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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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2월에 태어난 폴 오스터는 2024년 4월, 77세 때 폐암 합병증으로 죽는다. 반면 작품의 주인공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는 1947년 11월 출생이다. 독자는 S.T. 바움가트너가 폴 오스터의 페르소나라고 단정하면서 읽게 되고, 상당 부분 그렇게 읽는 것이 합당하기도 하지만, 바움가트너와 오스터 사이에 적지 않은 다름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움가트너는 역사의 격변에 따라 폴란드/오스트리아-헝가리/소비에트/우크라이나 지역이었으며 지배국의 발음대로 각각 스타니스와부프, 슈타니슬라우, 스타니슬라비우, 스타니슬라프, 최종적으로는 이바노프란키우스크라고 불리는 고장 출신이다. 반면에 오스터는 유대 폴란드 출신이라기도 하고 유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하기도 한다. 당시 동유럽의 국경이 하도 어지러운 시절이라서. 중동부 유럽에 살던 유대인 출신이니 무수하게 많은 친척들이 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것은 맞겠지만 원래 태생부터 픽셔니스트의 별을 타고난 폴 오스터가 죽어가면서 갑자기 환골탈태, 자기 이야기를 썼다고 믿지는 마시라. 이 작품 역시 전적으로 픽션이다. 픽션인 순간 이런 사소한 차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작중 바움가트너 교수는 첫사랑이자 첫 아내이자 유일한 아내인 애나가 10년 전에 죽은 이후 비록 숱한 과부와 노처녀들을 섭렵했지만 어쨌든 계속 독신을 유지하면서 애나를 그린 순정의 사나이지만, 폴 오스터는 첫 아내와 결혼해 7년 만에 이혼하고, 이혼하자마자 둘째 아내 시리와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시리의 보살핌을 받았다. 바움가트너 선생은 평생 무자식 상팔자의 은혜를 입은 반면, 오스터는 첫 결혼에서 아들 하나, 두번째 결혼에서 딸 하나를 낳은 다복한, 다복했는지 시끄럽기만 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랬다.


  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타이틀과, 역시 같은 시기를 살다 인생의 끝자락에 닿은 노 학자 바움가트너를 등장시켜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10년 전에 죽은 사랑하는 아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두번째 결혼으로 시작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을 담담하게 그려 놓은 것이, <바움가트너>를 읽으면서 독자를 조금 더 센티멘탈하게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다.

  폴 오스터는 평생, 결과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선택할 당시엔 언제나 최선의 것을 선택한 생을 이제 다 지난 시점에서, 새삼 뒤로 돌아가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삶을 접는 단계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한 번 펼쳐놓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른바 글 좋은 작가가 자신의 지난 시절을 풀어놓은 작품들을 보면, <바움가트너> 역시 마찬가지지만, 살면서 명성을 제법 누려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인물이나, 이미 악마처럼 거만한 권위가 목까지 가득 찬 인간들은, 자신들이 때에 따라 아주 작은 실수는 했을지언정, 언제나 정의롭겠다고, 옳은 방향으로만 행위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저 가슴 깊이 숨겨놓은 말로 드러내면 쪽팔려 죽을 것 같이 수치스러웠고, 지금도 그걸 생각할 때마다 수치스러운 일을 솔직하게 톡 까놓는 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나는 읽어본 적 없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내 가슴 속의 그런 수치는 얇은 나무 상자 속에 든 나와 함께 화장로에 들어가 활활 타 없어질 것이다. 작가라도 마찬가지지, 폴 오스터, 필립 로스처럼 마지막 작품 또는 유작 비슷한 책에서까지 나 자신을 분식할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최후의 순간까지 생까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족속이라.


  까딱하면 폴 오스터의 페르소나로 읽을 수 있는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 선생이 얼마나 늙었냐고?

  먼저 색다른 이름을 알아보자. 바움가트너. Baumgartner. Baum은 ‘나무’, Gartner는 ‘정원사’. 즉 나무 정원사라는 이름이다. 이렇게 명사 두 개를 합해서 자신의 가족 성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글쎄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는데, 많은 가족이 유대인이다. S.T. 바움가트너가 1947년생.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시모어’라는 이름은 너무 올드해서 촌스러운 이름이다. 그리하여 바움가트너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시모어 대신 ‘사이’라 불러달라고 해서, 일흔 살이 넘은 나이가 되어도, 새로 전력회사 계량기 검침원으로 입사한 그리스계 청년 에드 파파도풀로스조차 바움가트너 선생에게 ‘사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선생이 그렇게 부르라 청했지만. 두번째 이름 ‘티컴세’는 미국 정부를 상태로 부족의 운명을 걸고 죽을 때까지 전투를 치룬 아메리카 선주민 추장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사이가 티컴세와 같이 최후의 순간까지 용감한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티컴세를 아들의 이름 가운데에 넣었는데, 바움가트너는 이게 폼이 났던 모양이다. 이렇게 S.T. 바움가트너가 된다.

  양장점 3세대인 유대인 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유대 처녀를 얻어 아들 시모어와 누이동생 나오미를 만들고 살다가 시모어가 오하이오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에 다닐 당시 죽었다. 역시 제대로 양장 기술을 배운 어머니가 계속 양장점을 운영해 살았는데, 오스터의 아버지가 오스터가 16세든가 그때 사라진 건 비슷하지만 바움가트너 씨는 폐에 혈전이 뭉쳐 딱 1분 만에 세상 하직한 것과 다르게, 함께 잘 살고 있지는 못했던 아내와 이혼해 엄마-아들-딸의 연대에서 찢어져 나갔다.

