관한 국제학술회의 논문집을 보니까 한국에서의 자먀친이란 발표문도 실려 있었는데, 석사학위 논문까지 총동원됐지만 (당연하게도) 몇 건 되지 않았다.

 

(5)이삭 바벨의 <기병대>(1923-1925). 바벨은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오뎃사(영화 <전함 포템킨>에 나오는 도시) 출신의 유태계 작가로서 <기병대>는 내전(1918-1920) 시기를 다룬 연작이면서 그의 대표작이다(이 연작의 화자가 내전에 참전한 유태계 지식인이다). 우리말로는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소련동구문학전집>에 수록돼 있으며, 조만간 그의 선집이 다시 나오는 걸로 안다. 에이젠슈테인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으며(<베진초원>의 시나리오를 썼던가?),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영화화하기에 적당한 테마와 문체를 갖고 있다. 다른 연작 <오뎃사 이야기>의 경우(오뎃사 마피아 이야기쯤 된다), 내 기억에 그는 시나리오도 따로 썼던 것 같다. 그의 문학세계는 2권짜리 전집에 다 수록될 만큼 간명하다(이에 견줄 만한 작가는 좀 두꺼운 한 권에 다 정리되는 자먀친, 그리고 같은 오뎃사 출신의 유리 올레샤가 있다). 우리말 선집이 출간된다면, 좀더 자세하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6)A. 파제예프의 <궤멸>(1925-1926). 역시 내전 시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바벨의 <기병대>처럼 좀 삐딱한 시각의 작품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선정자인 수히흐 교수가 아마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궤멸>을 꼽은 듯하다.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궤멸>(예문출판사)은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 2학년 때인가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지금은 당연히 품절된 책이다. 작가 파제예프는 역시나 스탈린 시대에 숙청당한 바벨과는 달리 소위 메인 스트림에 속해 있던 작가이며, 작가동맹의 의장인가 부의장을 역임한 문학권력자였다.

 

(7)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1926-1929). 요즘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 연출가 레프 도진의 레퍼토리에도 들어가 있는 <체벤구르>는 러시아에서도 재발견된 작가 플라토노프의 대표작이다(그러니까 러시아에서도 소개/해금된 건 내가 알기에 80년대 중반 이후이다). 그렇게 재발견된 작가로 미하일 불가코프와 비교되기도 하는 플라토노프이지만, <체벤구르> <거장과 마르가리타>만큼 폭넓게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출판되는 걸 보아도 그렇고, 공연되는 걸 보아도 그렇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어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역시 우리말로 번역중이라는 풍문은 있다), 이 작가의 몇몇 단편들은 우리말로도 번역 소개돼 있는바 참조해 볼 수 있다(책세상에서 단편집이 나와 있다).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은 <포투단강>이란 단편. 철도노동자 출신의 플라토노프는 사회주의 이념의 철저한 신봉자로서 오히려 소비에트 권력층에 부담을 주었던 작가였으며(스탈린이 싫어했다던가), 한편으론 작품의 매우 형이상학적인/유토피아적인 주제들 때문에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로도 불린다.       

 

(8)미하일 조셴코의 <감상적인 이야기들>(1923-1930). 조셴코 혹은 조시첸코로 표기될 수 있는데,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단편모음집 이름이고, 장편소설(roman)을 쓰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에, 굳이 어떤 한 작품을 거명하기는 어렵다. 플라토노프가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조셴코는 20세기의 고골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정말로 코믹하고 유머러스하며 풍자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정식화하자면, <조셴코=고골+체홉>이다(이 세 작가를 사소한 것들의 시학으로 묶어서 다룬 연구서도 있다). 나는 단편 몇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되어도 좋은 작가이다. 거꾸로 말하면, 조셴코의 단편들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건 미스터리라 할 만하다.   

 

(9)블라지미르 나보코프의 <재능>(1937-1938). <재능> 혹은 <선물>은 나보코프의 러시아 시절은 마감하는 장편소설이다(러시아어 다르Dar재능이란 뜻과 선물이란 뜻 모두를 갖고 있다. Gift란 영어 단어가 그렇듯이). 주인공이 시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자기발견적 이야기이면서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의 전통과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끝으로 나보코프는 러시아어 시절을 마감하고 영어로 언어를 바꿔서 작품을 쓴다. 그렇게 처음 쓴 소설이 우리말로도 번역된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이다(원제는 세바스챤 나잇의 참인생이며,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전에 감상문을 쓴바 있다). 나보코프에 대해서는 작품을 읽지 않고도 할 얘기가 너무 많지만, 여기선 간단히 줄이도록 한다.

