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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에 쓴 잡문. 8월 4일에 헨리 제임스가 쓴 <비둘기의 날개> 독후감을 올릴 예정이다. 읽는 내내 <여인의 초상>이 막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옛 노트 자락을 들췄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에 써 놓은 걸 다시 읽는 일은 꽤 창피한 일이다.





 원어 제목이 <The Portrait of a Lady>.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상권의 중간쯤 들어가면 책의 한글 제목은 당연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한 여인의 초상>으로. <여인의 초상>과 <한 여인의 초상>은 당연히 다르다. 주인공 여인이 이사벨 아처라는 이름의 재색을 겸비한 미국 태생 여자로 앞으로 긴 세월을 영국에 살게되고, 그러나 모든 여자를 대표하지 못한다. 따라서 당연히 <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해야 하는데..... 요새 나한테 미운털이 콱 박혀있는 출판사 창비가 이런 짓 하나는 정말 잘해서 정말로 <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제목을 달고 똑같은 책을 찍었다. 비슷한 것이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 그것도 원어로는 <한 인생> 또는 <어떤 인생>이지만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여자의 일생>으로 했다가 그냥 굳어져 우리나라도 덩달아 <여자의 일생>으로 굳어졌다고 들었다. (아마 예전 메모에도 그렇다고 썼을걸?)

 내가 왜 굳이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서두를 떼냐하면, 이 이사벨 아처가 젊은 시절에. 이종사촌이 자기 아버지한테 받아야 하는 상속금 가운데 7만 달러를 본인은 모르는 것으로 하고, 이사벨이 상속받게 해주는데, 이걸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처절하게 "나한테는 왜 곧 죽어버릴 돈 많고 자식없는 이모부나 삼촌이 없느냔 말이다!"라고 절규했으며 애먼 마누라한테도 "혹시 나 모르는 너네 삼촌 가운데 돈 많고 장가 안 든 양반 안 계시냐?"고 했다가 타박만 오지게 먹어버리고 말았다.

 7만 달러가 그까짓 것 얼마나 되냐고? 계산해드리지. 때는 1850년대. 기분 좋게 1860년이라고 가정하여 그때 돈 7만 달러가 지금 돈으로 얼마쯤 될까, 라는 것을 계산하기 위해 150년 전이라고 뚝 잘라 생각하자. 그 동안의 평균 이자율을 4%로 본다. 고전을 읽어보면 유럽 각국에서 이자율은 아예 4%로 고정된 것 같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나같이 연 4%인지. 20세기 초반과 중반 전쟁시기를 거치면서 무지막지한 이자율을 보인 적도 있지만 겸손하게 그냥 4%로만 보겠다. 환율 또한 겸손하게 1달러 당 1,000원으로 하자. 그럼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파일을 여시라. 그리고 이렇게 입력해보시라.

 +70,000*(1.04^150)*1,000

 (입력 했으면 enter)​

 그때 돈 7만 달러는 지금 우리 돈으로 최하 251억원과 같은 수준이다.

 머리 좋고 얼굴 예쁘다는 걸로 이종사촌 마음에 들어 가만히 앉아서 251억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여자 얘기다. 나한테 251억 말고 200억 원만 있고, 하루에 백만원 씩 쓰면서 30년 동안 살 수 있다고 가정하면, 제일 먼저 마누라한테 92억원을 뚝 떼주고 그만 살자고 하겠다. 그럼 마누라도 여보 당신과 살면서 생전 이렇게 고마운 일은 여태 없었수, 하며 즐겁게 제 갈 길로 갈 거 같지 않은가. 그 다음 날부터 난 정신 없을 거다. 하루에 백만원씩 써제끼느라고.

 그래, 물론 안다. 세상은 60억년 전에 지구가 생겼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어서 나한테는 그런 일이 죽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맞아, 어찌 왕후장상의 씨와 내 씨가 같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이렇게 썼다고 해서 이 책 <여인의 초상>이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 미국인이지만 생의 많은 부분을 영국에서 산 헨리 제임스가 쓴 귀신 나오는 소설 <나사의 회전>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 1,000 쪽을 넘어가는 긴 책을 정말 단숨에 읽게하는 작가의 신공이 놀랍다. 다만 내가 이렇게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은 신디(폭킹)렐라 얘기는 참 좋아하지 않는지라 나하고 궁합이 맞았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재미난 책을 폄훼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아, 나도 죽을 때는 이사벨 아처의 이모부처럼 근사하게 죽고 싶은데. 돈을 많이 남겨서가 아니다. 죽는 모습이 정말 품위있게 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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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6-08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덤까지 돈을 가져갈 수 없을지언정
요즘 세상엔 삼촌과 고모가 조카에게 남겨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 소설들 읽으면 그들이 꼭 재산을 남겨주더라고요. 그런 낭만이 좋아요.