  바움가트너의 생애를 통틀어 유일한 아내였으며 평생을 걸쳐 사랑했던 아내 애나는 단단한 몸에 거의 모든 스포츠에 능해서, 작품을 시작할 당시엔 9년 반 전에 휴가 차 간 케이프코드 해변에서 파도를 맞으러 늦은 오후에 바다에 달려 들어갔다가, 하필이면 괴물 같은 파도와 마주치는 바람에 등이 부러져 죽었다. 늦은 시간이고 파도가 높아지는 시간이라서, 바움가트너는 애나에게 그만 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애나는 그저 바라보며 웃더니 바움가트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파도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해버렸고, 그는 그저 읽던 책으로 눈길을 던질 뿐이었다. 수영을 워낙 잘하는 애나였으니까. 여태 불행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

  이 사건이 있고 10년 이상이 훌쩍 지난 다음, 한 사람이 추운 겨울에 1천킬로미터를 운전해서 바움가트너를 보러 오겠다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애나 때는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고 자기가 만류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고를 당하기 위하여 애나가 바다로 뛰어 들어갔지만, 십몇 년 후에는 상대가 뉴저지 바움가트너의 집으로 출발하려면 일주일 이상이 남아, 그러지 말고 차라리 기차를 타고 오라고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애나의 유작을 검토할 목적으로 오고자 하는 대학원생은 더 이상 바움가트너 선생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을 완강하게 사양한다. 대학원생의 안전을 위하여 더 이상 철도여행을 권유한다면, 애나의 유작 검토 계획마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을까? 아마 그럴 것 같다. 학생을 위하여 이미 차고와 지하실 공사를 마쳤고, 정원까지 직업을 정원사로 바꾼 저 그리스 출신의 옛 검침원 파파도폴로스에게 용역을 주어 깔끔하게 마친 상태. 학생으로서도 부담을 더 주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오면 교수가 렌터카를 빌려주겠다고 제의했을 정도이니 내가 학생이라도 차마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듯.


  이런, 다른 말만 했다. 바움가트너는 늙었다.

  서재에서 키르케로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가, 인용해야 하는 책을 아래층에 두고 온 기억이 났고, 동시에 오전 10시에 누이에게 전화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떠올랐다. 그래서 불편한 다리로 아래층에 내려오니까 뭔가 타고 있는 콕 쏘는 냄새가 난다. 아차, 아까 아침식사용으로 달걀 두 개를 삶았는데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삶고 있는 거다. 물은 당연히 다 졸았고, 계란도 이미 산소결합을 끝내 까맣게 타버렸으며, 언제라도 화재가 날 수 있는 상황이라 바움가트너는 냄비용 장갑이나 행주 말고 그냥 맨손으로 냄비를 들어올리다가, 아 뜨거, 손을 데 버리고, 냄비는 부엌 돌 바닥, 타일 위에 쨍그랑,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찬물을 틀고 수도꼭지 아래 손을 대고 한 3~4분 있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 뭘 하려고 했더라?

  이때 전화가 온다. 아차, 열시에 나오미한테 전화했어야 하는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구먼.

  그러나 아니다. 미지의 남자 목소리. 앞에서 말한 전기회사 계량기 검침원. 오늘 아침 9시에 온다고 해놓고 아직 도착을 못해 사과를 하고 곧바로 오겠단다. 그러자마자 초인종. 미국 택배회사 UPS 직원 몰리다. 지난 5년간 1주에 두세번씩 방문해 바움가트너 선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환하게 밝은 표정의 흑인 30대 여성. 몰리를 잠깐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위하여 바움가트너는 1주에 두세번 책을 구입해 포장도 뜯지 않고 지역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걸, 몰리는 모른다.

  다시 전화가 울린다. 이번엔 나오미겠지. 또 아니다. 9년 반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집안 살림을 깨끗하게 유지시켜 준 라틴계 플로레스 여사의 딸 로지타이다. 플로레스 여사 일이 아니라 목수 아버지 플로레스 씨가 늘 하던 원형 톱을 작동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잘라버린 사고를 당해, 플로레스 여사와 함께 병원에 가느라고 오늘 집에 올 수 없단다. 아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바움가트너는 로지타에게 지금 의술로 잘라진 손가락은 얼마든지 다시 붙일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또다시 초인종. 계량기 검침원 에드 파파로풀로스. 친절한 거구이며 부상으로 은퇴한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출신인 에드와 함께 계량기가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다가 바움가트너는 계단에서 사정없이 미끄러져 넘어진다. 냄비에 덴 손이 아파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기가 불편해서 생긴 사고다.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다른 곳보다 무릎이 너무 아프다. 에드가 다친 부위 역시 무릎이라서 동물이건 식물이건 생명을 손으로 다루는데 천부적 자질이 있는 것 같은 에드는 (그래서 바움가트너의 주례로 결혼한 다음에 정원사가 됐겠지만) 교수를 부축해 소파에 누이고, 일단 돌아갔다가 자기 일을 마친 시간에 얼음 한 봉지를 사와 얼음찜질까지 해준다.

  그러니 쉽게 말해서 바움가트너, 인생 다 살았다. A와 B를 해야 한다면, A를 잊고 A를 해야 할 때 B를 하거나, 같은 과정을 거쳐 B를 해야 할 때 A를 하거나, 둘 가운데 하여간 어떤 것을 해야 할 때 둘 다 잊는 일이 잦아졌다. 글을 쓰기 위해 저절로 숱한 단어가 파바박 떠올랐던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 지금은 단어 하나를 생각하기 위해 5분, 10분, 30분, 한 시간, 세 시간, 하루 꼬박 궁리나 고민을 해도 떠오를까 말까 한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뼈마디의 움직임이 마치 그리스grease를 치지 않은 조인트처럼 삐걱거린다. 정말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다.

  이렇게 살다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단계가 오면 양로원으로 가리라, 마음먹은 시모어 티모세 바움가트너. 그는 평생의 사랑이자 아내 애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애나의 작업을 인정해온 프린스턴대 영화학과 교수 주디스 포이어를 아끼다가, 연모의 정을 품다가, 사랑으로 진전하여 일흔이 넘은 나이에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청혼하려 시도해보기도 한다. 현명하지만 불행한 결혼생활 경험이 있는 두 아들의 어머니 주디스가 다정하게 거절을 해서 실망하기는 해도.

  그렇게 세상의 말년을 지내는 시모어 티모세 바움가트너. 소설을 읽는 일은 어느 만큼은 관음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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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득 찬 책 -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37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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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근(馬根)



  말의 남근?

