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아이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2
외된 폰 호르바트 지음, 조경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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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먼저 작가 호르바트한테 가장 부러운 거. 젊어서 우화적 죽음을 맞았다는 것. 독일에서 퇴폐문학으로 낙인이 찍혀 이이의 작품은 전부 공연 불가,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갔지만, 사실 독일의 속국이었던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도 이하동문이라 그때부터 유럽 경향 각지로 방랑생활을 했고, 이 책을 비롯해 자신의 후기(그래봤자 30대) 작품을 안타깝게 네덜란드에서 출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한 시절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가 때마침 뇌성벽력이 치고, 벼락을 맞은 나무가 부러지면서 외된 폰 호르바트를 덮쳤는데, 이때 큰 가지에 머리를 맞아 뇌진탕으로 서른일곱의 아까운 나이에 그만 숟가락 놨다.
 흠. 갑자기 생각나는 독일 소설가 한 명. 토마스 브루시히. 이이의 책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에서 남태평양의 휴양지 야자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 때마침 떨어진 코코넛열매에 맞아 뇌출혈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데 (얼마나 감개무량한 죽음이든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혹시 브루시히가 이 호르바트의 죽음에 힌트를 받아 그렇게 썼던 거 아냐?
 로자 룩셈부르크가 죽고 사흘 만에 독일에선 총선거가 치러진다. 이때 거대정당이었던 사회민주당과 지잡당인 민주당과 중앙당이 뭉쳐 연립내각을 형성하고 소위 바이마르 헌법을 제창하면서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 그러나 이 민주공화국은, ① 1차 세계대전 패전의 치욕을 힘겹게 견디며 ② 아직도 아리안족의 우수성에 대한 믿음이 넘치지만, ③ 여전히 열등한 민족들인 승전국의 과다한 핍박에 지친, 자국민들을 효과적으로 다독이지 못해, 1933년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란 파시즘, 즉 나치에 의하여 괴멸된다. 1917년에 태어나 나치 치하에서 청년기를 맞은 주인공 ‘나’는 학교 졸업 후 근 5년을 실업자, 양아치, 노숙인, 좀도둑으로 살며 하마터면 경찰에 잡혀 호적에 붉은 줄 갈 뻔하기도 몇 번이었다. 아버지는 원래 잘 나가는 호텔의 웨이터로 괜찮게 살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한 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이젠 변두리 선술집의 웨이터를 하며 손님들이 던져주는 팁으로만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져 입만 뗐다 하면 정부와 국가에 대해 불만만 잔뜩 털어놓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지!”
 딱 이 시점에 나는 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한다. 앞으로 있을 전쟁은 지난날의 세계대전과는 전혀 딴판일 것인데, 훨씬 규모가 크고, 거대하고, 가혹할 것이며, 여하간에 섬멸전이 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게르만 민족으로서 주변 잡다하고 열등하고 야만적인 언어를 쓰는 국가를 통합해 게르만의 영토를 확장하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게르만 민족을 우두머리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일. 그걸 독일의 군대가 수행한다는 믿음으로. 국가가 지향하는 원대한 목표를 위하여 국민 개인의 희생은 반드시 필요로 하며, 희생된 개인의 영광은 천세를 넘어 영웅적 행위를 기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이기도 한 화자. 놀이동산에 놀러갔다가 마법의 성이란 구조물에서 표를 파는 아가씨한테 넋이 나가기도 하고, 그녀를 (그녀의 눈에 띄지 않고)조금이라도 오래 바라보기 위해 맞은편의 가판대에서 진짜 맛없는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사먹으면서 턱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젊은이. 하지만 국가가 원해 화자의 애끓는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무 예고 없이 내전 중에 있는 작은 나라에 의용군으로 참전해 ‘청소하듯’ 원주민들을 쓸어버린다. 유럽의 질서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마음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현지인들을 학살한다. 와중에, 저항하는 농민군들을 향해 자살하듯 권총 한 자루만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존경하는 대위를 구출하기 위해 몸을 날렸으나 대위는 기어이 고꾸라지고 ‘나’도 팔에 기관총 한 방을 맞아 팔뼈가 박살이 나고 만다.
 독후감이란 것. 예전처럼 ‘독서록’이란 이름의 노트에 나 혼자 볼 요량으로 쓴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곧바로 결론으로 들어가 퇴폐문학분자였던 호르바트의 글이 어떻게 그런 분류를 거쳐 분서갱유의 참담을 당했는지를 쓸 거 같다. 하지만 책을 사기 전에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공개 서재에서 독후감을 쓸 때 그런 의견을 피력한다면,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책의 내용 전반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혹시 퇴폐문학이 아니라 퇴폐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엔 줄거리 말고 음악 고유의 것들이 추가되니 좀 덜 낭패할 텐데, 스토리가 절대 위주인 소설엔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맞을 거 같다. 이것만 얘기하며 마감하자.
 개인과 국가의 문제를 다룬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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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센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0
서머셋 모옴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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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왜 ‘어센덴’이라고 했을까? 원제는 Ashenden. 우리말로 쓰면 ‘어셴딘’ 정도로 읽힐 거 같은데. 뭐 소설가이자 중앙대 문창과 교수를 역임한 역자 신상웅 선생이 영문학 학사를 하셨으니. 근데 어째 좀. 179쪽에 독일 여자가 영국인 주인공 어센덴에게 이런 대사가 하는 게 나온다.


