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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것은 모두 ㅣ 펭귄클래식 104
0. 헨리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 청소년들은 모르겠는데 대강 중학교 1학년 들면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로 꼭 지명되던 것이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였다. 나는 여태까지 이 작가를 <마지막 잎새>, 이 알싸한 트로트 작가로만 알았다. 역자 최인자도 “옮긴이의 말”의 첫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오 헨리의 단편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평소 오 헨리의 작품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말짱 착각이었으며 사실은 다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작품을 번역한 영문학자의 말이 이러니 일개 독자 입장에서 그를 트로트 작가로 치부해오고 있었다는 건 그리 타박할 일이 아닐 듯하다. 이제야 오 헨리의 사진을 처음 봤다. 생각했던 것과 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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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날개를 통해 이이의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것도 처음 알고, 은행에 근무하던 중 바보같이 서류를 잘못 작성해서 공금횡령죄로 3년 3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은행원 이전에 전전했던 직업으로 약국 조수(나중에 약사 자격증 취득), 목동, 우편배달부, 점원, 직공 등 다양하며, 감옥살이 중 딸을 키우기 위해 원고료를 벌 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단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나 스무 살부터 텍사스에서 살아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 오 헨리의 정체성이 남부 중류 이상 계급이며, 서부 개척시대의 관습 같은 것도 간혹 보인다. 젊어서 고생 오지게 한 건 여지없이 그의 작품 속에 다 들어있을 것이니 문학적 자산은 만든 셈이다.
앞에 독후감을 쓴 너새니얼 호손의 생몰이 1804~1864, 오 헨리의 생몰은 1862~1910. 호손의 손자뻘이다. 산업과 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58년의 차이면 정말 상전벽해의 시간. 오 헨리의 단편에서는 호손의 단편에서 보던 청교도적 엄숙함과 신비주의 또는 우화 같은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하여, 당연히 내 기준에 입각해 말씀드리자면,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데,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많은 단편 작품들이 길이가 조금 긴 콩트를 읽는 것 같았다. 물론 읽기에 따라 마지막 결말 부분의 반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렇게 썼다고는 하지만 안타깝게 21세기의 독자들은 이미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져서 결말 부근에 이르면 작가가 어떤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벌써 알고 있기 쉽다.
펭귄 클래식에서 오 헨리의 단편 작품은 두 권에 54편을 싣고 있다. 그의 단편을 모두 합하면 3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약 1/6만 소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 <반짝이는 것은 모두> 한 권을 읽고 이제 오 헨리는 졸업을 하려고 한다. 물론 책이 나온 20세기 초반에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었겠지만 세월이 100년 이상 흘러 이젠 책의 제목처럼 더 이상 반짝이지는 않는 것 같다. 당연히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에 불과하겠지만 하여튼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대한민국,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여간한 단편은 도무지 눈에 차지 않는 독자들이 우글대는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조금 더 숨 막히는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하물며 번역문학의 경우에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