  법명의 내력이야 알 수 없어도

  스님의 민머리를 뵐 때마다

  참으로 불경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

  부도를 바라보며

  남근을 떠올렸던

  천진한 노(老)시인의 푸른 눈빛이 생각나네


  장엄하나 벙어리인 책들이

  성처럼 쌓여 있는

  오후의 도서관


  용마(龍馬)도 천마(天馬)도 있다지만

  그들의 높은 날개보다

  오늘은

  본 적 없는

  말의 뿌리를 잡아 보고 싶은 거네

  그 거대한 근

  온몸으로 받아들여

  반쪽 아닌 온통으로

  개안(開眼)하고 싶은 거네

  하나 되고 싶은 거네   (전문. p.13~14)



  하, 이제 큰일났다. 강기원, 이 57년 닭띠 여사님 때문에 큰일났다. 시를 읽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읽었으니 앞으로 산에 들어 내가 좋아하는 서산 개심사나 안성 청룡사에 갈 때마다 혹시 박박 깎은 중대가리 보면, 여태까지는 그럴 때마다 저 대가리에 포마드 바를 일이 혹시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젠 강기원의 이 시 때문에, 거참, 중대가리 볼 때마다 마근, 말자지가 생각나지 않겠느냐 하는 거. 가뜩이나 말, 하면 생각나는 나랏말씀이 ‘말궁뎅이’ 아니면 ‘말자지’라서 이제 중대가리 볼 때마다 수말의 생식기, 그게 사람의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가정하에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씀인데, 생식기 가운데서도 껍데기 없는 대가리, 절 근처에 세운 부도의 뚜껑하고 영락없이 닮은 그 대가리를 떠올리지 않기도 힘들게 생겼다. 혹시 강기원은 수컷 인간의 생식기 대가리를 일컫는 말, ‘거북이 대가리’ 귀두龜頭를 앞으로 ‘중 대가리’ 승두僧頭라고 부르자 주장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근데 시인은 “거대한 근”, 이이가 마침맞게 받은 김수영 문학상에 이름을 빌려준 김수영 시인의 시집 문패처럼 “거대한 뿌리”를 본 적은 없지만 잡아보고 싶다는 거다. 근데 정말로 콱 잡았다. 김수영 문학상 받았으면 그걸로 됐다. 이제 시인이라면 다 받고 싶어하는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으니 온통으로 개안한 셈 치면 안 될까? 그게, 말의 생식기 뿌리가 워낙 굵직해서 한 손으로 움켜 쥘 수는 없을 터, 두 손으로 꽉 잡아야 놓치지 않을 거야. 하여간 이 시를 안 읽었으면 모를까, 읽었으니 앞으로 우짜냐?


  《바다로 가득 찬 책》이 두번째 시집으로 알고 있다. 전에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을 읽었는데, 그때 처음 읽은 강기원의 에로티시즘이 딱 내 수준에 맞았다. 그래서 꼭 다시 읽어볼 시인으로 꼽고 있었다가 언제나 말썽인 게으름 때문에 차일피일하다 결국 고른 책이 《보고 싶은 오빠》 진주 출신 시인의 시집이었다. 이거 참. 그이 시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던데 말씀이야.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것이지. 그래 이번에는 도서관 개가실 딱 들어가는 순간부터 오늘은 얄짤없이 강기원의 시집을 고르는 거야, 마음먹고 곧바로 시집 서가로 직진해 집어 들고 나온 거였다.

  강기원은, 아닐지 모르는데 전적으로 《바다로 가득 찬 책》에 실린 시를 읽고 추리해보면 첫번째 시집과 이 시집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궁적출을 해 시인 왈 돌계집, 그러니까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석녀石女가 되었다. 개인사는 그냥 넘어가자. 세상에 개인사 없는 개인은 하나도 없으니. 그래서 이이의 에로티시즘에 관해 말을 조금 더 보태, 앞의 시 <마근(馬根)> 바로 앞에 실린 시를 인용한다.



  위대한 암컷



  한때 그녀는 명소였다


  살아 있는 침묵

  하늘을 낳고 별을 낳고 금을 낳는

  신화였으므로

  범람하는 강이며 넘치지 않는 바다

  빛 없이도 당당한 다산성이었으므로

  바람의 발원지

  바람을 재우는 골짜기

  제왕도 들어오면 죽어야 나가는

  무자비한 아름다움이었으므로

  요람이며 무덤

  영혼의 불구를 치유하는 성소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이었으므로

  만물을 삼키고 뱉어 내는 소용돌이의 블랙홀

  곡신(谷神), 위대한 암컷이여


  여전히 그녀는 명소다

  수많은 자들의 탐험이 있었으나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은밀한 문   (전문. p.12)



  이게 시집의 앞에서 두번째 실린 시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때는 이 시 역시 강기원 표 에로티시즘 비슷하게 읽었다가, 저 뒤로 가서 누군가의, 아마 시인 본인의 경험인 듯한 자궁적출과 ‘돌계집’의 장면을 읽고 난 다음에, 혹시 이 시도 그것과 연결하여 읽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당연히 오해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읽어 보시라. 그녀는 신화’였고’ 다산성’이었으며’ 무자비한 아름다움, 요람이며 무덤, 치유의 성소,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었다.’ 즉 지금은 아니다. 그러다 마지막 연에 가서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명소”임과 동시에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 은밀한 문”임을 주장한다. 지금은 아니고 비록 과거에 그랬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자들의 탐험이” 있었어도 밝혀내지 못한 “은밀한 문”으로 존재하는 “위대한 암컷” 여성이다.

  어떠셔? 재밌지? 이게 시 읽는 재미다. 시인이 어떤 것을 주장하기 위해 시를 썼건, 하여간 꿈보다 해몽이라고 시를 해석하는 독자가 대빵인 거. 따라서 <위대한 암컷>을 읽은 내 소감이 정답이라고 조금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니 각자 알아서 생각하시라.

  아무리 그래도 강기원은 역시 에로틱한 시가 최고다. 예를 들어보라고? 좋다.