Falstaff 2026-06-08 15:54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예부터 조카들한테는 자진해서 절대 안 준 걸로 압니다. ㅋㅋㅋ 제 집구석만 하더라도 장자 상속이라 맏아들 아니면 국물도 없었거든요. 그런 집구석에서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니 아휴.. 바랄 게 애당초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 둘째 아들한테는 조금 주고 갔으면 좋겠는데 뭐 벌어 놓은 것이 없어서 그저 마음 뿐입니다. ㅎㅎㅎ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ㅣ 창비시선 529
김용만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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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56년 잔나비띠 시인. 임실 덕치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가운데 셋째로 났는데, 그 험한 시절에 아이들한테 손찌검 한 번 안 하고 큰소리 한 번 안 치는 천생 지게 같은 아버지와, ‘양글이’라는 별호를 단 작은 체수와 화려한 입담이 야무졌던 어머니 덕분에, 가난 때문에 고생은 했을지라도 하여간 우애는 좋게 살았던 모양이다.

  학교는 전주의 영생대학 국문과에 들어가 학교 이름이 바뀌어 전주대학 국문과를 졸업하지 않았을까 싶다. 졸업한 후에 희망대로 학교 교사가 되지 못했으니 그저 되는대로 책도 읽고, 시도 써보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았겠지. 그러다 서른살이 오고 서울로 올라갔다. 거기서 고향 아는 사람들을 따라 아파트 현장일도 하고, 잡지사에도 잠깐 다녀보고, 구로노동자문학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시작했다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말했다. 그래서 이이의 농사짓는 시 속에 간혹 노동시도 섞여 있다.

  1990년, 35세 때 부산노동자문학회에 속한 간호사와 결혼해 이후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지역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아 그저 너댓 명 두고 철물 가공업을 하는 작은 가게 소위 마찌꼬바에 들어가 성실하게 일을 배우기 시작해 무려 30년을 넘게 그렇게 산다. 시간은 쏜살같이 날아간다. 그렇게 영세 철물 가공공장 노동자로 30년 넘게 지내다가 은퇴를 하루 앞둔 2016년 12월 24일에 야구장 철망 보수작업을 하다가 휴대전화를 받으니, 아이쿠, 위암이란다.

  마침 전에 누이동생이 소개해 사 둔 완주 위봉산 자락에 텃밭이 달린 작고 낡은 집이 있어서 치료와 항암 과정을 마친 후 그곳에 들어가 지금껏 거기서 농사짓고 산다.

  시업은 1987년에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해 2026년에 두번째 시집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을 냈다. 데뷔 후에 첫 시집을 발표하고 그 속에 마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 시집에 담았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이스라엘이 미국 대통령을 꼬드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 것보다 손톱을 바투 깎아 나물 무칠 때마다 기름이니 된장이니, 청양고추 다진 것들이 닿을 때의 아리고 아린 손끝을 더 괴로워하는 거. 사는 거, 징그러운 거.



  가시



  산초나무 가시 하나

  외약손 손가락에 박혔다

  일주일간 함께 지냈다

  손톱 밑 가시라더니

  돋보기 쓰고도 보이지 않는

  이 작은 가시 하나

  받아줄 수 없어

  괴로워하다니

  엄살떨다니

  결국 곪아터지다니  (p.10 전문)



  짧으면서도 할 말 다했다. 둘째 행 “외약손”은 왼쪽 넷째 손가락이 아니라 그냥 왼손의 사투리. 작은 가시 박이면 거 참 신경 쓰이지. 돋보기를 써도 안 보일 정도로 작은데 따끔따끔하면 그걸 그냥 놔둬? 부처님이네. 나는 일단 가시 박인 부위 전체를 알코올 소독하고 손톱깎이로 따끔거리는 부위 전체를 막 후벼 파서 없애 버리는데 이것도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뭐 내 성질이 좀 별나서 그러겠지.

  위암 환자인 김용만이 농사도 잘 짓는다. 아무래도 어려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자기도 지어본 가락이 있어 도시 사람들보다 적응하기 수월했겠지. 그래도 농사는 힘든 일이다. 나 아는 농촌 출신 도시 사람은, 세계적으로 흉작이 와 식량무기화 수준이 오지 않는 한 다시는 농사 짓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김용만이 감자 농사도 좀 했던 모양이다.