 

우리에겐 <롤리타>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과 에드리안 라인에 의해 두 번 영화화됐다. 영어로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 <롤리타>를 비교하는 사전까지 나와있고), 그리고 간혹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계보에 속하는 전형적인 모더니즘 작가이다(그는 언어를 다루는 작가적 재능에 있어서 조이스 정도를 질투했을 것 같다. 하지만, 조이스는 러시아어로는 작품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작가의 죽음을 전제로 한 텍스트의 유희/게임을 주요한 특징으로 갖는다면 말이다. 나보코프의 문학세계는 진정으로 신적인 작가 나보코프에 의해서 자신을 작가로 착각하는 주인공들이 징벌받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대단히 유희적이지만, 포스트모던적 유희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까지 나온 나보코프의 전기로 가장 방대하며 탁월한 것은 브라이언 보이드의 영어본이다. 그는 나보코프의 삶과 문학을 러시아 시절미국 시절로 구분하여 두 권의 책으로 상술했는데, 얼마 전에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나왔다(여기서의 평가도 최고의 전기라는 것이다). 두툼한 양장본 2권의 가격이 4만원 안팎(나는 영어책을 복사했었다). 나보코프 애호가나 전공자에게는 필독서이다. 나보코프의 러시아소설 가운데는 <마셴카>(<첫사랑>으로 번역됨), <루진의 방어>(단행본으론 나오지 않고 한 문예지에 소개됐었다) 등이 우리말로는 번역돼 있는데, <재능> 이외에도 <절망>, <단두대로의 초대> 등이 모두 번역될 만하다. 하지만, 저작권이 까다로운 작가이기 때문에(물론 번역도 까다롭다) 정말로 번역될지는 미심쩍다. 영어소설 가운데는 <롤리타> 외에도 <어둠 속의 웃음소리>(언젠가 오래 전에 TV미니시리즈로도 만들어진바 있다. <창밖엔 태양이 빛났다>란 제목이었던가. 기억에, 황인뢰 PD의 작품이었다), <투명한 물체들>, <, , >, <창백한 불꽃>, <아다> 등이 번역돼 있다. 전문가 수준이었던 그의 나비수집에 대한 얇은 책도 한 권 번역돼 나온바 있고. 물론 나보코프에 대한 학위논문들은 상당수에 이르며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도 있다.

 

러시아에는 물론 각종의 너무 많은 나보코프가 있다. 2개의 언어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영어와 러시아어로 거의 완벽하게 번역돼 있다. 그 중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번역/주석(이 작품에 대한 주석으로는 러시아의 기호학자/문학연구자 유리 로트만의 것과 쌍벽을 이룬다)과 함께, 러시아어로는 3권으로 나온 문학강의가 기록해 둘 만하다(그는 <롤리타>의 인세 덕분에 팔자가 피기 전까지는 코넬대학 등지에서 문학선생 노릇을 했다. 미국 작가 토마스 핀천이 그의 강의를 들은바 있다). 3권은 각각 <러시아문학강의>, <서구문학강의>, <돈키호테에 대한 강의>이다. 나는 이 강의들도 우리말로 번역되길 바라지만, 가능할는지

 

(10)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1925-1940). 요즘은 대학에서의 러시아문학사 전공강의에서도 빠지는 수가 많지만(부담스런 분량 때문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교되기도 하는 대하장편소설이다(당연히 영화화됐고, 얼마 전에도 이곳 TV에서 시리즈로 나왔다). 나는 학부에서 20세기 문학사 강의를 들을 때 읽었는데, 우리말로는 7권으로 번역돼 나와 있었다(러시아어로는 보통 2). 지금은 품절이지만. 한 권짜리 만화로도 나와 있었고(기말고사 시험문제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쓰는 것이었는데, 그때 만화를 본 게 도움이 되었다). 수히흐 교수는 <고요한 돈강>을 다룬 장의 제목을 카자크 햄릿의 오딧세이라고 붙였는데,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그 햄릿의 이름은 물론 주인공 그레고리이다.

 

숄로호프의 다른 작품으론 <인간의 운명>, <돈강 이야기> 등도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데, 나는 읽지 않았다.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문학권력자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고요한 돈강>을 정말로 그가 썼는지에 대한 의혹들도 그래서 나왔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반 부닌에 이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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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SF - 과학소설 전문무크 창간호 1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
행복한책읽기 편집부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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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SF팬들이 들으면 무척이나 서운한 말이겠지만, 국내 독서가들에게 아직까지 SF는 낯선 장르이다. 이런 국내 출판-독서 상황에서 ‘과학소설 전문무크’를 표방하고 나선 <Happy SF>가 행복한책읽기 출판사에서 창간되었다. 지금은 무크지로 시작하지만 편집동인들의 희망은 계간지로 정착시키는 일이라고 하니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Happy SF>의 창간은 다른 누구보다도 국내 SF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SF로 독서의 폭을 넓히려는 독자들에게도 희소식이다. <Happy SF> 편집동인들의 바람도, 이 무크지가 기존 SF 작가 및 독자들의 소통의 장이 되면서 새로운 SF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지 않을까. 이번 창간호의 편집 방향도, SF에 대한 소개와 독자 가이드 특집이 있어서 SF 초심자들의 독서 가이드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창간 특집으로 마련한 “왜 SF인가?”에는 SF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 - 현대 SF의 양상과 한국의 SF 현황, 한국 SF출판의 번역과 편집의 문제, 주류문학과 SF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특집에 실린 글들은 국내 SF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자들의 말과 글의 조각들을 한 덩이로 모아보면, 논의될 만한 국내 SF 작가로 복거일, 듀나 이외에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국내 SF 작단은 협소한 편이고 때문에 해외 SF의 번역과 소개가 우선적으로 시급한 일이라고 한다. SF 독자들이 많아지고 나서야 높은 수준의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도 나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학소설 평론가 김상훈의 <현대 SF의 진화>라는 글에서 재미난 대목이 있다. 한 소설이 SF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 이는 SF와 주류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내용이 아니라 작품을 읽고 쓰는 방식(독서 프로토콜 : 해당 텍스트를 읽기에 앞서 작가와 독자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일종의 마음가짐 내지는 인지적 패턴)의 차이에서 오기 때문이다. 작가이며 평론가인 딜레이니가 든 예를 보자. “그녀의 세계가 폭발했다.”라는 문장을, 주류문학 독자들은 ‘그녀의 격렬한 감정의 폭발’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SF 독자들은 그녀가 살고 있는 행성이나 거주지(우주선 등)의 폭발에 주목할 것이다.