  복숭아


  사랑은…… 그러니까 과일 같은 것 사과 멜론 수박 배 감…… 다 아니고 예민한 복숭아 손을 잡고 있으면 손목이, 가슴을 대고 있으면 달아오른 심장이, 하나가 되었을 땐 뇌수마저 송두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 가는 것 사랑한다 속삭이며 서로의 살점 뭉텅뭉텅 베어 먹는 것 골즙까지 남김없이 빨아 먹는 것 앙상한 늑골만 남을 때까지…… 그래, 마지막까지 함께 썩어 가는 것…… 썩어갈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것……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전문. p.15)


사소한 유감은 마지막 말,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사족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건데, 뭐 독자가 그렇게 읽었다는 거고, 이렇게 쓰는 거야 엄연히 시인의 권리이니 불만은 없다. 그렇다는 것이지 뭐. 사소한 유감에도 불구하고 이 시 정말 괜찮다. 이은상의 시조 <사랑>하고 비슷한 거 같지 않나?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마소 /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 곳이 없소이다  (부분)


  이런 예스런 느낌의 현대적, 강기원식 발언. 아오, 말한 것처럼 저 사족 비슷한 느낌만 없었어도 이거 콱 외워버리고 말았을 텐데.

  그렇다고 내가 말한 에로틱한 시만 있는 것도 아니다. 1980년대 중앙일보던가 마구 헷갈리는데, 신춘문예에 <멸치>라는 시가 당선된 적이 있다. 정초에 <멸치>를 읽으면서 하여간 시인이란 참 특별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한 기억이 있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다중적인 필터로 보는 능력. 강기원도 주변의 아무렇지도 않은 사물을 보고 이런 노래를 지었다.



  고무장갑



  너는

  파충류의 영(靈)을 가졌다

  탈피 후에도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네 속을 드나든다

  불륜은 용감한 법

  너와 만날 때

  나는 가장 뻔뻔해져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욕실이든 주방이든

  이목구비 지워진 얼굴처럼

  지문 없는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가면의 시간들


  백주에도

  붉디붉은 손이다, 욕망이다

  너는   (전문.  p.65)



  이쯤 되면 이 분홍색, 아니면 붉은색 고무장갑이 주방용, 욕실용인지, 분홍색 아니면 붉은색 콘돔인지 헛갈릴 정도지만 그냥 주방용, 욕실용 일반 고무장갑으로 생각하고, 이걸 하루에도 수십번씩 착용하는 시인, 주부, 아내, 누군가의 딸, (2006년에 만 49세니까)어쩌면 할머니 또는 외할머니, 특히 강기원이면 아주 합당한 시.

  나는 가면 갈수록 이 시인이 좋아진다.

  아까, 이 독후감 쓰는 중간에 잠깐 검색해서 이제는 문학동네에서 다시 찍은 이이의 첫번째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를 희망도서 신청했다. 대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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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9-29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스님 법명 맑은(말 근) 일건데 짓궂은 사람 눈에만 스님 머리 보면 뾰로롱 하는 거래요!!!!!

Falstaff 2025-09-30 03:40   좋아요 1 | URL
법명이 ˝맑은˝ 아니라는 데 천원 겁니다. 짓궂은 거 아니고요 재미난 거 좋아하는 사람 눈에 뾰로롱 하는 겁니다, ㅋㅋㅋㅋ.
 
어부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3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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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남서부 나이지리아의 아쿠레에서 이보족 가정의 열두 자녀 가운데 n번째로 태어났다. 이보족,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역시 비아프라 공화국의 대외협력 장관을 지내기도 한 치누아 아체베. 그리고 아체베의 문학적 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나이지리아의 전형적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이 두 명은 1960년대 나이지리아 독립 초기에 발발했던 이보족 분리독립을 위한 소위 비아프라 내전을 심각하게 다루어, 내가 읽기로는, 문학적으로 성공했다. 나는 이보족의 분리독립 내전을 좀 고깝게 보는 인종이지만, 그렇다고 하우사족과 요르바족이 잘했다고도 절대 여기지 않는다. 아체베와 아디치에의 비아프라는 1960년대 초 이야기이고, 오비오마의 <어부들>은 이후 30여년이 흐른 1996년 3월에 욜라에서 발생한 유혈 분파주의 폭동 시절을 지나고 있다.

  그저 작품이 그 시절을 지나고 있다 뿐이지 이 책이 분파주의 유혈 폭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치고지에 오비오마는 열두 자녀 전부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자라면서 키프로스, 튀르키예를 경유해 미국의 미시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니 물론 부모의 헌신적인 교육열과 나이지리아의 부정부패와 군부에 반대하는 의식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수도도 아니고 지방도시인 아쿠레에서 외국으로 공부하러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중산층 가족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산아제한을 적극 권장하던 시기임에도 무려 열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었으니 말이지. 오비오마는 첫 작품 <어부들>에 이어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시골로 가는 길> 등을 연달아 발표해 첫 두 작품으로 2015년과 2019년에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라 유명세를 탔다. 네브래스카-링컨 대학의 영문과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조지아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비오마에게 일곱 형제와 네 누이가 있었다고 하니 부모는 8남4녀를 두었다. 오비오마가 어린 시절에 여덟 명의 형제 가운데 두 명이 지독하게 싸운 적이 있었단다. 당시 치고지에는 이 싸움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상상했고 그게 아마도 나이 들어서까지 머리에 남았던 모양이다. 이후 튀르키예를 거쳐 미국에서 공부하던 2012년에 자신이 상상하던 형제간 싸움의 최악의 결과와 그것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제목을 <어부들>이라고 했다.

  미리 말해두는 바, 나는 독후감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섯 형제 가운데 맏이와 둘째가 싸운다는 것까지 만 입에 올릴 뿐, 가장 비극적 결과와 사건 후에 벌어질 또다른 이야기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을 읽고 채점을 한다면 비록 만점은 주지 못하겠지만 읽는 재미가 있어서 뒤에 읽을 분들에게 조금의 힌트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는 아무리 작아도 없느니 못하다. 나도 책을 읽으며 내용이 궁금해 책을 제일 뒤 페이지로 넘겨 미리 결말을 읽어버릴까, 하던 때가 있었음에랴.