  감자 캤다



  묵정밭 감자 캤다

  약도 안 하고

  퇴비만 넣었더니

  감자가 고르지 않다

  그래도 첨 농사치고는 솔찬하다

  앞집과 옆집, 또랑 건너 최씨 아재

  산 밑 할머니, 주말에나 왔다 가는 이층집 나눠주고

  대전 해숙이, 형님네, 명희네

  한봉지씩 보내고 나니

  잔챙이만 남았다

  괜찮다 잘 짓든 못 짓든

  나누는 것도 농사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언제나 앞줄에 섰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잘 살았다

  큰 놈은 잔챙이가 키운다  (p.12 전문)



  김용만이 6남매, 4남2녀. 해숙이와 명희가 여동생. 그리고 형님네. 형이 둘 있다. 맏이한테는 ‘큰형님’이라 올림말을 한다. 그냥 형님은 둘째, 자기 바로 윗형이다. 서울 사는 김용구. 큰형님은 시골에 살아(p.90) 굳이 농사 지은 거 보낼 필요 없다. 초등학교 선생이지만 시골 사는 건 시골 사는 거니까. 누구냐 하면 이름 좀 알린 섬진강 시인 김용택. 대전 해숙이는 바로 아래 동생. 군산 복숙이는 둘째 여동생. 그러면 명희는 남해 사는 막둥인가? 아니면 막둥이의 딸? 뭐 이집 족보를 대강 추리하면 이렇다. 시인의 아내는 아직 부산에 살아 자기도 주민등록이 부산으로 되어 있다가, 나중에 아내마저 은퇴하고 완주 산골로 올라와, 너는 만날 남의 시만 읽고 자기 시집은 한 권 내지도 못하느냐, 하면서 바가지 득득 긁는다. 그렇게 산다. 그래서 시인들아, 나 한테 시집 좀 보내지마, 울상을 하기도 하며. 늙어서 귀엽게.

  두번째 시집이라도 등단 후 발표하지 않고 그냥 써 둔 시들이 많았겠지. 그래서 아직 부산 살며 아들 동해, 딸 도연이와 살 때 지은 시도 몇 편 들어 있다.



  기분 좋은 밤



  아내 퇴근이 늦는 밤이면

  가끔 우리는 저녁을 시켜 먹는다

  짜장면 하나

  짬뽕 곱빼기 하나

  전화해놓고

  신이 난 동해는

  베란다 창가에 붙어 있고

  아빠 돈 있느냐고

  도연이는 자꾸 묻는다


  아들딸 앞에 두고

  국수 가락 잘라주며

  소주 두어잔 받아 마시는

  기분 좋은 밤


  아내가 가끔은 늦어도 좋다  (전문. P.20)



  김용만은 영세 공장의 주임이고 아내는 간호사. 맞벌이하는 집이다. 시를 가만 읽어보면 평소에 이집 안주인, 여자는 돈벌이도 하면서 온갖 가사를 전담하는 모양이다. 엄마가 늦게 와서 어쩌면 아빠가 그냥 밥 짓고 차려주기 귀찮아서 짜장면 시켜 먹었을 수도 있지만, 밥은 당연히 여자가 하는 거라 엄마 기다리기 싫어 주문음식을 먹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왕이면 첫번째 경우였으면 더 좋겠다. 이왕이면 아내도 좀 늦게 퇴근해 집에 들어왔을 때 네 식구가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동해는 짜장면 먹고, 아빠와 도연이는 짬뽕 나누어 먹고, 엄마가 탕수육 한 접시 홀랑 다 먹었으면 더 좋았을 그림.

  이렇게 살다가, 은퇴 며칠 앞두고 위암 진단. 이어서 치료. 그리고 완산으로 낙향. 홀로 낙향했다.



  선글라스



  혼자서도 살림 잘하고 산다며

  아내가 선글라스 하나 사줬다

  도수 들어간 비싼 걸로

  그런데 산중에 사니

  자랑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소양이랑 산책 갈 때 쓰고 간다

  산길 오르며 감나무에게

  산길 내려오며 참나무에게 자랑한다

  그래도 사람이 아니어서

  좀 시시하다  (p.68 전문)



  부산 살 때 가끔 시인이 아내 대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국이나 찌개도 끓여 밥상 좀 차렸겠지? 혼자 병 고친다고 완산 산골에 들어가 있는 남편한테 비싼 선글라스도 사 가져오는 거 보니까. 다행이다. 그래야지. 이러다가…. 아내마저 은퇴하고 이제 남편 곁으로 왔다. 설마 아주 오지는 않았겠지. 천생 도시 사람이 단번에 시골살이 할 수야 없겠지. 여전히 부산 살며 완주에는 왔다갔다 하겠지.