SF 독서 프로토콜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나는, <Happy SF>에 실린 네 편의 SF들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다. 여기서 SF 창작의 기린아로 추켜세워 소개된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이 듀나와 구광본과 강병융의 SF보다는 뛰어나다고 생각은 되었지만 말이다. 창간호의 뒤에 실린 SF 추천 목록의 세례를 받고 나서야 그때 나는 행복한 SF 읽기가 가능하리라. 나의 SF 탐사선의 엔진에는 아직, 불꽃이 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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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가요” 내가 말했는데, 아무도

어디인지 몰랐고, 내 고통이 얼마나 고동치는지 몰랐다,

내게는 카네이션도 뱃노래도 없었고,

사랑이 열어놓은 상처만 있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나와 함께 가요” 마치 내가 죽어가는 듯이,

그리고 내 입 속에서 피 흘리는 달을 아무도 못 보았다는 듯이

또는 피가 침묵으로 솟구쳐오를 걸 아무도 몰랐다는 듯이,

사랑이여, 이제 우리는 그런 가시들을 갖고 있는 별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목소리가 “나와 함께 가요”를 되풀이하는 걸

들었을 때, 당신이 그 슬픔, 그 사랑, 코르크로 막아놓은

와인의 분노를 그냥 폭발하게 내버려두는 것 같았다


깊은 데서 솟아올라 넘치는 간헐천 같은 것들을:

입 속에서 나는 그 시련의 맛을 다시 느끼고

피와 카네이션, 바위와 덴 상처의 맛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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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
김영건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인문학자들은 대화와 비판을 그렇게도 강조한다. 그러면, 인문학자들은 얼마나 대화하고 소통하며 또 서로를 비판해주고 있는가? 철학자 김영건에 따르면 그다지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문예 장르의 하나이기도 한 문학비평을 인문학이라는 학술적 행위로만 좁게 가둘 수는 없겠지만, 지적인 담론들을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인문학의 한 하위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문학비평에서 평론가들은 철학적 담론들로 현란하게 글을 장식하곤 하는데 철학자의 눈으로 볼 때는, 그다지 엄밀하지도 않으며 일종의 지적 유행병이 감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꼽자면 국내 철학계에서 생산되는 학적인 결과물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배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문학의 풍토 속에서 김영건은 철학자의 눈으로 문학비평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문학비평이란 무엇인지 그것의 철학적 의미나 그것이 지향해야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주로 문학비평에서 쓰이는 철학 담론들이 얼마나 엄밀하게 쓰이고 있으며 그 철학적 담론들이 과연 적절한가를 묻고 있다.


지난 시대에 마르크스의 철학은 ‘진리’로 떠받들어 졌다. 마르크스의 철학이 지닌, 세계에 대한 실천적 해석의 힘과 억압된 사회가 만난 자리에서 그것은 절대 진리가 된 듯이 수많은 지식인들의 머리를 장악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르크스는 곧 폐기되고 현란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앉았다. 김영건은 이것을 ‘젊은 비평가들의 지적 사대주의 또는 문학적 상업주의’라는 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정말 이 이론을 우리 사회를 조망하고 해명하는 진정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갓 지적 과신과 현란한 현시의 겉모습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순수한 지적 호기심인가? 이런 의미에서 우리 문학에 대한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피곤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피곤함은 거기에 동원된 여러 이론들이 주는 것일 수 있지만, 살아 있는 문제가 아니라 유행을 타기 위해 만든 문제라는 데서 오는 피곤함일 수 있다.”(54쪽)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비평가 김윤식의 철학 이해는 어떨까. 김영건에 따르면, 김윤식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해서 논하는데, 이때의 비트겐슈타인은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이해한 비트겐슈타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진이 이해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철학자의 눈으로 보기엔 뛰어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김윤식의 비트겐슈타인 철학도 왜곡되어 있다고 말한다. 김윤식은 국내 철학자들이 연구해서 소개한 비트겐슈타인 관련 저술을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외에도 생태문학 담론과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 개념에 대해 다루면서 문학비평에서의 철학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김영민의 ‘논문 중심주의 비판’에 관련된 글도 하나 있는데 이것이 문학비평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글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논문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은연중에 논문 자체에 대한 비판처럼 들리는 김영민의 글을 비판하는 김영건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인문학계의 풍토에 대해서 조금 더알게 되었다. 김영민의 논문 중심주의 비판 담론들(탈식민주의 글쓰기)은,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에서 한국의 자생이론 20선에서 첫 번째로 꼽혔었다. 김영민의 비판이 치밀하지 못했다하더라도 그의 비판이 그렇게까지 강한 공감을 얻은 까닭을 생각해보면, 한국 지식인들의 반성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뜻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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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추천 하나^^
 
 전출처 : 노부후사 > <퍼온글> 강준만 교수 인터뷰

이이화와 강준만.