  아구 가족. 나이지리아 중앙은행 아쿠레 지점에 근무하는 아버지 제임스, 어머니는 가정주부 파울리나 아구. 작가 오비오마와 마찬가지로 이보족이다. 아쿠레에서는 수도 욜라와 달리 부족간 갈등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다. 은행원 가족이라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안 살림 때문에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네의 가난한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받는 것뿐. 형제들은 그래도 자신들을 굳이 멀리하지 않는 또래들인 유독 가난한 카요테, 반귀머거리 토비, 맏이의 친구 솔로몬 등과 어울려 뒷마당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다. 비록 이웃 의사네 집으로 공이 날아가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바람에 축구도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이제 별로 놀 것이 없다.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기는 아이들 학교 성적이 떨어지자마자 아버지가 벌써 압수해 어디로 숨겨놓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아버지가 숨겨놓은 게임기를 찾는다고? 감히?

  오랜 세월 다양한 부족간의 다툼과 전쟁이 있었던 아프리카에는 한 가족 집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한 수컷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를 필요로 해서, 아구 가족 역시 수컷 가장인 아버지는 거의 무한정한 권한을 갖고 있었고, 만약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자식들을 “구에르돈”이라 칭하는 가죽 몽둥이 혹은 채찍을 사용해 체벌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른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아프리카만큼 씨족, 부족, 종족 간 다툼이 치열하고 오래 지속한 지역이 (라틴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거의 없어서 좀 덜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따로 보관하기로 결정한 게임기를 자식들이 감히 집안을 뒤져서 찾으려 한다고?

  작품을 시작하는 시간적 배경은 1996년 1월. 두 달 전에 아버지가 아쿠레에서 1천킬로미터 떨어진 욜라 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아버지 혼자 떠났기 때문이다. 저 앞에서 말한 것처럼 96년 3월에 욜라에서 발생한 유혈 분파주의 폭동 때 수백명의 이보족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는데, 이때 아버지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1천킬로미터면 평양에서 부산까지 거리 정도? 당시 나이지리아의 교통, 이라기보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먼 길을 운전해 다닐 수 없어서 두 주일에 한번 꼴로 아버지는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에 다시 떠났다.


  아버지가 주말 부부를 선택하자마자, 1월 18일에 둘째 아들 보자가 생일을 맞아 약 한 달간 맏형 이켄나와 같은 나이가 됐다. 엄마는 분명히 자식들 모아놓고 너희 모두 같은 젖을 먹고 자랐다고 했음에도 이켄나에게 젖을 물리지 않았는지 출산 후 딱 한 달 만에 둘째 보자를 임신했다. 거참. 아니면 틀림없이 삼신 할매의 축복이다. 그러니까 첫째 이켄나와 둘째 보자가 한 살 터울. 셋째 오벰베와 작중 화자 벤저민이 한 살 차이. 아래로 터울을 두고 다섯째 아들 데이비드가 있고, 막내가 한 살짜리 누이 은켐이다. 당연히 이켄나의 친구이면 어영부영 보자의 친구이기도 한데, 이 가운데 한 명이 솔로몬. 소년들이 심리적, 도덕적으로 성장해가는 작품, 그러나 지극한 비극이 생기는 “썩어가는 밀알”을 제공하는 등장인물이다. 솔로몬이 제안한다. 이제 더 놀 것이 없으니 오미알라 강에 가서 낚시를 하자고.

  책의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아쿠레 마을의 약도가 그려져 있는데, 약간 남쪽에서 동서로 흐르는 강이다. 그리 크지 않은 강처럼 보인다. 아쿠레에 처음 정착한 최초의 정주민에게는 물고기와 식수를 공급하던 오염되지 않은 강이었지만, 아쿠레 마을 주민들에게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강이었다. 약도에는 폐수를 방출하는 공업단지나 공장이 없어서 혹시 강의 상류에 오염원을 흘려보내는 곳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책에는 애초에 사람들이 강을 숭배했으나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성경을 소개한 이후에 강을 사악한 곳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도 작품 속에 자주 소개되는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자주 나오듯, 기독교의 시선으로, 강을 대상으로 하는 토속 신앙을 우상숭배로 몰았던 것 같다. 더구나 1995년에 한 여자의 훼손된 시신이 발견된 이후 거의 완벽하게 버려진 상태였다.

  아직 너무 어린 데이비드를 제외한 형제 네 명과 솔로몬, 카요데, 토비 등은 당연히 이런 금기를 무시하고 강에 가 스스로 어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그럴 수 있지. 나 어렸을 때도 부모 허락 받지 않고 한강에 가서 놀다가 고종사촌 명희누나가 고자질하는 바람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두드려 맞은 적 있는 걸 뭐. 다 그러면서 크는 것이지.

  그런데 다 저녁때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루는 동네의 이름난 미친 남자 아불루와 만나는 일이 벌어진다. 아불루는 가끔 사람들에 대해 거의 저주 수준으로 가장 불운한 예언을 퍼붓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그가 맏이 이켄나에게 말한다. 말이 짧아 ‘이켄나’를 ‘이케나’로 부르면서.


  이케나, 너는 네가 죽을 날에 새처럼 매일 것이다. 네 혀는 굶주린 짐승처럼 네 입에서 비어져 나올 것이며 다시는 네 입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두 손을 들어 공기를 쥐려 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 너는 그날 말을 하려고 입을 열겠지만 말이 네 입안에서 얼어붙을 것이다.

  이케나, 너는 붉은 강에서 헤엄칠 것이나 다시는 그 강물에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네 생명은…


  이때 하필이면 비행기가 날아 그가 말한 뒷말을 보자만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이랬다.

  “너는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다.”