  차마



  퇴직하고 산골 내려와

  아내 곤히 잠든 밤

  홀로 깨어 서늘히 시집 읽는다

  밤새 눈 내려 쌓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에 별들 깊다

  문밖을 나서려다

  눈 귀한데 살다 온

  아내 위해 차마

  마당에 내려서지 못했다  (p.96 전문)



  부산 아줌마인 아내라서 평생 눈구경이 몇 번 없었을 거라, 잠 깨어 숫눈 가득 펼쳐진 마당을 처음 밟아보라는 늙은 남편의 마음이 곱네. 아내도 이 마음 꼭 알아주었으면 더 좋겠다.

  근데 어라, 이제는 완주 완산에서 부부가 아주 사는 모양이네? 이런 시를 쓰는 거 보니까.



  핑 다녀오세요, 했다



  아내가 십이일간 유럽 여행을 갔다

  나는 안 갔다

  나는 유럽보다 봄이 오는 우리 마을, 내 작은 집이

  더 좋다

  긍게 안 갔다

  그래서 늦은 밤 터미널에 아내 내려주고

  핑 다녀오세요, 했다  (p.101 전문)



  오늘은 시인의 가정사를 한 스토리로 해서 독후감을 써 보았다.

  이런 장면보다 좋은 시들이 훨씬 많다. 그걸 다 읽어드리지는 못하겠고, 딱 한 수만 소개하자.



  산길에서



  다시 또 봄은 왔는데

  어떻게 앉아만 있냐

  겨우내 녹슨 호미 걸어놓고

  어찌 책만 보냐

  저 앞산 진달래

  산벚꽃 팡팡 터지는데

  환장 없이 앉아만 있냐

  매급시 가슴 울렁이는데

  내게 진정하라니

  그게 할 소리냐  (p.61 전문)



  8행의 “매급시”는 “맥 없이”의 사투리이기도 하고 시어이기도 하다. <선글라스>에서 시인과 함께 산책을 나간 ‘소양이’는 시인이 기르는 시고르자브종 강아지.

  엇다 모르겠다. 딱 한 수만 더 읽어드리겠다.



  고백



  또랑 건너

  최씨 아재네

  비닐하우스 집 짓고

  콘크리트 쳤다

  온종일 땅 고르고

  터 닦아 레미콘 받았다

  수고했다며 십오만원 주길래

  한동네 살며 그럴 수 없다

  손사래 친 후

  대문 나서기도 전 후회했다


  오만원이라도 받을 것을  (p.16, 전문)



  30년 넘게 철물 가공, 용접 같은 영세 공장 노동일을 했으니 손끝이 맵겠지. 비닐하우스 짓고 콘크리트 타설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겨. 그래 하루 종일 일 해주고 막걸리 잔도 좀 얻어먹었으니 같은 동네에서 같은 사투리 쓰는 사람끼리 됐다, 이런 마음이었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섭섭한 건 어떡해. 속으로 그랬겠지. 내가 염병을 한다고 손사래까지 쳤어, 그래. 뭐 사는 일이 다 그런 거여. 십오만원 준다고 그걸 덥석 받아오면 또 이게 사달이 나거든. 거기서 다시 오만원이나 십만원은 돌려주면서, 집에 돼지고기에 쐬주 한 병 사가려면 이걸루다 충분허요, 하면 좋았을 것을, 그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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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비재 2026-06-06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섬진강 시인 김용택으로 잠시 착각,착각을 변명하자면,김용택도 임실 덕치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거기살고 있고 꼬마치들 몇 명 되지도 않는 핵교 선상으로 평생 지냈고,,근디 옛날에는 대한민국 3대 오지 중 하나인 동상면 인근 위봉 폭포 자락에 자리 잘 잡으셨네요 지금은 거기도 한옥 마을이 들어서 상전벽해라 할까요,,

Falstaff 2026-06-06 19:50   좋아요 0 | URL
착각하실 수 있지요. 본문에 썼듯이 ‘용만‘이 ‘용택‘의 친동생이거든요.
 
조연 여배우 ㅣ 묘보설림 19
등구운 지음, 이기선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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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생 타이완의 배우, 모델 겸 작가. 국립정치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광고학을 복수전공하고 영국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전지현이 타이완에서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러 갔을 때 172cm, 52kg에 신체 사이즈 32/24/35를 유지하던 등구운이 전지현의 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 많은 연극, 드라마, 영화, 광고에 출연한 배우인데 내가 원래 연얘가 중계를 거의 듣지 않는 편이라 어느 정도 스타였는 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한국어를 전공해서 그런지 자기 이름 鄧九雲도 타이완 발음 ‘덩주윈’ 대산 우리 발음인 ‘등구운’으로 읽어달라고 스스로 부탁해서 작가 이름을 박은 것이라 한다. 우리말 외에 타이완 사람이 자주 그렇듯이 만다린어는 기본이고 법으로 국가언어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영어도 모국어 수준에 일본어도 우리말 정도는 할 줄 안다.

