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자서전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김희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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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머니의 자서전. 그러면 화자 ‘나’는 작가 또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일까, 작가 또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의 어머니일까? 화자 ‘나’의 이름은 수엘라 클로테르 리처드슨. ‘나’의 어머니 이름은 수엘라 클로테르 데바리외.

  ‘나’의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수녀원 문 앞에 버려졌다. 프랑스에서 온 원장 수녀는 아이를 받아들여 이름을 ‘수엘라’라고 짓고, 자기 이름을 뒤에 붙인 다음, 자신의 성姓을 좇아 데바리외라 했다. 도미니카 연방의 앤티가 섬은 오랜 세월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18세기 들어 영국 연방에 흡수, 19세기 초에 영국의 정식 식민 연방에 속했다가 1978년에 독립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프랑스어의 카리브 사투리, 영어의 카리브 사투리, 크롤어 등을 사용하는데, 좀 있는 사람들은 대개 표준 영어를 쓰는 것 같다. 내가 뭐 아나, 책을 읽어보니 대강 그렇더라는 것이지.

  서인도제도의 슬픈 역사는 당연히 백인 유럽인들이 섬에 발을 딛자마자 시작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인들은 서인도제도에 플랜테이션 농장을 지어놓고 현지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평생 농업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카리브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할 수도 없었거니와, 항해시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들어온 유럽인들의 잔혹한 노예 경영과 이에 대항해 벌인 싸움에서 원래 카리브인들은 거의 전멸을 당했다. 그냥 전멸이 아니라 멸종에 비슷한 수준. 하늘도 양심이 있었는지, 유럽인들이 유독 도미니카 연방에서는 백년이 넘도록 느슨한 관심만 쏟아 극소수의 카리브 사람들이 이 섬의 오지에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인구의 3퍼센트, 약 3천명 정도라고 한다.

  화자 ‘나’의 어머니 수엘라 클로테르 데바리외가 바로 이 카리브 원주민 여성이다.


  서인도 제도에서 원주민을 멸종시킨 유럽인들은 황망했을 수밖에. 노예들을 다 죽여버렸으니 이제 사탕수수는 누가 심고, 소는 누가 먹이나? 그리하여 이들이 선택한 것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들어 도미니카가 정식으로 영국 연방으로 편입되자 영국 사람이 많이 유입해 들어왔고, 이 가운데 스코틀랜드 출신 리처드슨 가도 있었다. 이 집안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이 아프리카 여성과 관계해 아들을 낳았다. 흑백 혼혈이라서 구리 같은 금속 색깔의 피부와 붉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아들 앨프레드 리처드슨은 커서 자신에게 백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티는 내지 않았지만 늘 염두에 두었던 듯 남과 차별을 둘 수 있는 돈과 권력을 좇아 반은 군인, 반은 경찰 정도의 지배층이 되었다. 이이가 화자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는 영국인에게 거의 멸종을 당한 카리브족 어머니와, 영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아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나마 숱한 ‘나’의 아버지의 아이들 가운데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계약 아래 태어났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는 순간 ‘나’의 어머니는 죽었다.

  이제 홀아범이 된 아버지는 집에 빨래를 해주는 여자에게 두 보따리를 건넸다. 더러워진 아버지의 옷이 든 보따리, 그리고 하나뿐인 건 아니지만 유일하게 결혼해서 얻은 딸이 든 보따리. 세탁부 유니스 폴은 부모 어떤 쪽의 친척도 아니었다. 그냥 세탁부. 이미 여섯 자녀를 두었고, 막내가 아직도 아기라서 젖을 생산할 수 있는 여성. 유니스는 ‘나’를 자식들과 똑같이 다루었다. 다정했다는 말이 아니다. 가난하고 작은 섬에서 흑인 가족으로 살려면, 아니, 생존하려면 잔혹함이 유일한 재산이었고, 유니스는 자기 자식한테 하는 것처럼 ‘나’도 잔혹하게 대했다.


  아버지가 ‘나’를 버린 건 아니다. 유니스의 동네에서 여자아이로 유일하게 ‘나’를 학교를 보냈다. 문 하나와 창문 네 개가 있는 작은 건물. 남자 아이들만 있는 교실이었지만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법을 몰랐고 지금도 그렇단다. 어린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어머니가 죽는 것뿐인데 ‘나’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선생은 감리교 선교사에게 교육받은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한 아프리카 여자였다. 선생에게 자기 출신과 피부색은 굴욕과 자기혐오의 근원인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영어를 사용했고 아이들끼리는 프랑스 사투리를 썼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아주 잘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늘 그러듯이 공부는 잘하지만 선생하고 문제가 생겼다. ‘나’는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선과 악만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선생은 내가 공부를 잘하는 이유를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판단해서 그랬다. 어머니가 카리브 족이라서.

  이후 ‘나’ 수엘라 콜로테르 리처드슨이 일흔 살이 넘어 살 때까지 ‘나’는 언제나 옳았고, 정의로웠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으며, 세상 모든 것이 틀려 처먹었다.

  ‘나’는 검은 피부색을 가진 식민지 여자. ‘나’의 어머니는 꿈에서만 만났다. 흰 드레스를 입고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발뒤꿈치. 그 위로는 모른다. 딱 발꿈치로만 존재를 드러내는 어머니. ‘나’와 같은 이름을 썼던 카리브 원주민, 흑인, 식민지, 노예의 후예, 나자마자 백인의 수녀원 앞에 버려진 아이, 딸을 낳고 곧바로 생을 버린 여성.


  독자는 벌써 알아챘다.

  “내 어머니의 자서전” 내 어머니는 정말로 ‘나’의 어머니이면서 ‘나’이기도 하다. 도미니카 연방, 더 넓게 확장하면 서인도제도 또는 피식민지 시절을 겪은 모든 유색인 지역, 특히 검정 피부를 지닌 곳에서조차 버림받은 여성이다. 결국 이 자서전은 수엘라 클로데르 데바리외나 수엘라 클로데르 리처드슨이 쓰는 자서전이 아니라는 것을.