  형제가 강에서 돌아오다 이웃집 과부 아주머니 이야보에게 낚시대를 어깨에 짊어진 것을 들켰고, 아주머니는 이 사실을 친한 엄마한테 고자질했으며,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한 엄마는 아버지한테 보고해, 형제는 가죽 채찍 구에르돈으로 엉덩이에 자국을 내게 만든다. 체벌을 다 끝낸 후 엄하지만 기본적으로 천성이 따듯하고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는 엉덩이에 검붉은 멍이 든 아들들을 모아놓고 진심으로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모습은 좋은 꿈을 낚는 어부, 가장 큰 고기를 잡기 전까지는 쉬지 않는 어부들의 집단이 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거대 조직이 되기를, 위협적이고 막을 수 없는 어부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후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의 맏아들 답게 더없이 동생들을 아끼고, 보호하려 모든 힘을 다하던 이켄나는 한 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남동생 모두가 어부이며, 자신은 어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저주를 믿게 된 후. 그리하여 아이들이 많아 바람 잘 날 없는 이 행복한 가정에 불화와 싸움과 불행이 깃들게 되니,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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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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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보니것의 1973년 작품. 벌써 출간하고 52년이나 지났다. 2001년에 이형식 건대 명예교수가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 이름으로 처음 우리말 번역한 책을 냈고, 24년만에 시인 황유원이 젊은 감각으로 다시 번역해 문학동네에서 책을 냈다.

  작가로는 물론이고 일반 자유인 커트 보니것은 2차세계대전 말에 총도 보급받지 못하고 더벅머리도 깎지 않은 채 벌지 전투에 투입되어 늙은이와 소년으로 구성된 독일방위군의 포로로 잡힌 일, 포로수용소로 가던 중 하필이면 재수없게 드레스덴의 도살장 근방 지하 방공호 근처에서 밤을 나다가 밤새도록 영국공군과 미국공군의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공습을 당한 불바다 지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일, 완전 폐허가 된 도시에서 폭격 수습 작전에 전쟁 포로, 쉽게 말해 노예신분으로 투입되어 다양하게 절단된 인체와 죽기 전 인간이 흡수한 인체 내 다른 생명체, 즉 음식물의 잔해를 수거한 일, 이런 것들이 결정적으로 보니것 뇌 안의 화학작용에 영향을 끼쳐, 뉴욕의 펜트하우스 계단에서 발을 헛딛는 바람에 굴러떨어져, 목뼈가 댕강 부러져 숟가락 놓을 때까지, 크게는 사람 자체를, 조금 작게는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하는 체계를 좀 우습게 보는 시니컬리스트로 살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보니것 특유의,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 경지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사실 소설로 스타가 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살면서 이런 험한 경험을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돈 벌고,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지지고 볶다가 넓지 않은 집에서 자연사하는 것이 훨씬 좋은 삶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니것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러면서도 보니것을 읽을 때마다 특유의 니힐한 시각과 삐딱하게 프로그래밍 된 뇌활동이 재미있는 동시에, 딱 재미있는 만큼 짠하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내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정말인지 모르지만 제너럴 밀스 사에서 만든 아침식사용 시리얼 상품의 등록상표란다. 그러니까 여기서 챔피언들이라고 함은 마이크 타이슨이나 슈거레이 레너드 같은 미국 권투선수나 농구선수 카림 압둘 자바나 마리클 조던 같은 챔피언 급 스포츠 스타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냥 평범한 미국인, 그러나 대통령이 열을 받았다 하면 아무때나 총을 들고 남의 나라에 파병되어 드르륵 드르륵 또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총을 갈겨댈 수 있는 모든 미국의 젊은 여성과 남성을 통틀어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뭐 총 들고 전쟁 나가서 이길 수 있으면 그게 챔피언이지. 총 들고 전쟁터 나가라고 챔피언이라 허파에 바람을 넣을 수도 있는 일이고. 2차세계대전 중 포로생활과 세계사적 공습, 시체처리, 포로수용 등으로 영구적 PTSD를 겪은 사람은 주로 어린이들이 아침에 먹는 대용식을 보고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문화 페스티벌이 열리는 세퍼즈타운의 홀리데이 인 호텔의 칵테일 라운지에서 일하는 바텐더 버니, 남편이 세퍼즈타운 성인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하다가 몸이 아픈 바람에 돈을 벌어야 해 이 방면으로 진출한 버니가 다른 칵테일을 서빙할 때는 안 그렇지만 유독 마티니와 마티니에 유사한 칵테일을 주문한 손님에게 술을 건네며 하는 말이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입니다.”하고 말한다. 손님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질문할 때만 제너럴 밀스 사 운운하며 설명을 해주고. 이렇게 말한다 해서 바텐더 버니가 주인공은 아니다. 그저 몇 장면에 등장하는 조연과 엑스트라 중간의 존재감밖에 띄지 않는 출연진이다.


  누가 주인공이냐 하면 단연 작가 커트 보니것. 50살이 넘어서도 아직 마사라는 이름의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사가 근무하는 정신병원 또는 신경치료기관에 다니고 있는 보니것은, 책을 위하여 두 명의 늙은 남자를 만들어 주인공으로 삼았다.

  먼저 킬고어 트라우트. ‘빌’이라는 이름의 작은 앵무새를 키우며 혼자 사는데, 탄광 속에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들어가는 광부와 같은 마음으로, 대기에 독성이 가득 차기 시작하면 빌이 자신보다 몇 분 먼저 뻗을 테니 자기는 몇 분 동안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72년까지 킬고어 트라우트는 117편의 장편소설과 5천편의 단편소설을 썼지만 버릇이 원고를 딱 한 부만 작성해 잡지사나 출판사에 보내는 바람에 한 편의 원고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며칠 후에 있을 문화 페스티벌을 기점으로 다 늙어 화려한 스타의 반열에 오를 예정이지만 페스티벌 바로 직전까지는 그냥 거지 비슷하다. 그가 쓴 소설들은 주로 “활짝 벌어진 비버” 즉 아무것으로도 가리지 않고 가랑이를 마음껏 벌린 여성들의 사진이 즐비한 포르노 잡지에, 오직 페이지를 메꿀 요량으로 드문드문 실린 것이 거의 대부분이고, 그것도 어쨌거나 활자로 출판된 작품에 한해 ‘거의 대부분’이란 말이고, 출판사나 잡지사에 보낸 모든 작품에 비하면 이 ‘거의 대부분’은 무지하게 극소수일 뿐이었다. 정말 정말 극소수 작품은 어쨌거나 단행본으로 나와 있기는 한데 주로 포르노 서적을 판매하는 매대에 진열되고 있어서, (전체 인구가 아니라)책 읽는 인구의 0.031퍼센트만이 그의 작품을 읽어보았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무려 서너명은 될 듯하다. 이 서너명 가운데 한 명이 열세 살 정도의 글씨체를 가지고 있는 백만장자. 그가 친필로 트라우트에게 써서 보낸 팬레터 속에 인디애나폴리스 세퍼즈타운에서 열리는 문화 페스티벌 초대장과 숙박권, 그리고 몇 달을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의 왕복 거마비까지 보낸 거였다. 평생 이름을 내지 못한 소설가로 얼마나 맺힌 게 많았을까? 그리하여 반쯤 정신이 나간 늙은 킬고어는 자신의 연설에서 오만 꺵판을 다 쳐 볼 심사로 거지꼴로, 이젠 불법이 된 히치하이킹으로만 세퍼즈타운의 홀리데이 인에 도착한다.