  위키피디아에는 등구운이 영국의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석사를 취득했다하고, 중국의 바이두 백과는 영국의 이스트 15 연기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이스트 15가 에식스 대학에 포함되어 있는 기구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영국에서 학위를 따 왔음에도 타이완으로 돌아오니 작업도 들어오지 않고, 기껏 얻어걸린 드라마에 출연중 사고가 나 스태프 한 명이 죽는 바람에 촬영 중단이 되어버린 일화가 나온다. 이것도 아마 픽션이겠지.

  위키피디아 등구운 페이지에는 “이 항목에는 인생 경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기사에 대한 정보를 확장해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하물며 여배우는 더 하겠지. 그것도 인기 관리의 전략일 수 있으니 더는 모른 척하자.


  두 자매. 황청黃澄과 황첸黃茜. 띠동갑이다. 165cm, 56kg의 외양을 자랑하는 미인 동생 황청은 자기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 황첸한테 업혀 자랐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렇게 언니 겸 이모 겸 엄마 노릇도 해가며 살았다. 집안에 네 가족이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 황청을 안은 황첸, 아빠 순으로 앉아서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왼쪽, 아빠는 오른쪽, 황첸은 아래쪽에 눈을 두고,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건 황청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황청이 여섯 살 때 사라졌다. 엄마 입에서는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언니한테는 십년 이상이 훌쩍 지나간 후에, 그 인간이 술을 엄청 퍼마셨으며, 집을 나간 이후에도 자기한테만 몰래 와서 돈을 얻어가고는 했단다.

  황청이 본인은 그리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입술이 좀 짝짝이처럼 생긴 바람에, 대학시절에 일본배우 OO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 그 소문을 들은 방송국에서 찍어간 적이 있었다. 몇 주 후에 일본 배우가 광고 촬영차 타이안을 방문했을 때 조명을 맟추어 볼 대역을 요구하여 22시간 동안 8천 위안을 받기로 하고 대역을 맡았다. 커피숍 한 달 알바비를 하루에 받을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싶어서. 그러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손만 나올 대역배우 자격으로 황청이 남자 배우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의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후려 갈리니 미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아플까 싶기도 해서, 아프지 않으세요, 얼마나 아프세요, 막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남자배우는 그 역시 조그마한 소리로 괜찮습니다. 더 실감나게 세게 때리셔도 됩니다. 그래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실감나게, 빨리 끝내는 것이 덜 때리고 덜 맞는 일이다 싶어 마구마구 후려쳤지만 감독이 컷을 외칠 때마다 얼굴이 부은 남자가 서둘러 냉찜질을 하면서도 황청을 향해, 손바닥이 아프지는 않았느냐고, 이렇게 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물론 이 남자는 작품의 뒤쪽으로 가면 이제 이름을 날리는 유명 배우가 되어 황청과 커플을 이루어 드라마를 찍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두 명 다 커플 배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해, 진짜 커플로 소문, 스캔들이 나 그걸 은근히 즐기는 가짜 연인으로 지내기도 한다.


  아빠를 쫓아버린 엄마는 두 딸과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애하고 혼자 사는 사람끼리 만나 가정으로 이루어 볼 생각이 없느냐면서 한 남자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린 선생. 엄마가 만나보니 큰 키에 섬세하고 자상한데다가 믿음직 한 것이 마음에 딱 들었다. 하지만 린 선생이 세 모녀가 사는 집에 와서 보니까 엄마가 아니라 첫째 딸 황첸이 마음을 아프도록 폭 찔러버린 거였다. 그리하여 린 선생은 황첸에게 잘 해주었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 둘은 연인으로 발전해버렸다.

  황첸은 린 선생을 만날 때, 자주 동생 황청과 함께 외출했다. 황청의 나이가 아직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때라 엄마와의 관계는 어느 새 잊어버리고 그냥 린 선생이 황첸 언니의 애인, 그것도 내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잘 사주는 좋은 애인이며, 다만 너무 좁은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좀 불만인 남자 이상이 아니었다. 하여간 언니는 린 선생과 좋은 시간을 많이, 오래 보낸 모양이다. 그러면 탈난다. 탈 났다. 황첸의 배 속에서 린의 씨톨이 알을 만나 착상을 해버린 것. 린 선생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는 그냥 두고 볼 것이다. 만일 아이를 낳는다면 황첸과 가정을 이루면 되는 거고, 그렇게만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아직 혼인 전이니 여성이 임신중단애 관한 권리를 주장하면, 아이가 있는 돌싱남 입장에서 혼인 불가 통보로 이해하고 임신중단을 막을 수 없다. 이후 성실하게 뒤처리와 계속 연인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면 그게 차선이다.