  일흔 살이 넘은 ‘나’의 기억. 그 속에는 단 한 명도 옳거나, 옳음과 비슷하거나, 옳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없다. ‘나’가 똑똑하고 독립적이고 용감하다는 건 알겠는데, 과하다. 과해도 너무 심하게 과해서 내 눈에는 소시오패스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글솜씨가 하도 뛰어나 독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 버리는 것. 자신도 모르게 아예 처음부터 킨케이드가 의도하는 대로 완전히 수엘라 클로데르 리처드슨을 해석하고 이해한다. 아마 실제 살면서 주위에 수엘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내 삶이 피곤해질지 전혀 생각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나’ 수엘라의 사고는 언제나 자기가 우선이다. ‘나’의 가장 막강한 무기는 자신의 정체성, 버려진 식민지 검둥이 여성이라는 것. 그러나 ‘나’가 권세 있고, 부유하고, 오래 사는 남자가 정식으로 결혼해 얻은 딸, 도미니카 연방의 앤티카 섬에 사는 많은 여성 가운데 월등하게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며, 교육받았고, 적어도 독자가 읽기에 여러 방면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산 것처럼 보이는데다가,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백인 의사와 혼인해 오래도록 함께 사는 동안, 자서전을 쓰는 일흔 살이 되도록 거의 반세기를 카리브 족들의 커뮤니티에 가서 살았다. 가난한 의사 봤어? 아내보다 나이가 적어도 스무 살 많은데 늙도록 아내 괴롭힐 수 있는 남자 봤어? 얻어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사랑하지도 않는 돈 많고 늙은 백인과 결혼해 한평생 배부르게,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으면서도 자신보다 불행하게 산 여성, 아니 여기서 젠더가 왜 나와, 불행하게 산 앤티카 사람들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한다. 모든 게 자기 중심이다. 사람도, 환경도, 역사도. 그러니 내가 ‘나’를 소시오패스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역시 문제는 문장이다. 독자를 현혹시키는 문장. 저메이카 킨케이드, 글 하나는 정말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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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2-10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시대에 역행하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폴스타프님,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사랑하지도 않는데 스무 살 어린 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이것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어쨌거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Falstaff 2026-02-10 15:26   좋아요 0 | URL
수이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사랑하지도 않는 돈 많고 늙은 백인과 결혼˝한 인간은 나이만 먹었지 철딱서니 없는 백인 의사가 아니고요 주인공인 수엘라였는데, 제가 좀 헛갈리게 썼나 봅니다. 수엘라가 백인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어서는 아닌 거 같고, 하여튼 백인 의사가 갖고 있는 복지 시스템과 완전하게 분리된 결정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 기억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설 전에 부모 성묘하러 갔다가 고속도로에서 수이 님 댓글 보고(도로 꽉 막혀서 밀릴 때입니다) 화들짝, 이제 집에 와서 답글 썼습니다. 운전 중이라 즉각 답신하지 못했습니다. 설 잘 보내셔요!!

수이 2026-02-10 16:17   좋아요 0 | URL
소설 읽어볼게요. 읽어봐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듯 싶어요. 하지만 뭔가 저는 화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불끈 했습니다. 폴스타프님도 해피 구정!
 
피라미드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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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니아 사람이 웬 피라미드?

  알바니아보다 험난한 역사를 지닌 나라도 별로 없을 듯하다. 오랜 세월 주변 강대국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돌아가며 식민 지배도 받은 끝에 겨우 독립을 했건만 소비에트의 연방국으로 전락해 한 번도 역사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나라. 기꺼이 독립을 했지만 오랜 세월 독재자의 압제를 받아 나라는 찌그러져버렸다.

  알바니아는 오랜 세월 공산주의자 엔베르 호자가 통치하다가 1985년에 죽었다. 차라리 그가 5년만 더 살았으면 좋았을 지도 모르겠는데, 이때 알바니아는 여전히 소비에트의 위성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독재자 호자가 죽어 거창한 규모의 국장을 치루었지만 독재를 종식하지는 못했던 거다. 호자가 죽고 3년 후에 그의 건축가 딸이 수도 티라나에 이집트의 피라미드 또는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조형물을 본따 ‘호자 박물관’을 흉물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완전히 붕괴되기까지 가장 완고하고 억압적으로 국민을 통치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미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을 1990년에 이스마일 카다레가 굳이 파리로 망명을 선택해야 했을 정도로.

  가뜩이나 공산주의,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빙자한 경찰국가 또는 독재적 국체를 혐오했던 카다레는 파리에 자리를 잡고 자신이 떠나온 알바니아의 독재 정권에 관해 뭔가를 말하고 싶었는데 이때 눈을 돌린 것이 호자 박물과의 흉물스러운 조형물의 원형. 이집트의 피라미드였다. 소설가 카다레의 머리 속에서 나름대로 피라미드와 전체주의를 연결하기 시작했던 것. 그리하여 소설 <피라미드>를 쓰고, 정말로 시간적 무대를 B.C 26세기로 하는 작품을 쓰기로 했지만 이 작품은 절대로 역사소설이 아니라 무대를 과거로 한 현대 소설로 보는 게 옳겠다.


  가장 큰 피라미드를 건설한 쿠푸왕. 그가 새 파라오로 즉위하면서 작품은 시작한다. 젊고 현명한 파라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잠깐 궁리해봐도 자기가 피라미드를 세워도 이집트한테 조금의 보탬이 될 거 같지 않다. 사각뿔 모양의 거대한 무덤이 도대체 이집트의 왕권과 백성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 오히려 건설을 위하여 거대한 국부가 쓰일 터인데 그것으로 백성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지 않는가, 이건 계산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근데 문제는, 새 파라오가 즉위하자마자 자기가 죽으면 묻힐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 안 하면 안 되는, 순식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라고 습관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대신들이었다. 아버지 파라오 시절부터 늘 아부나 하던 간신 나부랭이들. 저것들을 싹 나일강의 악어밥으로 만들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할까? 그럴까, 말까?