  보니것은 작품이 이곳에서 킬고어 트라우트가 드웨인 후버를 만나는 이야기라고 구라를 친다. 거짓말은 아니다. 분명히 킬고어 트라우트는, 맨주먹으로 세퍼즈타운에서 폰티액 딜러로 성공하고 시의 잡다하거나 중요한 사업 거의 전부에 문어발처럼 손을 대 큰 경제적 세력을 키운 드웨인 후버를 만난다. 만나서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대화를 한다기보다, 일단 홀리데이 인의 칵테일라운지 옆자리에, 가운데 커트 보니것을 앉힌 상태에서 만나기는 한다. 명색이 보니것인데 그럼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 만난다면 만난다는 것이지. 킬고어 트라우트는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보니것 건너에 앉은 늙은이가 동네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 영감 드웨인 후버인 줄 모르고, 드웨인 후버는 하나 건너 인생 종친 것 같은 모습으로 쭈그려 앉은 지저분한 늙은이가 훗날 노벨 문학상이 아니라 “정신 생각이 질병의 원인이자 치유법이 된다.”는 구닥다리 주장이 인정받아 노벨 의학상을 받으며, 1981년에 죽어 공동묘지에 묻힐 때 미국 예술원, 학술원이 세운 기념물에 “우리는 오직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만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라고 묘비명을 팔 인물, 킬고어 트라우트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1972년에 인디애나폴리스 세퍼즈타운의 홀리데이인 호텔 로비의 칵테일라운지에서 만날 당시에, 킬고어 트라우트는 자기 인생이 이제 완전히 종쳤다고 확신하면서 자기가 역사상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드웨인 후버는 시작은 미미했으나 이렇게 창대한 노년을 맞게 되어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딱 하나 있는 외동아들은 동성애자 그것도 바텀 역을 맡은 게이로 열네 살에 가출해 지금 칵테일라운지 앞의 소형 그랜드피아노에서 유행가를 연주해 먹고 살고, 본인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신경정신과적으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에 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앗참. 드웨인 후버는 사업을 하면서 가뜩이나 총명한 두뇌를 더욱 향상시켰으며, 진일보 하기 위하여 속독법까지 익혀 웬만한 얇은 책은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비빔국수 먹는 속도로 읽어 치울 수 있었는데, 세퍼즈타운까지 오면서 읽을 요량으로 트라우트가 트럭터미널 휴게소의 포르노잡지 가판대에서 산 자기 소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이름도 모르는 드웨인에게 주어, 불과 몇 십 분만에 다 읽어버린 드웨인이, 책을 읽자마자 곧바로 뇌의 볼트와 너트가 풀리면서 잔뜩 압축된 상태로 고정된 판스프링이 팍 튀어오르는 바람에 갑자기 미치광이가 되어, 제일 먼저 소형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들 리오의 머리통을 피아노 건반에 대고 문질러 눈물, 콧물, 혈액, 장액, 기타 이상한 점도를 가지고 있는 액체를 얼굴에서 방출하게 만들었으며, 만일 신사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여성 바텐더와 여성 작가의 얼굴 피부 세포 사이의 거리를 멀리 떨어지게(즉, 피부가 찢어지게) 만드는 동시에 골격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게 만든 다음, 여성한테도 이 지랄이었으니 남자들한테는 무슨 일을 하지 못할까? 쉬운 말로 1492년에 수백만 명의 충만하고 창의적인 삶을 살고 있던 대륙에 쳐들어온 얼굴 색깔 허연 해적처럼 지독한 오폐수가 넘치는 1972년 여름의 세퍼즈타운에서 온갖 난리법석인 아수라장을 만들어버렸던 거다.

  이건 훗날 노벨 의학상을 받을 트라우트가 쓴 소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안에 나오는 나쁜 생각이 드웨인의 정신에 독으로 작용해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기 보다, 두 명의 주인공이 만날 당시 합석했던 커트 보니것이 애초에 그렇게 작품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커트 보니것에게 이렇게 무례한 작품을 쓸 수 있게 성격을 고착시켜준 은인으로 보니것은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나 PTSD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열네 살이었을 때 마흔 살쯤 된 엄마의 친구이자 자기 친구의 엄마이며 기꺼이 이 책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를 헌정한 피버 허티 여사를 들었다. 그녀에게 배운 우아한 무례함을 직접 써먹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할 거라는 약속과 함께.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커트 보니것의 우아한 무례함을 나도 계속 따라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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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9-25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로 있어요 ㅎㅎ
안 읽었고,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ㅋㅋ

Falstaff 2025-09-25 15:02   좋아요 1 | URL
이 책이 큰 재미는 없더라고요. 쇤네 셀폰 북적북적 앱에 별 셋 주었네요. 그래도 원서로 가지고 계시면 읽어보셔야지요. ㅋㅋ
 
경세통언 2 - 어리석은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
풍몽룡 지음, 김진곤 옮김 / 아모르문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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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편의 단편소설 혹은 채집해 수록한 민담, 채집해서 풍몽룡이 다시 쓴 민담 가운데 열두 편을 실은 경세통언의 두번째 책. 작가 풍몽룡 자신이 명말청초 시기의 선비로 공부에 힘을 쏟았으나 쉽게 과거 급제하지 못해 차곡차곡 나이만 들어가는 긴 학생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책 속에도, 저 옛 시절 주 문왕을 도와 상나라 주왕을 척살하고 천하를 제패하는데 큰 힘을 쏟아 제나라의 패왕으로 임명되었으나, 아들로 하여금 제나라를 꾸려나가게 하고 자신은 주나라의 신하로 160살까지 헌신한 강태공, 이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하여간 오래 공부하다 다 늙어 과거 급제한 사람들 이야기가 줄곧 나온다.