 “그런데 당신네 영국인도 음악을 아나요? 페어셀 이후 작곡가다운 작곡가는 한 사람도 없잖아요!”


 작품의 무대가 되는 시기가 1차 세계대전 중(1914~1918년)이다. 브리튼이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이니 독일인이 영국 사람한테 이렇게 비아냥거릴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페어셀’이라니?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겠지. 이건 흔한 농담이거든. 영국엔 퍼셀 말고는 음악가가 없다든지 뭐라든지. (뭐 다울랜드Dowland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 ‘페어셀’이 처음 든 의문이었다.
 처음이니까, 뭐 타이포typo 비슷한 걸로 생각했다. 근데 나중에 주인공 어센덴이 러시아 유부녀 아나스타샤 알렉산드로브나와의 연애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여자가 이혼하기 전에 만일 둘이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시험하기 위해 1주일 간 파리에서 짧은 동거를 실험하기 위해 도버해협을 건너는 씬이 몇 차례 나오는데, 출발지-도착지를 도버-카레, 카레-파리, 파리에서 한 판 잘 때려 놀다가 다시 파리-카레, 카레-도버라고 쓰는 거다. 프랑스 칼레는 로댕의 조각으로 유명한 바로 그 칼레, Calais다. 이 1주일의 여행을 통해 어센덴이 아나스타샤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건, 사실은 “그녀가 아니라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스트라빈스키, 바크스트 등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별한다. 그건 그거고, 굳이 Calais를 ‘카레’라고 하며, 바크스트는 누군지도 모르겠다. 구글에도 ‘바크스트’가 검색이 안 된다. 그러나 눈 밝은 이가 러시아 화가 레옹 박스트Leon Bakst를 일컫는 것이라고 밝혀냈다. 어쨌거나 제발 아니기를 비는 바이지만, 내가 아는 모든 세상의 언어 사용자 가운데 Calais를 ‘칼레’라고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본인밖에 없는 거. '선거'election을 '발기'erection과 동일하게 발음하는 사람들. 신상웅 선생이 1938년 일본 출생으로 Calais를 ‘칼레’가 아니라 ‘카레’로 발음할 수밖에 없는 일본어에 너무 능통해서 영어로 된 원서는 참고도 안 하고 그냥 일본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 헌책도 아니고 정가에서 10% 빠진 새 책을 산 이유가 서머싯 모옴이 쓴 ‘미스테리’ 책이란 것 때문이었다. 그래 기대한대로 책은 재미있었다. 어찌됐건 재미만 있으면 뭘 더 바라면 할 말 없지만 어떤 책을 번역했다는 말도 없이 오직 판권은 동서문화사(동판)에 있다고만 쓰여 있는 건 21세기엔 좀 그렇다. 동판. 고 김주혁 나오는 영화 <공조>에서 김주혁이 팔아먹으려고 막 총 쏘고, 사람 죽이고 그러는 게 다 백 달러짜리 위조지폐 ‘동판’ 때문 아냐? 동서문화사(동판)도 바로 이 ‘동판’을 의미한다.
 어쨌건 책은 재미만 있으면 된다. 맞지? 아니. 이제는 21세기. 우리는 해당 번역서가 어느 책을 원전으로 했는지 알아야 하며 원전을 출판한 회사에 합당한 로열티를 지불한 책을 원할 때가 됐다. 물론 동서문화사는 내가 알기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 법이 발효되기 전에 번역한 책들이라서.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동서문화사가 잘못했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 회사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안 줘도 되는 돈을 왜 주느냔 말이지. 다만 이 책도 초판이 1977년. 이젠 (보다)정당하게, 그리고 새롭게 번역한 책을 읽을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다. 초판 나오고 40년이 넘었으면 이런 주장도 당연한 거 아냐?