  그리하여 하루는 파라오 쿠푸가 왕실 점성가, 최측근 대신 몇 명, 늙은 고문관, 대제사장이자 건축 총책임자 등을 왕좌 아래에 집합시켜놓고 창 밖으로 까마득하게 사막 너머로 피라미드를 보며 말한다.

  “대감들, 꼭 피라미드를 만들어야 되겠소? 내가 파라오가 되면서 이미 신격을 얻었거늘.”

  속으로는 이런 말도 보탰을 거다. 반대만 해봐라, 즉각 죽은 목숨일 터이니.

  늙은 대신들 속에는 불여우가 쉰 마리씩 들어 있다. 파라오가 이 말을 꺼내기 전에 몇 주 전 이미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신전 두 곳을 폐쇄했고, 희생제의를 금하는 법령까지 반포해버린 바 있기 때문이다. 새 파라오는 틀림없이 총명하고 사리판단에 능한 청년이구나.

  이들은 서둘렀다. 대신 두 명은 왕태후 켄트가우스한테 즉각 면담을 신청하고, 한 명은 색주가로 납시어 꽐라가 되도록 술을 퍼마셨으며, 노신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몇 명은 고문서를 보관하는 지하실에 내려가 애꾸눈의 늙은 서기 아푸르를 만났다. 피라미드를 짓지 않는다면 자기들 목숨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며, 무엇보다 평생 보필한 이집트의 명운마저 보장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러니까 기원전 26세기의 이집트를 지금의 이집트와 같이 생각하면 오산이다. 약 5천년 동안 사하라 사막은 남쪽으로도 커졌지만 북진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로마 시대. 당시 로마에는 백만 이상의 인구가 모여들어 농업생산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직 건설과 음모, 암살, 검투, 그리고 군비확장으로 날 새는 줄 몰랐다. 근데 이들을 어떤 수로 먹여 살렸을까? 내가 발견한 해답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 속에 있다. 로마 시민들이 먹는 밀은 거의 전부 이집트 평야에서 수입했다. 수많은 군벌 가운데 가장 힘이 센 군단장은 게르만이나 갈리아 또는 저 동방의 시리아 너머에 있었을 지 몰라도 가장 세력이 막강한 군단장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이집트에 주둔했다. 이들이 폭풍이나 기근을 핑계로 로마로 밀을 보내주지 않으면 수백만 로마 시민들이 쫄쫄 굶다가 폭동을 일으키고는 했으니.

  그러니까 기원전 26세기의 이집트는 주변 경쟁 국가, 경쟁 국가라기 하기도 어색하니 눈치 국가로 하자, 이런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가 갈수록 이집트의 부는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내력도 있을 터. 있기는 있지만 어디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니 현명한 늙은 대신들은 그걸 찾으러 묵은 파피루스 먼지가 가득한 지하 자료실로 내려가서 외눈박이 늙은 서기에게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이제 새삼스레 목소리를 가다듬어 부탁을 해야 했던 거였다.

  파피루스가 종이 같지 않아 군데군데 훼손된 곳이 많아 속 시원하게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교활한 대신들도 한 시절엔 총명한 두뇌를 가진 적이 있어서 드디어 피라미드의 본질과 존재이유 같은 근본 이념을 그나마 밝힐 수 있었다. 이 늙은 여우들이 정말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일까? 천만의 말씀. 오직 머리속에서만 존재했을 뿐이다. 아무리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서, 파피루스에 적혀 있는 것을 새로이 발견했다고 주장해야만 하는 무거운 것도 있는 법이다.


  이틀 뒤에 대제사장과 대신들이 파라오 쿠푸를 알현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직진했다. 파라오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존이시어. 피라미드 건설의 의도는 무덤이나 죽음과 관계가 없나이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쿠푸. 하지만 대신들은 계속한다.

  피라미드를 건설하자는 것은 한 시절 위기의 시대를 맞았을 때 나왔다. 즉 파라오의 힘이 약화된 시기에 시작한 것이 피라미드 건설이었다는 것. 위기의 원인은 기근이나 늦은 나일강 범람 또는 흑사병 창궐이 아니라 나라가 너무 풍요로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지금 보고하고 있는 이 원인을 밝혀낸 사관들은 전부 사형 또는 유형에 처해졌지만 자신들의 목숨은 보전해주기 바라면서 말한다고 주장하는 노신들. 이들이 계속 말한다.

  도가 넘치게 풍요로워진 이집트에서 사람들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파라오의 권위에 더 반항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앞서 경험했던 어떤 위기보다 심각해서 왕의 직접 수하에 있던 점성술사와 마술사인 소베코테프는 백성들의 안락한 생활을 떨쳐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이때 하렘의 환관 문지기 레네페레프가 나타나 말한다.

  이집트가 누리던 부의 일부를 고갈시킬 수단. 상상을 초월하는 과업을 시도하자고. 메소포타미아가 말도 안 되는 운하를 건설하느라 국부의 거의 전부를 쏟아 부어 미미한 이익만 내고 있는 것에 착안한 거였다. 하렘 문지기가 말하기를 일이 커질수록 백성의 체력소모가 심해지고 이에 따라 정신이 피폐되어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할 수 있는, 철저히 쓸모 없는 일이지만, 국체를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업. 게다가 언젠가는 마무리되지만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일이며, 결과물이 눈에 확실히 보일 수 있는 것. 그건 이집트의 제일 가는 건축물이어야 하며, 신전도 왕궁도 아닌 무덤이어야 한다고. 파라오가 즉위하면 동시에 피라미드 건설을 시작한다. 완공과 더불어 기념비적 건축물은 백성 모두의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로 기능하다가 파라오가 죽으면 그 속에 안치하고, 안치와 동시에 새로이 파라오가 즉위하면 또다시 새로운 피라미드를 건설하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이다.

