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 완역본 54%가 표절”
번역 평가사업 보고서 로빈슨 크루소등 13편 추천할만한 역서 '없음'
우리말로 옮겨진 영미소설 중 열에 아홉은 부실한 번역본이라는 영미문학 연구자들의 주장이 나왔다. 도서관과 서점의 서가에 꽂힌 영미문학 완역본의 54%가 표절인데다, 신뢰할 만한 번역본이 전무한 작품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영미문학연구회(공동대표 오민석·서강목)는 이런 내용이 담긴 ‘영미 고전문학 번역평가 사업’의 최종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는 김영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비롯한 44명의 연구자들이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해방 이후 지난해 7월까지 남한에서 발간된 영미문학 고전 36편의 번역본을 수집·분석한 결과물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만과 편견〉, 〈테스〉 등의 영국문학 걸작들과 〈무기여 잘 있거라〉나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미국문학의 대표작들이 망라됐다. 문학작품 번역에 대한 종합적 평가작업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아래 지난 1년6개월여 동안 평가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 중간결과물인 ‘샘플평가’(〈한겨레〉 2003년 3월8일치)의 내용이 공개된 바 있다.
축약본·부분번역본과 어린이용 판본을 제외한 573종을 분석한 결과, 310종이 완전한 표절이거나 적당한 윤색만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표절본의 비율은 1990년대 이후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또 추천할 만한 역서가 발견되지 않은 작품도 13개에 이르렀는데,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로빈슨 크루소〉, 〈위대한 유산〉, 〈무기여 잘 있거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이 포함됐다. 다만 셰익스피어 작 〈햄릿〉의 경우 비교적 높은 번역수준을 보여, 추천 가능본이 10종에 달했다.
연구자들은 번역본마다 특징 및 분석결과를 기술하고 별표등급을 부여했다. 여기서 만점을 받은 번역서는
김진만 역 〈캔터베리 이야기〉(정음사·1963),
김영희 역 〈토박이〉(한길사·1981, 창비·1993),
최재서 역 〈햄릿〉(정음문화사·1983),
이상옥 역 〈젊은 예술가의 초상〉(민음사·2002),
김진경 역 〈도둑맞은 편지〉(문학과지성사·1997)
등 6권에 불과했다.
연구결과는 올해 책으로 나올 예정이며, 연구자들은 이번 사업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을 대상으로 2차 번역평가 사업을 진행중이다.
임주환 기자 (한겨레 2004.02.13(금)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