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득 찬 책 -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37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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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도서관>

이곳엔 새 책뿐이야
책장을 열면 글자가 사라지지

'새'를 뽑아 들자
짝짓기하던 한 쌍 나란히 날아오르고
'내'를 펼치자
혀 풀린 벙어리처럼 소리 내며 흐르는 여울
'결'을 찾아보자
어디선가 다가와
돌결, 살결, 숨결, 소릿결, 나뭇결, 물결……
의 주름을 펴는 저 명지바람
'흙'은 부풀 대로 부풀어 하늘과의 경계를 지우고 있어
아지랑이 지우개로

늙을수록 지평선 커지는 어느 봄날의 도서관
반백 살의 어린아이가
수없이 보아 온 책들의 낯섦 앞에서
캄캄하게 환한 갈피 사이에서
홀로 돌아 나오는 길을 잃네
침묵의 지진계
그 미세한 떨림도 모르는 채-16~17쪽

<이별>

이별을 천천히 발음하자
이, 별이 되었다
이, 별에서
저, 별로
건너갔을 뿐이다
그리니치 자오선의 시간에서
시간 없는 시간으로
공간 없는 공간으로
돌려놓았을 뿐이다
먼지와 동갑내기가
된다는 것
중력에서 조금
벗어난다는 것
영혼의 처녀막이
찢어진다는 것
망각의 지우개가 생긴다는 것
A.D.에서 B.C.로
바뀐다는 것
태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뿐이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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