 서머싯 모옴의 특이 이력 가운데 하나가 마지막 낭만적 전쟁이자 최초의 대량 학살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파이로 일했던 것. 당시의 경험은 소설가로서 그냥 묵혀둘 수가 없는 '경험자산'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이젠 1차 세계대전의 스파이 경험담이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고 즐길 과거사가 될 수 있을 때가 오자 드디어 숨겼던 경험을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작가가 다른 이도 아니고 윌리엄 서머싯 모옴. 아주 색다른 스파이 소설을 만들었다. 긴박한 사건과 폭력, 아슬아슬한 시한폭탄 같은 거, 거의 또는 별로 없다. 스파이 소설에서도 모옴의 관심은 오직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집중된다.
 모두 열여섯 장章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하나 또는 두 장이 한 묶음으로 한 부분이 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은 작가 어센덴이 첩보대장 R대령에게 스카웃되어 취리히를 베이스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누비면서 첩보활동을 하며 활동의 대상으로 만나는 열여섯 명을 관찰한 기록이다. 열여섯 명이 다 공작의 대상이 아니라, 심지어 첩보대장, 회유해서 이중 스파이로 만들어야 하는 적 쪽의 스파이, 특정 국가에서 만난 영국과 미국의 대사, 재판은 하지 않았지만 총살형이 확정된 매국노,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 계약서 도장 받으러 아시아 횡단 열차를 탄 미국 회사 직원, 살인청부업자 등등 천태만상이다.
 재미있다. 그러나 모옴의 다른 작품들 중에 워낙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아 이미 그런 것들을 읽어보신 분에게 책을 읽어보라 권한다면 잘못하면 귀싸대기나 한 방 얻어터지기 십상.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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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10-1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책인데...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해서 나오면 좋겠네요. 하하하하.

Falstaff 2018-10-18 10:14   좋아요 0 | URL
저도 새로 나올 책의 잠자냥님 평을 기다리겠습니다!
모옴이면 진짜 새로 번역할 만한데 아직 나오지 않았군요.
 