한 사람은 역사학자이고 또 한 사람은 언론학자이다. 두 사람 모두 틀어박혀 글쓰기로 유명한 글쟁이들이다. 이이화가 구수한 입담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면, 강준만은 좀체 모임 같은데서 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이건 두 사람의 큰 차이점이다.

▲ 강준만 교수
ⓒ2004 인물과 사상사 제공
그런데 두 사람에게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올해 수 년간에 걸친 집필 끝에 '통사' 시리즈를 출간했다는 사실이다. 이이화는 지난 94년 집필을 시작한지 10년만에 지난 5월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펴냄) 22권을 완간했다.

또 강준만은 지난 2002년부터 집필을 시작한지 만 2년만에 원고지 2만장 규모의 <한국 현대사 산책>(인물과 사상사 펴냄) 15권을 최근 완간했다. 그러나 이런 통계는 외형적인 것에 불과하다.

진짜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역사 대중화'와 '사료이용의 열린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간 기존 대부분의 역사서는 너무 무겁고 재미없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러나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나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은 모두 재밌고 적절히 가볍다. 그래서 눈높이가 일반 독자들과 맞다.

대부분의 역사 관련 글(단행본, 논문, 아티클 등)들은 일반인들이 듣도보도 못한, 자기들만이 아는 사료들을 들먹이며 전문가 티를 내는게 보통이다. 서술도 지나치게 현학적인 편이다. 그러나 역사가 그렇게 외지고 대중과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바로 그런 점을 두 사람은 보란듯이 실증하고 있다.

이이화는 지난 5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사(正史)만을 사료로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문집·야담집·설화·소설 같은 것도 사료가 된다고 생각하면 광범위하게 이용했다. 실지로 정사가 다 정확한 것만도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손에서 빚어지는 것이고 사료는 있는 그대로만을 보여줄 뿐이다. 역사가는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와 같다. 나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야사(野史)도 참고용 사료로 활용했다."

강준만도 이 점 비슷했다.

"제가 새로 발굴한 내용은 없습니다. '발굴'은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전 지금 우리 사회에 정작 필요한 건 ‘대중화’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자료가 모자라서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다른 분들이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 자료들을 활용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소설에서 시(詩)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특히 고은 시인의 '만인보', 리영희 선생의 체험담을 많이 활용했지요."

▲ 강준만이 펴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강 교수 이메일 인터뷰 '후기'

연구실로 찾아가서 떼(?)를 쓰면 몰라도 좀체 인터뷰 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강 교수다. <한국 현대사 산책> 완간 소식을 듣고 강 교수 동생이자 이 책을 펴낸 '인물과 사상사' 대표인 강준우 사장을 윽박질러(?) 얻어낸 것이 이메일 인터뷰였다.

개인적인 친분도 좀 있겠다 싶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어제(11일) 저녁 10시경 이메일로 질문지를 디밀었다. 그런데 아침에 열어보니 벌써 답장이 도착해 있는게 아닌가. 강 교수의 속필과 필력을 감안한다고 해도 15항목에 달하는 질문에 답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았을텐데 말이다. 적절히 여유까지 보였다.

"솔직하게, 그러나 좀 재미있게, 답변드릴까 합니다. 괜찮겠지요?"

틀에 박힌 모범답안식 답변이라기보다 마치 마주앉아 얘기하듯 술술 풀어낸 게 오히려 대면인터뷰보다 이 방식을 취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너 번 만나본 경험에 비춰볼 때 강 교수는 큰 덩치에 비해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그런 품성이 '성실함'과 결합되면서 초인적인 작업을 해내는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인터뷰에 응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
이 대목에서 강준만은 '역사 대중화'를 거론하고 나온다. 흔히 대중화라면 통속적이고 상업성만을 강조한 '싸구려'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도,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도, 그리고 강준만이 '모범사례'로 든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도 모두 싸구려가 아니다.

강준만은 "현대사 '산책'을 하면서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학술 서적과 논문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저자들 중 몇 분이라도 ‘현대사 대중화’ 작업에 나서준다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인 ‘역사의 빈혈’ 현상을 꽤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리고는 이른바 '역사학자'라는 부류의 사람들이 역사 대중화작업에 나서지 않는 이유를 "그거 해봐야 학계 내부에서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는 것 잘 아시잖습니까?"라며 우리 학계의 허위의식를 비꼬았다. 역사학계로선 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 역사학계가 설자리를 잃는 건 아닌지.

역사학자 강만길(상지대 총장)은 20세기의 우리 역사를 '한(恨)의 역사'라고 규정한 바 있다. 망국과 식민지배, 그리고 어느날 꿈처럼 다가온 해방과 뒤이은 국토분단, 동족상잔, 독재 등등...

언론학자 강준만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와 주체를 달리하면서도 기득권세력 아래에서 신음한 민중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박정희가 정치권력의 주체로 부상한 60년대를 '기회주의'로 규정한 시각은 대단히 탁견 같아 보인다. 언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한 시각이 부각된 점도 다른 역사서에서 볼 수 없는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강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 전문이다.