  즉 왕권, 왕의 독재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국가의 부와 힘을 낭비하며, 건설 중에 국민을 감시하고 사찰하고 마음껏 고통을 줄 수 있는 장치로서의 피라미드. 이스마일 카다레는 현재의 알바니아를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리하여 이 소설 <피라미드>는 제1장만 가지고 충분하다. 이하 나머지 장은 모두 디테일에 관련되었을 뿐. 재미있는 비유, 풍자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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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2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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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극작가 이오네스코의 개인사를 조금 아는 게 좋다. 1909년 루마니아에서 루마니아인 아빠와 프랑스인 엄마 사이에서 나 곧 파리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보냈다.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여겼으나 사춘기 무렵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가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쿠레슈티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다. 1909년생이면 애매하다. 1차 세계대전은 아마 파리 소년 시절에 이오네스코를 그저 스쳐 지나갔을 터이지만,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의 영향을 받은 1930년대의 루마니아에서 20대 혈기방장한 청년 이오네스코가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오네스코는 그러나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하고, 친구들 거의 모두 역시 다르지 않아 불화를 겪다가 다시 파리로 가버린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했던 조금 알아두면 좋은 이오네스코의 개인사는 그의 학력이나 연애경험 같은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에 출생한 지식인이 자기를 둘러싼 환경이 부당한 권력인 파시즘에 동조해 가는 것을 목도한 일을 말하는 거였다.

  애초에 파시스트 독재는 민주주의의 기치를 휘날리며 시작한다. 다분히 민족주의적 주장으로 민족 자긍심을 한껏 올려놓는 선전 선동을 통해 권력을 잡고, 이때부터 앞뒤 가리지 않는 애국주의와 비타협적 선동으로 자기 진영을 무한정으로 확보한다. 일종의 집단최면을 시전하여 투표율 90퍼센트 이상, 찬성률 80퍼센트 이상의 투표 결과로 공고한 권력을 쥔 다음, 국가의 모든 정책을 자신 또는 자신을 둘러싼 일단의 권력집단 마음대로 한다.

  이때 좀 골 때리는 일도 벌어진다. 옆에서 보면, 권력이 말도 되지 않는 주장과 선동을 하면, 평소라면 반대를 하거나 적어도 비웃어버리고 말 시민들도, 파시즘적 주장에 거부감 없이 동조하고, 어느새 그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거다. 이런 현상은 정치 성향이 높은 국가에서 한 정당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른바 압도적 지지당이 될 경우에는 여전히 발생한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론이지. “나는 사람한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 마디로 대통령이 된 인간은 자기한테 충성하는 사람만 골라 쓰다 골로 갔고,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가장 큰 핍박을 받은 정당의 지도부는 박과 전하고 거의 다르지 않은 입법권력을 사용하고 있다. 웃기지? 브레히트의 말대로 “파시스트들의 가장 나쁜 유산은 그들에게 저항했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파시즘의 씨앗을 심어놓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보고 배운 게 그런 거밖에 없어서 그러니, 그이들도 알고 보면 불쌍한 것들이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도 이런 현상을 말한다.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한 거친 물결이 도시에 흐르기 시작한다. 진짜 물 H2O가 아니라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거대하고 폭력적일 만큼 거친 흐름이라고 여기면 딱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흐름이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라는 것. 거의 누구나 안다. 옳은 방향의 흐름이 아니고, 건전하지도 않고, 여차하면 절망의 구렁텅이 또는 세계사적 폭망의 시절로 질주하게 될 것임을. 당연하지. 지금 이오네스코가 말하는 거칠고 폭력적인 흐름이 파시스트들의 창궐을 뜻하니까.

  이들 가운데 특히 히틀러는 독일국민의 단결을 위하여 엉뚱하게 그들과 어깨를 걸고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기도 했던 유대인을 악의 노예로 콕 집어 극한의 탄압을 시도했다. 조금 있으면 수정의 밤이 있을 터이고 순정 게르만 예술만을 인정하기 위하여 온갖 예술품과 책을 베벨 광장에 쌓아놓고 불태워 버릴 것이며, 이에 절망한 이오네스코는 같은 해인 1933년에 나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루마니아를 떠나 파리행 기차에 올랐다.

  처음부터 나치 파시즘에 동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저 정신이상적 행위를 비판하고, 아니면 적어도 뜻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건만, 이들의 거친 선전과 선동에 시민들은 하나 둘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파시즘에 동조하는 속도가 더 가팔라지고 어느 새 많은 시민들은 스스로 파시스트 사무실을 찾아가 같은 일원이 되기를 자원하는 지경에 이른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혁명기를 거친 혁명가들의 놀라운 선동 방식을 그대로 배우고 발전시킨 파시스트들의 선동에 현혹되지 않는 시민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소수로 남은 외젠 이오네스코는 파시즘에 가담한 사람들을, 사람에서 코뿔소로 변신metamorphosen 하는 것으로 은유했다.


  1막은 지방의 작은 도시, 작은 광장이다. 카페와 가게가 있고 손님들이 모여 담소도 하고, 차도 마시고, 야채를 저쪽 가게에서 샀는데 될 수 있으면 우리 가게에서 사달라고 하는 등 정상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이때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 또는 막 뒤에서 큰 짐승의 짓는 소리가 부르르르 들리기도 하고 파시즘의 폭주를 나타내기 위하여 많고 많은 짐승 가운데 무거운 코뿔소를 골라 무거운 짐승이 뛰어가는 둔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군중들은 코뿔소가 한 마리였는지 두 마리였는지를 놓고 말다툼을 하기도 하며, 코에 뿔이 하나 있는 것은 아시아, 둘이 있는 것이 아프리카 코뿔소라는 등, 거꾸로 하나가 아프리카, 둘이 아시아 코뿔소라는 등 말다툼을 벌인다. 즉 이들에게 코뿔소는 북쪽 유럽지역에서 거의 보지 못한 동물이다. 당연히 익숙하지도 않은 덩치 큰 야수. 누구나 공감한다. 근데 어떻게 하다가 코뿔소가 거리에서 돌아다니게 되었을까?