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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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세가 서른일곱 살 때 출간한 단편집. 책은 <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그리고 <종말> 이렇게 세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작품은 당연히 서로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이어져 있어 연작의 형식을 띄기도 한다.
 <초봄>은 방랑자 크눌프의 전성시기에 무두장이 친구 집을 방문해 세련된 모습과 태도로 여성들의 찬미를 받는 모습을 그렸고,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길지 않게 살다 간 크눌프와 젊은 시절의 한 때, 한 여름동안 방랑을 함께 했던 화자가 주로 대화를 중심으로 크눌프의 예민한 감수성을 회상하는 일인칭 소설이고, <회상>은 마흔 줄에 들어선 크눌프가 폐에 깊은 병이 들어 마지막으로 고향인 소도시 게르버자우에 도착해 지난 추억과 장소를 완상하며 스스로 소비한 인생을 정리하는 모습을 담았다.
 각 작품이 단편소설이라 독후감에서 작품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총명하고 조숙한 소년이었던 크눌프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상당히 빨리 여자의 몸에 대해 눈을 뜨고 세 살 위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면서 라틴어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진학 대신)전문직업인meister 밖에 될 수 없는 독일어학교로 전학한다. 그러나 손위의 아가씨는 벌써 다른 애인이 생겨버리고. 당연히 크눌프도 크눌프답게 새로 두 번의 연애를 경험하고는 생이 다할 때까지 이어질 방랑의 길을 떠난다.
 방랑길에, <초봄>처럼 갓 결혼해 아직 아이도 없는 무두장이 친구네 집에 들러 며칠 신세지는 동안 평생 노동을 해보지 않아 얇고 기다란 손가락을 가진 섬세한 청년의 모습으로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친구의 아내로부터 추파를 받기도 하고, 옆집 하녀 아가씨와 춤추러 가기도 한다.
 방랑을 하면 길 위에서 숱한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것. 어느 여름에 한 사내를 만나 함께 길을 걷다가 교회 담을 넘어 공동묘지의 반듯한 묘석과 꽃들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고, 석양이 지는 묘지들 옆에서 기분이 고조되어 이런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으리라.


 난 어려서 죽었으니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줘요, 그대 아가씨들,
 작별의 노래를 말이에요.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난 멋진 젊은이일 거예요.


 또 지난 시절 사랑했던 두 여인에 관해서도, 이젠 다시 뵐 수 없는 죽은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으리라. 그리던 어느 날 새벽 곤히 자는 동무를 놔두고 혼자 안개 깊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미 죽음의 그늘이 덮칠 무렵 우연히 라틴어학교에서 문법을 가르쳐주곤 했던 친구가 의사가 되어 늙은 말을 타고 가는 걸 보고도 총명했던 어린 시절의 크눌프, 그러나 이젠 허름한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모른 척했을 수도 있고, 우연히 그를 알아본 의사의 배려로 도시에 있는 빈민구제병원에 입원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미 자기 몸의 절망적 상태를 알고 있는 그는 입원을 포기하고 기꺼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길을 나설 수도 있고, 솜같이 푹신한 눈이 함빡 내리는 따뜻한 날, 어느덧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 옆에 선 하느님과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자기의 덧없는 방랑의 일생 역시 누군가가 했어야 하는 가치 있는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의 연표를 보니 27세에 <페터 카멘찐트>를, 29세에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다. 85세까지 장수한 헤르만 헤세는 젊었을 때부터 애늙은이였다.

 

 역시 헤세는 한 살이라도 젊어서 읽어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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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10-1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하고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요, 헤세는 딱 10대 때 읽어야 하는 것 같다고. ㅎㅎ 10대 때는 그렇게 좋았던 <지와 사랑>을 서른 넘어서 다시 읽었더니 아주 별로더라고요. 하하하. 마지막 문장에 정말 공감합니다.