-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완간을 축하드립니다. 우선 역사학자가 아닌 언론학자가 '통사' 집필에 나서기는 이례적인 일인데 특별한 집필 계기라도 있으신가요?
"언론학도가 아니라면, ‘한국현대사 산책’에 언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언론과 다른 미디어 관련 부분만 따로 떼내어도 책 두세 권 분량은 될 겁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언론만 따로 분리시킨 언론사는 사람들이 읽으려 들지 않습니다. 언론사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나 시험용으로 읽겠지요. 제가 이번에 총색인을 만들었는데, ‘조선일보’ 부분만 다음과 같이 나오더군요.

[조선일보] : 모스크바 삼상회의 왜곡보도 40-1-140~142, 미 군정의 지원 40-1-152, 김구 노선과의 결별 40-2-68, 국가보안법 비판 40-2-185, 맥아더 숭배 50-1-235, 사라질 뻔한 제호 50-2-219~221, 쿠데타 지지 60-2-31~33, 이승만 국장(國葬) 비판 60-3-48, 이승복 사건 60-3-230~231, 코리아나호텔 특혜 60-3-248~250, 3선개헌 홍보 60-3-331, 학생들의 비판 70-1-125, 박정희와의 유착 70-1-248~253, 기자 32명 해직 70-2-212~216, 민주화운동 비난 70-3-28~30, 박정희 미화 70-3-311, 스포츠 민족주의 80-1-25~26, 신군부 지지 80-1-59, 5.18 왜곡보도 80-1-172~173, 국보위 찬양 80-1-198, 전두환 찬양 80-1-229~237, 태평성대 80-1-287~295, 민족지 논쟁 80-2-249~254, 권인숙 비난 80-3-39, 보도지침 침묵 80-3-53, 스포츠민족주의 80-3-75~76, 김일성 사망 오보사건 80-3-109~113, 전두환 찬양 80-3-141~142, 전두환과의 유착 80-3-174~175, 지역감정 선동 80-3-241~244, 5공의 최대 수혜자 80-3-260~263, 언론청문회 80-3-315~316, 전두환 장학생 80-4-15~19, 문익환 왜곡보도 80-4-66~67, 조평사태 80-4-74~89, 서경원 사건 왜곡보도 80-4-137 조선투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70-2-222~226, 70-3-99~100, 193~195, 80-1-88~90, 80-4-85~86

- 이번 기획물의 서명이 '한국 현대사 산책'으로 돼 있습니다. 반세기동안의 우리 현대사를 '산책'하면서 무엇을 구경하였고, 또 무엇을 느끼셨는지 그 인상기를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요컨대, 제 책은 넓은 의미의 한국언론사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거지요. '산책'을 하면서 사실 제가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간 저는 나름대로 한국현대사를 꽤 안다고 자부해 왔었는데, 이번 산책을 하면서 제가 잘 몰랐던 게 너무 많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산책을 하면서 내내 한가지 생각했던 건 일반인들이 접근하긴 어렵지만 이 분야에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학술 서적과 논문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저자들중 몇 분이라도 ‘현대사 대중화’ 작업에 나서준다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인 ‘역사의 빈혈’ 현상을 꽤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베스트셀러가 된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같은 좋은 책들이 다양한 주제와 관점으로 좀더 많이 출간된다면 한국사회의 현안을 다루는 논쟁의 질적 수준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역사학자들은 결코 ‘대중화’ 작업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거 해봐야 학계 내부에서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는 것 잘 아시잖습니까?"

- 이번 저서는 방대한 자료와 나름의 평가를 곁들인 노작으로 평가할만하나 자체 발굴자료보다는 대부분 타인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한 것이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 집필과정에서 새로 발굴한 내용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 소개해 주십시오.
"제가 새로 발굴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 그것에 대해 전혀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생각합니다. ‘발굴’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전 지금 우리 사회에 정작 필요한 건 ‘대중화’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자료가 모자라서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다른 분들이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 자료들을 활용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소설에서 시(詩)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특히 고은 시인의 '만인보', 리영희 선생의 체험담을 많이 활용했지요. 총색인을 체크해 봤더니, 이렇게 많이 나오더군요.

[고은] 40-1-76, 245, 249~250, 40-2-165, 197, 231, 50-1-27, 57~58, 64~66, 242, 252~253, 50-2-131~132, 230, 243~244, 328, 50-3-16, 124, 146, 149~150, 70-1-49~50, 187, 70-2-26, 165~166, 170, 70-3-91, 97, 227, 235, 80-1-116, 118, 203, 80-2-26, 80-4-20

[리영희] 40-2-175, 247~248, 313, 50-1-190~191, 203~204, 211, 220, 50-2-280, 50-3-128, 268~269, 60-1-157~158, 169, 60-2-88, 90~92, 170~171, 200~202, 329~330, 60-3-56~57, 173~174, 70-1-190, 70-2-26~27, 57, 64~66, 278~279, 70-3-90~94, 80-1-116, 80-2-149~150, 80-3-267, 80-4-67~68"


- 기존에 출간된 '현대사 100장면' '현대사 뒷얘기' 등의 단행본을 좀더 확장한 형태라는 지적을 받을만도 한데 이러한 책들과의 형식상, 내용상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현대사 100장면' '현대사 뒷얘기' 등도 꽤 활용했지요. 제 책이 이 책들과 다른 건 해방에서부터 80년대가 끝나는 날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 있고, 중요한 사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다루었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다양한 견해들을 다 소개하였다는 것이겠죠."