  2막에서는 코뿔소가 늘어난다. 1장의 무대는 주인공 베랑제가 다니는 회사.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근무하는 그냥 보통의 회사인데 당연히 바쁘다. 아마도 출판 관계 회사인 것처럼 보인다. 근데 평소 성실하게 근무하던 뵈프 씨가 갑자기 몸이 아파 출근을 하지 못하겠다고 뵈프 씨의 아내가 근무시간 조금 넘어 찾아왔다. 뵈프 씨가 코뿔소로 변신해버린 거다. 세상에. 그렇게 마음 여리고 성실하고 근면했던 뵈프 씨가 코뿔소라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이때는 벌써 창밖에 내다보면 코뿔소가 떼로 질주해다닌다.

  2막 2장은 베랑제의 절친 장의 방. 1막에서 코뿔소가 아시아 산이니, 아프리카 산이니 가지고 말싸움을 해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베랑제가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기 위해 방문한 건데, 장은 침대에서 베랑제를 등지고 벽을 바라보고 누워 있다. 근데 정상이 아니다. 부르르르… 콧김을 자주 내뿜는다. 정의로운 남자 장이, 한 때 정의롭기도 했던 남자였지만 이제는 코뿔소로 변신하는 중이다. 그래서 베랑제는 온전한 양식과 정의감을 지니고 사는 장이라는 남자가 코뿔소로 변신하는 과정을 전부 목격한다.

  3막은 베랑제의 방. 놀랍게도 장의 방과 비슷하게 생겼다. 베랑제의 건강이 좀 언짢다. 이곳에 먼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선량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뒤다르 씨가 베랑제한테 문병 겸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좀 하자고 찾아온 거다. 직장에서도 여러 사람이 벌써 코뿔소로 변신했단다. 조금 있다가 같은 직장의 여직원이자 도시에 나타난 첫 코뿔소를 베랑제와 함께 목격한 데이지가 음식을 싸들고 베랑제의 방에 들어왔다. 아직 연인은 아니다. 이제 무대에 남은 인물은 오직 세 명. 관객은 파시스트 국가 안에서 여전히 양식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라고 연상할 수 있다. 이들의 변신 여부는 각자 읽어서 알아 내시면 좋겠다.


  작품은 재미있다. 근데 희곡은 눈으로 읽고, 머리로 극장 무대를 연상하는 장르.

  2막 2장 장의 방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3막, 장의 방과 거의 비슷한 무대에 역시 비슷한 침대에 계속 누워 있는 베랑제. 두 명의 등장인물이 더해지지만 이들의 동선이 거의 없다. 방이 좁아서 그런가? 넓은 방이라도 마찬가지겠지. 이걸 어떻게 생동감있게 연출해야 할까?

  나는 여기서 콱 막혔다. 작품 자체의 재미와 은유와 언제나 재미있는 변신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대를 연출한다면 어떤 방식을 선택했을까, 이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는 거. 책 한 권 까다롭게 읽는다고? 근데 이게 희곡 읽는 진짜 재미. 휴대폰 앱 “북적북적”에 별점 4.5 눌렀다. 내 연출 상상력의 결여 때문이지 이오네스코의 작품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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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칸토
앤 패칫 지음, 김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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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칸토>를 읽기 위하여 1963년 12월에 훗날 LA 경찰서장을 지낼 경찰 간부 아버지와 간호사였다가 소설가도 될 어머니 사이의 두 딸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앤 패칫의 개인사, 경력, 가방끈 기타 등등을 알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성장과정 중에 경험했던 일은 물론 이 책의 어디선가 뾰족하게 드러나기는 하겠지. 패칫은 1996년 12월에 일왕 생일 축하연이 진행중이던 주 페루 일본 대사관애 테러단체인 투팍아마루 게릴라 14명이 난입해 우리나라의 이원형 대사를 비롯해 7백여 명의 인질을 억류하면서 시작한 무려 126일 간의 인질극이 있었는데,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의 요구를 전면 무시하고 1997년 4월 22일, 특공대원 150여 명을 투입하여 최종 인질 71명을 구출하고 인질 한 명과 열네 명의 게릴라 모두 사살하면서 종결한 사건을 작품의 모델로 선택했다.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은 페루에서 출생한 일본계 페루 국민이다. 당시 대통령 투표에서 최종투표까지 후지모리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가 결국 영광의 준우승을 차지한 인물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였다. 후지모리는 대통령 직을 괜찮게 수행하다가, 아마도 일본 출신이라는 배경으로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페루에 산업시설을 지을 수 있으면 코카나무와 양귀비의 재배 인구가 대거 도시로 유입되어 공장에 들어갈 수 있으니, 페루 경제를 이끌어 가던 동력을 코카인과 헤로인에서 공산품으로 이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었으리라. 하여간 어지러운 페루 현대사에서 후지모리가 가장 빛나던 시기가 바로 투팍아마루 게릴라의 일본대사관 점거 사건이었다. 후지모리는 자신이 직접 흰 와이셔츠 위에 검정 방탄복을 입고 대사관 너머에서 소총을 들고 지휘하는 흉내를 기가 막히게 냄으로써 잠시동안 국민들의 지지율을 팍 끌어올리기도 했다.


  앤 패칫이 이 사건의 부분을 가져와 소설로 쓰기로 했다. 그냥 그대로 복사를 하면 제대로 된 소설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새롭게 만든 등장인물이 벨칸토와 베르디, 푸치니, 드보르자크, 오펜바흐와 비제의 작품 공연을 위하여 세계만방에 연주여행을 다니는 당대 최고의 미국산 소프라노 록산 코스를 캐스팅했다.