Falstaff 2018-10-17 09:4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10대 때 헤세의 장편소설을 두 작품 빼고 다 읽었는데 하나같이 얼마나 가슴이 알알한지 몰랐습지요.
몇 년 전에 <유리알 유희>를 읽고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만 그건 그냥 남겨두려합니다. 그냥 마음 속에서 알알했던 헤세로 있는 것이 좋을 듯해서요. ^^
 
한국 현대대표희곡 선집 1
한국극예술학회 엮음 / 월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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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월인”이라고 있다. “연극과 인간”과 같은 회사로 내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희곡과 연극에 관해서 가장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출판을 하고 있는 단체다. “연극과 인간”에서 나온 중국현대희곡선집 여덟 권을 읽으면서, 한국의 현대희곡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사실이 정말 창피했다. 그래서 꼭 한국의 희곡작품을 읽어보리라 작정을 하고 책을 찾던 중, ‘도서출판 월인’에서 나온 이 선집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은? 1917년 이광수가 쓴 <무정>. 이건 중학교 이상의 학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다 안다. 그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희곡은? 나도 어제까지 몰랐다. 조중환이 1912년에 매일신보에 연재한 <병자삼인病者三人>이다. 매일신보는 이 희곡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1912.11.6.일자 신문에 사고社告를 게재했다.


 “금번에 본사에서 가장 참신한 연극재료로 취미 진진하고 포복절도할 각본(脚本)을 창작하여 명일부터 본지에 기재하겠사오니 보시오 제군이여 제일착으로 희극 병자삼인(病者三人)이라 하는 것이 출생할 터이오며 그 내용에 활해(滑稽)할 사실은 독자로 하여곰 배를 쥐이고 허리를 분지를지라 이 오늘날 이십세기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우승열패함은 정한 이치라 제군도 명일부터 그 내용을 보시면, 아시려니와, 겸하야 이 각본을 연극으로 할 날이 있을 터이오니, 하나도 누락없이, 잘 보아 두시면 일후 연극할 때에는, 실지로, 그 광경을 보시고, 다대한 흥미를, 도울 줄 믿사오니 더욱 애독하시오”


 이 책에 든 희곡을 쓴 극작가의 이름을 나열해보자.
 조중환, 조명희, 김정진, 김우진, 송영, 유치진, 유진오, 백철, 임선규, 채만식, 함세덕, 김사량, 오영진.
 모두 열세 명의 극작가가 쓴 열네 편의 희곡. 1912년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에서부터 지금도 자주 무대에 올리는 유치진의 <토막>, 우리나라의 대표적 슈프레히코어 작가 백철의 <수도를 걷는 무리>, 불후의 명곡 “홍도야 우지마라”의 원전이 되는 임선규 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시집가는 날>로만 알고 있던 오영진의 사회비판적 희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까지 한국전쟁 전 시기의 대표희곡을 감상할 수 있다.
 멍징후이가 쓴 <워 아이 XXX>를 읽으면서 생소하면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표현방식을 '슈프레히코어'라고 한다는 것도 <수도를 걷는 무리>의 해설을 통해 알게 됐으며, 슈프레히코어 방식의 공연을 하면 연극에 음악성과 집단성을 동시에 줄 수 있겠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래 <워 아이 XXX>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를 하는 등장인물을 표기하지 않고 오직 “나는 빛을 사랑한다 /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빛이 곧 생겨났다 / 나는 너를 사랑한다 /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곧 네가 생겨났다” 같은 말하기(sprechen)와 합창(chor)이 만들어낼 거대한 호소력을 체험했다.
 그런데 극작가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책에 소개한 이이들의 작품은 대개 1930년대까지의 작품이다. 나는 단박에 이유를 알아차렸다. 대부분의 극작가들(오영진을 빼고)은 1930년대 후반에 들어 본격적인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친일부역 작가라는 멍에를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유치진, 유진오, 백철, 채만식, 오영진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건 카프 문학을 거쳐 “조선연극동맹”에 집결하여 대부분 월북한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에서 북측 참전문인으로 활동하다 폭격을 당해 숨을 거두기도 한다.
 채만식의 소설작품들은 몇 개 읽어봤지만 희곡은 처음 읽어보는 것. 나만 그렇지는 않을 거 같다. 이 책에 실린 <제향날>에서 채만식은 소설에서 보는 풍자를 넘어, 동학혁명 때 접주를 하던 남편이 죽어 청춘과부가 되고, 기미독립운동 때 앞줄에 섰던 아들이 청국 상해로 넘어가 독립군이 되고, 이제 하나 남은 손자가 일제치하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는, 나중에 하근찬의 <수난이대>보다 20년 앞선 리얼리즘 적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도 했다.
 재미는 차치하고, 우리나라 희곡사상 의미 있는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제 1세기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희곡부터 모은 선집이라 누백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희곡과 직접 비교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조촐한 유산도 알뜰하게 챙겨 읽는 독자가 있어야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도 빛나는 극작가가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이 독후감을 읽는 분들께서도 일독을 하심이 어떠하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이 “코미디”인 것이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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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것은 모두 펭귄클래식 104
0. 헨리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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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청소년들은 모르겠는데 대강 중학교 1학년 들면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로 꼭 지명되던 것이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였다. 나는 여태까지 이 작가를 <마지막 잎새>, 이 알싸한 트로트 작가로만 알았다. 역자 최인자도 “옮긴이의 말”의 첫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오 헨리의 단편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평소 오 헨리의 작품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말짱 착각이었으며 사실은 다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작품을 번역한 영문학자의 말이 이러니 일개 독자 입장에서 그를 트로트 작가로 치부해오고 있었다는 건 그리 타박할 일이 아닐 듯하다. 이제야 오 헨리의 사진을 처음 봤다. 생각했던 것과 영 다르다.