- 현대사의 주역으로 할동한 유력 정치인 등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인용한 사례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을 기록한 양심적인 것도 많지만 반면 사실 왜곡이나 미화로 가득찬 것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기록물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하며 크로스체킹 같은 작업도 병행하시는지요?
"맞습니다. 제 책은 현대사의 주역으로 활동한 인물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아주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생생한 느낌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료들이 안고 있는 함정(사실 왜곡, 미화, 착각에 의한 오류, 편견 등등)은 ‘거리두기’와 다른 견해를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다 피해 갔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엔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들을 동시에 제시한 대목들이 아주 많습니다."

- 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독재와 쿠데타를 반복해 가면서 어두운 역사를 많이 기록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는 조금씩 진보를 거듭해왔는데 우리 현대사에서 밝은 면이 있다면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까?
"우리 현대사에서의 밝은 면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민중의 ‘잡초같은 질긴 생명력’이겠죠. 이른바 ‘역사의 역설’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의 역설’도 그런 경우 아니겠습니까? 제가 별도로 정리한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전쟁의 역설

6.25 전쟁은 악마의 저주로 간주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를 포함한 인명 손실은 3백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나 되었으며, 1천만명이 가족과 헤어졌고 5백만 명은 난민이 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을 낳은 그 전쟁이 영원히 악마의 저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이 악마의 저주란 말인가?

박명림은 그런 곤혹스러움을 비켜가기 위해 ‘분단의 역설’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건 곧 ‘한국전쟁의 역설’이기도 하다. 박명림은 분단의 역설 중 가장 크고 비밀스런 역설은 그것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역설일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 자체는 혹심하게 파괴적이었지만 그 전쟁이 남긴 질서는 경쟁적, 다른 말로 하여 건설적이었다는 배반성을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박명림은 50-60년대의 북한의 건설과 60-70년대의 남한의 건설도 중요시되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남북한간의 불꽃튀는 경쟁과 냉전의 한반도에의 자력적(磁力的) 집중은 두 국가와 분단질서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두 한국 모두 정권 수준에서는 불안과 격동이 있었으나 국가는 매우 안정적이었으며, 그러한 안정을 기반으로 두 한국은 각각 빠르게 경제와 정치, 군사 모두에서 약소국가에서 중위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차마 자기 입으론 말하지 못하겠다는 듯, 다른 학자의 견해를 빌려 ‘한국전쟁의 역설’에 대해 말한다. “웬일인지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는 일어나지 않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이런 경제성장의 몇몇 원인들을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은 데서 찾는다. 한국이 성장한 것은 정확히 자본가계급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예컨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토착 자본가계급들이 성장을 계속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가 그냥 빼앗기만 한 것은 아니고 준 것-다른 무엇보다 ‘식민지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국가’-도 있다는 것이다.”

정진상은 ‘한국전쟁 축적구조’를 역설한다. 한국전쟁이 전근대적 계급관계를 깨끗이 청소한 것은, 혁명이 과거의 유산을 쓸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걸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본의 천국’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전쟁은 시민전쟁이면서 동시에 시민혁명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형성된 계급구조는 냉전체제 위에 구축된 20세기 후반 세계자본주의의 질서하에서 자본축적에 지극히 유리한 무대였다는 것이다.

정성진은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은 세계 자본주의와의 연계 속에서, 특히 동아시아 지역구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국적 시각에서 볼 때 한국전쟁이 한국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전후 자본주의 부흥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고,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한.미.일 영구군비경제의 구도를 확립하여 한국자본주의의 고도축적의 원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채진은 전쟁 그 자체는 바람직하지 못한 괴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도 전통적인 사회질서의 변화, 신흥 자본주의의 대두, 고난을 타개하려는 의지, 국가안보를 위한 결의, 여성해방의 출발, 일부 북한 주민의 남하, 국제적 감각의 향상 등 다양한 긍정적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의 역설 중 가장 곤혹스러운 역설은 흔히 ‘지옥’으로 묘사된 전쟁의 참상이 불러 일으킨 그 어떤 정신적 자세일 것이다. 정진상은 한국전쟁이 촉진시킨 생존경쟁,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경쟁과 같은 가치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심층을 구성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발생한 평준화의식과 상승이동의 기회균등화가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혼란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지위와 신세가 뒤바뀔 때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나 내가 다를 게 무엇이냐. 너는 어쩌다 출세를 했을 뿐이니 나도 운수만 따르면 출세하는 건 시간 문제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런 사고방식이 뜨거운 교육열로 이어지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을 것이다."