  장소는 일본 대사관이 아니라 부통령 관저. 일왕 생일 파티가 아니고 일본 최대 전자회사인 난세이사의 호소카와 가쓰미 회장의 쉰세번째 생일을 맞아 이 나라의 일본계 마스다 대통령이 허락을 해 부통령 관저에서 쇼타임을 벌이고 있다. 한 나라가 일본의 전자회사의 회장 생일 파티를 해준다고? 파티의 목적은 앞에 써 놓은 것과 같다. 혹시 일본 자본으로 공장을 짓는다면… 하는 기대. 호소카와 회장이 미쳤나? 아무런 인프라도 되어 있지 않은 밀림 속에 공장을 지어 놓으면, 수시로 쿠데타가 벌어져 정정이 불안할 뿐만 아니라 밀림 속의 공산주의 무장 게릴라들 캠프에서 언제 바추카포가 날아들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동네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지. 직원을 뽑아 놓으면 십중팔구 직원 안에 마약 카르텔이나 공산 게릴라 요원들이 잠입해 공장을 점거할 것이고, 어떤 형태로도 끝내 공장을 거덜내고 말 터인데, 아무리 돈이 많은 회사라고 해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럼? 자기 생일 파티에 이 나라 정부가 거액의 돈을 써서 현 시대의 최고라고 불리는 소프라노를 초청해 생일파티 석상에서 오페라 아리아 여섯 곡을 노래할 것이고, 이 가운데 한 곡은 호소카와 회장이 신청한 곡을 노래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호소카와 회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열한 번째 생일이었던 1954년 10월 22일,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이 살만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정신적 황량함이 가시지 않았던 때로, 이런 집단 각성은 실제 나이보다 사람들을 각성시켜 누구나 좀 일찍 철이 드는 법인데, 이때 아버지 호소카와 씨가 아들 가쓰미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도쿄 메트로폴리탄 페스티벌 홀에서 베르디의 열여섯번째 작품이자 중기의 황금시대를 여는 명작 <리골레토>를 함께 관람한다. 원작 <환락의 왕>을 쓴 빅토르 위고가 훗날 이 공연을 보던 중 3막의 4중창을 들고, 환상적인 하나의, 같은 멜로디로 네 명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초 연극적 표현에 턱이 쑥 빠졌다는 일화가 있는 작품이다. 훗날 호소카와 회장이 되는 가쓰미 소년은 공연에 더없이 매료되어, 이후 누구보다 엄격하게, 열심히 사업을 넓혀가는 와중에도 “진정한 삶이란 결국 음악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오페라 공연에 가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세계적 대기업의 회장이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라서. 그래 주로 CD를 통해 오페라를 들었는데 특히 슈바르츠코프와 서덜랜드의 음반이라면 보이는 족족 다 모았다. 칼라스는 워낙 특별하니까 별개로 놓고. 이제 회사가 무지하게 커지고 자리를 제대로 잡아, 이왕 출장을 갈 바에 근처에 근사한 오페라 홀이 있고, 마음에 드는 공연이 있는 곳에 회의장소를 정해, 그곳에서 공연을 관람하고는 했다. 일본인 특유의 드러내지 않는 마음으로 R석 말고 S석 정도에서. 이러니 일년에 한 서너 편의 오페라를 볼 수 있었을 듯.

  아빠의 생일 선물로 다 큰 딸이 준 것이 바로 록산 코스의 음반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프라노. 회장이 들어보니, 물건이고, 천재라고 판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록산의 공연도 출장 코스에 끼어 한 일곱 번 정도 보았다. 아무리 회장이라도 공연만 보고 나왔다. 인사도 하지 않고. 추앙하는 마음만 속으로 전했다. 근데 라틴아메리카의 낯선 나라에서 자기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록산 코스까지 데려와 축가를 부르게 한다니, 비록 거금을 투자하라는 의미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참석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가기로 했다. 이 나라에 투자할 생각은 정말 1도 없지만, 일단 약속을 했다가 철회하는 방법쯤이야 아랫것들이 수백가지 알고 있을 터. 걱정할 필요 없으리라.


  대기업 회장이 떴으니 회사의 프로젝트개발부장 야마모토 아키라, (나중에 큰 역할을 하는)부사장 가토 데쓰야 등 임직원 몇 명, 일본 대사, 스미토모은행 부행장 오가와 사토시, 일본은행 부행장 아오이 요시키를 비롯해 이 나라에 대사급으로 와 있는 거의 모든 외교관들, 그리고 황망하게도 일본계 이민자 출신의 마스다 대통령도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다. 다만 마스다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다른 행사 때문에, 사실은 매주 화요일의 중요한 TV 드라마가 오늘 클라이맥스를 방영할 예정이라서 그걸 보느라고 행상에 불참했다. 호소카와 회장은 전혀 섭섭하지 않다. 오히려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을 속셈이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했을 뿐.

  소프라노 록산 코스는 노래하기 전에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록산이 아리아를 다섯 곡 부르고, 마지막 곡으로 호소카와 회장의 신청곡으로 록산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드로브자크의 <루살카>에서 루살카의 아리아 <달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첫곡 벨리니부터 차근차근 더없이 아름답게 노래하기 시작하는 록산 코스.


  한편 이 시간, 공산주의 게릴라 라 파밀리아 데 마르틴 수아레스단은 직접 부통령 관저에 침입해 입수한 설계도를 연구한 후 송풍구를 통해 소년병을 투입시켜 기다리고 있다가, 가수가 여섯 곡을 부른다고 했으니 그때를 맞추어 모든 조명을 끊어버릴 계획이었다. 세 명의 장군과 14세에서 20세 정도로 보이는 병사 열다섯 명으로 구성된 중소형 부대. 이들은 전혀 몰랐다. 여섯 곡을 노래하기로 했으면 딱 여섯 곡만 노래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 가운데 장군이라고 불리는 사람 세 명은 나름대로 현지인 또는 산악지역의 원주민 가운데 괜찮은 교육을 받은 지도층 출신이지만 오페라는 그만두고 음악공연 한 번 보지 못해, 공연이 끝나도 의례적으로 앙콜곡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달의 노래>가 딱 끝나자마자 볼룸의 모든 조명이 암전 되었으며, 이 짧은 완전 어둠의 순간, 관객들은 거구의 스웨덴인 반주자가 록산 코스를 안고 키스를 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심지어 테이블 위의 촛불까지 모두 꺼졌는데도 누구 하나, 전기가 나간 건 이해하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맞춰 촛불까지 꺼졌는지에 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이 한 것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박수치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휙휙 날리며 앙코르, 앙코르를 연호할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준비한 앙코르 곡을 노래할께요, 불 좀 켜주세요.