 

 


 책의 앞날개를 통해 이이의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것도 처음 알고, 은행에 근무하던 중 바보같이 서류를 잘못 작성해서 공금횡령죄로 3년 3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은행원 이전에 전전했던 직업으로 약국 조수(나중에 약사 자격증 취득), 목동, 우편배달부, 점원, 직공 등 다양하며, 감옥살이 중 딸을 키우기 위해 원고료를 벌 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단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나 스무 살부터 텍사스에서 살아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 오 헨리의 정체성이 남부 중류 이상 계급이며, 서부 개척시대의 관습 같은 것도 간혹 보인다. 젊어서 고생 오지게 한 건 여지없이 그의 작품 속에 다 들어있을 것이니 문학적 자산은 만든 셈이다.
 앞에 독후감을 쓴 너새니얼 호손의 생몰이 1804~1864, 오 헨리의 생몰은 1862~1910. 호손의 손자뻘이다. 산업과 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58년의 차이면 정말 상전벽해의 시간. 오 헨리의 단편에서는 호손의 단편에서 보던 청교도적 엄숙함과 신비주의 또는 우화 같은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하여, 당연히 내 기준에 입각해 말씀드리자면,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데,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많은 단편 작품들이 길이가 조금 긴 콩트를 읽는 것 같았다. 물론 읽기에 따라 마지막 결말 부분의 반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렇게 썼다고는 하지만 안타깝게 21세기의 독자들은 이미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져서 결말 부근에 이르면 작가가 어떤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벌써 알고 있기 쉽다.
 펭귄 클래식에서 오 헨리의 단편 작품은 두 권에 54편을 싣고 있다. 그의 단편을 모두 합하면 3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약 1/6만 소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 <반짝이는 것은 모두> 한 권을 읽고 이제 오 헨리는 졸업을 하려고 한다. 물론 책이 나온 20세기 초반에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었겠지만 세월이 100년 이상 흘러 이젠 책의 제목처럼 더 이상 반짝이지는 않는 것 같다. 당연히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에 불과하겠지만 하여튼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대한민국,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여간한 단편은 도무지 눈에 차지 않는 독자들이 우글대는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조금 더 숨 막히는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하물며 번역문학의 경우에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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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10-1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이상 반짝이지는 않는 것 같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좀 많이 낡은 느낌이죠.

Falstaff 2018-10-15 13:56   좋아요 0 | URL
예, 이젠 유통기한이 좀 지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