  황첸은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낳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엄마 모르게 연인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엄마한테 린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또 한 번 배반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재단 가위를 가져와 황첸의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자기 방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던 황첸이 침대위에 모로 누워 물끄러미 동생 황청을 보더니 너도 잘라줄까? 했고, 황청이 자기만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좀 이상해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황첸이 황청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는데, 이게 임신중절을 하기 전인지 한 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일 이후에 황첸은 엄마한테 질려 보따리를 싸 독립해 원룸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주인공 황청은 대역배우를 끝내고 소극장 연극 <불면증> 오디션에 참가, 섬세하고 신비로우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원한다는 극단의 요구에 부응하여 합격한다. 세 명의 여주인공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불순한 친한 척’ 속의 비틀림과 경쟁이 불타올랐고, 그렇게 연습을 해 드디어 초연의 막이 올라갔을 때, 관객석의 관객 절반 이상이 황첸 언니의 학교 연극반 동기들이었다. 황청은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오지 않을까봐. 원래 성격이 이렇다.

  첫 공연이 끝나자 평소 황청과 황청의 연기를 시답지 않게 보던 단장조차 “오늘은 황청의 무대였어.”라고 촌평을 했을 정도의 성공.

  황첸도 무대 위의 동생을 보니 내면에서 뭔가 넓게 퍼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고, 이제는 동생의 삶에 개입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관객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되리라고. 근데 그게 쉬워? 12살 차이나는 동생, 그것도 어려서부터 자기한테 기대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던 아이한테. 이 무렵 황첸은 ‘캉’이란 새로운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해, 작품이 진행될수록 결혼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고 애도 쓰고, 한 여자 아이를 입양한 후 캉의 시민권이 있는 미국에 가서 살다가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다.

  이후 황청이 미인대회 2등상을 타고, 타이완에서 제일 유명한 기획사에 들어가 영화 조역을 따지만 대가로 영화감독의 손을 타게 된다. 당연히 황청만 모르는 지저분한 소문도 다 났겠지. 그리하여 결정한 것이 연기력을 확장하기 위해 연극의 본거지, 셰익스피어의 고장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거였다. 이게 등구운의 이력과 매치되는 부분이다. 여태 히트작 하나 없는 등구운이 무슨 돈으로 영국유학? 엄마 같은 언니 황첸과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부자 형부 캉이 뒤에서 팍팍 지원을 해준 덕분이다. 아, 나도 소싯적에 이런 누나, 매형 있었으면.


  영국에서 돌아온 황청. 이제 남은 건 황청이 스타, 아니면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의 배역을 한 번 멋있게 연기해보는 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연애에서도 성공을 해야겠지.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밝히지 않겠다. 연기는 인류가 행위했던 가장 오랜 예술 장르.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궁금하신 분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 글도 잘 쓰고, 가끔 등장하는 러브씬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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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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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생 백인 미국인.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교수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의 아들로 나 시카고에서 성장했다. 햄프셔 칼리지를 거쳐 아이오와 대학에서 예술석사, 디트머스 대학에서 비교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 있고, 우간다에 체류했을 때는 트랜스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을 때였는데 동성연애 등에 관한 우간다의 개별문화를 조사하다가, 우간다 의회가 반동성연애법안이 제의하는 바람에 위협을 느껴(추정)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 여성, 즉 MF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다.

  2021년에 결혼한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살다가 지금은 콜럼비아 산타마르타에서 터를 잡았단다. 나같은 이성애자는 모르겠지만, ‘결혼한 아내’라는 표현은, MF 트랜스젠더인 토리 피터스가 여성 또는 트랜스 여성과 동성결혼을 했다는 의미다. 여성간 동성결혼의 경우 배우자는 서로를 아내라고 부른다. 즉 부부는 두 아내로 구성된다. 그렇게 알고 있다.