  록신 코스의 아름답고, 귀엽고, 그러면서도 고귀한 품격이 깃든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때쯤 처음으로 프랑스 대사 시몽 티보는 주방으로 향하는 문의 아래 틈에서 전기 불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무엇인가 불안한 기색을 감지해, 아내 에디트의 팔을 가볍게 쥐고 그쪽으로, 일종의 도피를 시작한다.

  그러나 소용없다. 갑자기 천장을 향해 들어올린 총구에서 천둥처럼 들려오는 총소리 세 발. 세 명의 장군 가운데 한 명이 외친다. 마스다 대통령은 나와! 이들은 대통령만 데리고 가능한 최소의 시간 안에 밀림으로 복귀할 작정이었다.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정부를 전복시킨 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낭만적 공산주의 게릴라들. 이 가난한 나라와 대통령은 시청률 50%가 넘는 연속극, 특히 연속극 주인공 마리아가 다 죽다가 살려냈다는 걸,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후 몇 달 동안 부통령 관저에서 벌어지는 인질극.

  여기까지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물론 이후에도 재미있지만, 작품의 무대가 부통령 관저와 마당에 한정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재미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느낌. 그래도 이게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백대 저작에 포함된 책이다. 순위가 98번째가 되어 좀 그렇지만. 아, 거기 낀 게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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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ㅣ 창비시선 174
이상국 지음 / 창비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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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28년 전에 읽고 책장에 꽂아 놓은 시집. 1998년 초판1쇄. 52세의 이상국이 절정의 시기에 쓴 작품을 담았다. 1946년에 양양군에서 출생해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나이 들어 여러 학교를 더 다닌 모양이다. 위키피디아에는 강원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이상국의 시를 읽기 위해서는 이이의 가방끈을 알 필요 없다. 지금과 과거의 양양, 시인의 가슴 속에 음각화로 새겨 있는 그림과 199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을 대조하는 일, 음각화와 사진 속에서 본 자신의 시의 원전을 알아 내는 일, 양양이라는 찬란한, 찬란했던 자연 같은 것을 노래하는데 굳이 그깟 가방끈은 아무 소용도 없다.

  제일 앞에 실은 시. 시인의 가슴 속 음각화 한 장면이다.



  별에게로 가는 길



  별 보면 섧다


  첫새벽 볏바리 가는 소 눈빛에 어리고

  저물어 돌아오는 어머니

  호미날에도 비치던 그 별


  어둠의 겨울이었던

  고향집 우물은 메워지고

  이제 내 사는 곳에서는 

  별에게로 가는 길이 없어


  오래 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 듯

  별쯤 잊고 살아도


  별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문. p.8~9)



  촌스럽지? 시어들이 짤막하고, 읽자마자 시인의 노래가 확 귀 속으로 들어온다. 별을 보면 섧단다. 그렇지. 전엔 밤에 고개만 올렸다 하면 별이 쏟아졌지. 쏟아져도 그냥 쏟아지나, 어디? 정수리에서 물벼락 맞듯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내며 확 떨어질 것 같은 별. 저 눈 닫는 곳에서 금빛 금을 긋듯 죽 미끄러지는 별똥, 한꺼번에 별이 쏟아지면 세상에 그런 불꽃놀이도 없을 텐데. 그래, 나도 가끔, 아주 가끔 빼곡한 별을 보면 섧기는 하겠다. 그렇다고 첫 연을 한 줄로 “별 보면 섧다”라고 쓴 시인.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이어지는 2연이 시인의 가슴 속 음각화. 어려운 단어가 숨었다. 볏바리. ‘볏바리’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바리’가 마소의 등에 잔뜩 실은 짐을 뜻하니까 ‘볏바리’는 벼를 실러 가는 일을 말할 것이다. 정확하지 않지만 “첫새벽 볏바리 가는 소”, “저물어 돌아오는 어머니 호미날”이라 했으니 새벽부터 들에 나가 벼를 바리바리 싣는 작업을 하고 별이나 떠야 다시 집에 돌아오는 소를 뜻하는 거다. 그건 그거고.

  새벽 들일 가는 소의 큰 눈, 하루 종일 들일에 지쳤을 어머니의 호미날에, 비치는 별이라니. 설마 별빛이 소 눈과 낫과 칼이 아닌 호미의 날에 반사되겠어? 그래도 혹시 아는가, 범부의 눈에 결코 보일 리 없는 별빛이 시인의 눈에는 소의 눈알에도 어머니의 호미날에도 비치는지. 하여간 2연은 시인 가슴에 새긴 음각화이다.

  3연부터 나머지는 별을 상실한 아쉬움. 별은 아직도 시인을 내려다보고 있건만 시인은 별과 별빛이 어렸던 소의 눈을 잊고 세월을 살고 있다. 사실 시인은 지금 삶이 섧지도 모른다.


  두 번째 실은 시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에서 눈에 띄는 건, 기막힌 수미반복.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전문. p.10!11)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좋은 표현은 벌써 시인, 소설가, 수필가들이 다 가져다 썼든지, 자기들이 만들어 써먹어 버렸다. 그래 지금은 웬만한 묘사를 해 놓아도 데자뷔나 클리셰 취급을 받는다. 근데 이건 아닐 걸?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이라니. 그럼 쨍, 하고 추운 겨울 새벽을 말하는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나무들의 몸이 물을 끌어올리느라 흠뻑 젖었다니 봄 아니면 여름. 그런 새벽도 작두날처럼 푸르고 푸르다. 양양 산 속에서는.