-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60년대를 '기회주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방후 1940년대부터 10년씩 잘라서 평한다면 각 시대별 키워드를 어떻게 보십니까?
"40년대 후반은 ‘한(恨)과 욕망의 폭발’ 그리고 그에 따른 타협없는 ‘분열과 대립’, 50년대는 ‘적대와 증오’ 그리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그것이 낳은 역설이라 할 탁월한 생존술, 60년대는 기회주의, 70년대는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로 대변되는 인권의 무덤 위에 꽃피운 성장, 80년대는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으로 대변되는 70년대의 심화과정이겠지요. 종국엔 민주화투쟁의 승리로 귀결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 5.16에 이어 18년 뒤 다시 12.12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반세기동안의 우리 현대사에서 이처럼 반복된 역사적 행태로는 어떤 것들을 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역사의 반복은 우연입니까, 아니면 필연입니까?
"저는 역사의 반복은 ‘양과 정도의 문제’일 것이기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긍정론과 부정론, 또 우연론과 필연론 모두 성립될 수 있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2004년의 한국사회에서 해방정국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두 시대의 서로 전혀 다른 점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중의 하나는 ‘분열’입니다. 분열은 교과서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조건이요 과정인데다, 독재정권 치하에선 분열이야말로 민주화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분열주의를 옹호하고 있지요. 그런 옹호에 타당한 면도 있겠지만, 저는 한국사회가 분열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7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불행한 역사적 유산이다. 외세의 입김에 휘둘린 구한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 군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자치를 박탈당했다. 그 세월이 70년에 이른다. 내부 분열을 조정하는 경험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외세의 분열주의 정책에 휘둘려 왔다.

둘째, 초강력 중앙집권제다. 중앙의 패권을 차지하는 세력이 모든 걸 다 먹는 ‘승자 독식 사회’에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이 융성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초강력 연고주의다. 연고에 의해 패거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분열은 대화와 타협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논쟁과 토론마저도 효용을 갖기 어렵다. 모든 게 패거리 논리에 의해 원초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넷째, 적대 전선의 형성이다. 해방정국의 이념갈등과 6.25, 그리고 독재정권으로 인해 상호 용납하기 어려운 적대관계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다섯째, 적대 전선의 형성이 주로 이기주의자들과 이타주의자들의 대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기주의자들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분열주의를 주요 책략으로 삼았다. 반면 이타주의자들은 자신의 강한 소신 하나로 일어섰기 때문에 독선과 오만으로 빠지기 쉽고, 이는 화합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여섯째, 이념의 외부 수입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출발한 이념은 견해가 다른 세력들 사이에서도 상호 접점을 찾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나, 한국에선 이념을 외국에서 수입해 왔기 때문에 여러 세력들 사이의 상호 접점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열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일곱째, ‘정치의 잉여 가치’의 과잉이다. 정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향력 또는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치집단의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투쟁이 극렬하고, 이는 분열주의로 빠지게 된다."

- 해방후 미군정 이후 최근 이라크 파병까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를 관통하는 미국의 대한정책의 골자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반세기를 관통하는 미국의 대한정책의 골자는 이미 해방과 함께 결정되었다고 봅니다. 한국은 일본 분단의 대용품으로 이용된 것 아닙니까? 즉, 분단돼 마땅한 전범국가 일본이 분단된 게 아니라 지정학적인 이유 등으로 오히려 희생자인 한국이 분단되었다는 거죠. 분단 이후에도 남한은 일본을 지키기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죠. 조선일보의 정신나간 논객들은 미국이 일본과 친하고 대한민국과는 덜 친한 게 노무현 정부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늘어 놓습니다만, 그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미국의 대한정책의 핵심인 것이지 한국정부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 최근 친일청산 등 과거사 청산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우리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제시한 내용을 포함해서 우리 현대사에서 청산해야할 과거사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개혁.진보진영과 ‘우리안의 파시즘’을 주장하는 '당대비평'류 지식계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에 정략이 개입돼 있다 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는 시각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회주의 혐오증’이라고 하는 저의 편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순수하고 겸허한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놓고 극단적 견해가 엇갈립니다. 친일파-독재자에서부터 가난을 극복해준 민족의 지도자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잣대를 무엇으로 삼아야 하며, 그 결과 강 교수님께서는 박정희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계시는지요?
"저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 문제를 둘러싼 양 극단의 갈등은 우리가 치르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업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박정희 시대가 무엇을 했거나 남겼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못하게 함으로써 빚어진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박정희 시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문제죠.

박정희 시대가 못하게 했던 것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분열주의를 민주적 과정을 통해 해소하는 훈련을 못하게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훈련의 기회는 박정희 시대와 뒤이은 전두환 시대에서까지 박탈됨으로써 한국인은 그 점에서 한 세대 이상 지체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거죠.

반면 박정희 시대는 사실상 분열주의를 악화시킨 시대였지만, 겉으로는 그걸 완전히 통제하는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폭력에 의한 통제과정은 보여지지 않았으므로, 대중의 눈에 들어오는 건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일사불란(一絲不亂)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박정희 예찬론자들은 주로 그 점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예찬론엔 ‘활력’이니 ‘다이내미즘’이니 ‘역동성’이니 하는 따위의 단어들이 난무하거든요.