  나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에 관해 별 관심이 없다. 주변에 눈에 띄는 성소수자도 없다. 만일 있다면? 당연히 똑 같은 대우를 하겠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물론 속으로 조금 궁금한 게 있겠지. 그래도 하나의 질문 없이 그들과 일상의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한다 해도, 나도 모르게 언어나 행동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그들이 눈치채고 기분 나빠 할 수 있겠지. 그것까지는 나도 어찌 할 수 없다. 그저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더 이상은 없다. 그들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최대로 배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당연하게 많이 예민할 것이다. 다수자들이라면 아주 사소해 모른 척하고 지나칠 것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다수자들은 내 옆, 주위의 사람들도 당연히 다수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혹시 말할 수도 있겠지. 먼저 자신이 소수자라고 밝히면 더 세심하게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이럴 때마다 일일이 커밍아웃하는 소수자도, 그걸 듣고 언행에 조심하는 것도 사실 좀 웃기다. 인종이나 젠더의 경우라면 탁 보는 순간 일종의 규범, 언행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어 자연스레 조절할 수 있으나, 다수자 입장에서 눈치채기 아주 어려운 성 소수자 배려는 그래 더 힘든 것 아니던가?

  나와, 내가 아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하나같이 그들과 어떤 형태로도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반 정도는 있으나마나 자신한테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나머지 반은 진저리를 치며 싫어한다. 지금 한국 꼰대 남자들의 수준이다.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진짜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꼰대 세대한테는 이것도 많이 발전한 거다. 그렇게만 알면 좋겠다.


  이 책은 미국의 톱5 출판사에서 펴낸 첫 트랜스젠더 작가의 책이라고 한다. 토리 피터스도 이게 첫 작품이라는데, 일곱 개 중요 문학상의 후보로 올라 이중 하나 PEN/헤밍웨이 상을 받았다.

  근데 내가 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을까?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서 ‘첫빠따’로 읽을 정도로 혹 한 이유는 뭐지? 다른 도서관에도 한 권 있어서 빌려 읽으면 될 텐데 굳이 희망도서를 신청했다는 건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뜻. 모르겠다. 잊었다.

  제목 “디트랜지션Detransition”은 이 책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아들로 호적에 입적시켰는데, 자라면서 성정체성이 여자인 것을 알게 되어 여성으로 전환transition 해, 여성으로 한동안 살다가 또 뭔가 자각을 했는지 다시 남성으로 복원 또는 환원detransition한 사람을 일컫는다. 전환과 환원을 위하여 다량의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트랜스를 위하여는 에스트로젠을, 환원을 위해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주목할 것은 트랜스 여성이 되느라 에스트로젠 처방을 6개월 정도 받으면, 진짜로 그런지 트랜스들의 대화법이 그런지 하여간 고환이 쪼글아들어 후에 디트랜스를 해 다시 남성이 되더라도 영구 임신 불가능 상태가 된단다. 물론 디트랜스 기간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해 성기능은 원상으로 돌리더라도 그렇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MF 트랜스를 해 여성 에이미가 된 인물이 등장한다. 에이미는 같은 MF트랜스 여성 리즈와 서로 아내로 살다 헤어졌다. 에이미가 여성이 된 직후, 여성으로 살기 위한 거의 모든 하드, 소프트 웨어를 리즈가 가르쳐 주었다. 이런 경우에 리즈는 에이미의 트랜스 엄마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때 리즈는 사업에 성공해 돈이 무척 많은 개자식하고 살고 있었는데, 자기 아파트를 가지고 살던 에이미가 돈 많은 개자식의 폭행을 당하며 살던 리즈를 구해준 구석도 없지는 않다.

  이렇게 살다가 에이미가 어느 하루, 선언하기를, 이제 우리는 찢어져야 하는 게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길인 거 같다고,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기 위하여 나는 다시 남자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대판 싸웠겠지. 말이 그렇지, 아름다운 이별이 그렇게 많아? 이들도 서로 웬수 상태가 되어 헤어졌다. 뭐 다 그렇듯이.


  리즈의 문제는 도무지 혼자 있을 줄 모르는 거다. 혼자 만의 삶, 고독으로부터 도망을 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거. 그런데 트랜스 여성이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은 시스젠더 여성인 아내와 살다 모험을 즐겨보려고 길거리로 나선 남자뿐인 거 같다. 그래서 트랜스 여성한테 “남자는 다 개”라는 명제가 참이다. 리즈도 두 명의 유부남에게 큰 실연을 경험했으며, 지금 또 한 명의 잘 생기고 매혹적인 유부남 개자식과 밀회를 즐기고 있다. <디트랜지션, 베이비>의 막이 오르면 리즈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유부남 개자식의)BMW에 앉아서 콘돔을 사러 편의점에 간 그 개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냥 보통의 한국 남자 꼰대들이 알고 있는 거라면, 매체를 통해 그나마 정보를 알게 되는 트랜스 여성들은 우리나라에서 또는 태국까지 원정을 가 음경과 고환을 제거하고, 주름진 주머니까지 싹 잘라버린 다음에 고환이 있던 서혜부에 구멍을 내 직장 위쪽으로 질을 만든 사람으로 알았을 듯하다. 그러나 책의 두 주인공급 트랜스 여성들은 음경과 고환을 달고 있다. 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아 생식능력은 없지만 책을 읽어보면 음경이 발기도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 유방이 부풀고 젖꽂지가 도톰함에도 음경이 달린 트랜스 여성만 찾는 남자를 구하는 방법은? 20세기에는 자기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었겠지. 지금은 미국의 경우에 데이팅 앱에 접속해 취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거 모르고 살아도 괜찮은데, 자꾸 이렇게 알려줄 필요 없는데도 정보가 넘친다.