  그것 참 이상하지. 시집을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좀 쉬었다 다시 읽으면 여전히 저 속에 있는 촌스러움을 찾는다. 소설책을 읽고 읽어도 가장 마음을 콕콕 쑤시는 작품이 결국 추운 산골지역의 없는 사람들 사는 모습이다. 3천장의 CD 가운데 오랜만에 한 장을 골라 기계에 거는 건 결국 모차르트, 하이든, 멘델스존인 것처럼.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혹시 모르지, 나와 비슷한 동년배 정도도 또 그럴 지는. 비록 그러거나 말거나 별 관심도 없지만. 무슨 뜻인가 하면, 내 세대가 끝나면 이런 공감 역시 막을 내릴 거라는 거다. 내 속에서 공명하는 감상도 함께 소멸하는 것. 이게 시간이겠지.


  시인은 어떻게 하다가 시를 쓰게 됐을까? 물론 팔자소관이겠지만 그렇게 콕 집지 말고 이상국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 아닌가? 그걸 시인은 탁 집어 자신의 마지막 원전이라 했다. 이 원전이 되는 두 사람, 두 여성이 있다.



  작은 어머니



  저녁 여물 때 송아지 낳던 이야기 하자면 미나리 꺾어 물치장에 가던 아침나절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야기꾼 작은 어머니, 목고개가 수수이삭처럼 껑충하고 허우대 크신 당신이 가마에서 내리자 큰머슴 하나 들어왔다고 입이 쩍 벌어졌다는 할아버지, 그 시아버지 모시느라 피란도 못 가고 국군 인민군 뒤바뀌던 난리통에 속병을 얻으셨는데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작은어머니는 속앓이가 도지면 소총 화약이나 휘발유를 한숟가락씩 드셨다. 열여섯에 감동골집에 시집와 팔순이 넘으셨는데 오늘 새벽 큰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솔지 아범이너,

  ―엊지냑에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셨다야.


  그렇게 해서 흙으로 된 나의 마지막 原典은 페이지를 덮게 되었다.   (전문. p.33)



  나의 노래



  우리 어머니

  처녓적 자시던 약술에 인이 박여

  평생 술을 자셨는데

  긴 여름날 밭일하시면서

  산그늘 샘물에 술을 담가놓았다가 드실 때면

  나도 덩달아 마시고는 했지요

  그리고 어린 나는 솔밭에서

  하늘과 꽃과 놀며 소를 먹이고

  어머니는 밭고랑에서 내 모르는 소리를 저물도록 했지요


  지금 내 노래의 대부분은

  그 흙 묻은 어머니의 소릿가락에 닿아 있지요   (전문. p.34)



  이렇게 시인 이상국은 작은어머니의 끝도 없는 이야기, 열여섯에 시집와 어린 나도 들을 수 있게, 무슨 이야기를 했다 하면, 딱 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저 오랜 전 밑천부터 말을 시작했던 천생 이야기꾼의 사설을 어려서부터 들은 내력이 이이가 시인이 된 원전 1이요, 처녓적부터 괜히 약술입네 자셨겠는가, 그저 농사일이 고된 줄 모르게 해볼 심사로 한잔 두잔 하셨겠지, 그게 인이 박여 노동요 비슷하게 자기 팔자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하며, 그래도 세월을 차곡차곡 걸어가던 어머니의 일 소리가 시인의 원전 2였다.

  이렇게 삶의 이야기와, 일하는 노래가 한 소년을 시를 쓰는 시인으로 만들어주었겠지. 나름대로 근사하고 따뜻하지 않나? 요즘 사내 아이들은 이런 거 없다. 사는 이야기와 일 노래가 사라져 버린 자리를 첨단 무기와 울퉁불퉁한 무기로 학살해가며 영토를 넓히는 각종 게임이 대신하고 있어서. 이런 시간의 소멸과 쇠락을 이상국은 또 애닯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독후감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서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또 있다면 그때를 기약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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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2-03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따금 소개해 주시는 시와 함께 폴스타프님의 해석과 감상은 웬만한 소설 한 편 읽고 난 뒤에 느끼는 감동과 다를 바 없는 감정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더 읽고 싶은데 끝이 나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셨으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6-02-04 04:01   좋아요 1 | URL
아이고, 뭘요. 그저 곰돌이님처럼 잘 읽어주시는 분이 그리 생각해주시는 겁지요. ㅎㅎ
3월 17일에 쇤네가 정말 좋아했던, 지금도 좋아하는 시인, 황동규의 <악어를 조심하라고?>가 올라올 겁니다. ㅋㅋㅋ 3월 중순이면 온라인에서는 다음 세기 정도겠지만 말입니다.
근데.... 3월 17일? ㅋㅋㅋㅋㅋㅋ

얄리얄리 2026-02-03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생하고 성장한 곳이 양양과 속초라서 바다를 노래했으려니 했는데, 막상 소개해주신 시에서는 흙과 육지, 농사를 떠오르게 하네요. 이런 것도 선입견인가 봅니다. ‘원전(原典)‘이란 단어가 참 좋네요. 여러가지 개인적인 소회도 생각나게 합니다.

Falstaff 2026-02-03 15:52   좋아요 0 | URL
좀 오래 묵은 시인이라 세대별로 호오의 차이가 좀 있을 거 같습니다만 그거야 뭐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이이의 양양은 태백 줄기의 서쪽, 백담계곡, 십이선녀탕 때문에 해가 늦게 뜬 동네 아니었나 싶군요. 197X년 그 계곡에서는 팔뚝만한 열목어가 잡혀 곧잘 회를 떠 먹기도 했었는데요. ㅎㅎㅎ 아주 오랜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