  작품의 공간은 장강 이남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북경을 비롯한 북쪽 지방일 수도 있어도 그쪽에서 사건을 벌이다가 결국 장강 이남, 때로는 회계 지역 등 옛 오월 땅에서 결말을 맺는다. 그러면 이 민담 혹은 소설들을 읽으며 스토리들이 눈에 익은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터. 남송 시대 이후 장강 이남에서 발달한 예술 형태, 곡曲. 즉 연극 또는 차이니즈 오페라라고 부르는 극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많다. 중국의 곡에 관해 알지 못하여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겠지만 장강 유역 특히 남송의 수도였던 난징에서 가까운 쑤저우 근방에서 곡이 발달해, 남곡과 북곡의 장점을 취한 곤곡이 유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옛 초나라 땅, 더 세분해서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이 세상 둘도 없는 드라마를 만든 오와 회계의 백성들 이야기를 많이 담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작품 가운데 <옥당춘이 왕경륭과 재회하다>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드리자면, 풍몽룡이 16세기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산 사람이다. 그리하여 지금 “단연” 눈에 들어왔다고 해도, 이것이 저 먼 시절, 춥고 추운 동짓달 밤에 화롯가에 모여 앉아 밤 구워 까먹으며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던 수준에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단편소설의 플롯이나 작법을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으려면 아예 첫 장도 열지 않는 편이 낫겠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주인공의 이름 “옥당춘.” 어? 옥당춘玉堂春? 혹시 옥단춘玉丹春 아냐? 우리나라 조선 후기에도 <옥단춘전>이라는 작품이 있어, 나 어린 시절에 모친께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하시는 바람에 책꽂이에 “한국고전문학전집”이란 책 한 질이 있어서, 거기서 읽은 적 있다. 벌써 50년 너머의 오랜 기억이라 기억이 까마득하지만 하여간 <옥단춘전>을 읽었고, 그때 <춘향전>과 많이 비슷하다는 거에 깜짝 놀랐던 것까지 떠올랐다. 근데 풍몽룡이 《경세통언》에 실은 <옥당춘…>하고는 얼마나 비슷할까? 아쉽게 그 정도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세월이 얼만데.

  중국에서는 정원화라는 기생이 있어서, 거지꼴이 된 서생을 뒷바라지해 과거 급제하게 도와주어 서생의 인생역전을 하게 만든 이야기가 있던 모양이다. <옥당춘…>에서도 주인공 옥당춘이 남주인공 왕경륭을 도와 과거 급제하게 만들어주기는 하는데 여러가지로 우리나라 옥단춘, 중국의 정원화와 다르다. 우리나라 이야기에서 남주인공 이혈룡이 옥단춘을 만났을 때 이미 이혈룡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이며, 동문수학했던 김모의 지시에 의하여 동네 건달한테 칼 맞아 대동강 물속에서 물고기 밥이 되기 바로 전 신세였던 것에 비해, <옥당춘…>의 남주인공 왕경륜은 장강 이남의 은퇴 고관이자 거부의 막내 아들로 북경에 남아 재산을 정리하다가 장안 제일의 기녀 옥당춘의 귀밑머리를 풀어주며 많고 많은 북쪽 재산을 거덜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즉 처음엔 옥당춘으로 하여금 남주인공 왕경륜의 불행, 그것도 큰 불행의 발화점이 되게 만들었다. 이후 집안 호적에서도 파버린 형국이 된 왕경륜이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결국 다시 아버지 앞에서 싹싹 빌고 공부에 전념해 과거에 급제하고, 그동안 악독한 기생어미가 옥당춘을 돈 많은 장사꾼에게 팔아버려 저 산서성으로 보낸 것을 알고, 그곳으로 어사 발령이 나자마자 옥당춘의 누명을 벗겨준 다음, 두번째 아내인지 첩자리인지 하여간 다시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첩 자리였을 것.

  옥당춘은 처음엔 왕경륜을 홀려 집안의 재산을 홀딱 빼먹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어느새 사랑이 깊어져 빈털터리가 된 왕경륜에게 집으로 돌아갈 여비와 함께 다시 공부를 해 과거를 볼 수 있게 각오를 다지게 만든다.

  이런 스토리라인, 전혀 새롭지 않지? 여기서 왕경륜이 작품 속 이야기와 다르게,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아이 하나를 만들었고, 훗날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날리고 있음에도, 아이를 들쳐 업은 옥당춘이 나타나 나리, 옛 정을 생각하시어 아이나 키우게 돌보소서, 하는 애원을 겉으로는 안타까운 척하면서도 안면몰수하고 입 싹 닦는다면 그게 <미워도 다시 한번>의 원형이 될 터이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지만 중국의 극에서는 훨씬 더 많다. 딱 과거 보러 가는 선비와 기녀 뿐만 아니라, 서생과 기녀, 서생과 몸과 마음이 활수한 시골 처녀 같은 경우도 많다. 8할이 <미워도 다시 한번> 스타일이고, 8할 중에 반 이상이 기녀 또는 처녀가 한 많은 귀신이 되어 다시 선비 앞에 나타난다. 2할이 <옥당춘…>, 우리나라 <옥단춘전>이나 <춘향전> 같은 해피엔드다.

  그래도 이렇게 뻔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왜 이렇게 여러가지 버전의 이야기로 만들었을까? 재미있으니까. 안 그러면 뭐하러 애써가며 다시 쓰고, 조금 바꿔서 또 다시 썼겠는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경세통언》 마지막 3권까지 가야겠다. 한 달 후에 읽을 예정. 오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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