  하여간 지금 리즈가 만나는 BMW 타는 수캐는 사실 HIV 양성반응자이다. HIV 환자하고 다르다. 그래도 조금 위험한 사람이다. 리즈한테는 치명적이지 않다. 리즈는 에이즈 예방약을 복용했다. 그걸 피임약이라고 일컫는다. 리즈는 에이미와 결혼시절에 자기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어 했다. 위스콘신의 선량한 백인 엄마들이 지닌 여성성에 대한 갈망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에이미가 에임스라는 이름의 남자로 환원한 후에 프로그래머로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한 시절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 수 있었을 만큼 고운 외모를 가진 남자이니 직장 안에서 여직원들한테 인기가 많았겠지? 그렇다. 그러다가 하루 여성 상사 카트리나가 에임스에게 자기 집으로 업무를 가지고 좀 오라고 했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한테 그런 지시를 내렸으면 즉시 성희롱 관련해 직장 윤리위원회 회부감이지만 여성 상사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뭐 이것도 성차별이기는 한데 그냥 넘어가자.

  이혼해 넓은 집을 혼자 사용하고 있는 카트리나가 에임스를 부엌으로 데려가 음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커다란 냉장고를 열고 고개를 수그려 둥근 엉덩이가 눈 앞에 활짝 드러나자, 갑자기 충동이 인 에임스가 코와 입술을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카트리나의 엉덩이에 탁 밀착시켜 바지 속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냄새를 흠향하기 시작했고, 원래 그쪽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카트리나도 점점 고양되는 성적 흥분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미 여성의 몸으로 여성과의 섹스를 알고 있는 에임스. 카트리나는 에임스와의 관계에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자기 계좌의 모든 돈을 한 장의 수표에 써서 넘겨줄 수 있고, 자기 소유의 서초동 7층 건물의 등기소유권도 넘겨줄 수 있을 만한 엑스터시, 진정한 오르가슴 중에서도 오르가슴의 왕을 배알하게 된다. 그러니 둘이 쉽게 떨어질 수 있어? 계속 몇 달 연애를 하더니, 카트리나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


  트랜스여성을 졸업했지만 아직 아버지라는 틀에 적응하지 못한 에임스. 도저히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카트리나는 정상 가정을 만들지 못하면 당장 임신중단을 선택할 거 같고, 그래도 아이는 갖고 싶다. 이때 에임스 머리에 탁 떠오른 인물이 평소에 아이를 갖고 싶어 애달캐달하던 트랜스 시절의 아내 리즈. 에임스는 서둘러 리즈에게 전화를 걸고, 만나 고민을 호소한다.

  아이를 낳고, 셋이 키우자고. 트랜스 여성과 디트랜스 남성, 그리고 시스 여성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가족관계가 생기려 하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그것 참.

  하지만 워낙 내가 이 동네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충격적인 스토리라도 도무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어야 하건만, 일단 이들과 공감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트랜스나 퀴어 하여간 성소수자들이 읽으면 공감하고 잘 썼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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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의 날개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98
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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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읽었는데 말입니다, 만일, 착한 밀리 실 미국인 아가씨가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어가면서, 아니겠지만, 혹시 자기의 어마어마한 재산 가운데 일부분이라도 케이트 또는 덴셔 한테 상속해 그들의 해피 엔드에 이바지한다면, 다시는 헨리 제임스 안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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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6-02 16:47   좋아요 1 | URL
아휴, 미워라. ㅋㅋ

잠자냥 2026-06-02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냐?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6-06-0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빌런이 나오나 보네요 ㅋ😅

Falstaff 2026-06-03 05:32   좋아요 2 | URL
1권에는 귀여운 빌런이 나오는데요, 혹시 모르지요, 2권 접어들면 진짜 빌런으로 변할 지는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