반면 폭력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하게 된 민주정권 이후 나타난 모습은 혼란스러운 분열과 갈등이었죠. 이 경우의 분열과 갈등은 그 모든 과정이 언론에 의해 미주알고주알 보도되었고, 그것도 과장왜곡보도가 난무했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민주적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훈련도 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건 추악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이런 분열과 갈등의 행진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며, 그때까진 ‘박정희 향수’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즉, ‘박정희 향수’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의 업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 7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분으로서 70년대의 명과 암을 '경부고속도로와 전태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17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개원에 앞서 전태일 열사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진보정당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죄송합니다만, 진보정당의 앞날을 평가할 만한 안목이 제겐 없습니다."

- 현대사 속에서 한국언론은 저항과 굴종의 역사를 같이 가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빅3'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한 측면과 그 반대로 저해한 측면을 든다면 어떤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조중동이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한 측면은 '힘이 최고다'는 법칙을 한국인들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조중동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자기성찰의 가치를 경멸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와 ‘힘의 논리’에 대한 신봉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기여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힘이 최고다'를 믿지 않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절대 다수의 한국인이 믿는 가치관이라면 존중해줘야겠죠.

조중동이 한국사회 발전을 저해한 측면으론 그들이 ‘분열주의의 화신’이라는 거죠. 그들에게 일말의 애국심이라도 있었다면 노무현정부를 비판하더라도 좀더 진지하고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사회를 질식시키기 일보 직전인, 지금과 같은 최악의 ‘편 가르기’ 문화의 원조이자 원동력은 바로 조중동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만 열면 ‘편 가르기’ 문화를 비판해대고 있으니,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화신’이기도 하지요."

- 이승만을 두고 '예수나 석가와 같은 성자' '세기의 태양' 등으로 찬양한 어용곡필 지식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장준하는 4.19 직전 <사상계>를 통해 이를 질타한 바도 있습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 지식인들이 어느 정도 제역할을 했다고 보십니까? 또 만약 제역할을 못했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한국 현대사에서 지식인이 해온 역할엔 명암(明暗)이 있겠지요. 주로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단으로 달라질 수 있겠기에 한마디로 싸잡아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 특유의 ‘이중문화’는 지적할 수 있겠지요. 지식인의 역할이나 위상에 이중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건 ‘정치경제’와 ‘문화’의 분리에서 나오는 이중성입니다. 문화적으론 아직도 여전한 숭문주의 전통 때문인지 지식인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은데 비해, 그들의 ‘제도적 종속성’은 심각하다는 겁니다.

대학은 지식인의 방패인 동시에 질곡입니다. 예컨대, 조잡한 예이긴 합니다만, 연세대 교수가 조선일보 비판하고 고려대 교수가 동아일보 비판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한국의 지식계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나치게 서구지향적이고 추상적인 거대담론 위주로 나아가는 건 지식인들의 정치경제적 기반이 행사하는 통제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반세기 동안의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대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혹자는 우리 근대 백년은 서양의 천년에 맞먹을만큼 다사다난했다고 했습니다. 그간의 갈등과 혼돈, 그리고 변화무쌍은 선진화로 가는 성장통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우리민족의 독특한 민족성에서 기인한다고 보십니까?
"그간의 갈등과 혼돈, 그리고 변화무쌍은 선진화로 가는 성장통인가, 아니면 우리 민족의 독특한 민족성에서 기인하는 건가? 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앞으로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성’이란 개념은 누적된 역사와 구조의 파생물에 불과한 것이지만, 일단 무시할 수 없는 규모와 강도로 그것이 형성되면 역사의 진로와 구조의 변화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요.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역사조차도 ‘결과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최종 결과에 의해 과거가 규정당할 수 있다는 거죠. 노무현 정부도 최종 결과에 따라 2004년의 오늘도 재해석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요즘 집착하는 화두는 ‘분열’입니다. 완전하게 통제하진 못했겠지만, 저는 책을 쓰면서 내내 선악(善惡) 또는 흑백(黑白) 이분법에 대해 저항하고자 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모진 시련을 당한 세력이 중간파였습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중간파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재정권 시절 ‘중간파’라고 주장했던 일명 사쿠라들이 중간파의 이미지를 더 버려놓았지요. 그러나 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중간파라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이번에 펴낸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단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제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겁니다. '동양심리학'이라는 책을 보았더니, '대학'에서는 이를 혈구지도(絜矩之道)로 설명했다는군요. 혈은 ‘헤아린다’는 뜻이며 구는 ‘잣대’를 뜻한다고 합니다. '대학'엔 이렇게 써 있다고 합니다.

“군자는 혈구지도를 지닌다.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않으며, 아랫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며, 앞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뒷사람을 이끌지 않으며, 뒷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앞사람을 따라하지 않으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않는다.”

반세기 한국 현대사의 굴곡 원고지 2만장에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어떤 내용 담았나

▲ 강준만이 펴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모두 15권으로, 원고지 분량으로 2만 장이 넘는 방대한 규모다. 1945년부터 1989년까지 45년의 우리 현대사를 촘촘히 담아낸 '통사'로,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대중문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자세히 읽기’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10여 년에 걸쳐 자료수집을 했고, 1만여 개의 주제별 파일을 정리했다. 또 지난 2002년 11월 '1970년대편'을 출간한 이후 집필 기간만도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

한편 이번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히 과거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 나름의 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등.

저자는 각 시기별 키워드를 통해 그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2004/10/12 오후 2:22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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